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편 - 상단을 돕다
기를 보니 운기가 거의 마무리에 다다른 것 같았다. 하지만 기가 불안정 하고 규칙적이지 않은 것을 보니 상태가 많이 호전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였다.
장수가 고수를 바라보자 단주가 물었다.
“상태가 어떤 것 같으십니까?”
단주가 무림인이 아니었기에 잘 몰라 물어본 것이지 원래 운기하는 것만으로 상태를 파악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운기를 하는 심법의 종류가 워낙에 많았고 저마다 방식이 틀렸기 때문에 정확하게 기준을 재서 판단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장수는 운기조식을 하는 고수보다 훨씬 강한 초절정 고수였으며 기를 파악하는 능력이 가장 뛰어난 전진심법을 익히고 있었기 때문에 상황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별로 좋지 않습니다. 몸의 상처도 심하지만 내상이 더욱 심합니다.”
멀쩡히 앉아서 운기조식을 취하고 있는 것 같지만 상태가 별로였다. 이 상태로는 원래의 무위를 찾기는 힘들 것으로 보였다.
더구나 장수는 상대방이 익힌 심법도 조금은 알 수 있었는데 정순하지 않은 것을 보니 사파의 심법을 익힌 것으로 추측되었다.
사파의 심법은 내상을 입었을 때 회복하기가 정파의 심법보다 몇 배나 더 힘들다.
더구나 수준이 떨어지기 때문에 원래의 상태로 회복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장수의 말에 단주의 안색이 더욱 어두워졌다. 고수의 숫자는 많을수록 좋았다.
표두도 다친 마당에 유일하게 살아남은 고수마저 정상이 아니라는 말에 가슴이 답답한 모양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자 고수는 선혈을 내뿜었다.
“큽!”
핏덩이를 뱉어낸 고수는 계속해서 피를 뱉어 내더니 창백한 얼굴을 한 채 단주를 바라보았다.
“어…… 어떻게…….”
상황을 설명해 달라는 말이었다. 워낙 상황이 급했기에 운기조식을 취하긴 했지만 추가적으로 산적들이 쳐들어 올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랬기에 먼저 현재 상황을 알아둬야 할 것 같았다.
고수의 말에 단주가 침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적들은 모두 죽었지만 상단의 식구들과 표사들이 많이 죽었습니다.”
적들이 죽었다는 말에 고수의 안색이 밝아졌지만 이내 죽었다는 말에 고수는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급히 그가 지켜야 하는 화물을 바라보았다.
“이런…….”
상품을 실은 마차에는 화물 대신 사람들로 가득했다. 더구나 마차에는 그을음이 있는 것을 보니 분명 불에 탔던 것이 분명해 보였다.
의뢰는 실패였다. 비록 상단의 사람들은 무사하지만 상품을 잃었으니 실패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되면 약속된 보수를 받지 못하게 될 것이다.
더구나 몸에 큰 내상을 입은 상태였기에 치료를 위해 더욱 은자가 절실한 상황에서 약속된 보수를 받지 못할 거란 생각이 들자 고수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젠장!”
그는 인상을 찡그렸다. 그러다 가슴에서 느껴지는 통증 때문에 더욱 인상을 구겼다.
그 모습을 본 장수가 고수에게 말을 걸었다.
“무리하지 마십시오. 몸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십니다.”
“정상이 아니란 것은 내가 더 잘 아오.”
고수는 화가 난 상태였기에 장수에게 짜증을 부렸다.
비록 그가 고수의 실력을 가졌지만 낭인 신분이었기에 부상을 당했다간 당장 생활이 어렵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기도 모르게 짜증을 내고 말았다. 하지만 그는 이내 스스로의 실수를 깨닫고 고개를 흔들었다.
“이런……, 죄송하오.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닌데……. 상황이 이러다 보니 좀 이해해주시오.”
“괜찮습니다. 그러나 몸은 괜찮으십니까?”
장수의 말에 고수는 고개를 흔들었다.
“확인을 해봐야겠지만 몸이 정상이 아닌 것만은 확실한 것 같소. 그나저나 그 무시무시한 녀석들을 당신이 다 해치운 것이오?”
고수는 말을 하면서 장수의 눈치만 보았다. 원래 무림인이란 실력으로 말을 하는 것이다.
그 역시 생사의 순간에 있었기 때문에 장수가 어떻게 싸웠는지 정확히는 볼 수 없었지만 만약 장수의 실력이 자신보다 월등히 높다면 행동거지에 조심을 해야 했던 것이다.
고수의 말에 장수는 고개를 저었다.
“제가 운이 좋았습니다. 산적들이 표사님들과 싸우느라 체력이 한 차례 빠진 상태였기에 제가 기습해 들어오자 버티지 못하더군요. 덕분에 겨우 해치울 수 있었습니다.”
장수로서는 자신의 실력을 노출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상황이 워낙 긴박했기에 어느 정도 무위를 보이긴 했지만 사실 이들은 장수가 펼친 무공이 어떤 수준인지도 알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인들이야 고수가 펼치는 무공이나 초절정고수가 펼치는 무공이나 둘 다 비슷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을게 분명했다. 하지만 고수는 달랐다.
그는 상황만 봐도 상대방이 어느 정도나 강한지 알 수 있었다.
상황을 말해주면 장수가 초절정고수라는 것은 알지 못해도 절정고수이리란 것쯤은 추측할 수 있을 것 같았기에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는 편이 귀찮은 일을 덜어줄 것 같았다.
장수의 말에 고수는 안색을 찌푸렸다. 말은 운이라고 하지만 그보다는 훨씬 강자임이 분명할 것이다.
더구나 자신은 내상을 입은 상태였다. 이 상태에서는 일반 무사보다 낫다고 할 수도 없었기에 더욱 조심해야 했던 것이다.
“정말 감사하오. 어찌되었던 내 목숨을 구해주었으니 언젠가는 이 은혜는 꼭 갚겠소. 내 이름은 진교(晋嬌)라 하외다.”
“진교무사님이셨군요. 제 이름은 장수라고 합니다.”
장수라는 말에 진교는 이름난 무사들 중에서 장수라는 무사가 있었는지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하지만 머릿속에서 그런 이름은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강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혹시 성도 알 수 있겠소?”
이름을 알려주는 것만 해도 불안했는데 더구나 성까지 알려주면 나중에 확실히 문제가 될 수 있었다. 그랬기에 장수는 고개를 흔들었다.
“성은 알려드릴 수가 없습니다.”
거절한 것은 더 이상 묻지 않는 것이 예의였다. 그랬기에 진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지금 상황에서는 근처 도시로 가는 것도 문제일거 같군요.”
진교의 말에 장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 역시 불에 놀란 상태였다. 그랬기에 정상적인 속도를 낼 수 없었다.
더구나 하인들과 무사들 역시 정신적으로 큰 피해를 입었기에 움직이는 것 자체가 무리였지만, 살기 위해선 당장 움직여야 했다.
가진 식량도 얼마 남지 않은 상태에서 가만히 있는 것은 더 위험해지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예, 그렇습니다. 암튼 이제부터 정말 움직여야 할 것 같습니다만…….”
진교는 장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후 몸을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그보다 훨씬 강한 적들과 싸우느라 생각보다 많은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내상 때문에 더욱 고통이 심했다.
“악…… 젠장!”
건장한 무사로서 자기 몸 하나 제대로 운신을 못한다는 것에 진교는 화가 난듯했다. 하지만 이미 죽은 녀석들을 상대로 화풀이를 할 수도 없었다.
“대체 이렇게 강한 녀석들이 어디서 튀어나온 거지. 더구나 물품을 다 태워 버리다니 이런 산적이 어디 있단 말인가!”
진교는 악에 바쳐서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단주가 맞장구를 쳤다.
“맞는 말씀이십니다. 저는 오랜 시간 상행을 하면서 이렇게 강한 자들이 한데 뭉쳐 산적질을 한다는 것은 난생 처음 봤습니다. 대충 봐도 번듯한 산채의 주인은 될 정도의 실력을 가질만한 산적이 함께 움직이다니 이런 이야기는 금시초문입니다.”
진교와 단주의 말에 장수는 안색을 굳혔다. 장수는 산적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그들은 바로 혈마의 고수들이었던 것이다. 여타의 문파보다 고강한 무공을 많이 가진 혈교였기에 고수들의 수준도 빼어났다.
더구나 이런 부대가 얼마나 될지 정확히 알 수도 없다는 것이 더욱 무서운 상황이었다.
진교와 단주는 계속해서 화를 내다가 제풀에 지쳐 쓰러져 버렸다. 장수는 그런 진교와 단주를 마차에 태웠다.
“이제 출발 하시지요.”
이미 모든 준비는 끝난 상태였다. 그랬기에 장수의 말이 끝나자마자 하인들과 표사들은 근처 도시를 향하기 시작했다.
가장 가까운 도시는 보강이었다.
장수의 입장에서는 바로 양현으로 가는 것이 가장 좋은 일이었지만 상단 사람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가까운 도시인 보강으로 데려가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이었다.
다행이 보강에 도착할 때까지 무슨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다.
보강에 도착하자 상단의 하인들과 표사들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