101편 - 충돌
마현우가 생각에 잠겨있는 동안 장수 역시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나 혼자서 과연 네 명을 상대할 수 있을까?'
네 명을 상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장수는 방심한 상대를 이용해서 승리를 얻었던 것이다. 장수의 평범한 기도와 전혀 고수답지 않은 체형은 보는 이를 방심하게 만든다. 더구나 태극권은 웬만한 무인들은 모두 알고 있는 권법이었기에 더욱더 방심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태에서 승리를 거둔 것이다.
하지만 지금 눈앞의 네 명은 장수가 절정고수를 해치우는 것을 똑똑히 지켜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방심을 기대할 수가 없었다.
더구나 네 명이라는 숫자에도 장수는 약간의 압박감을 느꼈다.
하지만 마현우에 대해서 장수는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마현우는 전생에서 동료였다. 거기다 싫어하는 사이였기에 녀석이 쓰는 무공에 대해서 분석을 했던 것이다. 그랬기에 녀석을 이용하면 승리를 거둘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시간을 더 이상 끌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호각소리를 듣고 또 다른 절정고수가 나타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네 명이 절정고수를 쓰러뜨리는 것은 보통일이 아니었지만 그보다 더 많은 수의 절정고수를 쓰러뜨리는 것은 보통일을 넘어선 불가능한 일이었다.
더구나 녀석들을 쓰러뜨리기 위해서는 장법 밖에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본신의 실력을 내보여야할 것이다. 더불어 장수의 내공이 정말로 정심하다할 지라도 그것은 한계가 있었다.
'내가 지금 장력을 몇 번이나 사용했지?'
지금까지 은신술을 발휘하고 장력을 사용한 것은 전부 내공을 소모하는 일이었다. 더구나 급박한 상황이었기에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 그래서 체력 소모도 엄청났다.
비록 지금 이 순간에도 전진심법과 선천지공 덕분에 내력이 충전되고 있었지만 소모된 양을 모두 채우기는 힘들었다. 그랬기에 잘못하면 장력을 쓰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승산이 없었다.
장수는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싸워야 하는 순간이 왔던 것이다.
"덤벼라!"
장수의 말에 마현우는 인상을 찌푸렸다.
'젠장. 강자구나.'
절정고수 네 명이 앞에 서 있었다. 그런데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보니 자신들 쯤은 두렵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는 것은 자신의 무력에 자신이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아무리 봐도 녀석은 절정고수로 느껴지지 않았다. 자신이 알 수 없는 고수라는 것은 실력이 자신보다 더욱 뛰어나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초절정고수라는 말이었다.
'정말 초절정고수일까?'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다. 초절정고수는 각 문파에서 얼마 안 되는 보물이었다. 모든 문파는 절정고수의 숫자로 힘을 나타냈지만 초절정고수는 진정한 힘이었다. 초절정고수가 전투에 나타나면 그 싸움은 이미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더구나 초절정고수라면 소속이 분명했다. 초절정고수가 만들어질 수 있는 문파는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초절정고수가 이곳에 나타났다는 것은 자신들이 음모를 어느 세력이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무림맹일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확인을 해야 했다. 상대는 굳이 자신을 상인이라고 밝혔던 것이다.
"가라!"
마현우는 자신의 목숨이 아까웠다. 잘못하다 초절정고수에게 죽임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부하들에게만 명령을 내린 것이다.
그러자 마현우의 옆에 서 있던 세 명의 절정고수가 장수에게 다가갔다.
'세 명이구나.'
네 명일 때보다 승산이 더 높아졌다. 장수는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역시. 네 녀석은 아직도 목숨을 아끼는구나.'
마현우는 축복받은 피를 가지고 태어난 녀석이었다. 그랬기 때문인지 다른 녀석들보다 유달리 위험한 일을 안 하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그래서 이런 상황이 오면 부하들에게 공격을 시키고 자신은 관망을 할 것으로 생각했다.
사실 이 자리에서 가장 강한 것은 녀석이었다. 녀석이 다른 세 명과 힘을 합쳐서 자신을 공격했다면 자신은 분명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녀석이 알아서 빠져주고 있었다.
'네가 그러니까 평생 초절정고수에 오르지 못하는 것이다.'
목숨에 대한 애착, 그리고 어려운 상황에서의 회피가 그의 앞을 막는 벽이었던 것이다. 만약 녀석이 조금만 더 용맹전진하게 수련을 했더라면 벌써 초절정의 벽을 넘어 섰을 것이다. 하지만 녀석은 이렇게 중요한 순간에도 뒤로 빼고 있었다.
장수는 우선은 마현우에 대한 생각을 뒤로 했다. 다가오는 절정고수들을 상대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절정고수들은 한 명은 검, 그리고 다른 한 명은 도를 들고 있었다. 나머지 한 명은 도끼를 들고 있었다. 그들은 이미 장수의 실력을 알았기 때문에 방심하지 않은 듯 작정을 하고 장수에게 다가왔다.
장수는 급하게 녀석들을 살폈다.
'조심하지 않으면 위험하겠구나.'
쉽지 않은 일이었다. 절정고수 세 명을 상대하는 일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평소보다 더욱 조심해야 했다. 더구나 무슨 무공을 쓸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검을 쓰는 녀석들 중 한 명이 장수를 찔러왔다. 그러자 장수는 급하게 피하면서 태극권을 펼쳤다. 그러자 태극권이 부드럽게 원을 그리면서 녀석의 복부를 향해 나아갔다. 그때 도 한 자루가 장수의 손을 베어갔다.
'이런!'
이대로 손을 뻗다가는 손이 베일 수 있었다. 그랬기에 장수의 손은 부드럽게 뒤로 빠졌다. 그리고 오른손이 도를 휘두른 녀석을 향해 나아갔다. 그 순간 도끼를 든 녀석이 장수의 몸을 두 조각 낼 듯이 베어 들어왔다.
장수로서는 쉽게 상대할 수 없었다. 더구나 세 명이었기에 빈틈을 노리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장수는 급하게 뒤로 빠졌다. 그러면서 녀석들을 조심히 살폈다.
'이대로는 오히려 당하겠구나.'
같은 절정고수였다. 더구나 장수의 실력이 월등히 강한 게 아니었기 때문에 상황을 지켜보아야 했던 것이다.
시간을 끌어서도 안 된다. 시간을 끌면 다른 절정고수가 올지 몰랐고 마현우가 합세할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시간을 끌면 끌수록 자신의 실력을 저들이 파악할 것이다. 그러면 늦는다.
'초식을 유심히 보자.'
절정고수는 무기를 휘두를 때 초식에 얽매인다. 그랬기 때문에 은연중에 무공이 드러나는 것이다.
장수는 피하는 것에 중점을 했다. 태극권은 상대의 힘을 이용하는 무공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세 명의 힘을 이용하면서 방어를 하자 어렵지 않게 녀석들을 상대할 수 있었다. 더구나 어느 정도의 충격을 되돌려 줄 수 있었다. 그렇게 이십여 초식이 지났다.
'검을 쓰는 녀석은 철수검(鐵琇劍)을 쓰고 도를 쓰는 녀석은 생사금마도결(生死金魔刀訣)을 쓰는 구나. 그런데 도끼를 쓰는 녀석은 무슨 무공을 쓰는지 모르겠구나.'
장수라고 해서 혈교의 모든 무공을 다 아는 것은 아니었다. 더구나 혈교는 외부에서 고수들을 세뇌시켜 교의 전력으로 삼을 때도 있었기에 녀석이 혈교의 무공을 익히지 않을 수도 있었다.
장수는 눈을 중점적으로 봤는데 도를 든 녀석의 눈은 초점이 흐렸다. 그것을 보니 세뇌가 다른 자들보다도 심하게 걸린 것 같았다. 그것은 다른 문파의 녀석인데 혈교에 세뇌를 당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도를 든 녀석을 위주로 싸워야겠다.'
강한 세뇌는 그만큼 반발력이 있었다. 본신의 실력을 제한했던 것이다. 그랬기에 혈교에서도 웬만하면 세뇌를 제한해서 걸었던 것이다. 그리고 쓸 만한 녀석이 아니라면 세뇌를 하지 않고 다른 금지된 방법에 썼다.
도를 든 녀석도 이용만 당하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불쌍하다고 봐줄 수는 없었다. 어차피 녀석을 봐준다고 해도 세뇌를 풀 수 없었다.
더구나 지금은 자신이 위험에 처한 상황이었다. 저쪽에서는 의심이 눈초리로 장수를 보고 있는 마현우가 있었다. 그는 이제 잠시 뒤에 협공에 뛰어들 것이 분명했다.
더구나 멀리서 이쪽으로 달려오는 혈교의 절정고수도 느낄 수 있었다. 어떻게든 녀석들을 처리해야 했던 것이다.
검을 든 녀석과 도를 쓰는 녀석의 무공은 파악이 끝난 상태였다. 녀석들 역시 도끼를 든 녀석보다는 약하지만 세뇌에 걸렸기에 본신의 의지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장수는 그것을 알지만 어떻게 해줄 방법이 없었다. 그저 목숨을 끊어 더 이상 혈교에게 이용당하지 않게 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세 명은 모두 무기에 기를 뿜어내는 상황이었다. 조금의 상처도 입어서는 안 되었다.
장수 역시 손바닥에 기를 뿜어내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랬기에 손바닥 이외에 상처를 입게 되면 크게 다칠 수가 있었다.
그사이에도 절정고수들의 무기가 장수에게 상처를 입히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장수가 일방적으로 밀리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제대로 된 공격이 서로 안 들어가고 있었기에 상황은 비슷했다.
하지만 속사정은 달랐다. 이미 무공을 파악한 이상 승기는 장수에게 넘어간 상황이었다. 이대로 시간을 보내면 장수의 승리가 확실했지만 장수로서는 조금은 무리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곳은 적진 한가운데였고, 계속해서 혈교와 관련된 자들이 달려오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한시라도 빨리 녀석들을 제거해야 했던 것이다.
장수의 몸이 빙그르르 돌았다. 그와 함께 세 명의 절정고수는 장수의 요혈을 향해 무기를 휘둘렀다. 그러자 장수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탁!
검의 검로를 향해 우연처럼 움직인 것이다. 그와 함께 검을 든 절정고수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와 동시에 장수의 손이 도가 가는 길을 쳐냈다.
퉁!
도 역시 힘없이 튕겨졌다.
무기가 나아가는 방향으로 조금 더 힘을 주었기에 다시 무기를 휘두르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시간이면 도끼를 든 녀석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었다.
장수는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태극권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수천 번 연습한 동작이었기에 도끼를 든 녀석의 몸으로 파고드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얍!"
도끼를 든 녀석은 단발마의 괴성을 지르더니 장수를 향해 도끼를 휘둘렀다. 하지만 일대일 상황이었고 세뇌로 인해 전력을 쓸 수 없는 녀석은 장수의 상대가 아니었다. 장수는 자연스럽게 태극권에서 칠선장으로 무공을 바꾸어 자신의 손바닥으로 녀석의 배를 강타하려는 순간.
"멈춰라!"
마현우가 뛰어들었다.
'젠장!'
장수는 마현우가 이렇게나 빨리 뛰어들지 몰랐다. 소심한 녀석이었는데 십오 년이라는 세월이 지나자 성격이 변한 것이다.
녀석의 동태를 파악하려고 애를 썼지만 공격이 들어간 상황에서 마현우의 공격이 들어와 쉽게 몸을 뺄 수가 없었다.
장수는 칠선장을 펼치지 못하고 태극권으로 자연스럽게 동작을 바꾼 뒤에 도끼를 든 녀석의 팔과 어깨를 감싼 뒤에 뒤로 던졌다.
"젠장!"
도끼를 든 녀석은 원심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앞으로 쏠리듯이 마현우에게 부딪혔다. 세뇌가 된 상태이기 때문에 자신의 상관인 마현우를 공격할 수 없었다. 그랬기에 도를 든 절정고수는 기운도 회수한 채 멍한 표정으로 짓고 있었다.
그러자 마현우는 녀석을 발로 걷어 찬 뒤에 장수의 등을 베었다.
쑥.
미처 제대로 된 기운을 뿜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랬기에 도가 장수의 등을 제대로 베지 못했다. 그 정도뿐이었지만 장수의 등은 피로 시뻘겋게 물이 들었다.
장수는 급하게 뒤로 돌아 마현우를 바라보았다.
'젠장! 계획이 틀어졌구나.'
도끼를 든 녀석만 해치우면 나머지 두 녀석은 쉽게 해치울 수 있었다. 그렇게 된다면 마현우는 분명 도망갔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빨리 자신을 공격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장수는 인상을 찡그렸다. 그에 반해 마현우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네 녀석 절정고수였구나. 더구나 쓸 수 있는 무공은 태극권 밖에 없구나. 그렇다면 승부는 뻔한 것이지."
장수가 보여준 것은 태극권 밖에 없었다. 그랬기에 장수가 태극권만 쓰는 걸로 착각을 한 것이다. 장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현우가 착각을 하면 할수록 더 유리해 지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태극권을 이정도로 익힌 자를 키울 곳은 무당파뿐이다. 네 녀석이 변장을 한 거 같지만 무당파 소속이라는 것은 변명하지 못할 일이다. 아마 무림맹의 사주를 받아 무당파에서 이곳으로 파견이 된 거 같은데 이 원한은 본교가 꼭 갚아 줄 것이다. 하지만 그전에 네 녀석의 목숨 하나쯤은 가져야겠다."
그사이에 도끼를 든 녀석도 어느새 정신을 차렸는지 한쪽에 서서 장수의 포위망을 만들었다.
장수는 등에 상처를 입었다. 더구나 네 명의 절정고수가 포위를 했고 뒤쪽으로 절정고수가 달려오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승산이 없었다.
장수는 자신도 모르게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와 함께 이마에서 땀이 흘러 내렸다.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이들을 자신이 막지 못한다면 자신이 목숨을 물론이고 도망가는 병사들도 전멸을 당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어떻게든 막아야 했던 것이다.
그때 마현우가 도를 든 손을 높이 올렸다.
"녀석을 죽여라!"
그와 함께 세 명의 절정고수가 다시 한 번 장수를 향해 달려들었다.
장수는 위기에 처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