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편 - 방해
무사들의 숫자가 월등히 불리했기에 우선은 복면인들을 제압하는 것이 가장 좋을 듯 했다. 그리고 적의 정체를 파악하는 것도 중요했다.
장수는 순간적으로 빠르게 주먹을 내밀었다. 그것은 무공도 아니었다. 복면인들을 상대로 무공을 사용하는 것 자체가 낭비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장수는 한 바퀴 도는 동작만으로 손쉽게 그들을 제압하기 시작했다. 우선 빠르게 움직여서 복면인들의 뒤로 이동해 수도로 차례차례 복면인들을 기절시켰다.
그의 몸이 워낙 빨랐고 복면인들 역시 무사들을 경계하느라고 정신이 없었기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깨달을 새도 없었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복면인들을 모두 제압한 것이다.
무사들은 황당한 표정으로 장수를 바라보았다.
장수의 실력은 익히 들었기에 약간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이정도 수준이라면 절정고수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일반 무사들 입장에서는 고수만 해도 대단한 실력이었다.
그들에게는 절정고수란 하늘이나 다름없었고 평생 한번 보기도 힘든 존재였기에 장수의 실력이 초절정 고수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무사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무사장은 장수가 절정고수를 상대하는 것을 보긴 했지만 애초에 그 자가 절정고수인지도 몰랐던 것이다.
무사들은 황당한 표정을 짓다가 겨우 정신을 차린 무사 하나가 급히 밧줄을 가지고 복면인들을 묶기 시작했다.
무사장은 복면인을 모두 묶자 장수에게 물었다.
“소장주님 이들을 어떻게 할까요?”
“캐내야 할 것이 있으니 그대로 두십시오. 그리고 각자 따로 가두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관가로 넘기기 전에 우선은 가둬둬야 했다.
“알겠습니다.”
장수는 천천히 복면인중 한명의 복면을 벗겼다. 그리고 얼굴을 살폈다. 보기에는 굉장히 평범해 보이는 자였다.
장수는 복면인의 점혈을 풀었다. 그러자 복면인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장수를 바라보았다.
“헉……!”
복면인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로서는 지금 상황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알려면 최소한 절정고수는 되어야 했다. 하지만 고수조차 안 되는 실력을 가진 복면인이 자신이 왜 잡혀있는지 납득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너희들은 누구의 사주로 온 것이냐?”
무사장의 말에 복면인은 입을 다물었다. 그로서는 함부로 입을 열수 없었기 때문이리라.
“이놈 어서 말을 하지 못하겠느냐?”
무사장의 말에 복면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믿는 구석이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런 모습에 장수는 더 안심이 되었다. 장수는 전생에서 살수로서 활동한 적도 있었고 적에게서 정보를 빼내는 기술도 여러 가지를 알고 있었다.
그 덕분에 지금 상황에서 가장 적절한 방법이 무엇일지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 방법은 바로 분골착골이었다.
이정도 상대에게 분골착골을 사용한다면 일각도 되지 않아서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사실을 토해낼 것이다.
어차피 크게 가치 있는 정보도 아닐 테고 이들은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자들도 아니었다.
만약 제대로 훈련을 받은 자라면 진즉에 혀를 깨물거나 독약을 삼켜 자진을 시도했을 것이다.
하지만 저렇게 침묵만 지키는 것을 보면 그렇게 대단한 곳에서 온 자들이 아니라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장수는 말없이 천천히 복면인의 몸을 건드렸다. 그러자 복면인은 잠시 아무행동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잠시 시간이 흐르자 오공에서 물이 흘러내리더니 그는 크게 입을 벌렸다.
그때 장수는 재빨리 아혈을 봉했다. 그러자 복면인은 아무런 말이나 소리도 내지 못한 채 고통을 참아내야만 했다.
복면인은 손으로 무엇인가를 그렸다. 어떤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 같았다.
복면인의 태도에 장수가 다시 몸을 만지자 복면인의 몸에서 나오던 이상한 물은 그제야 멈췄는데 그의 온몸에서 땀이 흐르고 오공에서 나오는 액체로 뒤범벅이 된 것이 차마 볼 수 없을만큼 끔찍했다.
하지만 장수는 그런 복면인을 향해 다시 한 번 싸늘한 어조로 물었다.
“무슨 목적으로 이곳에 왔느냐?”
장수의 말에 복면인은 다급히 말을 했다.
“사……. 살려주십시오. 저는 명령에 따, 따라 이곳에 온 것 밖에 없습니다.”
“무슨 명령이냐?”
“석가장에서 높아 보이는 자가 돌아왔으니 잡아다 인질로 삼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장수가 석가장의 소장주인 줄도 모르고 일을 벌이려고 한 것이다.
장수로서는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제대로 훈련을 받지 못한 작은 상가에서 체계적으로 일을 진행할리가 없었다. 더구나 정보 역시 제대로 모을 리 없는 건 더욱 당연한 일일 것이다.
장수는 일찍이 전생에서 혈교에서 임무를 진행했고 거대한 명문정파와 싸웠던 경험이 있는데 이런 송사리들과 상대하려 하니 다시금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상가답게 금력으로 싸웠다면 오히려 볼만한 싸움이 되었을 것이다.
복면인의 애기를 듣고 나자 장수는 힘이 빠져 한숨이 다 나왔다.
“휴…….그래?”
장수는 태연하게 반응했지만 무사장으로서는 화가 치밀어 오르는 일이었다.
“감히 어찌 소장주님을 손댈 생각을 하는가!”
복면인들이 장수를 인질로 삼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랬기에 장수는 아무 감정도 들지 않았지만 무사장으로서는 자신이 모시는 분을 인질로 삼으려 했다하니 화가 치밀어 올랐던 모양이었다. 장수는 그런 무사장을 겨우 말린 후에 다시 복면인에게 말을 걸었다.
“누구의 사주냐?”
“그, 그것은…….”
“왜? 한 번 더 당해 보게?”
“아, 아닙니다. 저희는 금영상가에서 보냈습니다.”
“금영상가?”
장수의 말에 무사장이 급히 말을 덧붙였다.
“이곳에 있는 상가 중 한곳입니다.”
“그렇습니까?”
사실 더 이상 알아볼 것도 없었다. 이들은 오늘 밤까지만 가둬둔 다음에 관가로 보내면 끝나는 일이었다. 군에 납품을 담당한 상가에 침입한 죄는 상당한 중죄였다. 그랬기에 큰 벌을 받을 것이었다.
“이들을 가둬 두십시오.”
“알겠습니다. 소장주님.”
무사장은 급히 무사들을 데리고 복면인들을 어딘가로 데려갔다. 묶인 상태였기에 공사중인 공방에 가둬둘 생각인 모양이었다.
장수는 그 모습을 지켜만 보고 있었다. 만약 다른 자가 나타난다고 해도 예민한 장수의 이목을 피해갈 수 없었다. 그랬기에 무사들이 하는 양을 가만히 보고만 있었던 것이다.
그때 도사들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괜찮으십니까?”
그들은 장수에게 다가와 물어보았다.
“예. 다행이 습격자들을 모두 잡을 수 있었습니다.”
장수의 말에 도사의 얼굴이 밝아졌다.
“정말 다행입니다. 정말 재빠른 녀석들이었는데 잡으셨군요. 그런데 못 보던 무사님이신 것 같은데…….”
도사는 장수와 가까워지자 얼굴을 보고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장수의 옆에 있던 무사가 말을 했다.
“이분은 저희 소장주님이십니다.”
“아. 소장주님!”
도사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 역시 소장주에 대해 풍문은 많이 들었지만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아닙니다. 저희가 한 게 뭐가 있겠습니까? 그저 도둑이나 몇 상대했지 밥값도 제대로 못하는 게 아닌가 하고 걱정이 많았습니다.”
현재 누가 봐도 석가장은 이익이 나기 힘들었다. 오히려 경계를 서는 무사들과 도사들에게 경비의 대부분이 나가느라 적자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때문이었는지 도사가 괜찮겠느냐는 투로 얘기한 것이다.
도사의 말에 장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지금 상황을 보고 무척 놀랐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바뀌겠지요.”
하루라도 허투로 보낼 수 없었다. 장수는 해야 할일이 많았다. 그런 상황에서 고작 이런 일로 발목을 잡힐 수는 없었던 것이다.
장수의 말에 도사는 웃었다.
“꼭 잘되셨으면 좋겠습니다. 말을 들어보니 군에 납품도 하셔야 한다는데 어서 빨리 모든 것이 정상화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