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편 - 친구
한명의 중년인이 무당산을 회한에 찬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이친구야. 뭐가 그리 급하다고 그리 빨리 갔는가?”
중년인은 한숨이 나왔다.
마인으로서 죽음이란 언제 올지 모르는 친구와도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그의 친구인 장삼이 번천장협과 정면승부를 낸 것만큼은 잘못된 선택이었다.
번천장협은 장삼보다 분명 강한 자였고 그런 자와 싸우는 것은 자진해서 목숨을 내놓는 짓이었기 때문이었다.
중년인은 바로 마교에서 나온 표길랑 장로였다. 그는 친구의 행방을 찾아 무당파까지 온 것이었다.
장삼은 그에게 있어서 몇 안 되는 소중한 친구였다.
생각하는 것이나 좋아하는 것까지 모두 비슷했고 무술에 있어서는 훌륭한 맞수라고 생각하는 무인이었다.
그는 장삼과 손속을 나눌 때가 가장 기뻤다. 더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같은 흑룡심법에 속하는 흑룡장법을 배운 것이었다.
표길랑은 마교에 소속되어 있었고 장삼은 혈교에 속해 있었다. 그런데도 익힌 무공이 비슷하다는 것은 마치 운명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더구나 둘은 실력 또한 비슷했다. 그랬기에 표길랑은 물론 마교에도 친교를 나누는 친우가 있었지만 장삼과 같이 깊은 정을 나누지는 못했던 것이다.
“친구, 걱정하지 말게. 자네의 한은 내가 풀어 주겠네.”
표길랑은 자신의 실력을 자신했다.
흑룡장법에 있어서는 완전한 원숙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자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혹독한 수련을 쌓았고 언제든지 초인의 경지에 도전할 수 있을 정도로 수양이 깊었던 것이다.
이 정도 실력이라면 한 시대를 풍미했던 번천장협이라 해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게다가 그에게는 비장의 수법이 있었다.
흑룡심법은 사용법에 따라 순간적으로 내공을 5배나 증진시켜 주었다. 그 정도 위력이라면 아무리 번천장협이라 해도 받아내지 못할 것이 틀림없었다.
“그런데 무당의 장법은 과연 어떨까?”
표길랑은 무인이었다. 비록 친우의 복수를 위해 이곳에 왔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었던 것이다.
자신의 친구인 장삼 정도의 실력자를 죽일 정도로 강한 번천장협과 실력을 겨루고 싶었던 마음도 내심 있었던 것이다.
같은 흑룡장법을 익혔지만 그에 따른 별호는 장삼이 가져간 상황이었다.
표길랑의 실력이 장삼에 비해 부족한 것은 아니었지만 마교는 그 당시에도 내분 상태였고 집안 단속만 해도 힘든 상황이었기에 왕성한 활동을 하지 못했고 그 때문에 자신이 가져야 마땅한 별호를 장삼에게 빼앗겼다는 생각을 한편으로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랬기에 이번 기회에 번천장협을 이겨 자신의 실력을 세상에 인정받고 싶은 마음도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가지?”
표길랑 장로는 사실 가지고 있는 정보가 거의 전무 하다 할 수 있었다.
마교는 오랜 내분으로 인해 지부가 사실상 전멸한 것과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흑도문파들을 털어 정보를 얻었지만 원하는 정보를 완벽하게 얻을 수 없었다.
더구나 번천장협에 대한 정보 역시 무당파가 철저히 통제했기 때문에 정확한 정보가 없었다. 때문에 그는 번천장협이 유운이 현재 어디에 있는지조차 몰랐던 것이다.
또한 번천장협을 만난다고 해도 무당파 내에서 정면 대결을 벌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흑마열왕대를 불러올까?”
흑마열왕대는 마교에서도 강력한 무력단체였다. 천마교주를 지근에서 호위하는 호위대를 뺀다면 마교에서 손꼽히는 강력한 무력단체였던 것이다.
흑마열왕대는 오백 명의 강력한 고수들로 이루어졌기에 웬만한 문파 정도는 쉽게 멸문 시킬 정도의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흑마열왕대를 데리고 다니는 것은 미친 짓이었다. 마기를 풀풀 날리는 자들을 우를르 몰고 다닐 만큼 표길랑의 머리는 나쁘지 않았다.
물론 천마가 표길랑 장로에게 흑마열왕대를 데리고 다니라고 한 것은 일부러 눈에 띄게 해서 중원에 말썽을 일으키라는 의도에서였지만 표길랑으로서는 최대한 홀로 조용하게 다니고 싶었던 것이다.
그랬기에 흑마열왕대는 대기시켜둔 상태에서 홀가분히 달랑 혼자 돌아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표길랑 장로는 한참을 고민했다. 오랜 시간 현장에서 떨어져 마교 내에서 내분에만 신경을 쓰다 보니 감이 떨어졌던 것이다.
그랬기에 뾰족하게 좋은 수가 생각나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 동안을 멍하니 생각만 하고 있는데 멀리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뭐지?”
말은 급히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등 위에는 훤칠한 키에 잘생긴 미장부가 말을 몰아서 가고 있었다.
그가 향하는 방향은 무당파였다. 청년은 무당파에 일이 있어서 가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저 자에게 물어보는 게 났겠구먼.’
표길랑 장로는 이상하게 말을 타고 달려오는 미장부에게 길을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도사들을 만났을 땐 이상하게 꺼림직 한 기분이 들어서 제대로 물어보지도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저 미장부는 오히려 묘한 호감마저 생기고 있었다.
“잠깐 멈추시게!”
표길랑은 급하게 미장부의 앞을 막아섰다. 그러자 미장부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에서 내렸다.
“무슨 일입니까?”
그는 말을 하면서 표길랑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이내 더욱 황당하다는 표정이 되어 미간을 찌푸렸다.
‘이자는 표길랑이잖아?’
말을 타고 달리던 미장부는 장수였던 것이다. 그는 스승인 유운을 만날 생각에 초하룻날 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았지만 급하게 달려왔던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길을 막자 기분이 상했던 것이다. 게다가 뜻하지 않았던 그 사람이 아는 얼굴이라니 믿을 수가 없었다.
장수는 무당파 앞에서 오랜 친우였던 표길랑을 만나자 긴장되어 심장이 벌렁거렸다.
표길랑은 그가 말에서 내리자 천천히 장수를 살폈다.
‘이것 봐라 키는 멀대처럼 크고 몸집에는 살이 적당히 붙었구나. 장법을 배우기에는 최적의 조건인 것 같은데?’
대충 상태를 보던 표길랑은 좀 더 샅샅이 살피기 시작했다.
‘이 자는 검을 가지고 있지 않군. 더구나 다른 무기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보니 검객이 아니구나.’
그제야 표길랑은 왜 장수에게 친밀감을 느꼈는지 알 것만 같았다.
지금까지 봐왔던 도사들은 대부분 검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고루한 냄새나는 노도사들이었기에 가까이 가기가 싫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청년은 체격도 장법을 익히면 좋을 것 같았던 데다가 검도 가지고 있지 않으니 더욱 친밀감이 들었던 것이다.
표길랑 장로가 장수를 살피는 동안 장수 역시 표길랑 장로를 살펴보고 있었다.
‘이 자식은 그동안 변한 게 하나도 없구나. 벌써 이십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는데 머리카락 한 올 바뀌지 않다니 대체 경지가 얼마나 높아진 거야. 그런데 마교 녀석이 무당파에는 어쩐 일이지?’
오랜만에 만날수록 상대방의 모습이 변화하여 보이는 게 정상이었다.
그러나 표길랑 장로는 이십여 년이 지났지만 예전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그랬기에 장수 역시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이다.
서로 상대방을 살피던 중에 장수가 먼저 물었다. 표길랑이 이곳에 왜 왔는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부르셨으면 말씀을 하시지요.”
장수는 초절정의 경지에 오른 상태였다. 그랬기에 예전의 당당함을 어느 정도 되찾은 상태였다. 그랬기에 말을 하는 은연중에 당당함이 서려 있었다.
표길랑 장로는 장수의 그런 건방져 보이는 모습조차 마음에 들었다.
‘저 당당함이 몹시 마음에 드는군. 그런데 무공을 익혔을까? 내공을 익히지 않은 것 같은데? 만약 익히지 않았다면 내 흑룡장법을 전수해주면 좋겠구나. 역시 남자라면 장법이지. 암, 녀석은 나에게 고마워하게 될 것이다. 무당파에서 암만 있어 봐야 흑룡장법처럼 수준 높은 무공을 가르쳐 주지는 않을 테니 말이야.’
“한 가지 물어 볼 것이 있어서 자네를 불렀네.”
표길랑 장로는 점잖게 대답했다. 그는 중년인이 모습이었는데 옷차림이 검은색 서생 차림이었기에 무척 젊잖아 보였던 것이다. 그런 차림새의 사람이 점잖게 얘기를 하니 훨씬 분위기가 부드러워 졌다.
“예 말씀 하십시오.”
장수는 표길랑을 보자 반가운 마음도 들었지만 이곳에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몹시 궁금했기에 어서 말을 하라고 채근했다.
“자네들 무당파에서 도사를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는가?”
표길랑의 말에 장수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처구니가 없어서였다.
‘아……, 내가 저렇게 말을 했구나.’
너무 멍청한 말이었다. 무당파 같은 대 문파에 소속된 사람들의 숫자는 몇 만은 우습게 넘었다. 그리고 그들의 이름을 모두 안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에 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