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편 - 방해
장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무당파는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이었던 현문의 후계자로서 인정을 받았기에 타 문파에 비해 전력상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자기의 세력권인 호북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전력을 다할 것이다.
그러나 십여 명에서 삼십 명의 고수로 이루어진 산적들을 제압하려면 그것보다 배는 강한 무력으로 제압을 해야 하는데 사실 그것은 아무리 무당파라 해도 버거운 일이였다.
“그래서 방법은 생각해 보셨습니까?”
장수의 말에 이길영 장군은 그를 바라보았다.
‘이런, 나한테 대신 나서달라는 것이구나.’
장수 역시 혈교의 고수들이 산적 짓을 하는 것을 용서할 생각은 없었다.
지금 그것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큰 피해를 입고 있는가? 상단이 망하는 것은 일차적인 문제이고 그로 인해 상단과 관련된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가 사라져 생활이 나날이 어려워지고 있는 실정이었다.
혈교는 오직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사람들을 죽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장수로서도 우선순위란 것이 존재했다.
당장 자신이 운영하는 상단을 최우선으로 해, 산재한 일들부터 해결해야 했던 것이다.
더구나 장수는 너무도 바빠서 모처럼 유운에게 전수받은 번천장과 양의심법을 수련할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
다행이도 선천기공과 전진심법은 다른 일을 하고 있어도 운기가 되어 내공이 계속해서 상승했지만 무공이란 쉬지 않고 수련해야 느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퇴보하기 마련이었다.
이길영 장군은 장수를 보며 말을 이었다.
“무사님 제가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군을 위해, 아니 호북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 도움을 주실 수는 없겠습니까?”
이길영 장군은 간곡히 부탁했다. 그것을 거절하는 것은 정말이지 어려운 일이였다. 더구나 장수 역시 도와야 한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었기에 더욱 난처했다.
“제가 지금은 마무리 지어야할 중요한 일이 많이 남아 있어 당장은 힘듭니다만, 그 일만 해결하고 나면 그때는 꼭 장군님을 돕도록 하겠습니다.”
장수의 말에 이길영 장군은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군인의 신분도 아닌 장수에게 더 이상의 도움을 강요하는 것은 해선 안 될 일이었다.
“알겠습니다. 제가 쉽지 않은 부탁을 드렸군요. 그래도 나중에 하실 일을 모두 끝마치시면 꼭 산적토벌을 하는데 도움을 주셨으면 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보급품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길영 장군의 말에 장수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앞으로 열흘후면 납기일이 다가온다.
그나마 계약 서류를 미리 봐두었기에 대처할 말이 있었지 만약 서류도 보지 않은 채였다면 몹시 난처할 뻔 했다.
“문제가 생겨서 작업에 지장이 있었지만 지금 최선을 다해 기일을 맞추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장수의 말에 이길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 새로 터를 잡으신지라 기존 상가의 견제를 많이 받고 계실 겁니다.”
이길영 장군 역시 어느 정도는 상황을 눈치 챈 듯 했다.
하긴 장군이 마음만 먹는다면 지금 상황에 대해 얼마든지 알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장수는 이길영 장군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이길영 장군이 장수의 눈치를 살피더니 말을 이었다.
“납품기일을 연장해 드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군에 관련된 계약은 그 납기 마감이 철저해야 합니다. 만약 이번 납기일을 맞추지 못하신다면 계약은 자동적으로 파기가 될 것임을 알고 계셔야 합니다.”
장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습니다.”
“저를 원망하지 마십시오. 군이라는 것이 날짜에 맞춰 일을 진행하기 때문에 시일을 중요시 합니다. 더구나 납품기일 다음날이 군대 출정 날이기도 해서 도저히 미룰 수가 없겠군요.”
이길영 장군은 냉정한척 말을 했지만 매우 중요한 정보를 장수에게 전해준 것이었다.
일차 납품 기일 다음날이 출전 날이라면 기한은 절대 미룰 수 없다.
더구나 만약 납품이 제대로 이루지 못한다면 군이 중요한 업무를 하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에 얻는 불이익이 상당히 클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출정날을 함부로 퍼트려서는 안됐다. 그야말로 기밀이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길영 장군은 장수를 무척 신뢰하고 있었기에 특별히 귀띔해준 것이다.
“말씀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저는 무사님께 걱정이 되어서 말씀을 드린 것뿐인데요.”
“최선을 다해서 시간을 맞추겠습니다.”
‘예. 그리고 필요하시면 군에 병사를 요구하십시오. 그럼 호위를 할 병사를 언제든 내어 드리겠습니다.”
원래라면 일반 상가에 군의 병사를 파견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석가장은 군의 장비를 납품할 중요한 임무를 맡고 있었다. 그랬기에 요청이 있다면 어느 정도는 도와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병사를 파견하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했기 때문에 일정한 조건을 충족시켜야만 했다.
하지만 이길영 장군은 장수의 편의를 봐주기 위해 그러한 과정을 모두 생략시키고 바로 보내주겠다는 뜻이었다.
“감사합니다. 도움이 필요하면 즉시 말씀드리겠습니다.”
“힘내십시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이길영 장군은 얼마 남지 않은 출정일에 맞춰 토벌대를 조직하기 위해 무척 바빴다.
그런 상황에서도 장수를 만나러 올 정도니 그가 장수를 얼마나 아끼는지 알 수 있었다.
이길영 장군은 가면서 흘리는 식으로 말을 했다.
“이번 납품기일이 끝나면 가문의 여식이 공방에 한번 놀러오겠다고 하니 알아두셨으면 합니다.”
“그, 그런…….”
장수는 당혹스러웠다. 그러자 이길영 장군은 허허거리며 웃더니 그대로 밖으로 나가버렸다.
“이거 난처하구나.”
여자를 만난다는 것은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이였다. 하지만 자신을 신경 써주는 이길영 장군의 말을 거절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에라 모르겠다. 우선 시급한 일부터 해결하자.”
장수는 납품량을 맞추기 위해 어떻게 할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 * *
혈교 심장부의 어느 곳. 태사의에서는 혈마가 인상을 찡그리며 앉아있었다.
그의 표정이 좋지 않은 이유는 요즘 여러 가지 문제들로 인해 머릿속이 매우 복잡했기 때문이었다.
원래라면 지금쯤 군에서 보낸 토벌군을 제거하고 무당파를 멸문시켰어야 했다.
그러나 군대도 여전히 건재하였고 무당파 역시 멀쩡했던 것이다.
그뿐 아니라 교의 중심이 되는 절정고수를 이번 전투로 많이 잃었다. 절정고수를 잃은 것은 교에 치명적인 일로, 그 때문에 혈마가 생각하던 계획을 상당부분 수정해야 했던 것이다.
“어떻게 되었나?”
혈마의 말에 군사가 대답했다.
“상황은 순조롭습니다.”
“순조롭다고? 뭐가 순조로워? 그게 말이 되나?”
혈마는 짜증을 내고 있었다. 화경의 경지를 이룩한 절대자답지 않게 감정이 전혀 제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만 봐도 혈마가 이번 일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었다.
“현재 호북의 상권은 서서히 말라가고 있습니다. 그 덕분에 함께 재정적으로 말라가고 있는 무당파도 큰 손실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 현재 상황을 정확하게 말해 보게.”
“알겠습니다. 혈마시여. 현재 운영 중인 고수들은 삼백 명에서 오백 명으로 증가시켰습니다. 그리고 그중 오십 삼명이 상단들과 싸우다 목숨을 잃었습니다. 또한 불태운 상단이 모두 육십 칠 개이고 군대가 보낸 병사들 이천 오백 명을 사살했습니다.”
“뭐? 오십 삼명이나 죽었다고?”
혈교에는 고수라 불릴 만한 자들이 숫자가 엄청났다.
초반에 일찍 성과를 얻을 수 있는 마공이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수련을 하면 웬만한 고수라 불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