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편 - 수련 (2)
자신이 대주로 있는 흑마열왕대의 일개 대원보다도 부족한 자였다. 아니, 수업을 가르치는 도사들 전부 다와 덤빈다고 해도 흑마열왕대 대원 한명이서 쉽게 이길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런 자였지만 표길랑으로서는 어이가 없었다.
무당파에서 은자의 양으로 가르치는 게 틀릴 줄은 생각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마교의 장로인 그로서는 생각지 못했던 일이였다.
장수는 표길랑의 표정에 더욱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하지만 표길랑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자네 말대로라면 이제 장법 수련인데 왜 여기에 아무도 없지?”
방금 전까지는 유운 앞에 수많은 제자들이 서서 가르침을 받았다.
천명도 넘는 대 인원이었기에 그 위세가 자못 대단해 보였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남은 제자는 표길랑과 장수 딱 두 명이었던 것이다.
표길랑의 말에 장수 역시 내심 같은 생각을 했다.
‘그렇게 말이야. 왜 이 좋은 수업을 안 듣는 거지?’
하지만 장법이라는 것이 내공이 있어야 했고 그 위력을 발휘하기 까지 오랜 시간동안 수련을 해야 하는 무공이었다. 그런 무공을 속가제자들이 단기간에 실증내지 않고 따라갈 수 있을 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검법을 배우러 갔습니다.”
표길랑 역시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있었다. 속가제자들이 각자 흩어져 도사들에게로 향하는 모습을 말이다. 그로서는 참으로 황당한 일이였다.
그때 장수가 지나가는 듯한 말을 했다.
“좋게 생각하십시오. 인원이 적을수록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장수의 말에 표길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인원이 많은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지. 지금 상황에서는 오히려 더 나을 수도 있겠군.”
“예.”
말과 함께 장수는 가지고 온 음식을 챙겨 왔다. 그리고 유운에게로 향했다.
유운은 장수와 표길랑이 자신에게 다가오자 웃으며 그들을 반겼다.
“그래, 왔는가?”
아까부터 수업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방금 전에는 족히 천명은 되어 보이는 대인원이었다. 그래서인지 누가 누군가 잘 보이지도 않았다. 그래서 유운은 다시 장수에게 인사를 한 것이다.
“예. 스승님.”
“도우님도 오셨군요.”
유운의 말에 표길랑이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그 자신 역시 유운에게 새삼스레 무공을 배울 생각을 하니 약간의 쑥스러움이 생겼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감정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유운에게 무공을 배울 생각을 하니 그 역시 순수한 마음에서 기뻤던 것이다.
“그렇습니다.”
유운이 표길랑 보다 배분이나 연배가 몇 수 위였다. 더구나 번천장협으로 천하에 명성을 떨칠 때 표길랑은 그와 비교조차 되지도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유운은 그런 표길랑을 편하게 대해 주었고 표길랑 역시 유운에게 그렇게 큰 예를 취하지 않았다.
현재 표길랑은 마교의 장로였다. 그랬기 때문에 유운을 어렵게 대할 수 없었던 것이다.
유운은 그런 표길랑을 이해한다는 듯이 웃었다.
장수는 유운을 향해 음식을 내밀었다.
“스승님 식사하시지요.”
장수의 말에 유운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 오랜만에 대접받아 보자꾸나.”
장수가 떠나고 나자 누구 하나 유운을 챙겨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 때문에 유운은 이런 대접을 받는 것은 무척이나 오랜만이었다.
세 사람은 오후 수련을 위해 빠르게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
“그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새로 온 제자도 있으니 장법에 대해서 다시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유운은 장수만 있을 때는 반말로 수업을 했었다. 하지만 표길랑이 있었기 때문에 존대를 하였다.
“알겠습니다. 스승님.”
유운은 미소를 짓더니 천천히 장법에 대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것은 깊은 깨달음의 바다였고 장수와 표길랑은 바다 속에 빠져서 자연스럽게 유영하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이야기를 하자 유운이 말이 멈추었다.
“이런 시간이 벌써 이렇게나 흘렀구나.”
정신이 든 장수와 표길랑은 급하게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하늘이 검게 변해 있었다.
너무 집중해서 듣느라 시간이 흐른 줄도 몰랐던 것이다.
유운이 가르침은 무공이나 최상급 절기가 아니었다. 그저 흐름이었고 자신이 직접 깨달은 것 중의 일부였다.
그랬기 때문에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이야기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장수와 표길랑은 달랐다. 그들에게는 유운이 아무렇지 않은 듯 얘기하는 내용에서도 그 안에 숨은 내용들이나 이치들을 파악할 정도로 수준이 높았던 것이다.
그런 그들이었기에 지금의 이야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파악할 수 있었다.
특히 표길랑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그는 수준 높은 장법에 목말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이미 벽에 도달해버린 줄 알았던 그였지만 유운의 가르침을 받고 나자 자신이 마주한 것이 벽이 아닌 다른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만큼 유운의 가르침은 매우 큰 도움이 되는 것이었다.
더구나 어젯밤에 들었던 이야기로는 아무래도 부족한 것들이 많았었기에 표길랑은 얼른 내일이 오기만을 내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표길랑은 감동했다는 듯이 유운에게 예를 청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참으로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표길랑의 말에 유운은 미소를 지었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다면 오히려 제가 더 감사할 일이지요. 무(武)라는 것이 사실 사람을 해하기 위해 만들어 진 게 아닙니다. 스스로의 수양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변질되었을 뿐이지요.”
유운의 말은 마교의 가르침과는 다른 이야기였다. 하지만 표길랑은 유운에게 크게 감복한 상태였기 때문에 유운의 말에 동감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래. 수업도 전부 끝났는데 남아서 좀 더 수련을 하실 생각이십니까?”
유운이 말에 표길랑은 주변을 살펴보았다. 그러자 다른 속가제자들이 수업을 마치고 사방으로 흩어지는 것이 보였다.
“하겠다면 더 가르침을 주실 생각이십니까?”
표길랑이 말에 유운은 고개를 저었다.
“사실 원래라면 이 이상 수련을 가르쳐 줘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꼭 필요한 경우라면 가르침을 내리지요. 하지만 도우님께서는 아직 그런 상황이 아니고 현재로서는 기본 무공을 수련하시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유운은 표길랑에게 예를 표한 후 장수를 쳐다보았다.
“열심히 수련하도록 하거라.”
“알겠습니다. 스승님.”
장수는 유운에게 극진한 예를 표했다. 그러자 유운은 고개를 숙인 후 천천히 자신의 집으로 걸어갔다.
유운이 떠나자 표길랑이 장수에게 물었다.
“지금부터 무슨 수련을 할 것이냐?”
“스승님께서 수련을 하라고 하였으니 수련을 해야겠지요. 그리고 대협께서는 스승님의 말씀대로 기본 무공을 수련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표길랑 역시 기본 무공을 알고 있었다. 마교에는 무수히 많은 무공이 있었고 그중에 기본 무공은 태산처럼 쌓여 있었던 것이다.
표길랑은 그중에서 어떤 것을 하냐고 물었지만 사실 기본무공이라는 것이 거기서 거기였다. 마교나 정파나 큰 차이가 없었던 것이다. 나중에 수준이 깊어져서 경지가 깊어져야 큰 차이가 벌어지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장수는 천천히 태극권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표길랑 역시 장수를 따라 태극권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장수가 기본적인 장법을 펼치자 표길랑 역시 기본적인 장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수련하자 장수가 몸을 폈다.
“저는 오늘은 이만 하도록 하겠습니다. 대협께서는 더 하시겠습니까?”
장수의 말에 표길랑은 고개를 흔들었다.
“나도 그만 해야 할 것 같다. 이제 좀 쉬어야지.”
사실 표길랑은 이상한 느낌을 받은 상황이었다. 그것은 감이라 할 수도 있었고 어떤 계기라고도 할 수 있었다.
방금 전 유운의 가르침을 듣고 기본무공을 수련했을 뿐이었는데 뭔가가 틀리다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그 낌새가 너무 미진했고 마치 스쳐지나가는 느낌이라 뭐라 정확히 말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지금 상황 같은 경우엔 쉬지 말고 수련에 더욱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장수에게 흥미를 느껴버린 상황이었다. 그리고 수련은 집에 가서 해도 될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그럼 같이 가시지요.”
장수의 말에 표길랑은 그를 따라 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