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편 - 공을 넘기다
장수의 은신술은 상당한 수준이었기에 혈교의 고수는 누가 오는지도 모르고 있다가 순식간에 목이 잡혔다.
‘대신 고통 없이 죽여주마.’
장수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자비였다.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죽여주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누구냐?”
목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나자 경계를 서는 자들이 장수를 찾아내려 했다. 하지만 장수가 먼저였다.
장수의 두 주먹은 이미 경계를 서는 고수의 가슴을 부숴 버린 것이다.
순식간에 심장이 터진 두 명의 고수는 눈을 부릅뜨고 장수를 보다 그대로 고개를 떨어트렸다. 숨이 멎은 것이다.
“침입자다!”
사당에서 고수들이 빠르게 밖으로 뛰어나왔다. 순식간에 수십 명의 고수들을 상대하게 된 것이다.
그들은 장수를 바라본 후 주변을 살폈다. 그러자 장수 한명만 있는 것을 보자 재빨리 장수를 에워쌌다.
대주는 장수를 보며 인상을 썼다.
“웬 놈이냐?”
땅에 보초로 세워둔 세 명의 시신이 있었다. 그것만 보더라도 보통 녀석이 아닌 듯 했다. 하지만 자신들이라면 절정고수라도 능히 상대할 수 있었다.
보통의 고수도 아니고 혈교의 수준 높은 마공을 익힌 고수들이였다. 더구나 세뇌를 당해 자신의 목숨을 돌보지 않는 충직한 자들이었기에 충분히 승산이 있다 생각한 것이다.
대주의 말에 장수는 입을 열지 않았다. 어차피 죽을 녀석이다. 괜히 말을 섞어봤자 머릿속만 산란해질 뿐이었다.
장수는 빠르게 대주에게 달려들었다. 대주는 혈교에서도 명문가의 후손이었다. 그랬기에 세뇌를 당하지 않고 이들을 지휘할 자격을 얻었던 것이다.
장수가 그에게 달려든 이유도 저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부터 해치운다면 명령 체계를 일은 다른 자들은 쉽게 죽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때 대주가 인상을 쓰며 고함을 질렀다.
“녀석을 죽여라!”
대주의 명령이었다. 대주의 명령은 세뇌가 심하게 걸린 자들에게는 절대적이었다.
대부분의 고수들이 장수를 향해 빠르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에 반해 느리게 움직이는 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약간의 세뇌를 받았거나 아예 세뇌를 받지 않은 자들이었다.
혈통에 따라 쓰임에 따라 세뇌가 결정되어지는데 이들은 자유 의지를 어느 정도 가졌기에 세뇌가 강한 자들을 먼저 앞세우고, 바로 달려들지는 않았던 것이다.
장수는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고수들을 신경도 쓰지 않고 뒤에 쳐진 자들을 주의 깊게 바라보고 있었다.
‘이미 명령은 내려졌다.’
이들을 단 한명도 놓쳐서는 안 되었다. 놓친다면 장수의 계획이 상당부분 와해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랬기에 세뇌가 걸린 자들 말고 세뇌가 걸리지 않거나 비교적 약하게 걸린 자들을 우선적으로 파악하려 한 것이다.
저들을 먼저 제거해야 했다. 그렇게만 된다면 다른 무사들은 대주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하기만 할 가능성이 높았다. 물론 그렇더라도 도망자는 생기겠지만 자유의지를 가진 자들보다는 행동이 불편하기에 쉽게 처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장수는 공격을 퍼붓는 고수들을 재빠르게 피해냈다. 아까와는 확연히 다른 상황이었다.
일반 무사들인 상가의 복면인을 상대할 때는 쉽게 처리했지만 지금 장수를 공격하는 자들은 고수들이면서도 제법 실력이 되는 자들이었다. 그런 자들의 공격을 우습게 생각할 수 없었다.
장수는 빠르게 움직이면서 공격을 모두 피했다. 그나마 장수니까 이렇게 쉽게 피해낼 수 있었지 다른 초절정 고수였다면 이렇게 가벼이 피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물론 검사를 이용하기 때문에 빠르게 처리가 가능했지만 장수처럼 빠르게 움직이는 것은 보통일이 아니었다.
장수는 빠르게 움직여 고수들의 공격을 피하면서 철저하게 세뇌가 적게 걸린 고수들을 하나씩 처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움직임이 매우 느렸기에 수세에 몰린 것처럼 보였다.
대주는 상황을 살폈다. 정 안되면 자신만이라도 도망을 쳐야 했기 때문이었다.
은신처가 들켰다는 것은 어떤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그 정도의 변명거리라면 도망갈 만한 충분한 증거가 돼주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그렇게 크게 불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주는 고수들이 장수를 공격하는 것을 지켜만 보았다.
장수는 빠르게 움직이면서 팔을 크게 휘두르고 있었다. 공격을 피하기 위해서는 양 손을 모두 써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참을 싸우면서 또 한명의 고수를 제거했다. 그러자 장수의 안색이 밝아졌다.
‘드디어 처치했구나.’
어느 정도 자유의지를 가진 마지막 자였던 것이다.
장수로서는 이제 정식으로 실력 발휘를 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지켜보던 대주로서는 이런 사실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아직까지는 수하들의 숫자가 많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장수는 대주에게 최대한 다가가기 위해 노력했다. 최대한 눈치 채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움직여야 했기에 일부러 고수들의 공격을 못 피하는 모습도 간혹 보여주었다.
너무 압도적인 상황이면 대주가 알아채고 도망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장수는 사정거리 안에 대주가 당도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자 천천히 자연스럽게 손안에 진기를 모았다. 장풍을 시전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장수는 장풍을 쓸 만한 실력에 도달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적응이 완벽히 되지 않아 사정거리에서 벗어나면 위력이 많이 약해지기에 거리를 쟀던 것이다.
장수는 정확한 순간을 쟀다. 한방에 대주를 죽일 기회였다.
대주는 고수들을 향해 명령을 내렸다. 그로서는 장수를 어떻게든 처치해야만 한다고 다짐한 듯 했다. 그래서인지 수하들에게 명령을 적극적으로 내리고 있었다.
장수는 모았던 기운을 자연스럽게 뿜어냈다. 그러자 무형의 기운이 뭉쳐 바람을 일으켰다.
그와 함께 장수의 손에서 거센 장풍이 펼쳐졌다.
장수의 손에서 장풍이 빠른 속도로 나아가자 대주는 눈을 크게 부릅떴다. 보여서는 안 될 것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 역시 한 번도 보지 못했지만 이야기로는 많이 들어 왔었다.
기운이 뭉쳐 만들어진 기술, 바람을 가르는 강력한 파괴력을 가진 장풍이었다.
“젠장 초절정 고수잖아!”
대주는 입으로는 하고 싶은 말을 다했지만 몸은 입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강대한 기운을 내포한 장풍에 맞자 피하지도 못하고 그대로 하늘을 향해 날아가 버린 것이다.
쾅! 펑!
대주는 추진력이 떨어지자 그대로 땅에 곤두박질쳐 그와 동시에 숨을 거두었다.
“드디어 잡았구나.”
대주를 잡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보통 대주정도 되는 자는 실력이 가장 뛰어난 자를 보내기 마련이었다.
만약 살려두었다가 최후를 생각하고 도망가라는 명령을 내리면 장수로서는 매우 귀찮은 일이 벌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장수는 몸속의 기운을 다시 두 주먹으로 보냈다. 이제는 마음껏 실력발휘를 할 시간이었다.
지금까지는 날카로운 검을 가진 자와 맨주먹만으로 싸운 것과도 같았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다르다. 이제부터는 권기를 마음껏 내뿜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장수가 주먹에 기운을 내뿜자 권기가 형성되어졌다. 장수는 권기를 형성하자마자 빠르게 주변의 고수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와는 확연히 다른 움직임이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혈교의 고수들이 장수를 상대로 이길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보였지만 지금부터는 아예 그럴 만한 기색이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덤벼라!”
장수는 기운이 가득 찬 주먹으로 혈교의 고수들을 죽여 나갔다. 권기를 펼친 이상 승리는 확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도망가는 자들이 문제였지만 다행이도 아직까지는 한명도 도망가는 자가 없었다.
장수는 자연스럽게 태극권을 펼치고 있었다. 기가 서린 손으로 태극권을 펼치자 혈교의 고수들은 추풍낙엽처럼 떨어져 나갔다.
잠시 뒤 혈교 고수들의 숫자가 확 줄어들었다. 그쯤 되자 몇 명이 본능적으로 도망치려는 것이 보였다.
혈교의 고수는 세뇌로 인한 명령보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더 컸기 때문에 도망치려 한 것이다. 하지만 장수의 주먹은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펑!
강한 폭발음과 함께 도망을 치려던 혈교의 고수는 등을 드러낸 채 그대로 바닥으로 쓰러진 것이다.
그리고 잠시 시간이 지나자 모든 혈교의 고수들이 쓰러졌다.
장수는 크게 숨을 내쉬었다. 생각보다 전투가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끝났구나.”
사방에는 오십여 명의 시신이 땅에 누워 있었다. 장수가 손속에 사정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목숨을 건진 자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장수는 다시 일일이 사혈을 짚으며 죽음을 확인했다. 혹시라도 한명이라도 살아남는다면 곤란한 일이 벌어지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일을 마치자 장수는 시신들을 사당 안으로 옮기고 문을 닫았다.
“이제 되었구나.”
이곳은 외지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거의 오지 않는다. 그리고 만약 군대에서 수색을 하기 위해 사람을 보낸다고 해도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다. 그 전까지만 시신을 처리하면 된다.
혈교에서도 이곳에 사람을 보내지 않을 것이다. 괜히 사람을 보내다가는 들킬 염려가 있기 때문에 새로운 명령이나 보고가 당도하기 전에는 아무런 연락도 취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이들은 소모품이었다. 수많은 고수가 있는 혈교로서는 이들을 모두 잃는다고 해도 시간을 벌수 있다면 이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큰 관심을 두지 않을 것이다.
“이제 가보자.”
생각보다 일찍 처리했지만 더 이상 시간을 지체했다간 괜한 의심을 살 수 있었다. 그랬기에 서둘러 움직여야 했다.
장수는 어딘가로 급히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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