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편 - 장수의 무위
일단의 부대가 마을로 들어서자 마을사람들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방금 전에 대규모의 상단을 받은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오천 명이 넘는 대부대가 나타나자 놀랐던 것이다.
부대가 나타나면 모든 물자는 징발이 된다.
부대 역시 나타나자마자 필요한 물품을 마을사람들에게 징발하기 시작했다.
징발한 물품은 종이쪽지로 바뀌었다. 나중에 관청으로 가져가면 은자로 바꾸어주는 증서였다.
하지만 꼭 은자로 돌려주지 않을지도 모르고 가치가 떨어질 수도 있었기에 마을사람들의 표정이 좋은 것은 아니었다. 더구나 부대의 병사들 모습이 꼭 패잔병이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 것을 눈치 챌 수밖에 없었다.
부대가 도착하자 단주와 표사들이 달려왔다. 그들은 부대가 습격을 받은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그들은 자신들이 자랑인 소장주를 찾았다. 그런데 장수가 상처투성이인 모습으로 병사들에게 부축을 받은 채 걸어오고 있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소장주님!”
상단의 사람들이 나타나자 장수는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예. 저 도착했습니다.”
그때 단주가 뚱뚱한 몸으로 사람들을 헤치고 앞으로 나섰다.
“대체 이 꼴이 무엇입니까?”
“아…… 괜찮습니다.”
“아닙니다. 괜찮긴 뭐가 괜찮으십니까? 이거 큰일이지 않습니까?”
말과 함께 단주는 장수의 상처를 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장수의 몸 곳곳에 있는 상처가 눈에 띄었다.
“어서 빨리 치료를 하셔야 합니다.”
“괜찮습니다.”
“아닙니다.”
단주는 말과 함께 장수를 어느 집으로 데려갔다.
“이곳은 소장주님 쉬시라고 통째로 빌린 것입니다.”
집으로 들어가자 장수의 옷을 벗긴 단주는 급하게 상처 부위를 깨끗하게 씻겼다. 그리고 얼마 전에 구입한 대형 금창약을 상처 부근에 바르기 시작했다.
상처는 거의 아물어 가고 있었다. 전진심법과 선천기공 덕분이었다.
금창약을 다 바르자 집으로 이길영 장군과 표두가 들어왔다. 장수는 환자였지만 앞으로의 일을 의논해야 하는 중요한 사람이었기에 지금 상황에서는 꼭 대화를 나누어야 했던 것이다.
이길영 장군은 장수의 몸에 가득한 상처를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괜찮으십니까?”
보통사람이라면 죽을 정도의 상처였다. 그랬기에 걱정이 되어 물어본 것이다.
이길영 장군의 말에 장수는 미소를 지었다.
“괜찮습니다.”
“저희를 구해주시느라 이렇게 상처를 입으시다니……. 정말 감사하고 면목이 없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아닌 누구라도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같은 일을 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장수의 말에 이길영 장군은 감동했다. 보통사람이라면 겁이 나서 도우러 오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대협이 있다니 정말 존경받을 분이구나.’
이길영은 장수의 인품과 겸손함이 마음에 들었다.
“제가 나중에 황실에 대협의 공을 꼭 알리도록 하겠습니다.”
공을 알린다는 것은 황실에서 보답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황실과 연을 맺는다면 무슨 일을 하든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장수는 이길영 장군의 말에 기뻤다. 하지만 속마음을 그대로 내보일 수는 없었다.
“괜찮습니다.”
“아닙니다. 대협이 아니었다면 제가 통솔하던 부대는 그대로 전멸했을 것입니다.”
갇힌 상태에서는 절정고수를 뚫을 방법이 없다. 그랬기에 그대로 잡혔다면 다른 방법을 쓰지도 못하고 전멸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은 황실에 알려지지도 못하고 그대로 실종으로 보고되었을 것이다.
“그럴지도 모르겠지요.”
“아무튼 대협의 은혜는 제가 잊지 못할 것입니다. 제가 개인적으로도 보답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예.”
장수와 이길영의 말에 자리에 있던 표두들과 단주는 놀랐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대체 얼마나 큰 공을 세웠기에 장군이 저런 태도를 보이는 것일까?’
표두라고 해봐야 겨우 고수 소리나 듣는 자들이었다. 그런 자들이었기에 상황을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그들이 보기에 오천 명이라는 부대는 엄청난 숫자였고 저 정도라면 웬만한 무림인들은 신경도 쓰지 않고 제압할 수 있는 숫자였다.
그리고 갑옷과 무기를 쓰기 때문에 그들로서도 군대를 상대해봐야 큰 힘을 발휘할 수 없다. 그런데 그런 부대를 이끄는 장군이 거듭해서 장수에게 고맙다고 하자 어떤 상황이 벌어졌는지 궁금했다.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단주였다. 그는 장수에게 말을 걸었다.
“소장주님, 그때 상황이 어떠했기에 장군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까?”
단주의 말에 장수는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까?’
장수가 아는 것은 정말 많았다. 그리고 그간의 경험 덕분에 상황이 눈에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전생에서의 경험이 있어서 아는 것이지 전생이 아니었다면 혈교가 공격한건지 마교가 공격한건지 자신도 몰랐을 것이다.
그리고 절정고수를 설명하는 것도 난감했다. 표두나 단주들에겐 절정고수란 이야기 속에서나 들었던 자들이다. 그런데 그런 절정고수를 자신이 십여 명이나 쓰러뜨렸다고 하면 믿지 못할 것이 분명해 보였다.
장수가 잠시 생각을 하자 이길영 장군이 상황을 설명하려고 했다.
“대협께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만약 대협이 아니었다면 부대가 전멸할 뻔했습니다.”
이길영 장군의 말에 단주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부대가 전멸할 뻔했다고요?”
“그렇습니다. 저는 무림인 중 절정고수는 처음 보았습니다.”
“예?”
단주는 믿을 수가 없었다. 절정고수라는 것은 이야기 속에서만 들었기 때문이다.
고수라 해도 놀라울 정도의 실력을 지니고 있는데 절정고수는 상상할 수 없는 위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그러자 이길영 장군은 자신의 부대가 포위된 것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단주와 포두들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정말입니까?”
절정고수와 고수의 격차는 상당했다. 고수들이 아무리 많아도 절정고수를 상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절정고수는 기를 방출할 수 있다. 기를 방출하면 강철을 자르고 바위를 부수는 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더구나 절정고수의 숫자가 많은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단주들이나 포두들도 오랜 시간 동안 무림을 겪었지만 만날 일이 없었다.
그런데 이길영이 장수가 그런 절정고수들을 쉽게 죽였다고 말해 놀란 것이다.
장수는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실력이 알려져 봐야 좋을 게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적을 약하게 말할 수도 없었다. 이제부터 상대해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어느 정도는 진실을 알릴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운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군대를 포위한 후 작전에 성공한 줄 알고 방심한 상황이었기에 한 명씩 습격해서 죽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절정고수셨습니까?”
표두들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절정고수를 죽이려면 같은 절정이 아니라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장수의 무위는 절정고수다. 그럼 지금까지의 평가를 바꿔야만 했다. 고수와 절정고수의 차이는 크기 때문이다.
포두들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만약 장수가 절정고수라면 자신들은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절정고수의 무위 앞에서는 한두 명의 고수는 있으나 마나한 무력이었다.
“예. 얼마 전에 간신히 오를 수 있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표두들은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 축하를 했다.
절정의 경지라는 것은 쉽게 오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뼈를 깎는 고련과 정심한 수련을 오랜 시간 동안 해야 다다를 수 있는 경지였다.
그런데 그런 경지를 장수가 올랐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장수는 머리를 긁적였다. 자신의 무위를 드러내지 않을수록 좋았지만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어떻게 수습할 수가 없었다.
더구나 병사들이 보았고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감출 수가 없었다.
그때 욱현 표두가 장수에게 물었다.
“그런데 산채에서 절정고수가 나올 수 있는 것입니까?”
욱현 표두의 말에 이길영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절정고수가 있다는 말을 들었더라면 저희들만 오지는 않았을 겁니다. 다른 문파에 협조요청서를 보내 절정고수를 파견해 달라고 했을 것입니다. 더구나 저희들이 본 절정고수만 해도 수십 명이었습니다. 한 자리에 수십 명의 절정고수를 모이게 할 수 있는 곳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수십 명의 절정고수요?”
욱현 표두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한 명의 절정고수만 해도 엄청난 실력을 자랑한다. 그런데 한두 명도 아니고 수십 명이라고 하니 심장이 떨렸던 것이다.
“그렇습니다.”
그때 장수가 나섰다.
“수십 명은 아닐 겁니다. 제가 상대를 해보니 절정고수라 하기 힘든 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니 그곳에 있던 자들 중 절정고수는 실제로는 열다섯 명 정도일 것입니다.”
장수는 일부러 숫자를 줄였다. 하지만 그 정도라 해도 평범한 표두들에게는 겁나는 숫자였다.
“그렇다고 해도 너무 많은 숫자입니다.”
욱현 표두의 말에 이길영 장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수십 명의 절정고수를 쉽게 동원할 수 있는 곳은 몇 군데 되지 않습니다. 구대문파를 포함한 거대문파나 무림맹과 혈교 그리고 마교밖에는 없습니다.”
“녹림도 있지 않을까요?”
녹림이라는 말에 이길영 장군이 고개를 흔들었다.
“녹림일 수는 없습니다. 녹림에도 수십 명의 절정고수가 있겠지만 그들은 대부분 큰 산채를 가진 자들입니다. 그런 자들이 남의 명령을 듣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만약 그들이었다면 이번에 군대를 습격한 자들의 숫자가 더욱 많아졌겠지요. 더구나 산채의 주인들 수십 명이 연합할 리는 더욱 없습니다.”
맞는 말이었다. 수십에서 수백 명의 산적들을 부리는 채주가 홀로 이곳까지 올 리는 없었던 것이다.
“더구나 절정고수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절정고수 외에도 고수들도 상당한 숫자가 있었습니다.”
이길영 장군은 오랜 시간 군무에 있었기 때문에 고수라면 몸놀림만 봐도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었다.
이길영 장군의 말에 욱현은 인상을 구겼다.
“그렇군요.”
군부에서는 이번 토벌에 나서기 전에 나름대로 정보를 모으고 상황을 살폈다.
그렇게 한 뒤에 출진을 시킨 거지 아무런 정보도 없이 출진 시킨 건 아니다.
욱현 표두는 이길영 장군을 보며 물었다.
“그럼 장군님께서는 어디라고 생각하십니까?”
민감한 말이었다. 실제로 쳐들어올 수 있는 곳은 구대문파나 무림맹과 혈교 그리고 마교였다. 그리고 직접적으로 군부를 함정에 몰아넣었기 때문에 군부에서는 이번 일을 민감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이길영 장군은 잠시 생각을 한 후에 말을 했다.
“무공이 매우 괴이하고 사악했습니다. 또한 내뿜는 기운이 소름 끼치는 것을 보면 마교나 혈교일 듯합니다.”
이길영 장군의 말에 잠시 모두들 할 말을 잃었다. 마교든 혈교든 보통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때 상화표국의 역기세 표두가 말을 꺼냈다.
“말씀 중에 죄송하지만 할 말이 있습니다.”
표두의 말에 단주가 물었다.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것입니까?”
“죄송하지만 지금까지 들은 말로도 저희 상화표국이 감당할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선 거 같습니다. 그러니 저희들은 빠지도록 하겠습니다.”
절정고수와 싸우고 혈교와 마교라는 말이 등장할 때부터 얼굴색이 하얗게 변한 표두였다. 그리고 그것은 철마표국의 두 표두도 마찬가지였다.
상화표국 표두의 말에 단주는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계약이 아직 남았지 않습니까?”
“죄송하지만 위약금은 저희가 도착하는 대로 지불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무래도 목숨이 먼저지 돈이 먼저가 아니지 않겠습니까?”
“허…… 지금 그렇게 말씀하시면…….”
“죄송하지만 이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저…… 저…….”
단주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빠르게 상화표국의 표두는 밖으로 나갔다.
단주는 상화표국의 표두를 잡으러 나가려고 했다. 그러자 장수가 막았다.
“단주님, 잡지 마십시오.”
장수의 말에 단주는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한 명이라도 무사가 많아야 된다고 생각을 한 것이다.
하지만 장수의 생각은 달랐다.
‘어차피 고수 한 명과 무사 몇 명으로는 전력이 되지 않아.’
앞으로 상대해야 하는 자들은 절정고수들일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상화표국이 빠진다고 해서 아쉬울 게 없었다. 오히려 그들이 배상할 위약금에 관심이 갔다.
장수의 말에 단주가 그를 쳐다보았다.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괜찮습니다. 그보다 장군님 얘기를 계속하십시오.”
이길영 장군은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정확한 사정은 모르지만 표사 복장을 한 자가 나간 것을 보자 대충 짐작이 갔던 것이다.
“괜히 저희 때문에…….”
“아닙니다. 저분들과는 인연이 여기까지인 듯합니다. 그러니 장군님께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길영 장군은 잠시 주변을 살피다가 말을 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말을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부대를 공격한 곳은 마교가 아니면 혈교가 분명해 보입니다. 그곳이 아니라면 이 정도 일을 벌일 곳이 없습니다.”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국가가 운영하는 군부대를 공격한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군대를 공격하는 것은 반역에 준하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중원에 있는 문파가 벌일 수 있는 일이 아니었고 그럴 이유도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혈교가 아니면 마교일 것이다.
“그럼 둘 중 어디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욱현 표두의 말에 이길영 장군은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것은 잘 모르겠습니다. 원래 혈교나 마교 모두 비슷한 무공을 쓰니 알아보기 힘듭니다.”
“그렇군요. 어쨌든 마교나 혈교가 군부대를 노리고 있다고 보면 되겠군요.”
“그렇습니다. 저희는 단순히 산적들이라 생각하고 병력을 조직했는데 혈교나 마교가 관여했다면 부대가 가진 능력으로는 그들에게 대적할 수 없습니다.”
이길영 장군은 말을 하면서 은근슬쩍 장수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