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편 - 발전하는 장수
장군의 눈빛에서는 이 혼담의 성사를 고대하고 있다는 의도가 엿보였다.
장수는 초절정고수였으며 지식도 뛰어났고 그런 그를 뒷받침해줄 석가장이라는 훌륭한 가문도 가지고 있었다.
더군다나 무당파의 제자에 얼굴 또한 잘생겼으니 이길영 장군의 눈에는 더할 나위 없는 일등 신랑감으로 보였던 것이다.
장수는 스스로 혼담에 대해서 한 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이번 생에서 뚱보였고 나이도 그리 많지 않은 데다, 장법에 대한 집착과 유운에 대한 그리움이 여자를 멀리하게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했던 이길영 장군으로부터 혼담에 대해 듣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선뜻 생각이 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거 참으로 곤란하구나.’
전생에는 혈교의 흑룡혈장으로 여러 여인과 정분을 나누었지만, 그것은 사랑이 없는 단순한 육체적인 행위일 뿐이었다. 그저 취하고 싶으면 취하고 그렇지 않을 땐 여인을 곁에 두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 당시에는 여인보다 장법에 더 흥미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내내 그래 왔었기에 이렇게 직접적인 혼담이 들어오는 경우가 없어, 어떻게 해야 자연스럽게 거절하는 것으로 보일지 알 수 없었다.
장수는 잠시 고민하다 차분히 장군에게 대답했다.
“죄송하지만 어려울 것 같습니다. 업무가 매우 많이 남았고, 당장 며칠 안에 무당파로 가야만 합니다. 그래서 누구를 만나고 할 시간이 애초에 없습니다. 제가 지금 장군님과도 그리 긴 대화를 하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상황에서 장군님이 따님을 볼 시간은 더더욱 없을 것 같은데 마냥 기다리게 해드리는 것도 죄송하니 그냥 없었던 이야기로 해주십시오.”
장수의 대답에도 불구하고 이길영 장군은 막무가내였다.
“언제 시간 나시면 저희 집으로 초대하겠습니다. 정말 가벼운 만남이니 큰 부담 가지지 마시고 방문해 주십시오.”
‘낭패로구나…….’
장수로서는 차라리 절정고수들과 싸우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로서는 이 상황이 너무 곤란했던 것이다. 그 때문인지 장수의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더우십니까? 이런, 몸이 허약해지신 것 같은데 이렇게 된 마당에 제가 몸보신에 좋은 음식을 대접하겠으니 꼭 와주십시오.”
식사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특히나 이길영 장군 같은 사람과 친분을 쌓아둔다는 것은 상행위를 할 때는 물론이거니와 앞으로 무엇을 할 때든 위기의 순간에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터였다.
그랬기에 어떻게든 미리 교분을 만들어 두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딸과 만나기는 애매했다.
더구나 장군의 여식은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채 스물도 되지 않은 봉오리일 텐데, 그렇게 되면 장수와 너무 나이 차이가 많이 났다.
그는 전생에 환갑을 넘은 늙은이였다. 그런 자신이 아무리 환생했다고는 하지만 손녀뻘의 여성과 만난다는 것은 아무래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아뇨, 그건 괜찮습니다. 정 그러시다면 차라리 이번에 무당파에 다녀온 뒤에 찾아뵙기로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어차피 이길영 장군은 산적들을 토벌하기 위해 떠나야만 한다. 그리고 토벌이 끝나고 나면 이미 많은 시간이 지난 후일 테니 그때 가서 또 다른 방법을 강구하면 될 것이다.
이길영 장군 역시 지금 상황이 아쉬웠다. 그의 집은 이곳 양현이 아닌 다른 곳이었다. 그러므로 당연히 그의 딸 역시 이곳에서 며칠정도 가야만 하는 장군의 집에 있는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딸더러 이곳으로 오라고 하고 싶었지만 이렇게 산적들이 들끓는 위험한 상황에서 여인에게 집을 떠나 여행을 하도록 만들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랬기에 이길영 장군으로서는 직접 장수를 데리고 자신이 집으로 데려가고 싶었던 것이다.
직접 데리고 가면 여식과 장수가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었다. 자신이 딸이 어디 가서 그렇게 떨어지는 미색은 아니니 이번 기회에 장수의 정실 자리를 차지한다면 자신의 딸에게도 좋은 일일 터였다.
자신의 예상대로 풀리지 않아 초조했지만 사정이 그런 이상 장군은 장수의 말에 잠시 고민을 했다.
‘이번에 토벌에 참가하면 언제 다시 대협을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니 반드시 이번 기회를 노려야해.’
장수 정도라면 금방 혼처가 생길 것이다.
누가 봐도 장수는 일등 신랑감이었기 때문이다. 누구든 딸을 가진 부모라면 한번쯤 고려해 볼만한 그런 상대였다.
“그러지 마시고 한번 시간을 내주십시오.”
이길영 장군의 말에 장수는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저에게 생각할 시간을 좀 주시지요.”
장수의 말에 이길영 장군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나중에 꼭 말씀 해주셔야 합니다.”
이길영 장군 역시 무인으로서의 자존심이 있었기에 더는 강요하지 않았다.
“예, 그럼 저는 이만 다시 일하러 가도록 하겠습니다.”
“예. 저도 이만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길영 장군은 말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갔고 장군이 사라지자 장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사태가 벌어졌구나.”
결혼 생각이 아예 없었던 장수로서는 무척 당황스러운 얘기였던 것이다. 하지만 일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갑자기 일하기도 바쁜 단주가 장수를 보기 위해 온 것이다. 그런데 그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소장주님!”
단주의 표정에 장수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매일 업무에 치이고 있는 단주의 눈가는 시꺼메진 상태였다.
매번 잠을 거의 못 자서 그런 것 같았다. 그런 만큼 단주가 웃을 일이란 그리 많지 않았던 것이다.
“예, 있습니다. 정말 석가장에 큰 경사가 있습니다!”
단주는 대답과 재빨리 함께 가지고 온 서류들을 장수에게 보여주었다.
장수는 업무와 관련된 것인 줄 알고 읽다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이건…….”
“예! 혼담이 들어왔습니다.”
혼담은 양현에 있는 상가에서 보낸 것들이었다. 헌데 그 숫자가 꽤 되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소장주님께서 아직 혼인하시지 않았다는 소문이 인근의 유력가나 지주들에게 퍼지자, 그들이 앞다투어 혼담을 넣은 것입니다.”
“예? 제가 여기 온 것은 며칠 되지도 않았습니다.”
“예, 며칠 되지 않았으니 이정도인 것입니다. 아마 시간이 좀 더 지나면 근방에 이름 있는 가문들은 죄다 혼담을 넣을 겁니다.”
단주의 말에 장수는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단주는 장수의 속도 모르고 마냥 기뻐하고 있었는데, 그는 그 나름대로 석가장의 가신으로서 소장주의 혼담이 반갑기 그지없었기 때문이었다.
며칠 지나지 않았지만 이미 장수에 대한 좋은 소문이 이 일대에 엄청나게 퍼졌다.
그 때문인지 석가장에 이권을 빼앗긴 주변의 유지들도 석가장은 적대시 했지만 탐나는 신랑감인 장수에게는 너도나도 혼담을 넣었던 것이다.
“이거 정말 다들 왜 이러시는지……. 당황스럽군요.”
“이건 좋은 일입니다. 이중에서 굳이 고르실 필요는 없지만 한 번 만나볼 가치는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다 좋은 배필을 만나면 혼인을 올리시면 되는 겁니다.”
“좋은 배필이요?”
전생의 장수는 혈교의 무사였다. 그랬기에 배필이나 배우자에 개념이 없었던 것이다.
“그렇습니다. 저는 소장주님께서 웬만하면 상인 집안의 아가씨와 혼인을 올리셨으면 합니다. 그래야 소장주님께서 다른 일을 보시더라도 아내분이 가문의 사업을 돌봐주실 수 있을 테니까요.”
단주는 자신의 의견을 내놓았지만 그로서는 석가장이 상인 가문이기 때문에 같은 상가의 여식이 가장 최선일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이건 제가 스스로 알아서 하겠으니 단주님께서는 다른 업무를 보시지요.”
장수의 말에 단주는 고개를 내저었다.
“소장주님의 혼담이야말로 현재로서는 가장 중요한 업무라 할 수 있습니다. 예로부터 남자는 집안이 편안해야 밖의 일도 잘 해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아가씨를 잘못 들이면 가문에 큰 분란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소장주님께서는 우선은 사업보다도 이 일에 더 신경 써 주셨으면 하는군요.”
단주의 말도 틀리지 않았다.
가문에 있어서 혼인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후계자 때문이었다. 장수 역시 성인이 되어 우수한 후계자를 낳아야만 석가장이 앞으로도 발전해나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예. 저도 그것을 모르지는 않으니 최대한 신경 쓰도록 하겠습니다.”
단주는 장수의 표정을 바라보다 말을 이었다.
“이번 일은 매우 중요해서 본가에도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러니 가문의 뜻도 같이 헤아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