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편 - 납품
장수는 그들을 계속해서 살펴보다가 급하게 사환이 달려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소장주님!”
“무슨 일입니까?”
“불량배들이 또 왔습니다.”
“불량배들이요?”
“그렇습니다.”
불량배라는 말에 장수는 미소를 지었다. 또다시 일꾼이 늘어난 것이다.
다음날 사십여 명의 불량배들이 공방의 새로운 일꾼으로 합류할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석가장 양현지부는 자리를 잡아가는 듯했다. 장수가 오기전이랑 오고 난후가 확연히 달라졌던 것이다.
공방에는 일하는 사람들로 북적였고 매장에는 손님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후에 납품이 끝나고 남은 재료로 여유가 되면 도시에 사는 자들을 위해 금속 제품을 만들어도 수요가 있을 듯 했다.
‘대충 문제는 해결 했구나.’
이대로 가면 납품기한은 맞출 수 있을 듯 했다. 매일 같이 장인들에게 기를 불어 넣어주는 것도 일이지만 기일을 맞추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더구나 요 근래에 들어서는 불량배들도 뜸해졌다. 매일 같이 공방에 늘어나는 불량배들에 대해 주변에 소문이 난 것이다.
장수는 일을 하는 불량배들을 바라보았다. 새로 들어온 자들은 일을 할 생각이 없어 보였지만 제법 날짜가 지난 자들은 그래도 일을 하려는 게 보였던 것이다.
불량배들이 숫자는 늘긴 늘었지만 하루가 다르게 도망치는 자들도 있었다.
앞으론 힘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공사 일을 할 정도의 참을성은 없었던 것이다. 그랬기에 모두가 잠이 들면 몰래 일어나 도망을 쳤다.
그들에 문제에 대해 장수는 그냥 내버려 두었다. 이정도 일에도 도망을 치는 자들은 사실 아무데도 쓸데가 없는 자들이었다.
더구나 무리도 없이 외톨이가 되었으니 불량배 노릇도 하기 힘들 것이다.
그랬기에 놓아 준 것이다. 하지만 만약 다음에 또 장수와 엮이는 일이 생긴다면 그땐 정말 가만 두지 않을 것이다.
힘을 쓰지 못하게 하는 방법은 장수도 여러 가지를 알고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오른쪽 가슴에 있는 뼈를 부수는 것이다.
그럼 오른쪽 팔은 원래의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아예 회복할 길이 없었기에 쓰지 않았던 것이다.
장수는 불량배들을 생각하다 잠시 다른 생각을 떠올렸다. 바로 혈교였다.
‘녀석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장수는 혈교 출신이었기에 머리를 조금만 굴리면 혈교의 움직임이 눈에 보였다. 더구나 지금 상황과 대조를 하면 어느 정도 거의 정확하게 상황을 예측할 수 있었다.
‘분명 군대를 견제하지 못해 짜증을 내고 있겠지.’
절대의 경지에 오른 혈마였지만 그 성질만큼은 경지에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절대자이지만 혈교의 상위 가문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환경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으리라.
‘과연 혈마는 어떤 방법을 쓸까?’
고수들로 이루어진 산적들을 쓰는 방법도 훌륭했지만 혈마라면 다른 방법도 쓰려 할 것이다.
아무리 교의 중진이라 할 수 있는 절정고수를 많이 잃었다고 해도 혈교에는 여전히 수많은 고수들과 자원이 있었던 것이다. 그랬기에 도저히 얕볼 수 없었다.
‘어떻게든 방해공작을 펼칠 것 같은데…….’
정면대결이 아닌 다른 방법을 써서 시간을 벌려고 할 것이다. 당장 토벌대가 움직인다면 혈마 역시 상당한 부담을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재 혈교에 토벌대를 상대할 병력이 있을 리도 없었다.
혈교 역시 강력한 무력을 갖춘 무력단체가 여럿 있었지만 대부분 각자 맡은 임무로 바빴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정도 수준이 움직이면 정파에서도 비슷한 무력을 지닌 단체를 움직일 것이기에 문제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토벌대를 방해하지 않을까?’
자신의 납품이 끝나면 토벌대 역시 다시 움직이기 시작할 것이고 혈교에서 그것을 그냥 두고 보지는 않을 것이다.
중간에 보급품을 빼돌리거나 전달되지 못하도록 방해하려 들 것이 분명했다.
‘그럼 상가들을 공격하려나?’
이곳 양현에는 군대에 납품하는 상가가 많았다.
장수네가 이번에 납품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을 납품하는 곳도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혈교라고 해도 이렇게 많은 숫자의 상가를 모두 공격하기는 힘들 것이다.
더구나 이곳에는 황실에서 지원해준 절정고수들이 있다. 그랬기에 드러내놓고 공격했다간 그들이 불리한 입장이 되는 것이다.
‘살수들을 풀어서 소란을 일으키거나 상가마다 불을 지르는 방법이 있겠군.’
혈교에는 많은 인적자원이 있었다. 그들을 이용한다면 상가마다 불을 지르는 것이 가장 적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보게 될 것이다.
‘문제는 날짜인데.’
혈교에서 공격을 할지 안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나 장수는 혈교의 방식을 잘 알고 있었고 지금 공격할 수 있는 예상되는 방법 자체가 몇 가지 없었기 때문에 대응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하지만 정확한 날짜까지 아는 것은 무리였다.
다만 분명한 것은 토벌대가 움직이기 전에 공격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제발 아무 일도 벌어지지 말아야 할 텐데…….’
상가를 불태우는 것은 가뜩이나 상권이 무너진 양현에서 경제력이란 것을 송두리째 뽑아 버리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장수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대응을 할 수는 없다.
그로서도 일이 벌어지면 그때 가서야 나설 수 있는 입장이었던 것이다.
만약 혈교에서 공격을 하지 않는다면 군이나 황실 소속이 아닌 일개 상인인 장수가 나설만한 근거가 없었다.
차라리 어떤 증거나 물증이라도 있다면 움직이기가 쉽겠지만 그게 그렇게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차라리 내가 군을 움직이는 장군이라면 좀 더 편하게 작전을 짤 수 있을 텐데…….’
장수로서는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장군이 아니고 상인이었기 때문에 철저히 상인으로서만 움직여야 했다.
장수는 대응 방법을 생각하다 문득 품속이 따듯함을 느꼈다. 유운이 준 쌀이 생각난 것이다.
‘스승님.’
장수가 유일하게 존경하는 사람이 바로 유운이었다. 유운은 스승으로서 그보다 한 차원 높은 깨달음을 가지고 있었고 행동 역시 타의 모범이 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장수는 품속의 쌀을 손으로 만졌다.
원래 계획이라면 이곳 양현에 도착 하자마자 빈민들에게 죽을 만들면서 유운이 준 쌀을 섞어 대접하려고 했지만 너무 바쁜 일정 때문에 유운의 말을 따를 시간도 없었던 것이다.
‘스승님, 스승님의 명은 반드시 꼭 이행하겠습니다.’
스승인 유운의 명이었다. 장수로서는 무엇보다도 우선해야 하는 일이기도 했다.
그랬기에 장수는 쌀을 힘주어 쥐었다. 스승님의 온기를 조금이나마 느끼고 싶었다.
다시 며칠이 지났다. 이제 내일이면 납기일이었다.
다행이 군대에 납품해야 하는 물품은 거의 맞출 수 있었다. 무기가 문제였지만 그것 또한 내일까지는 목표량을 달성할 수 있을 듯 했다.
원래라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노력했기에 이렇게 성과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장수가 장인들에게 내공을 불어 넣어줘서인지 제품이 원래보다 훨씬 잘 나왔다.
비록 내공의 소실이 불가피 했지만 약속을 어기는 것보다는 차라리 나았다. 장수의 몸속에는 많은 내공이 있었고 소실 된 양은 금세 채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 단주가 아픈 몸을 이끌고 오는 것이 보였다.
“단주님!”
“소장주님.”
“아프신데 여기까지 무슨 일이십니까?”
“거의 다 나았습니다.”
장수는 단주의 몸을 살펴보았다. 전에 봤을 때보다는 나아졌지만 아직도 상태가 호전되지 않은 것이다.
자객에게 암습을 당한데다가 나이도 있어 병이 쉽게 낫지 않았다. 하지만 단주 역시 납기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아니 마음 편히 누워 있을 수가 없었던 모양이었다.
“좀 더 쉬셔야 할 것 같은데요.”
“아닙니다. 늙은 몸이라 그런지 적당히 움직여 줘야 되지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몸이 쑤십니다. 그나저나 수량은 다 채워졌습니까?”
단주는 다친 몸에도 불구하고 물건을 보기 위해 빠르게 움직였다.
거대한 덩치와는 다르게 재빠른 움직임에 장수는 단주가 과연 환자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얼추 맞추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납기일까지는 계속 해야 수량을 맞출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장수의 말에 단주는 대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원래라면 수량을 맞추는 것은 불가능했다. 사방에서 방해를 해대였고 여건이 좋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수가 그런 방해를 이겨내고 일을 거의 성사시킨 것이 대견해 보였던 것이다.
“장하십니다. 정말 장하십니다.”
누워 있으면서도 장수가 한 일들에 대해 모두 듣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 할 것 같아서 아픈 몸을 이끌고 나왔는데 상황을 보니 이보다 좋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단주의 칭찬에 장수는 무안하다는 듯이 웃었다.
“모두가 함께 노력해서 이루어낸 일입니다. 그러니 저만 칭찬 받을 일은 아닙니다.”
“그게 아닙니다. 소장주님이 없었을 때는 모두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소장주님이 이렇게 나서서 각자 할일을 정해주신 덕분에 이렇게 일이 멋지게 성사될 수 있었습니다.”
장수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래, 그런데 무슨 어려운 일은 없었습니까?”
“대부분 해결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그간 비축해둔 재료가 이제 거의 떨어졌다는 겁니다. 그나마 나무 같은 경우에는 주변에서 구할 수 있다지만 광석이나 석탄은 직접 따로 구하러 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그것은 아무래도 소장주님이 혼자서 처리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만…….”
다친 단주를 비롯해 다른 장인들과 무사들은 지금 하던 일을 놓고 이웃한 도시까지 갈수는 없었다. 그랬기에 장수가 해야만 했다.
그것은 장수 역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상단을 지키고 있던 자신이 없다면 상단은 혈교의 고수들에게 박살이 날 것이다.
“알겠습니다.”
단주는 이것저것을 살펴보았다. 그동안 누워 있느라 사업을 전혀 돌보지 못했다.
그래도 서류작업은 단주가 직접 거의 다 해왔지만 서류상으로 보는 것과 눈으로 직접 보는 것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단주는 그렇게 한참을 살피다가 허리를 폈다. 다친 부위가 아파왔기 때문이었다.
“소장주님 저는 이만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예. 단주님 몸조심하십시오.”
“예. 소장주님께서도 몸을 아끼십시오.”
단주가 움직이자 호위무사들 중 둘이 단주를 부축했다. 그리고 이내 사라졌다.
장수는 단주가 사라지고 나자 인상을 썼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단주님을 암습한 녀석들에게 꼭 대가를 치르도록 해주겠다.’
누가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암습을 한 자리에 장수가 있었다면 상황이 틀렸겠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알아내는 것도 불가능했다. 하지만 만약 또다시 주변 사람들을 노린다면 그땐 놓치지 않고 철저히 추격해 알아낼 것이다.
장수는 그렇게 자신에게 다짐을 한 후 천천히 다른 사람들을 관리 했다.
해야 하는 사업이 많았기에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었고 그들을 관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