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편 - 양의심법

“무슨 휴식을 취하나? 나는 강골이라 며칠정도 잠을 안자도 괜찮네. 내가 어렸을 적에는 며칠 동안 날을 새는 것은 일도 아니었지.”

표길랑은 잠시 과거를 회상하는 듯했다.

‘그래. 나도 잘 알지. 무림맹에 쫓겨서 도망 다니느라 날 새기를 밥 먹듯이 했었지.’

젊었을 적에는 무공의 완성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같은 무위를 가지지 못했다. 때문에 그 당시에는 모든 것이 위험 요소였던 것이다.

그래서 무슨 일을 하던지 항상 위험이 닥쳤고 임기응변이 강하고 자객수업도 받은 흑룡혈장 장삼과는 다르게 위기에 처한 적도 많았던 것이다.

장수는 그런 전생의 기억을 아직도 잊지 않았던 것이다.

장수는 뭐라고 말을 해주려다 말았다.

‘차라리 몰랐다면 그냥 넘어가겠는데 알고 있는 내용이니 넘어갈 수가 없구나.’

장수가 곤란해 하는 동안 표길랑이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스승님께서는 아시는 것이 무척 많구나. 진즉에 스승님을 만나지 못한 것이 억울하다. 내가 오랜 시간 정체기를 가졌을 때 만났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말이야. 무당파의 제자가 되는 것이 이렇게 쉬울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내 이 사실을 친구들에게 꼭 전하고 말리라!”

표길랑은 작정을 한 듯이 말을 했다. 하지만 표길랑의 말은 말이 안 되는 것이었다. 표길랑이야 워낙 무인처럼 생기지 않았고 오히려 서생처럼 보였으며 말 역시 처음 봤을 때는 별 달리 이상한 점을 눈치 채지 못한다.

그러나 나중에 한 두 마디 나눠보면 그가 얼마나 경박하고 다혈질인가를 알게 되지만, 초면에 그냥 외모만 봐서 표길랑의 성격을 알 수 없었던 것이다.

더구나 익힌 무공이나 심법 때문에 경지가 잘 드러나지 않았고 더구나 초절정의 경지에 이르렀기 때문에 마기의 갈무리가 잘 되어서 무당파의 일반 무사들이나 도사들이 눈치를 채지 못한 것이다.

거기다 무엇보다 장수의 도움이 컸다. 먼저 선배로서 속가제자 생활을 해본 장수가 도와주었기 때문에 쉽게 속가제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마인이 아무 득도 없는 무당파의 속가제자를 할리가 없다고 간과했기 때문에 무당파의 감시가 소홀한 것도 큰 도움이 되었다.

속가제자가 된다고 더 생기는 정보도 없었고 큰 도움이 되는 일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표길랑이 속가제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되기도 힘들었을 터였다.

그러나 마교의 다른 고수가 온다면 사정은 틀려진다. 마인이란 수련을 하는 것을 낙으로 생각하는 자들이 태반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다들 근육이 울퉁불퉁 했고 얼굴에 흉터로 가득했기에 척 봐도 무인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몸속에서 풍겨 나오는 마기는 어떻게 할 것인가? 마기만 보더라도 무당파에서 척살대를 조직해 처리하러 달려들 것이다.

하지만 장수는 그런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 제반 상황을 설명해주기도 힘들었고 표길랑의 사정을 어떻게 알았는지도 알려주기 힘들었던 것이다.

표길랑은 말을 하면서도 장수가 지금 자신이 말하는 게 뭔지 알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현재 자신에 대해 알려준 게 아예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만약 장수가 아닌 다른 자가 표길랑을 보았다면 성격이 조금 이상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하겠지 마교의 장로이며 마교의 대표적인 무력단체 중 한곳의 대주라고는 생각지도 못할 것이다. 그만큼 표길랑은 마인 같지 않은 마인이었기 때문이었다.

표길랑은 그 외에도 몇 가지 아쉽다는 말을 더 하더니 고개를 숙였다. 스스로 말을 하고도 격동에 찬 것이었다.

“크……, 너무 아쉽구나. 하지만 이제라도 알았으니 늦지 않았다.”

표길랑은 자신이 천마에게 직접 명령을 받은 것도 잊은 듯 했다.

사실 아무리 천마라 해도 표길랑이 무당파에 와서 속가제자로 무공을 익힐 것이라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표길랑 역시 마찬가지였다. 당당한 마교의 장로가 무당파의 속가제자가 된다는 것이 말도 안 되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무당파에 번천장협 유운이 있다는 것과 무당파의 속가제자로 있으면 그에게 무공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 장점으로 변한 상황이었다. 그랬기에 표길랑은 속가제자가 된 것이 기뻤던 것이다.

더구나 무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마교도인 표길랑이었기에 그런 감정은 더욱 컸던 것이다.

그렇게 표길랑이 생각에 빠져 있는 동안 장수는 나갈 준비를 했다. 어서 빨리 수련을 하러 가기 위해서였다.

그때 표길랑이 장수를 보며 말을 했다.

“그런데 도우 그대는 이곳의 무공에 만족하는가?”

그의 말에 장수가 잠시 표길랑을 쳐다보았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장수의 말에 표길랑은 미소를 지었다.

“아니 내말은 자네에게 이렇게 신세를 졌는데 보답을 뭐로 할까 생각을 했다네. 그래서 내가 장로로 있는 문파의 무공을 가르쳐주려고 하네.”

만약 장수가 정식제자라고 하면 불가능한 일이였다. 어느 문파던지 존장의 허락이 없다면 타 문파의 무공을 익힐 수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장수는 속가제자였다. 그것도 무당파에 기부금을 내고 들어온 속가제자였기에 그런 제약이 없었던 것이다.

사실 아무리 마교도라 해도 만난 지 며칠 안 되는 장수에게 무공을 가르쳐 준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표길랑은 장수가 매우 마음에 들었기에 선뜻 무공을 전수해 주겠다고 말을 한 것이었다.

표길랑은 말을 이었다.

“자네는 모르겠지만 나는 무림인들이 흔히 말하는 고수의 경지에 있는 사람이네. 물론 자네는 믿지 못하겠지만 말이야.”

말을 하면서 표길랑은 득의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그는 고수라는 경지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경지에 있는 자였다. 하지만 속가제자이며 고수의 경지에도 이르지 못한 장수에게 그런 것을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장수는 표길랑의 말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를 몰랐다. 장수에게는 표길랑의 경지가 보였지만 표길랑은 장수의 경지를 보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그것은 전진심법과 선천기공 덕분이었기에 장수는 좀 더 높은 경지라 해도 쉽게 가늠할 수 있었던 것이었고 표길랑은 장수의 경지를 알지 못했지만 둘은 같은 초절정의 경지에 이른 상황이었다.

그런데 표길랑이 저렇게 말을 하니 난감했던 것이다.

‘믿고 있네. 내가 그걸 왜 모르겠나?’

속으로는 다르게 생각했지만 실제로 그렇게 말을 할 수는 없었다.

“그렇습니까?”

“그래. 어찌되었든 나는 자네가 마음에 들었네. 그래서 자네에게 무공을 가르쳐 주려고 하네. 뭐, 너무 고마워 할 필요는 없네.”

표길랑은 장수의 의사는 물어보지도 않았다. 무인으로서 당연히 고마워 할 거라 생각을 했던 것이다. 아무리 유운이 훌륭한 스승이라 해도 무공의 차이까지 덮을 수는 없는 것이었다.

무당파에서 상승무공을 속가제자에게 가르치게 할리는 없었기에 장수는 평생 태극권만을 수련해야 할 터였다. 하지만 자신이 가르쳐 주는 무공은 태극권 보다는 훨씬 윗줄의 무공이었다. 그러니 장수가 고맙다 생각할 거라 생각을 한 것이다.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임무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장수를 데리고 마교로 데리고서 돌아가고 싶었다. 마교에는 단시간 안에 절정고수로 올라갈 수 있는 무공이 많았다.

물론 그만큼 실패 확률도 많았었지만 초절정고수인 그가 신경을 쓴다면 이십년 안에 절정고수의 경지에 오를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되면 중원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실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 장수의 말이 들렸다.

“저는 괜찮습니다.”

“그래. 너무 고마워 할 필요 없어. 우리는 무림 동도이며 같은 속가 제자 아닌가? 그러니……, 응?”

표길랑이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자 장수가 다시 말을 했다.

“괜찮다고 말을 했습니다. 저는 스승님의 가르침만으로 충분합니다.”

의외의 말이었다. 표길랑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이것은 그냥 선의라네. 내가 가르쳐 주는 무공은 평범한 무공이 아니야. 이정도 무공이 적힌 비급이 나타난 다면 중원이 피에 젖을 무공이라네. 그런 무공을 공짜로 가르쳐 주겠다는데 왜 괜찮다는 것인가?”

표길랑이 생각한 무공은 태극권보다는 윗줄의 무공이었지만 절세의 무공은 아니었다. 그런 무공은 익히기도 힘들었지만 수련과정도 복잡하고 어려웠으며 무엇보다 그 기질이 몹시 흉포했기에 가르쳐 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무난하다 할 수 있는 무공을 생각해 두었었다. 그런데 공짜로 가르쳐 준다는데도 장수가 싫다고 하자 표길랑으로서는 황당할 뿐이었다.

하지만 장수 역시 혈교 출신이었다. 마교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그곳에도 수많은 마공과 무공서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당시 흑룡혈장 장삼의 신분으로 얼마든지 볼 수 있었다. 그런 그였기에 표길랑의 제안이 필요 없었던 것이다. 더구나 현재 유운에게 배울 양의심법과 번천장을 배울 생각을 하면 오히려 다른 무공은 귀찮다고 생각되어졌다. 눈앞에 황금이 있는데 다른 잡석들이 눈에 들어 올 리가 없었던 것이다.

“괜찮습니다. 배려에 감사하지만 대협의 호의를 받아들일 수 없으니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장수의 말에 표길랑은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자네는 지금 엄청난 기연을 스스로 발로 찬 것이네.”

장수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직 시간이 남은 것 같은데 수련을 좀 더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 방해하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장수는 말과 함께 가부좌를 틀었다. 그리고 밤새 숙지한 양의심법의 구결을 탐독하기 시작했다.

표길랑은 그런 장수를 질린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아니 무인으로서 무공이 싫다는 녀석은 처음 봤네. 그래. 배우기 싫으면 말아라. 나도 애걸하면서 까지 무공을 알려주기 싫다. 그리고 나도 바쁜 몸이다. 어제 얻은 심득은 수련해야 하지.”

표길랑은 인상을 찡그리더니 바닥에 앉아 그 역시 명상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