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편 - 방해
철광석을 준비하고 도구나 밑작업을 하며 신중한 표정으로 작품 만들기에 몰두했던 것이다.
그렇게 공방에서 대장간을 완성하자 장수는 작업을 멈추었다.
“휴 그래도 대장간은 마무리 지어서 다행입니다.”
원래 계획이라면 공방은 대장간뿐만 아니라 숙소와 창고, 그리고 다른 시설이 들어설 예정이었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는 그것들을 다 짓기란 매우 벅찬 일이었다. 대장간을 완성해낸 것만 해도 대단한 성과라 할 수 있었다.
더구나 타 상단들의 방해공작도 많이 줄어들었는데 아마도 지난번에 복면인들 삼십 명을 관아에 넘긴 것 때문에 공방을 쉽사리 공격할 엄두가 나지 않는 듯 했다.
장수는 목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예. 모든 분들이 도와주셔서 해낼 수 있었습니다.”
장수의 말에 목수는 밝게 웃었다.
그 역시 완성하지 못한 공방을 보고 마음이 영 껄끄러웠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비록 완성하지는 못했지만 대장간이나마 운용이 되는 것을 보자 마음의 짐을 한결 던 것이다.
그때 무사 한명이 급히 장수에게 달려왔다.
“소장주님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불량배들이 상점에 와서 또 행패를 부리고 있습니다.”
무사의 말에 장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겨우 하나가 해결되나 싶었더니 또 다른 하나가 터진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벌어질 일이었고 장수에게는 해결할 자신이 있었다.
“어디입니까?”
장수의 말에 무사는 상점으로 장수를 안내했다.
석가장이 운영하는 상점으로 가자 그 앞에서 불량배들이 행패를 부리고 있었다.
“장사를 하겠다는 거야 말겠다는 거야?”
매점 앞에는 무사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불량배들은 무사들을 의식해서인지 물건을 부수지는 않았지만 장사를 못하도록 막아서고 있었다.
장수는 그런 불량배들 앞에 나서며 말했다.
“무슨 일입니까?”
장수가 나서자 불량배들은 인상을 구겼다.
“넌 뭐야?”
“이곳의 주인입니다.”
“네가 주인이냐? 그럼 점원 교육을 똑바로 했어야지!”
“대체 무슨 일이신데 그러시는 겁니까?”
“무슨 일이긴? 장사를 더럽게 못하니까 그렇지!”
주변에는 몇몇 손님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이곳에서 물건을 사러 왔는데 험악한 분위기에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사태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대로는 흉흉한 분위기 때문에 안 좋은 소문만 무성해질 것 같았다.
“장사를 못하다니요?”
“우리는 손님으로 물건을 사러 이곳에 왔다. 그런데 제대로 상대를 해주지 않았다고!”
불량배의 말에 장수는 점원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점원은 황급히 설명했다.
“소장주님 그게 아닙니다. 제가 성의껏 설명을 드렸는데 계속해서 저분 손님이 트집을 잡으신 겁니다. 그러더니 결국 이렇게 행패를 부리시는 거예요.”
상황이 어떻게 돌아갔는지는 대충 봐도 훤히 알 수 있었다. 흠을 잡으려 작정하면 못할 것이 없었다.
저들은 분명 점원이 하는 말에 내내 꼬투리를 잡다가 이내 결정적으로 성을 내며 이런 상황을 만든 것이 분명해 보였다.
‘이건 정말 아니지 않은가.’
지금 이곳은 상점이었다.
이곳은 매매를 하는 곳이지 시비를 걸고 깽판치는 곳이 아니었다.
응당 상인이라면 상인으로서 경쟁을 해야지 불량배를 동원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경우가 아닌 듯 했다.
그간 이곳에 무사들이 배치되어 있었기에 그나마 행패가 적은 것이었지. 만약 무사들이 없었다면 대부분의 물품은 진즉에 부서지고 망가져 나갔을 것이다.
더구나 저런 불량배들 때문에 무사들을 고용하느라 막대한 비용이 들어간데다가 조용히 물건 사러 온 다른 손님들이 불쾌감과 위화감을 느낄 것을 생각하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닌 일이었던 것이다.
‘어떻게 처리해야 잘했다고 소문이 날까?’
저들이 무력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이곳에 무사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저들은 상인의 도를 어겼다. 그러니 나 역시 이들과 이들을 뒤에서 부리는 자들을 동등한 상인으로서 대접해 줄 필요가 없겠구나.’
장수는 상인으로서 행동하면서 몇 가지 깨달은 것이 있었다.
상인은 상품과 가격으로 승부를 하는 것이지 다른 방법으로 싸우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상대방이 먼저 지저분한 방법을 쓴 이상 그 역시 같은 방법을 써줘야만 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장수가 허리를 굽히자 불량배들은 내심 무척 놀랐다.
그들로서는 장수가 강하게 반발할거라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어느 정도 무력 충돌을 각오하고 왔는데 장수가 이렇게 허리를 굽힐 줄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죄, 죄송하다면 다야?”
불량배들은 장수가 굽히자 안색이 밝아졌다. 그리고 여봐란듯이 더욱 크게 고함을 쳤다.
“제가 충분히 보상해드리겠습니다.”
장수의 말에 불량배들은 더욱 기뻐했다. 그들도 고용된 처지였지만 이렇게 별도로 수익을 올리는 것은 부수입이 되는 것이다.
가뜩이나 시장이 어려워서 은자를 만질 일이 드문 상황이었기에 알아서 돈을 주겠다는데 불량배들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우리가 얼마나 큰 피해를 입었는지 알아?”
“정말 죄송합니다.”
소장주인 장수가 굽히는데 점원들 역시 허리를 굽힐 수밖에 없었다.
지켜보던 무사들 역시 애써 화를 눌러 참으며 인상만 구기고 있었다.
하지만 손님들은 상점 측에서 좀 더 강하게 나가지 않고 굽히는 모습을 보자 측은함이 생겼다.
다른 손님들의 시선에서도 분명 상점측이 억울한 일을 당한 입장이었지만 그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사과한 것이다.
그 모습에 손님들은 상점 측에 동정심을 가지는 듯 했다. 그러나 만약 맞서서 같이 싸웠더라면 어느 쪽이 잘못했든 상점에 좋지 않은 인식을 가졌을 것이 분명했다.
가뜩이나 칼을 든 무사들이 가득한 상점이었다.
강도들이 많아졌기 때문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점에 칼을 든 무사들이 넘쳐난다는 것은 어느 손님에게나 거부감이 드는 일이었다.
지금은 당장 속상하고 기분 나쁠지는 몰라도 이렇게 해두지 않으면 나중에 상권이 정상적으로 회복이 되었을 때는 이미 손님들에게 외면 받을 대로 받아, 결국 가게가 망하는 사태가 일어날 것이다
오늘의 쓴맛은 그것을 미연에 방지해줄 것이리라.
불량배들은 장수에게 은자를 요구했다. 장수는 두말없이 불량배들이 요구하는 은자를 건네주었다.
“장사 똑바로 해!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겠지만 다음에는 그냥 안 넘어갈 테니까 말이야. 이보다 최소 두 배는 받아 갈 테니 기억해 두라고!”
가장 덩치가 좋은 불량배가 큰소리를 쳤다. 그가 불량배들의 대장인 듯해 보였다.
그는 말을 하면서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공돈이 생겼으니 위에 보고를 한 후 기생집에 갔다 올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아졌던 것이다.
더구나 앞으로 정기적으로 여기서 수금을 해가면 자신의 주머니에 은자가 떨어질 걱정도 없었다. 그로서는 매우 기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장수는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불량배들은 만족했다는 듯이 웃으며 그곳을 떠났다.
“소장주님!”
무사는 화난 목소리로 장수를 불렀다. 그로서는 장수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무슨 일이십니까?”
“저들에게 왜 은자를 내어주신 겁니까? 놈들은 분명 또다시 와서 행패를 부릴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소문이 퍼지면 저들뿐만 아니라 다른 자들도 와서 행패를 부리고 그것을 빌미로 은자를 요구할 것이 분명합니다!”
무사의 말에 장수는 손을 내저었다.
“괜찮습니다. 점내를 정리하시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영업 재개하십시오.”
장수의 말에 무사는 더욱 인상을 구겼다. 하지만 소장주의 명령이었기에 거부할 수 없었다.
불량배들이 물러가자 잠시 정적이 내려앉았지만 곧 이어 손님들이 몰려왔고 영업이 다시 재개되었다.
현재 물건이 원활하게 유통되고 있는 곳은 석가장 밖에 없었다. 석가장은 산적들을 토벌하고 얻은 전리품을 전량 처분할 권리를 가지고 있었기에 다방면의 상품을 보유할 수 있었다.
게다가 석가장 자체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상품도 있었기에 많은 매상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이다.
무사들은 불손한 무리가 남아있지 않은가 확인하기 시작했고 점원들은 바지런히 손님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장수의 모습이 어느 순간, 점내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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