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편 - 난제
이길영의 말에 장수는 미소를 지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십시오. 하지만 그에 대한 대가는 군에 청구하도록 하겠습니다.”
“당연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예. 오늘은 이만 쉬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당장 내일부터 움직여야 하니까요.”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병사들을 관리하러 가도록 하겠습니다.”
이길영 장군으로서는 마교의 절정고수가 겁이 났다. 지금 당장에라도 쳐들어오면 위험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병사들이 경계를 잘 서고 있는지 확인을 해봐야 했다.
그런데 나가는 그의 표정이 한결 편안해 보였다. 절정고수를 우습게 죽이던 장수의 무위를 믿었기 때문이다.
이길영 장군이 나가자 욱현과 강헌성 표두도 나갈 준비를 했다.
“저희들도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내일 해야 할 일이 많아서 미리 준비를 해야 할 거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오늘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아닙니다. 소장주님만큼 고생을 했겠습니까? 소장주님이 가장 큰 고생을 하셨지요.”
“아닙니다. 표사님들이 열심히 수고하신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해주시면 정말 감사합니다.”
욱현은 말과 함께 웃으며 강헌성과 밖으로 나갔다.
이제 집에 남은 것은 장수와 단주뿐이었다. 그는 급하게 장수의 상처를 살폈다.
그런데 놀랍게도 금창약을 바르기 전보다 훨씬 상태가 호전되어 있었다.
단주는 신기하다는 듯이 장수를 보았다.
“상처가 거의 아물었습니다.”
전진심법과 선천기공 덕분이었다.
장수는 천천히 일어나서 미리 준비된 옷으로 갈아입었다.
“다행히 심각한 상처는 입지 않았습니다. 그저 겉에만 살짝 상처가 난 것이고 그 정도라면 금창약만 발라 주어도 금세 낫지요.”
장수의 말에 단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을 정확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단주로서는 지금 상황을 믿을 수가 없었다. 장수가 얼마나 대단한 고수이기에 오천 명이라는 대군을 이끄는 장군이 쩔쩔매는 것인가?
“보신 대로입니다. 저로서는 아까 장군님이 하신 말씀 이상으로 보탤 말이 없습니다.”
“그럼 정말 소장주님께서 그 정도로 무공이 고강하시다는 말씀이십니까?”
단주로서는 믿을 수가 없었다.
장수의 모습은 무공이 고강한 것과는 거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고수라면 고수다운 풍모가 있고 움직임이 있어야 하는데 덩치도 뚱뚱하고 움직임도 더디었으며 행동하는 것도 고수답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장수의 나이는 너무 어렸고 아무리 가전무학을 배웠다고 해도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무학을 익힌 시기가 짧았다. 그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단주로서는 지금 상황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장수는 단주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직도 부족한 솜씨입니다.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지 고강하다고 말씀 드릴 정도는 아닙니다.”
열여섯 살만에 절정이라는 경지에 오른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대단한 일이었고 인정받을 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장수는 겸손하게 말했다.
그리고 그가 바라보는 경지는 화경이었기에 지금 이룬 경지는 그에게 너무나도 부족한 것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무엇을 말씀이십니까?”
“지금 상황을 보니 군대가 상대하는 자들은 혈교나 마교인 듯한데 이대로 같이 행동하면 큰 피해를 입을 거 같습니다.”
단주가 아무리 무림인이 아니라고 해도 유명한 무림세가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혈교나 마교는 상상만 해도 무서운 공포의 단체였다.
평생토록 관여하지 않으려는 곳과 관련된 일에 장수가 겁도 없이 나서서 상관하려 하자 단주는 말리려 했다.
단주의 말에 장수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단주님, 지금 상황이 매우 위태롭습니다. 호북 곳곳에 산적들이 발호한 상황이고 무자비하게 상단을 공격하는 실정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황궁에서 군대를 보냈는데 만약 그들이 전멸을 하는 상황이 오면 황궁에서도 큰 부담을 느끼고 준비를 철저히 해서 군대를 보내려고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준비기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호북의 상권이 완전히 마비가 돼버릴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석가장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장수의 말에 단주는 숨이 멎는 듯했다.
군대가 전멸을 한 뒤에 일어날 상황이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오천 명의 부대가 단숨에 궤멸된다면 산적들을 막을 만한 곳이 없다.
하지만 단주는 이대로 인정할 수 없었다. 그렇게 되면 장수가 위험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장주님이 직접 위험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부대와 헤어져야 합니다.”
“아닙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어차피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군대와 헤어진다고 해도 저희들 역시 공격을 받을 것입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군대와 함께 다니는 것이 나을 거 같습니다.”
장수의 말에 단주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했다. 하지만 장수의 말에 반박할 수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상행은 다음 도시를 끝으로 끝내는 것으로 하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단주의 말에 장수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럴 필요는 없을 거 같습니다.”
“예?”
단주는 놀라서 되물었다.
오천 명의 군대가 전멸을 우려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인데 그것을 거부해서 놀랜 것이다.
“혹시 좋은 방법이라도 있으십니까?”
단주의 말에 장수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닙니다. 제 생각에는 상행을 계속해도 상관이 없을 거 같습니다. 습격자들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같은 조그마한 상단을 노릴 거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군대와 같이 행동을 한다고 해도 눈에 띄지 않을 거 같습니다.”
맞는 말이었다.
상단의 규모가 꽤 큰 편이었지만 군대와 같이 다니면 보급부대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니 문제가 없었다.
“그렇군요. 하지만 위험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습격자들은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최선을 다해 막아볼 생각입니다.”
장수의 말에 단주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있으십니까?”
장수는 고개를 흔들었다.
“자신은 없지만 최선을 다해볼 생각입니다.”
장수의 말에 단주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저는 소장주님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쉬십시오.”
“예. 내일 뵙겠습니다.”
***
혈교.
거대한 태사의에 혈마가 앉아 있었다. 그의 눈은 심하게 떨리고 있었는데 그의 앞에는 겁을 먹은 듯한 전령이 고개를 숙인 채 있었다.
“뭐라고?”
혈마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계획은 완벽했다. 그런데 그런 임무가 실패했으니 그로서는 화가 치밀어 올랐던 것이다.
“군대가 포위망을 벗어났다고 합니다.”
혈마는 잠시 할 말을 잊은 듯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그로서는 지금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보고서에는 이번 일에 참여한 절정고수의 수만 해도 삼십 명으로 나와 있었다.
그런데 그런 그들이 겨우 오천 명밖에 안 되는 군대를 놓친 것이다.
혈마의 말에 전령은 빠르게 대답했다.
“무당파에서 초절정고수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초절정고수? 무당파?”
혈마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어졌다.
혈마는 주먹으로 태사의 한곳을 강하게 내리쳤다. 그러자 의자의 한쪽 구석이 그대로 떨어져 나갔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혈마의 말에 전령은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로서는 상황을 전달할 뿐이지 분석할 능력이 없었던 것이다.
“군사! 어떻게 된 건지 대답해 보란 말이다.”
원래 전령이 혈마에게 직접 보고할 필요가 없었다. 중간에 참모들이나 군사가 듣고 나서 상황을 분석한 다음에 혈마에게 보고를 해야 했다.
하지만 이번 일은 긴급한 일이었기에 바로 혈마에게 보고가 이루어졌다.
군사 역시 겁이 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번 계획은 파견 나간 절정고수들만이 짠 계획이 아니었다.
상부에서 충분히 검토하고 정보를 모은 뒤에 실행한 것이라 문제가 될 게 없었던 일이었다. 군사는 그런 일이 실패할 줄 생각지도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