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편 - 번천장
더구나 청솔의 움직임만으로도 검술의 수준을 파악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지금 상태에서 싸운다면 어떻게 될까?’
장수는 생각과 동시에 왼쪽 손이 움직이는 것을 억지로 붙잡았다. 만약 조금만 늦었더라도 청솔은 그대로 날아가 생명을 잃었을 것이다.
장수의 경지는 초절정의 경지였다. 더구나 장법을 구사하기 때문에 이렇게나 가까이 붙은 상태에서는 청솔로선 단 한 번의 공격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제대로 싸우려면 검을 쓰는 청솔이 손에 검을 쥐고 내공을 극한까지 운기한 상태에서 싸워야 겨우 한 초식을 피할 듯 말 듯한 정도였다.
그만큼 장수와 청솔의 차이는 명확했다.
장수는 자신도 모르게 청솔과 싸우는 자신을 상상했다. 상상 속에서의 청솔과 그렇게 몇 번을 부딪혔지만 그는 제대로 된 대응을 한 번도 하지 못하고 있다.
“무슨 생각을 그리 하십니까?”
청솔의 말에 장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 아닙니다. 도사님과 같이 상행을 한 기억이 떠올라서 그렇습니다.”
“예. 저 역시 그 때 생각이 가끔씩 떠오르곤 합니다. 생명부지인 도사들에게 그렇게 따뜻하게 대해주시는 분은 난생 처음 봤습니다.”
정말 우연한 만남이었다. 그리고 장수는 유운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잘해준 것이 지금으로서는 오히려 큰 도움이 되고 있었던 것이다.
“저 역시 도사님께서 저에게 잘해주시는 것을 보고 감사한 마음을 가졌습니다.”
장수의 말에 청솔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밤이 너무 늦었습니다. 이만 가봐야 할 시간이 된 것 같군요. 현재 본파에는 각 파의 귀빈들과 각지의 도관에서 온 도사님들이 오셨기에 정신없이 바쁜 상황입니다. 그래서 어서 가서 그분들에 대한 것들을 파악해야 합니다.”
“그러셨습니까? 어서 가보십시오.”
“예. 그럼 시연회 때 뵙도록 하겠습니다.”
말과 함께 청솔은 왔던 길로 돌아갔다.
청솔이 사라지자 장수는 생각에 잠겼다.
“전진심법을 얻은 것이 그렇게 대단한 일인가?”
장수로서는 전진심법이 얼마나 대단한 건지 그 의미를 알 수 없었다.
분명 무공으로서 지금 장수에게 큰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장수 외에는 그것을 제대로 운기할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것이 분명했기에 사실 다른 사람들에겐 필요가 없는 심법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심법을 보기 위해 천하 각지에서 사람이 몰려왔다는 것이 영 이해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의문도 잠시. 장수는 다시 수련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수련하다 유운의 집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유운의 집으로 가기 전에 장수는 먼저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표길랑이 돌아왔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표길랑은 집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그것은 표길랑이 유운과 얘기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정말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있구나.”
장수라 할지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마교에도 표길랑 정도로 장법을 익힌 자는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와 비슷한 경지를 개척한 무인과 만나 대화를 할 수 있으니 잠시라도 쉬지 않고 대화를 나눠보고 싶을 것이다.
장수로서는 소중한 스승인 유운을 뺏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괜히 표길랑을 데려와서 문제가 생긴 것이다.
장수는 잠시 생각을 하다 유운의 집 앞으로 가서 문을 두들겼다. 그러자 잠시 후 표길랑의 목소리가 들렸다.
“왔는가?”
말을 하면서 문을 여는데 표길랑의 얼굴에는 진한 아쉬움이 베여 있었다.
장수는 그 모습을 보고 쓴웃음이 나왔다.
“그렇습니다.”
“왜, 좀 더 수련하고 오지 않고?”
장수를 위하는 것처럼 말은 했지만 사실은 유운과 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일 것이다. 하지만 장수 역시 해야 할일이 있었기에 더 이상 시간을 빼앗길 수는 없었다.
“수련은 충분히 했습니다.”
“커험. 음, 그래? 그럼 이제 내가 수련할 차례군.”
표길랑은 문을 열고 나와 천천히 수련하기 시작했다.
장수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 이내 집 안으로 들어섰다.
장수가 들어오자 유운이 미소를 지으며 장수를 반겼다.
“제자야 들어왔느냐?”
유운의 얼굴에도 미소가 가득했다. 장수가 없을 때는 긴긴 밤을 외로이 보냈는데 장수가 오자 얘기 상대가 두 명이나 늘어난 셈이라 기분이 좋았던 것이다.
더구나 표길랑 역시 장법으로 성취를 이룬 자였다. 그런 자였기에 유운 역시 배우는 것이 많았다. 그렇게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서로의 깨달음이 깊어졌던 것이다.
“예. 스승님.”
“그래. 양의심법에 대해서는 연구를 많이 했느냐?”
사실 장수는 지금까지도 수련을 하느라 따로 시간을 내어 양의심법을 연구하지는 못했다. 그저 시간이 날 때마다 한 번씩 되새기는 것으로 양의심법을 파악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다지 많이 하지 못했습니다.”
장수의 말에 유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쉽지 않은 공부일 것이다. 만약 양의심법이 쉽다면 본문에서도 많은 제자들이 그것을 익혔겠지. 하지만 난해함과 어려움 때문에 많은 제자들이 익히는 것을 도중에 포기하고 말았단다.”
“그렇군요.”
“그래. 나 역시 양의심법을 실전에 쓰기까지 수십 년이라는 시간동안 노력을 해서 겨우 번천장에 접목시킬 수 있었으니 너는 양의심법을 대할 때 성급하게 다가가지 말고 시간을 들여 차분히 연구하도록 하거라.”
“명심하겠습니다. 스승님.”
“그럼 오늘은 내가 양의심법을 배우면서 얻은 심득을 전해 주겠다.”
심득이라는 것은 구결이 아닌 자신만의 깨달음이었다. 그것을 듣는다면 장수에게 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감사합니다. 스승님.”
“아니다. 원래라면 양의심법에 달려있는 수많은 주석들도 전해 주고 싶지만 그것을 알려 줄 수 없는 것이 아쉽구나. 나 역시 주석을 보면서 얻은 게 많았거든. 하지만 심득이라 하여 실망하지 말고 스스로 수련을 해나가면 언젠가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예. 스승님.”
유운은 고개를 끄덕인 후 천천히 양의심법을 통해 얻은 심득을 장수에게 전하기 시작했다.
심득은 매우 길었다. 또한 형이상학적이고 도가의 심오한 이론이 들어있었기에 장수로서는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영역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듣자 유운이 음성이 점점 잦아들었다.
그렇게 침묵을 지키다 유운이 입을 열었다.
“어떻느냐?”
심득이었지만 매우 어렵고 난해한 내용들이라 장수로서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만약 쉬웠다면 많은 사람들이 양의심법을 익혔겠지만 이렇게나 어려우니 아무래도 역시 익힌 자가 많지 않았을 것이다.
“너무 어렵습니다.”
“그래. 어렵단다. 그러니 오랜 시간 동안 붙들고 있어야 성취를 볼 수 있을 것이야.”
“알겠습니다. 스승님.”
“그래. 그럼 다음 무공인 번천장을 가르쳐 주겠다.”
유운이 번천장을 가르쳐 주겠다고 하자 장수는 눈이 번쩍 뜨였다. 번천장은 무당파의 절기로서 천하에 손꼽히는 장법중의 하나였다.
더구나 스승님의 성명절기였던 것이다. 그런 번천장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은 장수에게 있어서 무척이나 큰 의미였다.
“정말이십니까?”
“그래. 사실 번천장 역시 오랜 시간 동안 수련을 해야 실전에 쓸 수 있을 정도로 난해한 무공이란다. 그렇기 때문에 한시라도 빨리 배워두는 편이 좋을 게야.”
“그렇습니까?”
“그래. 나 역시 번천장을 익히는데 많은 시간과 공을 들였단다. 그렇게 해서 겨우 어느 정도의 성취를 볼 수 있었지.”
장수 역시 번천장 같은 무공을 익히는 것이 금방 가능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나 강한 무공을 단시간에 익힌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였기 때문이었다.
장수 또한 전생에서 그의 성명절기라 할 수 있는 흑룡장을 익히는데 오랜 시간동안 노력을 해서 겨우 경지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이지 단시간에 배우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흑룡장법보다도 훌륭한 무공인 번천장을 익히는데 짧은 시간 동안 익힐 수는 없는 것이었다.
“각오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