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편 - 장풍
장수는 아홉 번째 절정고수를 죽인 후에 한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마현우가 있었다.
‘저기에 녀석이 있구나.’
혈교에 있을 때도 녀석을 죽이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실력도 없는 녀석이 비겁했고 제 잘난 맛에 사는 것이 꼴불견이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녀석을 죽일 수가 있게 되었구나.’
전생에는 녀석의 배경 덕분에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만약 녀석의 배경이 특출하지 않았다면 초절정고수가 되는 순간 녀석을 죽여 버렸을 것이다.
그런데 현생에서 녀석을 죽일 기회를 얻었으니 참으로 기이한 기분이었다.
녀석을 죽이고 이곳에 있는 절정고수를 모두 죽인다면 혈교의 실질적인 무력인 절정고수들을 장수 혼자서 삼십여 명이나 죽인 게 된다.
그렇게 되면 혈교의 영향력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장수는 어느 정도 복수를 한 것이 되고 혈교의 영향력이 줄어들 것이기에 당분간은 상관하지 않아도 된다.
아마 이번에 죽은 삼십 명의 절정고수들을 다시 재건하려면 아무리 혈교라 해도 고생을 할 수밖에 없다.
장수는 천천히 마현우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녀석을 향해 천천히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아가는데 마현우가 주변의 절정고수를 모으는 게 눈에 보였다.
‘어떻게 하지?’
마현우는 초절정의 경지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지닌바 실력이나 경험 등이 무시할 게 못 되었다.
더구나 옆의 절정고수들이 협동을 해서 공격을 한다면 녀석을 놓칠 수가 있었다. 그렇게 녀석을 놓치게 되면 녀석을 다시 잡는 것은 힘든 일이 될 것이다.
장수는 천천히 자신의 오른쪽 손바닥을 보았다. 손바닥에는 은은한 내기가 흐르고 있었는데 항상 장법을 펼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지금이라면 장풍을 펼칠 수 있을 거 같은데…….’
전생에서는 장풍은 초절정의 경지에 올라야만 구사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장풍을 펼치면 그 반발력 때문에 잠시 동안 손이 얼얼했고 내장이 진동하는 느낌을 받아야만 했다. 내공의 반발력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비록 칠선장이 무당파의 절세의 무공은 아니었지만 정통무공이었다.
그리고 유운의 정심한 가르침이 있었으며 현문의 최고의 심법인 전진심법과 선천기공을 익히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이라면 장풍을 쓸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사실 장풍이라는 것이 장법을 구사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구사하고 싶은 무공이었지만 엄청날 정도의 위력을 지닌 것이 아니다.
단지 원거리에서 타격이 가능하다 할 뿐이었지 위력 자체는 장력과 큰 차이가 없다. 오히려 외부로 격발되기 때문에 공력 소모만 심할 뿐이다.
하지만 지금같이 녀석이 도망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는 원거리 공격을 할 수 있는 장풍은 매우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다.
장수는 천천히 손바닥에 모인 기운을 점검해 보았다.
‘이 정도라면 어느 정도 거리까지 나갈 수 있을 거 같구나.’
지금은 생각만 하고 있었고 연습도 하지 않아서 제대로 나갈지는 미지수였다. 하지만 가까운 거리라면 분명히 효과가 있을 것이다.
‘흑룡장법이었다면 꿈도 꾸지 못했겠지.’
흑룡장법은 매우 훌륭한 장법이었다. 그리고 그 장법의 가장 큰 효용은 흑룡심법에 있었다.
흑룡심법은 순식간에 가진바 내공을 다섯 배까지 증가시켜 주기 때문에 내공을 증폭시킨 후 장풍을 사용하면 그 위력이 작은 언덕을 날려버릴 정도였다.
하지만 흑룡장법 자체는 매우 뛰어난 장법이었지만 중요한 것은 강한 내공을 기반으로 장법을 구사하기 때문에 내공 소모가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공이었기 때문에 정파의 무공에 비해 깨달음이나 현기는 적었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장수가 전생에서처럼 흑룡장법을 익히고 있었다면 초절정의 경지를 돌파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장풍은 꿈도 꾸지 못할 것이다.
지금의 장수는 아직까지 초절정의 경지에까지 도달하지 못했지만 충분히 장풍을 구사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내공이 정순하였기 때문에 약간의 내공으로도 큰 효과를 볼 수 있고 유운의 가르침 덕분에 깨달음이 충분했다. 그랬기에 장풍을 성공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장수가 마현우에게 다가가자 녀석이 눈치를 챘다.
“멈춰라! 너는 누구냐?”
병사의 복장을 하고 있었지만 마현우는 우습게 생각하지 않았다.
더구나 주변에는 산적들과 혈교의 무사들뿐이었는데도 거침없이 다가오는 것을 보자 위화감을 느꼈다.
마현우가 눈치를 챈 듯하자 장수는 말을 안 한 채 속도를 빨리했다.
장수가 다가오자 마현우는 인상을 구겼다.
“너는 무당파 녀석이구나.”
마현우는 말과 함께 들고 있던 도에 기를 방출했다. 그러자 도에 도기가 서리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그는 고함을 쳤다.
“이쪽으로 모여라!”
장수가 너무 가까이 오고 있었다. 더구나 상대는 초절정고수인 듯했기에 이대로 도망치면 자신이 죽을 수도 있었다. 그랬기에 우선 다른 절정고수들이 장수를 상대하는 동안 도망을 쳐야 했다.
마현우의 고함 소리가 들리자 혈교의 절정고수들은 고함이 들린 곳으로 우선 달려가기 시작했다.
장수는 소리를 들었지만 마현우에게 가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녀석을 잡아야 해!’
장수는 우선적으로 마현우를 죽이고 싶었다. 만약 시간을 끌면 놓칠 수도 있었다.
장수가 무서운 기세로 달려들자 마현우는 가까이 있는 절정고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녀석을 죽여라!”
마현우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절정고수들은 빠르게 장수에게 달려들어 자신이 들고 있는 무기를 휘둘렀다.
절정고수인 두 명이 동시에 휘두르는 공격이었다. 더구나 미리 준비를 했는지 무기에는 기가 서려 있었다.
무기가 휘둘러지자 장수는 급하게 몸을 굴렸다.
그러자 절정고수가 휘두른 무기가 장수의 몸 위를 스치듯이 지나갔다.
그와 함께 장수가 스쳐 지나가듯이 그들의 곁을 지나갔다. 장수의 팔에서 기운이 뻗어 나와 그들의 몸에 스며들었다.
그 순간 두 명의 절정고수는 그대로 절명해 버렸다.
하지만 두 명이 죽은 것을 눈치 챈 자는 없었다. 그저 몸의 중심을 잃고 흔들린 것처럼 보였다.
장수는 빠르게 움직였다. 바로 눈앞에 마현우가 보였던 것이다.
“뭐하느냐? 녀석을 빨리 죽여라!”
마현우는 무기를 잘못 휘둘러 몸의 중심을 잃은 듯한 두 절정고수에게 외쳤다. 하지만 그들은 반응을 미처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사이에 다가온 절정고수가 장수를 상대하기 위해 도를 휘둘렀다.
도는 매섭게 장수를 베기 위해 휘둘러졌다. 장수는 날아오는 도를 향해 손바닥을 뻗었다.
장수의 손에는 웅후한 내공이 서려 있었다. 정심한 기운을 머금은 손바닥은 부드럽게 도를 감싸듯이 움직였다. 그러면서 도를 스치자 도를 타고 정심한 기운이 절정고수의 팔로 스며들었다.
“윽.”
절정고수는 순간적으로 통증을 느꼈다. 하지만 목숨보다 소중한 도를 놓칠 수는 없었다. 그랬기에 기운은 아무런 저항도 없이 팔의 혈도를 탔고 절정고수는 팔을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 순간 장수는 연습 삼아서 아까 전부터 생각한 것을 실행해 보았다.
마치 장풍을 쓰듯이 손바닥에 기를 모았다. 그리고 절정고수의 배에서 주먹 하나 떨어진 거리에서 장풍을 날렸다.
펑.
약간의 소음이 사방으로 들렸다. 하지만 그 소음은 곧이어 묻힐 수밖에 없었다.
처음 장풍을 쓴 것이고 아직 자신의 깨달음을 온전히 담지 못했기에 위력은 형편없었지만 장수는 이번 생에서 처음으로 장풍을 쏘는데 성공했다.
‘성공이구나.’
장수는 기뻤다. 장풍을 쓴다는 것은 절정의 경지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나 마찬가지의 일이다. 하지만 지금 성공한 것을 보니 그조차도 믿기지 않았다.
장풍을 맞은 절정고수는 그대로 날아갔다. 원래라면 정심한 기운이 복부를 타고 올라가야겠지만 힘의 운용이 잘못되었기에 내부로 스며들기 전에 폭발이 일어났다.
그랬기에 죽이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피해를 아예 안 입힌 것은 아니었다.
장풍을 맞은 절정고수는 내상을 입었기에 몇 달간 정양을 해야 나을 것이다.
그렇게 기뻐하는 동안 마현우는 질린 표정을 지었다.
‘진짜 초절정고수다.’
장풍은 초절정고수의 상징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초절정경지에 이른다고 해서 아무나 장풍을 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