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고수-193화 (193/398)

193편 - 공을 넘기다

이들이 석가장에 불을 지르려고 했지만 장수는 그것이 죽을지도 모르는 일을 당할 정도로 나쁜 잘못인가 생각했다.

전생의 장수라면 아예 그런 생각을 하지도 않았겠지만 유운을 만나면서 변하고 있었던 장수였기에 그런 생각이 들자 무사들을 보고서도 곧바로 제압하지 않고 잠시 기다린 것이다.

하지만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만약 이들을 이용하지 않는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죽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때, 복면인들도 싸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지금 상황은 심각했다. 장수를 해치우지 않는다면 이번 방화 사건을 벌인 자들로 자신들이 용의자가 될 상황이었던 것이다.

차라리 석가장만 방화를 했더라면 나았겠지만 지금 상태에서 걸린다면 잘못하면 자신들 뿐만 아니라 가족까지 연대책임을 물 가능성이 있었던 것이다.

도망가도 소용이 없었다. 게다가 그들을 고용한 양강 상단에는 이번 일에 참여한 무사들의 이름이 그대로 보관되어 있었다. 그랬기에 목격자인 장수를 어떻게든 죽여야 했던 것이다.

복면인들은 살기를 띄었다. 장수가 강하다지만 그들도 목숨 걸고 싸운다면 많은 인원 덕분에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 부총관이 크게 고함을 질렀다.

“녀석을 잡아라. 놓치면 안 된다!”

부총관이 말이 방아쇠가 되었다. 복면인들은 장수를 잡기 위해 일제히 달려들었다.

장수 역시 마음의 준비를 마치고 공격에 대비하고 있었다.

그는 마치 흘러가는 물처럼 자연스럽게 복면인들 사이를 파고들었다. 그리고 두 주먹을 휘둘렀다. 그의 주먹은 마치 스치듯이 복면인들을 후려 쳤고 그 단 한방을 버티지 못해 복면인들은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마치 복면인들이 스스로 넘어지는 것처럼 빠르게 무너져 내렸다.

어느새 절반의 복면인이 쓰러지고 대여섯 명만 남자, 복면인들은 겁을 먹었다. 그리고 도망을 치기 위해 달려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장수의 주먹이 먼저였다. 장수는 나머지 복면인들까지 순식간에 해치웠다. 그러자 부총관이 질린 표정을 지었다.

“어…… 어떻게…….”

부총관은 무림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지금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로서는 일반 무사와 고수라는 개념은 있었지만 일반 무사 오십 명이 뭉치면 고수들도 충분히 제압이 가능하다고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맞서자마자 무너져 버린 것을 보고 몹시 당황했다.

장수는 부총관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손가락을 뻗어 재빨리 점혈했다.

“아, 안 돼…….”

부총관은 겨우 한마디 말을 내 뱉고 그대로 땅바닥에 꼬꾸라졌다.

장수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이들을 이용하지 않는다면 다른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장수는 잠시 한숨을 내쉰 뒤 쓰러진 복면인들도 하나씩 점혈했다. 금방 깨어나면 곤란해지기 때문이었다.

점혈을 한 후 장수는 급히 움직였다. 혈교의 고수들을 찾으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도시 외곽에 허름한 사당이 있었다. 사당은 인적이 드문 곳에 있었기에 오랜 시간 아무도 관리하지 않은 것 같았는데 그 안에서 인기척이 났다.

“7호, 보급품은 확인했나?”

“예. 대주님 현재 이곳에 한 달간 먹을 식량을 확보했습니다.”

“좋아!”

대주라 불린 자는 다른 자들에게도 차례로 지시를 내렸는데 당분간 이곳에서 지내려고 철저히 준비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혈교 소속의 무사였다. 혈교는 원래 계략이나 첩보 정보조작 위장 등 보통의 무림단체와는 다르게 비정규전을 즐겨 했기에 방화를 한 후의 대비가 잘 되어 있었다.

미리 장소를 점거 해 놓고 버틸 수 있는 보급품을 준비해 두었던 것이다.

오십여 명이 만약 보급품 없이 지내려고 한다면 당연히 주변을 약탈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다른 자들에게 탄로가 날수 있었기에 이런 식으로 미리 생활할 것들을 챙겨 놓은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곳 말고도 예비로 준비해둔 곳이 있었는데 이곳 사당이 적들에게 발각 된다면 제2의 피난처나 제3의 피난처로 얼마든지 도피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지시를 내리다가 대주가 인상을 썼다.

“그런데 4조는 왜 아직까지 오지 않지?”

대주의 말에 복면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도 무슨 일이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때 두 명의 복면인이 사당으로 들어왔다. 그러자 대주가 급히 물었다.

“4조는 어떻게 되었나?”

“죄송하지만 집결지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래?”

대주는 복면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복면인들은 소모품이었다. 그랬기에 이번 일로 전부 전사해도 상관은 없었다. 하지만 작전을 한 번 더 시행해야 하고, 그 때문에 인원을 최대한 아껴두는 것이 좋았다.

다른 복면인들도 별 반응이 없었다. 이들은 세뇌의 정도가 차이가 날 뿐이지 대부분 자신의 의지를 가지지 못한 자들이었다. 그랬기에 동료가 당했다고 해도 아무런 동요가 일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어느 정도 의지가 있는 자들은 자신들은 이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했기에 애석하다는 감정을 가지지 않았다.

대주는 돌아오지 않은 4조를 금세 기억에서 떨쳐내고 다시 복면인들에게 명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새로운 지시가 올 때까지 이곳에 대기해야 했기에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았던 것이다.

장수는 혈교의 고수들이 숨은 것을 빠르게 찾을 수 있었다.

이미 어느 정도 예상을 하고 있었기에 훨씬 빠르게 찾아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 번에 찾은 것은 아니었다.

흔적을 찾고 상황을 살핀 후 재빠르게 움직이며 다녔기에 금방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곳이구나.’

사람의 흔적이 끊긴 듯한 사당이 외지에 있었는데 장수는 그안에 있는 혈교의 고수들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지금은 보급품을 정비하고 은신처를 만들고 있겠지.’

장수는 잠시 추억에 빠진 것처럼 전생에서의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혈교의 역량은 대단해서 무슨 임무를 하던지 준비가 철저했다. 그 덕분에 일을 진행하는데 있어서 걸림돌은 생기지 않았다. 비록 무사의 목숨을 중히 여기지 않았지만 임무에 필요한 것은 뭐든지 내주었기에 어떤 점에서는 불만이 없었던 것이다.

장수도 혈교에 몸담았을 적, 살행이 끝나고 교에서 마련해준 은신처에서 거주한 적도 있었고 상대방을 죽이기 위해 잠행을 한 적도 있었다. 그런 기억들이 떠오르자 괜스레 웃음이 나왔다.

‘잘도 그런 일을 했구나.’

생각해 보면 웃기는 일이었다. 세뇌에 당해 혈교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심만 가진 채 임무를 수행하는 이성 없는 짐승과도 같았던 것이다.

장수는 웃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다시 사당을 바라보았다. 안타깝게도 이제부터는 눈앞에 보이는 자들을 모두 죽여야만 했다.

저들 중 대부분은 분명 세뇌를 당해 자유의지가 없는 자들이 분명할 것이다.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 채 그저 혈교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불쌍한 꼭두각시들이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저들의 무력은 장수에 비해 약하지만 다른 자들에 비해서는 월등히 강한 편이었다. 고수 오십 명의 숫자란 매우 강력한 전력이었던 것이다.

더구나 혈교의 수준 높은 무공을 배웠기에 보통의 고수들보다도 월등히 강한 자들이었다. 그런 자들을 제거하지 않는다면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살려줄 수도 없었다. 살려줘 봐야 세뇌를 풀 방법이 없기 때문에 다시 혈교의 충성스러운 부하가 되고 말 것이다.

장수가 아는 세뇌를 푸는 유일한 방법은 초절정고수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초절정고수가 쉬운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저들을 단기간에 초절정고수로 만들 방법도 없었기에 지금으로서는 저들을 죽이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었던 것이다.

‘미안하구나.’

저들 중 어쩌면 한두 명쯤은 몇십 년 뒤, 세뇌를 풀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은 당장 저들을 죽여야만 했다.

‘내가 왜 이러지?’

장수는 잠시 당황스러웠다. 자신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생각이 갑자기 들자 ,자신의 감정변화를 따라갈 수 없었던 것이다.

‘생각하지 말자.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자.’

장수는 스스로에게 강한 암시를 걸었다. 그리고 사당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주변에 경계를 서는 혈교의 고수가 눈에 들어왔다.

‘우선은 저들부터 죽이자.’

장수는 천천히 경계를 서는 혈교의 고수에게 다가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