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편 - 납치
표길랑이 말에 장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나가봐야 표길랑은 이용을 당할 수 밖에 없었다.
무당을 나서는 순간 혈교가 그의 위치를 재빠르게 파악할 것이고 혈교가 원하는 데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천마 역시 마찬가지였다. 천마도 노리는 게 있었기 때문에 아낌없이 표길랑을 사지로 내몬 것이다.
표길랑은 초절정고수였지만 그가 아무리 강하다 해도 중원전체를 상대로 이길 수는 없었다. 더구나 중원 내에도 알려진 초절정고수만 백여 명이 넘었다. 그들 중 몇 명만 합세한다 해도 표길랑은 고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상황이니 때문에 표길랑을 위해서라도 이곳에 있는 게 훨씬 나았다. 더구나 표길랑 정도의 수준에서는 무공의 진보가 어렵다. 이미 극에 달할 정도로 무공을 수련했기 때문에 더 이상의 성취는 무의미 한 것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진보할 가능성을 찾은 이상 이곳에 더 머무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이곳에 머무신다면 대협께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래. 그런데 자네에게 부탁이 있네.”
“무엇입니까?”
“내가 가진 은자가 얼마 없어서 그러는데 은자 좀 줄 수 있겠나?”
표길랑은 마교의 장로 신분이었지만 여유 돈을 많이 준비해오지 못했던 것이다. 그 때문에 장수가 떠난다면 당장 먹고살 은자가 없었다.
얼마나 이곳에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곳에 있기 위해서는 기부금을 내거나 다른 다양한 생활 용품을 사야 했기 때문에 많은 은자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의 말에 장수는 웃음이 나왔다.
‘나올 때 은자를 준비했어야지.’
장수는 그렇게 생각하다가 표길랑이 무림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맞아 표길랑이 마교인인데 많은 은자를 가지고 다닐 리가 없구나.’
마교인인 표길랑에게는 원래라면 수행원이 있어야 했다. 그리고 적대세력이라 할 수 있는 중원에서 그렇게 많은 돈을 쓸 줄은 자신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더구나 은자를 많이 가지고 다니면 무겁다. 하지만 무림인이 특성상 최대한 짐을 적게 가지고 다니며 그때마다 상황에 맞게 움직이기 때문에 은자를 많이 준비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에 반해 장수는 상인으로 오랜 시간 자라왔다. 거기다 상행을 하면서 상인으로서의 자질을 키웠기 때문에 준비성이 철저했던 것이다.
더구나 상인은 항상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랐기 때문에 여유 자금을 가지고 다니기 때문에 표길랑이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되돌아 생각해보면 전생의 자신 역시 은자를 그리 많이 가지고 다니지 않았다. 왜냐면 없을땐 근처 상가에서 훔쳐 쓰면 되기 때문이었다.
필요할 때마다 구하면 되는 은자를 귀찮게 가지고 다닐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것은 표길랑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당분간 신세를 져야 하는 무당파에서 은자를 훔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에 항상 여유 돈이 있어 보이는 장수에게 은자를 빌려달라고 한 것이었다.
‘그래. 친구인데 주자.’
그렇게 어려울 것도 없었다. 은자라면 장수에게 많았던 것이다. 일개 무인이랑 다르게 장수는 석가장의 소장주로서 많은 은자를 버는 몸이었다. 그런 상황이었기에 어느 정도 준다고 해서 무리가 될 것은 없었다.
“여기 있습니다.”
장수는 말과 함께 표길랑에게 은자를 주었다. 그러자 그는 무척 기쁜 표정을 지었다.
“고맙네. 잘 쓰겠네.”
은자가 생각보다 묵직해 보였다. 그랬기 때문에 표길랑은 그대로 품속으로 은자를 집어었다.
‘저걸 세어 보지 않다니?’
상인은 받는 즉시 물건을 확인한다. 하지만 표길랑은 무인이라 그런지 은자를 세지도 않고 품속에 넣는 것을 보니 장수로서는 갑갑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평생을 그렇게 산 사람에게 뭐라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예. 그 정도 양이라면 제가 올 때까지는 쓰실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식사를 하실 때 꼭 스승님을 챙겨 주셨으면 합니다만…….”
“알겠네. 걱정하지 말게. 그나저나 여기서 술이나 고기를 먹을 수 있는 곳이 있나?”
마교인 답게 표길랑 역시 술과 고기를 즐겼다. 하지만 이곳에 있으면서 한 번도 먹지 않았기에 그로서는 고기와 술이 간만에 먹고 싶었던 것이다.
“정문을 나서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곳에 계시는 분들은 대부분 수련을 위해 오신 분들이라 탁한 음식은 먹지 않습니다. 물론 의식을 취하기 위해 술을 쓸 때도 있는 것 같지만 속가제자가 건드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요 근래 분위기가 그렇게 좋지 않으니 나가지 않는 게 좋을 듯싶습니다.”
표길랑은 장수의 말에 웃음이 나왔다. 그의 경지는 초절정의 경지에서도 극에 달한 상황이었다. 그 정도라면 같은 초절정고수 여럿이 덤벼도 자신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문제가 있다면 도망가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장수가 자신의 경지를 알리가 없었기 때문에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알겠네. 자네 말을 명심 하겠네.”
“예.”
장수는 표길랑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안심이 되는 부분이 있었다. 아까 전에 자객을 만났는데 현재의 유운이라면 자객이라 할지라도 막을 힘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표길랑이 수업을 받기 위해 같이 다닌다면 웬만한 위험은 피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표길랑과 함께 온 것이 새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사실 스승님과 대화를 좀 더 하려고 했지만 너무 늦은 것 같아서 하지를 못하겠네. 그러니 오늘은 이만 자야할 것 같구먼.”
“예, 대협. 그리고 제가 없는 동안 스승님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알겠네. 그것은 걱정하지 말게.”
“예.”
장수는 표길랑에게 인사를 한 후 하늘을 보았다. 그러자 아침 해가 뜨는 것이 눈에 보였다.
“아침이구나.”
잠을 자지 못했지만 경지에 이른 장수가 피곤을 느낄 리가 없었다. 며칠 샌다고 해도 끄떡없었다. 장수는 천천히 떠날 채비를 했다. 어서 빨리 일을 마치고 유운에게 무공을 배우고 싶었던 것이다.
올 때 많은 짐을 가지고 온 것이 아니고 간단하게 왔기 때문에 준비하는데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그저 옷을 가볍게 갈아입은 정도였다.
그리고 한 가지 더 해야 할 일이 남아있었다. 유운에 대한 기부금을 내야 했던 것이다.
장수는 유운의 이름으로 기부금을 낸 후 표길랑의 수업료를 지불했다. 그리고 건물을 나와 밖으로 나갔다. 이제 상단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왔던 것이다.
정문에는 이른 아침이지만 순례객들이나 도사들이 모여 있었다. 그런 그들을 보며 장수는 천천히 정문 밖으로 나갔다.
“말을 사야겠구나.”
경공을 써도 되지만 그렇게 되면 일반인들이 놀랄 염려가 있었다. 그리고 내공을 소모하다 이외의 일이 벌어지면 대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유운의 이름으로 기부금을 까지 냈지만 아직도 남은 은자는 상당했다. 그렇기에 말 한 필 사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장수는 근처 마구간에서 말을 한필 산후 무당파를 돌아보았다.
“스승님 기다려 주십시오. 제가 곧 돌아오겠습니다.”
그의 스승인 유운은 그에게 있어서 목숨보다 더욱 소중한 분이었다. 그런 스승이었기에 떨어지는 순간이 너무나도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벌여놓은 사업도 정리해야 했고 기타 여러 가지 일들을 해결해야 했던 것이다.
장수는 말을 타기 전에 생각을 정리했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이 뭐가 있지?”
장수는 천천히 생각을 정리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업이었다. 사업을 번창시켜 유운의 이름으로 더 많은 돈을 기부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혈교가 자신에게 자객을 보낸 이유도 확인을 해야 했다. 혈교에도 전진심법이 있다. 그러니 무당의 전진심법이 탐나서 자신을 납치하려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을 납치해서 무슨 일을 벌일지도 파악해야 했고 마교의 움직임도 조사해 봐야 했던 것이다.
그 외에도 해야 할일은 무척 많았다. 그랬기에 장수의 얼굴은 잠시 어두워 졌다.
“시간이 많이 걸리겠구나.”
하나하나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혈교 같은 경우에는 뿌리 까지 뽑아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혈교가 계속해서 무당파를 노린다면 유운을 지켜야 하는 장수의 입장에서는 우선적으로 혈교를 제압해야 했던 것이다.
장수로서도 혈마에게 복수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그 보다는 스승이 먼저였다. 유운과 함께 할 수 있고 무공을 배울 수 있다면 혈교를 좀 더 오래 살려둬도 상관이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자신이 자비를 베풀고 있는데도 혈교가 분수도 모르고 나서니 장수로서는 혈교를 먼저 제압하는 것도 생각해야 할 일이였다.
장수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들었다. 생각만 해서는 해결될 일이 없었던 것이다. 부딪혀 해결해야지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다.
“가봐야겠구나.”
장수는 천천히 말위에 올라탔다. 그리고 양현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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