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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고수-197화 (197/398)

197편 - 공을 넘기다

혈마는 탁자를 주먹으로 강하게 내리쳤다.

쾅!

탁자에는 손자국이 정확하게 새겨졌다. 탁자를 부수지 않고 자국만 남기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혈마는 그것을 무의식중에 행하였는데 그것만으로도 그의 수준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었다.

“뭐라고? 이번에 방화를 위해 보낸 무사들이 모두 붙잡혔다고?”

혈마의 말에 군사는 고개를 숙였다.

“그렇습니다.”

“대체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이냐?”

혈교에서 무사들이란 소모품이나 다름없었다. 고수들과 일반 무사들의 숫자가 엄청나 큰 피해를 입지 않는 이상 어느 정도 손실은 신경도 쓰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포로로 잡힌 것은 큰 문제가 되었다.

혹시라도 혈교라는 것이 발각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교의 비밀이 누출될 염려도 많았다.

그랬기에 혈마는 포로라는 말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그, 그게…….”

“똑바로 말을 해라.”

혈마는 죽일듯한 눈빛으로 군사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군사의 목은 점점 더 자라목이 되었다.

“임무는 성공적이었습니다. 아니 대성공이라 할 수 있었지요. 이번 군대에 납품계약을 한 상가들 중 대부분이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아마 이번 일로 군대는 필요한 보급품을 제대로 보급 받지 못할 것입니다.”

군대는 보급이 매우 중요했다. 그리고 군에서 필요한 보급품은 그 양이나 수량이 매우 많았지만 그중 한 가지라도 부족하면 제대로 전쟁터에서 싸울 수 없었던 것이다.

물론 보급품이 없다고 하더라도 전쟁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위력이 현저히 약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계속해봐.”

혈마의 말에 군사는 말을 이었다.

“이번일은 한밤중에 일어났고 납품 전날이라 많은 상가들이 자신들의 납기량을 맞추려 정신이 없다보니 방심하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저희측이 보낸 고수들이 일을 잘해 불을 지르는 것도 신속히 시작되었었습니다. 더구나 경비를 맡던 무사들도 운 좋게 잡음 없이 제거할 수 있어서 방화를 사람들이 늦게 발견하는데 한몫 했지요. 덕분에 성공적으로 방화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지만 문제는 다른데서 벌어졌습니다. 후퇴하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이길영 장군이 나선 것이 문제였습니다.”

“이길영?”

이길영 장군에 대해서는 혈마도 알고 있었다. 이번 산적 토벌군의 사령관으로서 많은 전공을 쌓았던 것이다.

그리고 혈마로서는 이길영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화가 치솟게 만드는 자였다.

“그렇습니다. 이길영 장군은 금의위와 동창의 절정고수들을 이끌고 주변을 샅샅이 뒤졌다고 합니다. 그 덕분에 본교의 고수들을 모두 잡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절정고수라는 말에 혈마는 할 말을 잃었다. 일반 병사들이야 문제가 아니었지만 절정고수들이 나선다면 문제가 틀렸다.

동창과 금의위의 절정고수들은 추적술과 탐색술에 매우 뛰어났다. 더구나 무력 역시 절정고수였기에 마음만 먹는다면 쉽게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사실 이중에는 이상한 부분도 조금 있었지만 혈마로서는 그런 것을 발견하기 보다는 뒷감당을 하는 것이 더 문제였기에 이상한 부분을 눈치 채지 못했다.

“그래서? 한명도 남김없이 잡혔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절정고수 열 명이 나섰으니 오십 명의 고수들이라고 해도 쉽게 잡힐 수밖에 없었습니다. 더구나 군에서 따로 고수들을 붙여 주었기에 숫자도 비슷하니 탈출도 힘들었을 것입니다.”

상황이 매우 급박하게 되었다. 그랬기에 원래 피난처를 확인하는 일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정말 문제가 심각하구나.”

방화에 성공한 것은 잘된 일이었다. 그 덕분에 군대가 움직이지 못한다면 그들로서는 시간을 버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번 시간만큼 산적으로 위장한 혈교의 고수들을 움직여 더 많은 상단을 공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잡힌 녀석들이었다. 어서 하루라도 빨리 포로로 잡힌 자들을 제거하지 않는다면 문제는 심각했다.

“위급시 자진하는 세뇌는 하지 않았던가?”

혈마의 말에 군사는 고개를 저었다.

“아쉽게도 이번 일에 투입된 고수들은 자진하는 세뇌를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임무가 실패하면 자진을 하는 자들은 아무리 혈교라도 만들어 내기 힘들었다. 그랬기에 그 수가 항상 부족했고 그들은 별도로 전담하는 임무가 있었던 것이다.

혈마는 인상을 찡그렸다.

“그럼 살수를 보내라. 그래서 잡힌 자들을 제거해라.”

가장 중요한 것은 잡힌 자들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만에 하나라도 혈교가 한 일이라는 것이 발견되어선 안 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되면 겨우 만들어낸 마교 대 황실의 전쟁 분위기가 반대로 혈교 대 황실의 전쟁 분위기로 바뀔 수 있었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공주를 잡아 혈교와 황실이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 가능한 상황이 된다.

그런 기회를 실수로라도 날려버려서는 안되었던 것이다.

“알겠습니다. 철저히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실수는 용납하지 않겠다. 단 한명도 남김없이 죽이도록 해라. 그리고 살수도 임무에 성공시키면 자진시키도록 해라. 어차피 성공을 해도 동창과 금의위가 추적을 하면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살수를 보냈다가 오히려 꼬리가 잡힐 수도 있었다. 그랬기에 그런 명령을 내린 것이다.

“알겠습니다. 바로 시행하도록 하겠습니다.”

* * *

감옥에는 오십여 명의 죄수들이 있었다. 그리고 밖에는 그들을 지키는 병사들이 있었다.

그런데 오십 명의 죄수들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들이 지은 죄가 너무 거창했기 때문이었다.

“억울합니다. 저희들은 그럴 의도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계속해서 나무로 된 창살을 붙잡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들로서는 매우 절박한 상황이었다. 잘못하면 역적으로서 가족들도 피해를 받게 될 위기에 처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한 죄가 큰 죄이기는 했다. 석가장에 불을 질러 납품을 방해하려고 했으니 나름 큰 죄였던 것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사건이 너무 커졌다. 그들은 한 적도 없는 수십 개의 상가에 불을 지르고 수많은 경비무사들을 죽인 죄를 덮어 쓴 것이었다. 이 정도라면 대역죄인감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너무나도 억울했다. 상황이 이렇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억울한 자는 따로 있었다. 바로 양강 상가의 부총관이었다. 그는 다른 건물에서 따로 취조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저는 정말로 억울합니다.”

“뭐가 억울해? 그럼 대체 그 자리에 왜 있었던 건가?”

부총관은 정말로 억울했다. 양강 상가 역시 이번 일로 큰 피해를 입었던 것이다.

더구나 무사들마저도 모두 석가장을 치러 갔었기 때문에 불길을 막을 손도 없어서 피해가 더욱 커졌었다. 보통은 이정도 피해를 봤다면 으레 용의선상에서 빼주지만 이번경우는 달랐다.

마교와 연관이 되었다고 의심받은 것이었다.

만약 마교가 연관이 되었다면 양강 상가 측에서 피해를 입었다고 해도 그 정도는 배상해줄 정도의 힘이 있었다.

그랬기에 양강 상가가 입은 피해도 그들이 고의로 만든 것이라는 의심을 받은 것이다.

더구나 정황상 양강 상가가 주도해서 벌인 일임이 분명해 보였다. 잡힌 자들이 대부분 양강 상가와 관련된 무사들이였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양강 상가뿐만이 아니라 그에 협조한 문파가 여럿 걸려들었다. 그랬기에 관련된 상가들 역시 소환된 상태였다.

이제 양강 상가를 비롯한 이번 일에 연관된 상가들은 재기가 영영 불가능해 진 것이다.

“정말 억울합니다!”

부총관은 억울하다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말을 해 보라고 그 자리에 왜 있었어?”

그 시간에 복면인들이 있었던 곳에서 부총관이 있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더구나 끌려온 흔적도 없는 것을 보면 자신의 의지로 간 것이 분명했다. 더구나 복면인들이 고용한 무사였기 때문에 증거는 차고 넘칠 정도라 할 수 있었다.

취조관의 말에 부총관은 할 말이 없었다. 그로서는 방화를 한 것은 맞았지만 석가장 한곳에다만 하려고 했지 그렇게 큰 규모의 방화는 상상조차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증명할 방법이 없었다. 그로서는 죽어서라도 해명을 할 수 있다면 했을 것이다. 하지만 죽는다 해도 해명을 할 수 있는 기회는 오지 않았다.

부총관은 절망했다. 자신 때문에 유서 깊은 양강 상가가 망하게 생긴 것이다.

애초부터 상가끼리 금력으로 승부를 벌이지 않고 무력으로 승부를 하겠다는 생각부터가 큰 잘못이었다.

만약 정정당당하게 금력으로 승부를 했다면 상황이 이렇게 까지 최악으로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견제가 불가능한 것도 사실이었기에 택한 방법이었는데 바로 그게 잘못된 것이었다.

더구나 짧은 시간이었지만 조사가 들어가자 방화를 했다는 증거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었다.

원래 석가장을 방화할 생각이었기에 했던 일들이 증거로 제출되었던 것이다.

천하에서 가장 뛰어난 조사능력을 가진 동창과 금의위였다. 그런 그들이 참여한 이상 드러나지 않을 것은 없었던 것이다.

부총관의 눈은 붉게 충혈 돼 있었다. 그리고 그의 눈에는 끝없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더 이상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정말 억울합니다.”

부총관은 그 말만 되풀이할 수밖에 없었다.

* * *

같은 시간 야행복을 입은 복면인 세 명이 감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혈교에서 파견된 살수들이었다.

그들 중 조장이 입을 열었다.

“목표는 숙지했는가?”

“그렇습니다.”

이미 포로들이 어디에 수감되었는지는 파악이 끝난 상태였다. 그리고 감옥 구조 역시 입수했던 것이다. 문제는 그들을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이는 것이었는데 구하는 것이라면 힘들었지만 죽이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목표는 마흔일곱 명이다. 그들을 한명도 남김없이 처리하도록.”

“알겠습니다.”

이번에 잡힌 자들은 모두 마흔일곱 명이었다.

원래 혈교에서 파견한 고수들이 숫자가 오십 명이었다. 그러나 세 명이 포로로 잡혀가는 중에 죽었다고 판단되었기에 제외시킨 것이었다.

“혈단을 꺼내라.”

조장의 말에 살수들은 품에서 옥으로 만든 상자를 꺼냈다. 그리고 상자를 열자 핏빛이 흐르는 환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혈단은 환단과 비슷한 형태로써 몸속에 흐르는 선천지기를 증폭시켜주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 덕분에 복용을 한 자는 한 시진 동안 자신의 능력보다 더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지만 시간이 흐르고 약 효과가 떨어지면 선천지기가 바닥이 나버리게 되는 효용을 지닌 환단이었다.

이 환단을 복용하고 혈교의 심법 중 내력을 증폭시켜주는 심법을 운기하면 단시간동안 무서운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높아지는 것은 내공뿐이었고 깨달음은 그대로였기에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하지만 그 정도만 해도 대적할 자가 없다 할 수 있었다.

그들은 잠시 혈단을 바라보다 입에 넣고 씹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앉아 운기조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혈단을 먹는다고 해서 바로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혈단이 워낙 독하기에 따로 안전하게 단전으로 인도하기 위해서는 정해진 심법이 있었던 것이다.

잠시 뒤 그들은 운기조식을 끝내고 일어섰다. 그러자 그들의 눈이 붉은 색으로 변한 것이 보였다.

앞으로 한 시진 동안은 절정고수라도 능히 암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된 것이다.

물론 때와 장소가 맞아 떨어져야 가능한 일이었지만 막강한 능력을 발휘하는 절정고수를 암살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환단을 먹고 향상된 그들의 능력을 가늠할 수 있었다.

그들은 조용히 어둠에 묻혔다. 은신술을 발휘한 것이다. 그리고 감옥으로 스며들었다.

그들은 어렵지 않게 포로로 잡힌 자들이 있는 곳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살수였기 때문에 인기척 없이 이곳까지 잠입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그들은 감옥에 있는 죄수들을 확인했다.

‘이자들이 맞겠지.’

혈교에서는 목표가 된 자들에 대해 대략적인 생김새만 말해주었지 정확한 것은 말해주지 않았다.

소모품으로 분류된 고수들에 대한 자세한 인적사항이 있을 리 만무했던 것이다. 그랬기에 대부분 대략적인 내용만 적혀 있었고 혈교의 고수인지 정확하게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혈교의 고수들 외에 따로 방화를 할 세력이 없었고 숫자도 얼추 비슷했기에 이들이 혈교의 고수가 분명해 보였다.

그리고 잡힌 상황에서 혈교의 고수인지 아닌지를 확인할 방법도 없었기에 이들이 맞는 듯하자 곧바로 행동을 개시했다.

살수들이 감옥 앞에 나타나자 죄수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들이 감옥 문을 열 때까지도 지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첫 죄수가 단칼에 목이 떨어지자 죄수들은 공포에 질렸다. 그들로서는 이렇게 잔인한 장면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살수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죄수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 감방의 죄인들을 모두 처리하고 다른 방의 죄인들도 증거인멸을 위해 모두 죽였다.

그렇게 한참을 죽여대기만 한 살수들은 더 이상 죽일 자가 없자 멈추어 섰다.

그리고 자신들의 소지하고 있던 단검을 목에 밀어 넣었다. 그리고 그대로 절명했다.

* * *

다음날 감옥이 발칵 뒤집혔다. 감옥에 갇힌 죄인들을 비롯해 감시를 맡은 병사들이 모두 죽임을 당했기 때문이었다.

이로서 분명해 졌다. 양강 상가가 마교의 지원을 받은 상가라는 것을.

만약 마교와 관련되지 않았다면 살수를 동원해서 양강 상가의 무사들을 죽이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병사들은 양강 상가와 관련이 있는 다른 상가들을 무조건 잡아 들였다.

증인이 없어졌지만 오히려 용의자들의 죄가 더욱 명확해 진 것이었다. 이제 석가장에 불만을 품고 방해공작을 한 상가들은 이번 일을 계기로 모두 폐망의 길을 걷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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