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편 - 번천장
“좋다. 그전에 말해 줄 것이 있단다. 본문의 무공은 오랜 시간 동안 익혀야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이 사마외도의 무공과는 확연하게 다른 점이다. 하지만 일정 수준 이상의 경지에 이르면 그 위력이 다른 무공과는 다르니 그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야. 혹여나 마도의 무공이 성취가 빠르다 하여 욕심부려 익혀 봐야 경지에 이르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유운은 표길랑을 의식하고 말을 한 것이었다. 그 역시 마교의 고수라 해도 무조건 적으로 나쁜 사람이라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표길랑이 혹시나 그의 제자에게 마공을 전수해 줄까봐 미리 경고한 것이었다.
유운의 말에 장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명심하겠습니다.”
‘마공보다야 스승님의 무공이 훨씬 뛰어나다는 것은 이미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장수 역시 전생에 마공으로 초절정의 경지에 올라섰다. 그리고 마공의 어리석음을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었다.
혈교에 있었을 때도 비고에 가면 정파의 상승무공이 널려 있었는데 그것을 제대로 익히지 않은 것을 후회했던 것이다.
그때의 장수는 마공을 익힐 리가 없었던 것이다.
장수의 결의에 찬 눈을 보며 유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번천장을 가르쳐 주겠다.”
유운은 말과 함께 번천장의 구결을 전수하기 시작했다. 구결은 양의심법보다 짧았다. 원래 장법이라는 것이 초식이 다른 무공에 비해 짧은 편이었기 때문에 구결이 길지 않았던 것이다.
구결 전수가 모두 끝나자 번천장을 펼칠 때의 운기법을 알려 주었다. 장수는 유운이 말을 할 때마다 귀담아 들으려 노력했고 최대한 한번에 외우고자 했다.
그렇게 한참을 설명한 유운은 마지막으로 초식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그 동작이 매우 느렸기 때문에 장수로서는 충분히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유운은 전수가 끝나자 한숨을 내쉬었다. 전수하는 내내 제자에게 자세히 보여주기 위해 최선을 다해 초식을 펼쳤기 때문에 기운이 급격히 쇠해 진 탓이었다.
하지만 장수는 유운의 가르침을 놓치지 않기 위해 전력을 기울이느라 유운의 그런 변화를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 이제 이해가 되었느냐?”
“예. 스승님. 정말 훌륭한 무공인 것 같습니다.”
장수는 이미 초절정의 경지에 오른 상태였고 마교의 상승무공인 흑룡장법을 익혔기 때문에 번천장의 구결을 살피며 비교를 해보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위력은 흑룡장법과 비슷하면서 반작용이 거의 없었다. 더구나 내공소모 역시 흑룡장에 비해 거의 없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물론 이론상으로 그런 것이었기에 실제로 연습해보면 상황이 바뀔 수도 있지만 검토하는 것만으로도 무공의 뛰어남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더욱 놀라운 사실은 양의심법과 결합했을 때였다. 일명 양의번천장이라 하여 두 손으로 쉬지 않고 장법을 펼치면 상대가 화경의 고수가 아닌 한은 그 누구도 막지 못할 것이 분명해 보였던 것이다.
장수의 말에 유운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전성기 때의 자신을 생각하며 회상에 잠긴듯했다.
“그래. 정말 훌륭한 무공이지. 이것을 익히면 천하에 그 누구라 하더라도 상대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단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실전이 가능할 만큼 많은 수련이 필요하겠지.”
“명심하겠습니다.”
“그런데 걱정이 되는 구나. 지금 네가 익힌 전진심법으로는 번천장의 위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단다. 번천장은 본문의 내공심법을 기초로 만들어졌기에 타문파의 내공심법으로는 제 위력을 낼 수 없으니 말이다.”
유운의 말에 장수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겨우 번천장을 익히게 되었는데 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니 아쉬움이 느껴졌던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네가 현문의 심법인 전진심법을 익힌 것이 다행이다. 최대한 안전성을 중시하는 심법이라서 번천장을 운용할 수는 있지. 다른 심법이라면 아예 번천장을 시전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군요.”
“그래. 하지만 전진심법을 번천장에 결합시키는 것도 너에게 있어서 큰 도움이 되는 경험이라 생각하고 한 번 열심히 해보거라.”
“네, 성심을 다해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스승님.”
“그래. 그럼 이만 들어가 보거라.”
유운의 말에 장수 역시 어서 빨리 번천장을 수련하고 싶은 마음에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스승님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래. 쉬거라.”
장수는 급하게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표길랑이 쉬지 않고 수련을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표길랑이 수련하는 모습을 보자 장수로서는 은근히 경쟁심이 생겼다.
‘정말 열심히 하는구나.’
전생에서는 친구였지만 환생을 한 장수에게 표길랑은 어떻게 보면 할아버지뻘이었다. 나이도 무척 많았고 직위도 있었던 것이다. 그랬기에 외모만 본다면 다른 세계의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그런데 무공을 수련하는 모습을 보면 꼭 자신의 맞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고만 있어도 경쟁심이 강하게 들었던 것이다.
더구나 표길랑의 열정을 보면 장수 역시 자극을 받아 더욱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생의 맞수가 환생을 하고 나서도 맞수로 느껴졌던 것이다.
‘저 모습을 보니 나 역시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장수는 천천히 자신의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유운에게 배운 동작을 취했다. 그러면서 번천장을 살피면서 연구하기 시작했다.
번천장과 양의심법을 수련하는 것은 보통일이 아니었다. 아니 단시일 안에 배운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였던 것이다. 적어도 실전에서 쓸려면 아무리 장수라 해도 오랜 시간 동안 고된 수련을 쌓아야만 가능할 듯 했다.
그것을 알기에 차분한 마음으로 여유를 가지고 수련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드디어 번천장을 배웠다는 흥분 때문인지 장수는 잠이 오지 않았다. 그리고 쉬지 않고 번천장을 집안에서 수련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이 가는 것도 잊고서 수련을 하던 장수는 어느 순간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었다.
표길랑이 돌아온 것이다. 그가 들어오자 장수는 하던 동작을 멈추었다. 표길랑에게 자신이 배운 번천장을 보여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다.
장수가 놀란 표정을 짓자 표길랑이 웃으며 말을 했다.
“왜 그렇게 놀래나? 뭐 맛있는 거라도 혼자서 먹고 있었나?”
“아닙니다.”
“그래? 그럼 그런 거겠지. 나는 수련 할 시간이 됐다고 알려주려고 했는데 깨어있는 줄은 몰랐네. 어서 수련하러 가세.”
표길랑이 말에 장수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수련을 하다 시간가는 줄도 몰랐던 것이다.
“알겠습니다.”
표길랑은 미소를 짓더니 수련복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련장을 향해 장수와 함께 걸어갔다.
***
삼일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장수는 그날 역시 수련에 매진을 하였기에 한숨도 잠을 자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표길랑 역시 마찬가지였다.
표길랑은 장수가 봤을 때 거의 잠을 안자는 듯 했다. 가끔씩 쉬는 시간에 잠을 청하는 것 같긴 했지만 그렇게 따져도 매우 적은 시간 동안만 수면을 취했던 것이다.
표길랑은 날이 밝자 장수에게 수련을 하자고 말을 하기 위해 문을 열었다. 그런데 장수가 이미 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벌써 준비 다했나? 잠시만 기다리게 나 역시 금방 준비할 테니 같이 나가세.”
표길랑의 말에 장수는 미안한 듯 입꼬리만 올라간 웃음을 지었다.
“대협 죄송하지만 오늘은 혼자 가셔야 하실 것 같습니다. 저는 따로 볼일이 있습니다.”
“그래? 무슨 일인가?”
매일 같은 일을 하던 수련동지인 장수가 다른 일을 한다고 하자 표길랑은 호기심이 생겼다.
표길랑의 말에 장수는 웃으며 말을 했다.
“이번에 본파에서 시연회를 하는데, 거기에 참가하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곳에 가야 합니다.”
“시연회라고?”
“그렇습니다. 하지만 속가제자들은 평소대로 수련하면 될 겁니다.”
“시연회가 뭔가?”
“도사들끼리 학문을 발표하는 모임 비슷한 것입니다. 그러니 크게 상관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장수의 말에 표길랑은 더더욱 의구심이 들었는지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하지만 단순히 도사들이 모여 경전을 말하는 연례행사인 듯하자 이내 호기심이 사라졌다.
만약 무공을 펼치는 것이라면 두말 않고 달려가겠지만 냄새나는 도사들의 곰팡내 나는 이야기 따위를 듣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것이다. 더구나 장수가 빠진다면 오늘 하루는 표길랑 혼자서 유운을 독차지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되면 따로 교습도 받을 수 있으니 그로서는 오히려 바라던 바였다.
“그래. 그럼 잘 갔다 오게. 그런데 며칠이나 하는가?”
표길랑은 최대한 오랜 시간 동안 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래야 유운을 오랫동안 독차지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표길랑의 말에 장수는 미소를 지었다.
“겨우 하루 입니다. 그것도 짧은 시간 동안 하기 때문에 오후 수련 때는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장수의 말에 표길랑은 대번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로서는 장수가 며칠 동안 오지 않았으면 했다. 장수가 싫은 것은 아니었지만 유운은 하나였고 표길랑은 조금이라도 더 유운에게 배우고 싶었던 것이다.
사실 마교의 무인인 그가 정통 무공을 체계적으로 배울 기회라는 게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그럴 기회가 왔으니 시간을 쪼개고 쪼개어 효율적으로 배우고 싶었던 것이다.
장수는 겉으론 웃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했다.
‘어차피 표길랑은 관련이 없으니 이곳에서 수련을 하는 게 더 낫겠지. 그나저나 속가제자들은 참석을 안 시키는 것을 보니 제자로 생각하지도 않는 모양이로구나.’
시연회는 무당파의 큰 행사로 대부분의 제자들이 이번 일에 동원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에 비해 속가제자들에게는 아무런 일도 시키지 않고 참석조차 시키지 않은 채 무공수련을 시키는 것을 보니 철저히 외부인으로 분류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장수는 생각하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그와 상관이 없는 일이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시연회에 참석하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겨우 도인들의 친목모임이라 생각을 한 것이었다.
“그럼 이따 보겠습니다.”
“그래. 그럼 수고하게.”
표길랑은 웃으며 장수를 배웅했다.
***
장수가 중앙 건물로 향하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청솔이 급히 그에게 다가왔다.
“도우님 오셨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럼 빨리 목욕부터 하십시오. 나오시면 준비한 도복을 내드릴 테니 그걸로 갈아입으시면 됩니다.”
장수는 미리 얘기를 들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목욕을 마친 후에 옷을 받았다. 그런데 도복이 너무 나도 호화스러웠다. 마치 의식용 옷 같았다.
“이 옷은 대체 뭐야?”
너무 거창했기에 장수로서는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틀 전에 도사들이 와서 치수만 재갔기 때문에 이런 옷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장수는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군말 없이 옷을 갈아입었다. 그러자 청솔이 다가와 말을 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말과 함께 이십여 명의 어린 제자들이 장수의 옆으로 다가왔다. 그들의 나이는 열 살 정도 되어 보였는데 다들 매우 똑똑하게 생겼으며 자질이 훌륭해 보이는 것이 무당파에서 기대를 받고 있는 어린 제자들인 것 같았다.
장수는 그들과 함께 건물 한 쪽으로 가 미리 준비된 의자에 앉았다.
다른 어린 제자들은 미리 얘기를 들었는지 나이와는 다르게 꽤나 얌전히 앉아있었다. 그랬기에 장수는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차마 제대로 물어보지도 못했다.
그런 장수의 마음을 알았는지 청솔의 말이 이어졌다.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제가 부르면 따라오시면 됩니다.”
장수는 당황한 표정으로 청솔을 보다 주변의 어린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그들 역시 의식용인 화려한 도복을 입고 있었는데 표정이 자못 진지해보였다. 그랬기에 뭐라 말을 걸기가 민망할 지경이었다.
‘뭔가가 잘못되었어.’
장수로서는 왠지 이곳이 자신이 있을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은 뒤였다. 지금 상황에서 어딘가로 도망칠 수도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