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편 - 충돌
“무당파의 저력이 상상을 초월하는구나.”
마현우는 장수가 몇 명의 절정고수를 죽였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자신의 눈앞에서만 여러 절정고수를 죽였기에 놀란 것이다.
더구나 나이도 아직 중년을 넘지 못한 자가 한 일치고는 대단한 일이었다.
하지만 감탄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어떻게 하든지 간에 녀석을 죽여야 했다.
그리고 장수의 힘이 다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처럼 느껴졌다.
“그나저나 이 녀석들은 왜 이렇게 안 오는 거야?”
같은 절정고수였지만 다른 자들은 쓰다 버리는 폐기물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명령에 충실하게 따르는 노예 같은 자들이었다.
그런데 호각 소리로 아까부터 시끄러운데 절정고수들이 안 오자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지금 상황에서 한두 명만 도착해도 저 무당파의 절정고수를 죽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마현우는 인상을 찡그리다 앞으로 나섰다. 더 이상 시간을 끌 수가 없었다.
이대로 가면 부하가 죽고 무당파의 절정고수는 도망을 칠 것이 분명해 보였다.
마현우는 도를 들었다. 그리고 사령도법(死靈刀法)의 기수식을 취했다.
사령도법은 혈교의 대표적인 도법 중 하나다. 혈교의 주술과 도법이 합쳐진 것으로 도를 휘두르면서 생기는 음파를 이용해 상대방을 혼란시키는 도법이다.
장수는 도를 든 절정고수에게 계속해서 밀리고 있었다. 겨우 회복된 체력과 내공이 거의 바닥이 난 것이다. 거기다 내상은 전진심법의 기운 덕분에 어느 정도 아물었지만 흘린 피가 너무 많아 움직이는 데 지장이 있었다.
그랬기에 장수는 반격을 할 틈을 노렸지만 쉽게 기회를 잡을 수 없었다.
그나마 아직까지 장수가 살 수 있었던 것은 생사금마도결(生死金魔刀訣)의 초식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몸은 절정이었지만 정신은 초절정의 경지를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고 새로 배운 정파 무공의 현묘함 덕분에 위급한 순간을 간신히 모면할 수 있었던 것이다.
비록 이 시간에도 몸에서는 새로운 상처가 생겨나고 있었지만 이대로 가면 지지는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때 마현우가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녀석이 움직이는구나!’
지금 상황에서 두 명을 상대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 특히 마현우는 혈교의 축복받은 피를 받은 자라 보통의 절정고수보다도 상위 무공을 배웠고 특혜를 받았기에 무공 역시 뛰어났다.
하지만 장수는 마현우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사령도법이 무서운 도법이긴 하지.’
사령도법은 극성으로 익히면 도를 휘두를 때마다 악령이 날아오는 것 같은 환영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정도의 경지에 오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고 마현우 역시 현혹할 수 있을 정도의 경지까지만 익혔을 뿐이었다.
하지만 장수는 사령도법의 초식을 혈교에 있을 때 연구했었기 때문에 초식이나 무공의 장단점을 다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공력 소모가 거의 없어 멀쩡한 마현우였지만 그렇게 겁이 나지 않았다.
장수는 도를 든 절정고수를 피하면서 마현우를 살폈다. 그때 마현우의 도가 장수를 향해 휘둘러졌다.
“죽어라!”
사령도법의 초식을 알았기에 장수는 쉽게 피할 수 있었다.
마현우는 장수를 향해 미친 듯이 도를 휘둘렀다. 하지만 장수가 쉽게 피해내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 미꾸라지 같은 녀석, 내 공격을 언제까지 피할 수 있는지 보자!”
말과 함께 마현우의 공격이 계속되었다. 도는 도기를 품고 있었고 거침없이 빨랐지만 장수는 최소한의 동작으로 쉽게 피해 낼 수 있었다.
더구나 마현우는 생사금마도결을 펼치는 절정고수 때문에 움직임에 방해를 받아서인지 제대로 된 실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그랬기에 공격을 하는 사람은 둘로 늘어났지만 아까보다 장수에게 피해를 입히지 못하고 있었다.
마현우는 자신의 공격이 계속해서 빗나가자 인상이 붉어졌다.
공력을 더욱 끌어올려서 초식을 펼쳤지만 공격은 장수의 몸에 닿을 듯하면서도 닿지 않았다.
그렇게 잠시의 시간이 지나자 장수를 공격하던 두 절정고수는 공력의 소모를 느꼈다.
그나마 마현우는 공력의 소모가 적었지만 도를 든 절정고수는 아까부터 공력소모가 많았기에 거의 바닥이 난 상태였다.
장수는 도를 든 자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둔해진 것을 느꼈다.
‘지금이다.’
마현우가 초식을 펼치자마자 장수의 오른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그와 함께 마현우의 도의 방향이 도를 든 절정고수에게 향해졌다.
“윽.”
마현우의 도가 같은 편의 허리를 베었다. 순간적으로 방향이 바뀌어졌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도를 든 절정고수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벌렸다. 그리고 그것은 마현우도 마찬가지였다.
“멍청한 놈 그것 하나 못 피하냐?”
마현우는 화를 냈다.
그 순간 장수가 빠르게 움직였다.
도를 든 절정고수의 뒤로 들어간 것이다. 그와 함께 손바닥이 절정고수의 등에 닿았다.
퍽.
“욱.”
외마디 신음성과 함께 절정고수의 입에서는 피가 분수처럼 쏟아졌다.
단 한 방이었지만 내경이 담겨 있었고 방비할 만한 공력도 없었기에 장력이 제대로 먹힌 것이다.
단 한 방에 아군이 죽자 마현우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쉽게 죽을 줄 몰랐던 것이다. 이 상황에서 더 버티는 것은 바보짓이었다.
“이놈, 네가 누군지 모르겠지만 실수했다는 것만 알아두어라!”
마현우는 말과 함께 도망을 치려고 했다. 지금 상황에서는 도망만이 현실적인 대안이었기 때문이다.
“윽…….”
그때 외마디 신음성이 들렸다. 그와 함께 도끼를 든 절정고수가 손으로 머리를 만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도끼를 든 절정고수가 정신을 차린 것이다.
그러자 마현우의 안색이 밝아졌다. 동료가 생긴 것이다. 그와 반대로 장수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이제 한계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장수는 무리에 무리를 거듭했다. 그만큼 절정고수를 상대하는 일은 잠시도 방심하면 안 되는 일이었고, 공력소모나 체력 소모가 많았다.
그런 상태에서 절정고수가 한 명 더 합류한다면 장수로서는 위험한 상황을 맞을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그때 마현우가 외쳤다.
“녀석을 죽여라!”
마현우의 목소리에는 힘이 있었다. 도끼를 든 절정고수가 장수를 죽이면 좋고 실패해도 도망가면 되는 것이니 밑질 것이 없었던 것이다.
장수는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억지로 몸속에서 공력을 끌어 올렸다.
혈교나 마교에서는 잠력을 폭발시켜서 몸의 내공을 일시적으로 증폭시키는 방법이 있다.
또한 공력을 거꾸로 돌리거나 불안전하게 만들어 폭발적인 내공의 힘을 발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전진심법이나 선천기공으로는 그러한 방법을 쓸 수 없었다.
그랬기에 남은 내공만으로 도끼를 든 절정고수를 제압해야 했다.
‘젠장 큰일이구나.’
아까의 실수가 아쉬웠다.
제대로만 들어갔다면 단 한 방에 절정고수를 죽일 수 있었겠지만 제대로 들어가지 못해 죽이지 못했다. 지금 상황에서 잘못하면 자신이 죽을 수도 있었다.
어느새 장수의 등은 긴장해서 땀으로 젖어 갔다.
그는 절정고수에게 달려들어 장력을 쏟을 준비를 했다.
그때 도끼를 든 절정고수가 어수룩한 표정으로 사방을 둘러보았다.
“여…… 여기는…… 어디지…….”
그 순간 장수는 긴장이 풀어지는 것을 느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피에 굶주린 듯한 표정으로 자신을 죽이려 했던 자의 목소리로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것은 마현우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런 경우는 혈교에서 가끔씩 일어나는 일이었다. 세뇌가 풀린 것이다.
세뇌라는 것은 암시를 줘서 임무를 수행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랬기에 상당히 강압적으로 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세뇌가 강할수록 신체 기관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다.
임무 중에 간혹 세뇌가 풀리는 경우가 있었다. 만약 그렇게 되면 녀석을 회수해 와서 문제점을 파악해서 세뇌하는 방식을 보완해왔다.
마현우는 세뇌가 풀린 것을 보자 인상을 구겼다.
‘젠장, 하필 지금 이렇게 되다니…….’
세뇌가 풀리면 정도에 차이가 있지만 일시적으로 가벼운 기억상실증에 걸린다.
그런 기억상실증은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회복될 수도 있고 회복되지 못할 수도 있었다.
상황을 보니 기억을 상실한 거 같은데 마현우로서는 녀석을 데리고 이곳을 빠져나가야 하는 임무가 하나 더 생긴 것이다.
그나마 장수가 눈치채지 못한 듯해서 다행이었다. 세뇌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곳은 혈교뿐이었다. 대부분의 문파에서는 세뇌를 잘 알지 못했고 익히고 있는 자들도 그 수준이 매우 낮았다.
마현우는 잠시 생각을 했다.
‘무리를 해서 녀석을 죽일 것인가? 아니면 도망을 칠까?’
눈으로 보기에는 장수가 지금 당장 쓰러진다고 해도 믿을 상태였다.
하지만 저런 상태에서도 절정고수를 쉽게 이긴 것을 보면 쉬운 상대는 아니었다. 저런 위험한 자는 상대하지 않는 게 상책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전의가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세뇌가 풀린 부하가 문제였다.
‘녀석을 죽이자!’
녀석의 세뇌가 풀렸다는 것은 자신만 아는 일이었다. 그랬기에 자신만 입을 다문다면 누구도 알지 못하는 일이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세뇌가 풀린 부하를 데리고 도망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마현우가 이런 판단을 하게 된 배경에는 아직 남은 절정고수들이 있었고 임무에 실패한다고 해도 자신은 처벌을 면한 방법이 있었기 때문이다.
판단을 내리자 마현우는 빠르게 움직였다.
“죽어라!”
마현우가 기합을 지르며 내공을 모으자 장수는 일순간 긴장을 했다. 사령도법을 정면에서 상대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기에 마현우가 펼칠 초식을 생각하며 대응할 방법을 생각했다.
그때 의외의 일이 벌어졌다. 마현우의 신형이 엉뚱한 데로 이동하더니 멍한 표정을 짓는 도끼를 사용하는 절정고수 뒤에 나타난 것이다.
장수는 의외의 상황에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때 마현우의 도가 움직였다. 그리고 사령도법이 멋들어지게 펼쳐졌다.
“으아아아악!”
짧은 비명 소리가 사방으로 퍼졌다.
세뇌가 풀리면서 겨우 제정신을 찾아가는 중이었는데 목숨을 잃은 것이다.
장수가 황당한 표정을 짓자 마현우는 그를 향해 인상을 쓰며 외쳤다.
“네 녀석의 얼굴을 똑똑히 기억하겠다. 분명히 기억해라. 너는 건드려서는 안 되는 곳을 건드렸다. 반드시 후회하게 만들어 주겠다.”
마현우는 말과 함께 신형을 날렸다.
그가 사라지자 장수는 긴장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휴…….”
이긴 것이다. 승리했다고 생각하자 갑자기 몸이 무겁게 느껴졌다.
“이런…….”
내공 소모도 막심했고 체력도 바닥이었다. 지금까지 정신력으로 버틴 거라 볼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긴장이 풀리자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 것이다.
“움직여야 해!”
이곳은 아직까지 혈교의 영역이었다. 아직도 몇 명의 절정고수가 남은 것인지 모르는 상황이었고 거기다 고수들도 꽤 될 것이다.
그랬기에 최대한 이곳에서 벗어나야 했다.
하지만 한번 긴장이 풀리자 몸이 정상으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더구나 상체에 새겨진 상처에서는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원래라면 장수가 익힌 심법 덕분에 어느 정도 회복이 되어야 했지만 몸의 상태가 좋지 않아서인지 회복이 더뎠다.
장수는 눈이 흐릿해지는 것을 느꼈다.
“안 돼!”
이렇게 죽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만나고 싶었던 분을 만나서 무공을 배우게 되었고 새로운 경지로 올라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런 상황에서 모든 것을 놓고 죽을 수는 없었다.
“대인!”
그때 어디서 소리가 들렸다. 장수는 적인지 알고 무의식중에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갑옷을 입은 자가 장수에게 달려왔다.
“누…… 누구…….”
“저입니다, 대인!”
갑옷을 입은 자는 말과 함께 장수의 몸을 부축했다.
장수는 평상시라면 자신의 몸을 남에게 맡기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태가 안 좋았기에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장수를 부축한 자는 이길영 장군이었다. 그는 목숨이 위험한 순간인데도 다시 돌아온 것이다.
“대인, 이곳을 벗어나셔야 합니다.”
“가……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제가 더 감사합니다.”
그러는 사이에 다른 병사들이 왔다. 그리고 그들과 힘을 합쳐 무거운 장수를 옮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