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편 - 번천장
시간이 되자 표길랑과 장수는 급하게 수련장에 가서 수련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태극권 수련을 마치자 식사를 할 시간이 되었다.
식당에 가서 음식을 먹으려 하자 표길랑이 인상을 찡그렸다.
“이렇게 거친 음식을 먹을 줄이야.”
찬은 고기 한 점 없었다. 모두 산에서 나는 나물이 주를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그런 반찬도 몇 개 되지 않은 소박한 상이었기에 기름지고 좋은 음식만 먹던 표길랑으로서는 영 적응되지 않는 일이였다.
하지만 고된 수련을 하기에 제대로 든든히 먹어둬야 했다. 그래서인지 말과는 다르게 음식을 남김없이 먹은 뒤 한 그릇 더 먹어치운 것이다.
장삼은 그런 표길랑을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먹지나 말면서 그런 말을 하지. 참나…….’
은자도 그가 내고 표길랑이 들어올 때 낸 기부금도 그가 냈다. 더구나 그가 기부금을 내서 얻은 집에서 살고 있고 음식 역시 그의 은자로 산 것이었다.
더군다나 저녁식사 준비와 식사 후 설거지도 장수가 직접 해야 했던 것이다.
많은 돈을 가진 장수였지만 이상하게 표길랑이 먹는 음식은 아까웠다. 더구나 밉상이어서 더욱 얄미워 보였던 것이다.
‘아……. 대체 왜 이러지?’
전생에서는 표길랑과 만나면 투닥거렸다. 같은 흑룡장법을 익혔으며 비슷한 나이였기에 그만큼 싸움도 잦았던 것이다. 더구나 정심한 무공수준과는 달리 장수에 비해 성격에 빈틈이 많아서 잦은 사고를 쳐댔다.
물론 다혈질인 다른 마교의 무사들보다는 적게 내는 편이었고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편이였지만 혈교의 무사로서는 그런 성격 자체가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도 모두 전생에서의 기억이었다. 더구나 장수로서는 전생에서 미약하게나마 세뇌에 걸렸던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전생에 대한 생각을 하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다.
그나마 세뇌가 약하게 걸려 행동을 하거나 생각을 하는 것은 지장이 없었지만 혈교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심은 거짓이었기에 장수로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들이 있었던 것이다.
장수는 고개를 흔들더니 이내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그때 옆에 있던 유운이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장수를 바라보았다.
“식사를 하면서 무슨 생각을 그리 하느냐?”
유운 역시 표길랑이 하는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속인인 속가제자가 반찬투정을 하는 것은 귀여운 애교나 마찬 가지였기에 특별히 흠을 잡지 않았다. 속가제자에게 도인의 삶을 강요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장수는 그의 수제자였기에 일부러 신경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유운의 말에 장수는 고개를 숙였다.
“어제 가르침을 주신 내용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장수의 말에 유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장하구나. 그래. 수련의 길은 끝이 없단다. 자만하지 말고 끝없이 노력을 해야 대성을 이룰 수가 있단다.”
유운은 기특한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스승님.”
“그래. 그런 기세로 오후의 수업에도 임하도록 하거라. 배워둬야 해낼 것도 많아진다.”
“알겠습니다. 스승님.”
유운이 일어서자 장수와 표길랑도 같이 일어섰다. 수련을 하기 위해서였다.
오후의 수업은 칠선장이었다. 유운이 표길랑에게 칠선장을 가르쳐 주자 처음에는 표길랑이 웃어 보였다. 칠선장은 장법 중에서도 유명한 편이었지만 상승무공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다지 복잡하지 않아서 많이 애용했지만 제대로 된 장의 위력을 낼 수 없었다. 하지만 몇 번 연습을 하던 표길랑의 표정이 달라졌다. 유운이 가르치는 가르침에서 무엇인가를 발견 한 것이다.
더구나 마교에서의 수련방법과 정파인 무당파의 수련방식이 같을 리 없었다.
호수와도 같이 엄청날 정도의 내공을 이용해 무지막지한 장력을 발휘하는 마교의 장법과는 다르게 무당파의 장법은 기의 운용을 중요시 한다. 그리고 효율과 조절을 그리고 자연스러움을 강조하니 표길랑으로서는 필히 배워야 하는 무공이었다.
그랬기에 표길랑은 유운의 가르침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막대한 내공을 바탕으로 한 무공 위주로 펼치던 표길랑이었기에 유운의 가르침을 제대로 습득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자세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 모습이 꼭 장법을 처음 배우는 자들이 하는 실수와도 같았다. 완전히 다른 방식을 배우기 때문에 겪는 고생이었지만 그것을 눈치 챌 정도로 수준이 높은 자는 유운과 장수 외에는 없었다.
도사들에게서 검을 배우던 속가제자들은 표길랑의 그런 모습을 비웃었다.
하지만 표길랑은 실수를 하면서도 배우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지금의 무공으로는 한계에 달한 상황이었기에 다른 방식으로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그리고 유운의 가르침은 하나의 계기를 만들어 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수련하자 드디어 수업이 끝났다. 유운은 미소를 지었다.
“수고했다.”
말을 하고 그대로 집으로 향했다.
장수와 표길랑은 유운이 간 뒤에도 계속 수련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하는 동안 장수의 곁으로 그간 알고 지낸 사람이 찾아 왔다.
바로 냉하상이었다. 그는 장수가 수련을 마칠 때까지 조용히 기다렸다.
장수는 오랜만에 냉하상을 보자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도우님 수고하십니다.”
“예. 도우님도 고생이 많으십니다.”
“참 수련을 열심히 하시기에 말을 걸어보고 싶어 이렇게 왔습니다.”
냉하상의 말에 장수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미 알고 지낸 사이인데 그게 무슨 말인가? 하지만 의문은 곧 풀렸다. 장수가 살이 빠지자 그를 전혀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더구나 속가제자들의 숫자는 엄청났고 하루에도 몇십 명이 빠지거나 새로 들어오는 자들이 많았기에 냉하상으로서는 장수를 기억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냉하상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자 장수 역시 초면인 것처럼 말을 했다.
“아……. 예, 감사합니다. 일부러 와주셔서요.”
“아닙니다. 그런데 장법을 수련하는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냉하상이 말에 장수는 미소를 지었다.
“장법이 좋아서 입니다.”
“장법이 좋아서라면 상관없지만 무공을 배우기 위해서라면 장법을 배우지 않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장법이라는 것이 어렵고 힘든 수련인데다 성취가 거의 오르지 않습니다. 더구나 애써서 장력을 발휘해도 무기를 든 자를 이기기 힘듭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검법을 배우는 게 좋을 것입니다.”
냉하상의 말에 장수는 웃음이 나왔다.
‘초절정고수한테 무공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라니 세상에 그런 어리석은 일이 어디 있는가? 더구나 저쪽에서 검을 가르쳤던 도사들의 무공은 보잘 것 없는 수준이던데 그들에게 무공을 배우라고? 어이가 없구나.’
이미 한번 들었던 말이었다. 그리고 일고의 가치도 없는 쓸데없는 말이었다.
“성의는 감사하지만 괜찮습니다. 저는 장법을 배우는 것이 좋아서 그러니 너그럽게 이해해주십시오.”
냉하상은 고개를 흔들며 말을 했다.
“나중에 나가더라도 속가제자들은 동문으로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장법을 배우면 대우를 해주지 않으니 신중하게 생각하셔야 할 겁니다. 그리고 만약 검법을 배우고 싶다면 저에게 얘기를 연락 하십시오. 그럼 좋은 스승님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냉하상이 말에 유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옆에 계신 분에게도 같은 말을 전해주십시오. 사실 얼마 전에도 한 도우께서 유운도사님께 장법을 배우다가 얼마 안 되어 돌아간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호기심에 유운도사께 장법을 배우던 도우들도 헛수고라는 것을 깨닫고 다시 검법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유운 도사님께 배우는 것은 별반 도움이 안 되니 꼭 명심하십시오.”
장수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정확하지 않은 것이 있었는데 장수가 장력을 격발하자 놀란 속가제자들이 유운도사에게 너도나도 무공을 배우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냉하상은 그런 전후사정을 쏙 빼먹고 얘기 했기에 유운의 가르침이 전혀 쓸모가 없다는 식으로 들렸다.
“예.”
장수는 말을 마치고 다시 수련을 하기 시작했다. 냉하상과 말을 나누는 시간도 아까웠기 때문이었다.
냉하상이 돌아갔고 잠시 뒤 표길랑이 장수에게 말을 건넸다.
“방금 전에 그 녀석은 뭐냐?”
“예. 무당파의 속가제자입니다.”
“무당의 속가제자라고? 그런데 왜 장법을 배우지 않고 검법 같은 약한 것을 배우라고 너에게 권하는 것이냐?”
표길랑의 말에 장수는 미소를 지었다. 그 역시 같은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