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편 - 견제
“알겠습니다. 그럼 언제부터 하실 생각이십니까?”
“저희야 은자가 들어오면 바로 실행할 수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건네 드리겠습니다.”
장수는 말과 함께 품에서 은자를 꺼냈다. 현재 유통 가능한 여유 은자였는데 그 액수가 상당했다.
보통사람이라면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의 액수였으나 무인인 장수로서는 별로 아깝지 않았다. 그저 이번 일로 스승님이 조금이라도 기뻐하셨으면 하는 바람일 뿐이었다.
‘이번일이 생각만큼 널리 알려지지는 않겠지만 사람들을 돕는 것을 좋아하는 스승님이라면 분명 기뻐해 주실 거다.’
증거도 없었지만 유운스승이라면 자신의 말을 믿어 줄 것이다. 그 정도만이라도 좋았다. 스승이 기뻐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이정도 액수가 빠져나가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문제는 하나 더 있었다. 이번에 나간 지출을 본가에 어떻게 설명하느냐 하는 문제였다. 아무리 장수가 석가장의 소장주였지만 큰 지출에 대한 것은 보고는 항상 올려야만 했던 것이다.
하지만 장수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차피 상행을 하는 도중이었고 이 정도의 은자는 언제든지 다시 벌수 있다는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은자를 받은 청학은 뛸 듯이 기뻐했다. 이로서 불쌍한 사람들을 금세 도울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는 마치 하늘을 날것처럼 솟구쳐 오르더니 크게 기뻐했다.
“원시천존……. 도우님 정말 감사합니다. 도우님 덕분에 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은혜를 받을 것입니다.”
“괜찮습니다. 그저 시주를 하실 때 스승님의 이름이나마 사람들에게 알려주십시오.”
“그것은 염려하지 마십시오.”
청학은 말과 함께 어딘가로 달려갔다. 식량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장수 역시 청학을 따라나섰다. 어떻게 식량을 구하는지 보기 위해서였다.
청학은 익숙하게 도사들을 부르더니 장수를 소개시켜 준 후, 은자를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어딘가로 향했다.
그곳은 바로 상회였다. 쌀을 전문으로 파는 곳이었는데 청학이 오자 상회의 주인이 반갑게 나왔다.
“도사님 어서 오십시오. 무슨 일이십니까?”
“도우님 그동안 편안하셨습니까?”
“예. 도사님 덕분에 집안의 문제가 많이 해결되었습니다.”
“그러십니까. 오늘은 다름이 아니라 제가 한 가지 부탁을 드리고자 왔습니다.”
청학의 말에 상회의 주인은 웃으며 말을 했다.
“예. 무엇이든 말씀만 하십시오.”
“제가 이번에 쌀을 구입해야 하는데 조금 저렴하게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물론이지요. 전부터 기부자를 찾으려 애를 쓰시더니 드디어 만나셨나 보군요.”
주인이 말에 청학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이번에 마음씨 좋은 분을 만나서 기부금을 많이 받았습니다.”
청학의 말에 주인은 활짝 웃었다.
“정말 축하드립니다. 기왕 좋은 일에 쓰신다는 건데 저도 제 이윤을 남기지 않고 싸게 드리겠습니다.”
주인이 말에 청학은 웃으며 말을 했다.
“원시천존……. 정말 감사드립니다.”
“아닙니다. 저야 원가에 넘기는 것이니 손해를 보는 것은 아니지요. 더군다나 도사님이 좋은 일에 쓰신다는 데 거기에 한 몫 참여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기쁨입니다.”
주인은 쌀을 가지러 창고로 향했다.
장수는 놀란 표정으로 도사를 바라보았다. 옆에서 듣기에도 상당히 싼 가격으로 쌀을 구했기 때문이었다.
“정말 놀랍습니다. 거의 이윤을 받지 않는군요.”
“그렇습니다. 좋은 일에 쓰는 거니 상인들도 이윤을 붙이지 않습니다. 아니 어떤 상인들은 자신들의 물건을 그냥 내주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장수는 입이 떡 벌어졌다. 혈교에서 무사로서의 기억과 현생에서 상인으로서 생활을 둘 다 해보았지만 이렇게 상인들이 자신의 이윤을 생각하지 않고 물건을 내줄 줄은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저렇게 원가로 주는 것 자체가 손해일 텐데요.”
장수의 말에 청학은 미소를 지었다.
“원래 사람들은 남을 돕는 것을 즐깁니다. 그리고 모르던 사람도 남을 돕는 것에 대한 즐거움을 알게 되면 어떻게든 더욱 보탬이 되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그러니 저희들이 움직여서 물건을 사면 좋은 물건도 싸게 구할 수 있게 되는 거지요. 게다가 노동력도 쉽게 구할 수 있고요.”
장수로서는 전혀 알지 못했던 일이였다.
‘이것을 좋은 뜻으로 잘만 이용한다면 이것 나름대로 큰돈을 벌수 있는 사업 아이템이 되겠구나.’
장수는 생각하다 웃음이 나왔다. 다른 사람은 좋은 일 때문에 하고 있는 것인데 자신은 그 와중에도 사업 아이템으로 써먹을 생각만 하는 것을 보니 스스로도 웃음이 나왔던 것이다.
‘한번은 써먹을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그 다음에는 신뢰도가 크게 깎이겠구나. 상인으로서 해서는 안 될 일이야.’
청학은 주인과 다른 대화를 하더니 다른 상가에도 들렀다. 구해야 하는 물건이 워낙에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날 수많은 도사들이 모두 바쁘게 움직였다. 식량을 구입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구입한 식량은 어려운 사람들에게로 하나도 빠짐없이 전해졌다.
***
십여 일이라는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장수는 더 이상 늦으면 무당파에 시간에 맞춰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마음 한 구석에서 피어올랐다.
장수는 급하게 단주에게 갔다.
“단주님 저는 이만 무당파로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장수의 말에 단주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지났습니까? 정말 빨리 지나갔군요.”
“그러게나 말입니다.”
십여 일 동안 공방을 확장하는 것은 당초 계획보다 그 규모가 많이 줄어들었다. 다른 상가에서 방해를 했기 때문에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대신 욕심을 버리고 규모를 줄이자 공사는 시간 내에 모든 일을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공방 완성에 힘입어 석가장에서는 본격적으로 군대의 납품과 관련된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 덕분에 석가장은 시간이 지날수록 양현에서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장수가 하층민들에게 식량을 나눠 준 것이 소문이 나자 석가장에 대한 좋은 이야기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도사들이 유운의 이름뿐만 아니라 석가장에서 나왔다고도 얘기하고 다녔었기에 사람들에게 알려져 석가장에 대한 인식이 매우 좋아졌던 것이다.
그것은 매우 큰 수확이었다. 겨우 석가장에 대한 좋은 이미지가 생겨나고 있는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드디어 장수가 무당파로 떠나는 날이 찾아온 것이다.
단주는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단주에게 장수는 그전까지 상단에 견학 온 도련님이라는 인식이 있었지만 상단이 상행을 시작하며 차례로 목표를 달성해나가자 가장 필요한 사람으로 생각이 완전히 뒤바뀐 것이다.
더더군다나 지금에 이르러서는 장수가 없으면 일이 진행 되지 않을 정도로 그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장수가 무당파에 갈일이 있다고 하자 단주로서는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무당파는 구파일방의 하나로서 석가장으로서는 돈을 싸서 갖다 바치면서까지 인연을 맺어야 하는 그런 입장이었다.
장수가 무당파에 가서 친분을 더욱 돈독히 하는 것은 오히려 석가장에게는 사업을 번창시키는 것만큼 득이 되는 일인 셈이었다.
“하시던 일들은 마무리가 되셨습니까?”
장수가 맡은 일이 있었고 단주가 맡은 일이 있었다.
단주가 맡은 일은 그가 앞으로 계속하면 되겠지만 장수가 맡은 일은 장수가 없는 동안은 단주가 맡아서 해야 했던 것이다. 그랬기에 어느 정도 일을 정리해서 주길 원했던 것이었다.
“그렇습니다. 공방도 이젠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었고 화덕 설치도 본가에서 장인들이 왔으니 곧 끝날 겁니다. 그리고 건물들도 이젠 거의 마무리 작업에 들어갔으니 별 문제는 없겠지요.”
장수는 단주에게 자신이 한 것들을 인수인계했다. 장수가 하던 일이 워낙 많았기에 꽤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었지만 꼼꼼하게 해둬야만 했다.
이참에 확실히 해놓지 않으면 나중에 문제가 생길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이야기하다 보니 겨우 마무리가 되었다.
단주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장주님의 실력이 놀랄 만큼 느셨습니다. 이 정도 실력이라면 이젠 제법 노련한 상인이라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일처리도 꼼꼼하게 잘 해결하신 것을 보니 제가 다 뿌듯합니다.”
“모두 단주님께서 잘 지도해 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장수의 말에 단주는 크게 웃었다.
“제가 뭐 가르쳐 드린 게 있나요? 소장주님께서 알아서 잘해주셨지요. 저는 그저 옆에서 보조를 해드린 것 밖에는 없습니다.”
단주의 말에 장수 역시 미소를 지었다.
“소장주님 그럼 지금 가실 겁니까?”
단주의 말에 장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이제 그만 길을 떠나야 할 것 같습니다.”
“예. 시간만 더 있었다면 혼담에 대해서도 좀 더 살펴 볼 수 있었을 텐데 그게 제일 아쉽군요.”
단주의 말에 장수는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다행이 일이 많아져 그동안 들어왔던 혼담들은 하나도 제대로 이루어 지지 않았다.
너무 바빠서 혼담이 오가던 가문의 여식들을 실제로 전혀 만나볼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물론 장수 역시 호기심은 있었지만 직접 만나기는 창피한 일이였다. 그의 겉은 어렸지만 속은 전생까지 합치면 환갑을 넘어 섰기 때문이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예. 마구간에 말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그걸 타고 가시면 됩니다.”
“예. 감사합니다.”
양현에서 무당파까지 가는 길은 상당히 멀었다. 그랬기에 말을 타고 바삐 움직여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
장수는 단주에게 포권을 취한 후에 바삐 움직였다. 막상 갈 생각을 하자 너무나 들떠 어서 무당파에 도착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던 것이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예. 소장주님 조심해서 다녀오십시오.”
장수는 급하게 마구간에 가서 말에 올라탔다. 그리고 서둘러 무당산으로 향했다.
‘드디어 스승님을 만나 뵙는구나.’
스승님을 만난다는 생각을 하자 그의 가슴을 더욱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