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편 - 납품
장수는 어떻게 하면 납품기일을 맞출 수 있을까 고민했다.
하지만 사람의 체력이라는 것이 한계가 있었고 장인들이라고 해서 하루 종일 쉬지 않고 일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랬기에 하루에 만들 수 있는 수량은 정해져 있었다.
‘뭔가 방법이 없을까?’
납품기일을 맞추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그 일을 해내야만 이곳 양현에서 자리를 잡고 다른 곳으로 상행을 떠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번 납기를 못 맞추게 되면 신용이 떨어지게 되고 앞으로의 납품도 다른 곳에 빼앗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장사는 신용이 중요하다. 그것은 장수와 친한 이길영 장군이라 해도 도와줄 수 없는 부분이었던 것이다.
‘그들이 기운이 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 없을까?’
장수는 한참을 생각하다 전진심법이 생각났다.
‘그래, 전진심법……! 그들의 몸에 기운을 불어 넣어주면 도움이 될 거야.’
전진심법은 시전자의 기운을 몸에 불어넣어 줄 수 있었다. 그랬기에 장인들에게 장수의 기운을 주입 한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장수는 장인에게 다가갔다.
쾅! 쾅! 쾅!
장인이 망치질 하는 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지고 있었다. 제품은 화덕으로만 만들어지는 게 아니었다.
숙련된 장인이 망치질로 생명을 불어넣어주는 작업도 병행해야 훌륭한 제품이 탄생하는 것이다.
“잠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장수가 조심스레 말을 걸자 나이가 제법 들은 장인이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무슨 일인가?”
장인은 장수가 소장주인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대우를 제대로 해주진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장인들 특유의 개성이었고 장인 역시 장수에게 뿐만 아니라 다른 자들에게도 퉁명스럽게 대했던 것이다.
하지만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그가 다소 무시하거나 퉁명스럽게 대해도 대부분 그를 맞춰주었다.
“잠시 부탁드릴 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말을 해보게.”
“현재 저희 공방에 의뢰가 들어온 물건은 납품기일이 정해져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하면 시간을 맞출 수 없어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여쭤보려고 말을 걸었습니다.”
장수의 말에 장인은 당당히 말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서 물건을 만들 걸세.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물건을 허투루 만들 수는 없네. 우리가 만든 물건은 우리의 자부심이니 더 이상 공정을 짧게 하라는 말은 하지 말게.”
장인의 말에 장수는 손사래 치며 말했다.
“아, 아닙니다. 공정을 줄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공정을 줄이면 생산시간이 줄어든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제품에 하자가 생기니 장수로서도 반갑지 않은 일이었다.
“제품을 어떻게 하면 제시간에 만들 수 있을까를 말한 것이지 하자가 생기는 것은 저도 원하지 않습니다.”
장수의 말에 장인의 표정이 누그러졌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 만들 걸세. 그리고 석가장의 사정도 알고 있고, 납기일과 제품수량도 파악하고 있네. 하지만 우리가 이 짧은 시간 내에 만들 수 있는 양은 한계가 있어.”
아무리 장인이라 할지라도 할 수 있는 한계가 정해져 있었다. 최선을 다한다고 해도 지금보다 더욱 빠르게 만들 수는 없었다.
“그래서 제가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 봤습니다.”
장수의 말에 장인은 의혹어린 표정으로 장수를 바라보았다.
“그래 무엇인가? 말을 해보게.”
“제가 안마를 해드리겠습니다.”
“안마라고?”
“그렇습니다.”
장수의 말에 장인은 어이가 없는지 크게 웃었다. 그러자 어느새 주변에 모여든 다른 장인들도 따라 웃었다.
“자네는 우리 몸이 얼마나 단단한지 아는가? 지금 들고 있는 망치만큼 단단한 게 우리의 몸이야. 그런데 자네의 연약한 손으로 안마를 한다고 해도 우리가 느낄 수나 있을 것 같은가? 괜히 방해하지 말고 자네 일이나 열심히 하게. 자꾸 이러면 일만 늦어질 뿐이야.”
장인의 말에 장수는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저를 믿고 기회를 주십시오. 속는 셈 치고서 한 번만 시험 삼아 해보시지 않겠습니까?”
“무슨 기회를 달라는 것인가?”
“제가 안마를 해드리겠습니다.”
장인은 거듭 거절했지만 끝내는 장수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좋아. 하지만 안마를 해도 아무런 느낌이 없으면 자네는 더 이상 우리를 방해하지 말고 가서 자네 일이나 하게.”
“알겠습니다.”
말과 함께 장수는 장인의 등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천천히 안마를 하기 시작했다.
장수는 높은 경지를 이룩한 상태였다. 거기다 수준 높은 무공까지 연마했으니 조금만 힘을 불어넣자 자연스럽게 손에 진기가 어렸다.
그 손으로 안마를 시작하자 장인은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허, 참. 자네 손힘이 대단허군…….”
어리고 연약해 보이는 외모와는 다르게 장수의 손아귀 힘은 대단했다. 그랬기에 장인은 장수의 손놀림에 금세 만족스런 탄성을 내뱉었다.
장수는 무공을 연마함으로써 누구보다 사람의 인체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수준 높은 무공을 익히기 위해서는 자신의 몸을 관조하며 명상에 잠겨야 했고 그 때문에 자신의 신체에 대해 잘 알아야 했던 것이다.
그 덕분에 장인의 굳은 몸을 부드럽게 풀어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장수의 몸에서 빠져나온 기운이 장인의 몸으로 점차 스며들었다. 바로 전진심법의 기운이었다.
기운은 장수의 의지에 의해 장인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러자 장인은 힘이 불끈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장수는 손을 멈추었다. 이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러자 장인은 놀랍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자네 어떻게 한 건가? 몸속에서 기운이 넘치는 것이 느껴지네.”
엄청날 정도는 아니었다. 평상시 보다 조금 더 나아진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 조금으로도 몸속에 쌓인 피로를 풀려 장인은 전보다 힘이 솟는다고 생각한 것이다.
장인은 다시금 망치를 잡더니 힘차게 담금질을 하기 시작했다.
‘성공했구나!’
다른 장인들 역시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 장인을 바라보았다. 간단한 안마로 저렇게 힘이 솟을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나, 나도 해주게.”
“소장주님 저도 해주십시오.”
장인들은 앞을 다투어 장수의 앞에 섰다.
“알겠습니다. 차례대로 해드릴 테니 순서를 지켜 주십시오.”
장수는 한명씩 몸속에 기운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러자 장인들은 일의 능률이 훨씬 상승하는 것을 느꼈다.
‘이대로라면 기일 안에 일을 마무리 할 수 있겠구나.’
이번 기일만 맞춘다면 다음부터는 여유가 있었다. 그렇게 되면 앞으로도 고정적으로 군과의 계약을 이행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장인들은 몸속에서 올라오는 힘찬 기운을 느끼며 힘차게 망치질을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니 장수는 기일에 맞출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다시금 들었다.
장수는 천천히 사방을 둘러보았다. 앞으로 해야 할일은 더 많았다. 당장 매장과 공방 건축을 살펴봐야 했던 것이다.
그렇게 공방의 작업을 살피는 사이에 어설프게 일하는 자들이 보였다. 바로 장수가 잡아온 불량배들이였다.
그들은 일을 전혀 하지 못했다. 그중에 몇 명은 하는 시늉이라도 했지만 나머지는 일을 할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 때문에 무사들과 반발이 일어났지만 평상시보다 약해진 그들이 무사들의 상대가 될 수는 없었다.
‘저쪽은 시간이 지나야 해결이 되겠지.’
평생 일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는 자들이었다. 그런 자들에게 공사 일을 하라고 해서 갑자기 잘할 리가 없었던 것이다.
물론 무사들 역시 어설픈 것은 마찬가지였으나 그들은 최소한 성실하게 열심히 하려고 노력했다.
그들 역시 지금 석가장의 처한 위기를 피부로 느끼고 있기 때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