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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고수-198화 (198/398)

198편 - 납품일

장수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로서는 지금 상황이 못내 안타까웠던 것이다.

하루에도 수십 명의 사람들이 감옥으로 끌려갔다. 그리고 황실에서 불려온 고문기술자의 손을 벗어나기 위해 급조한 정보라도 토해내었던 것이다.

상황이 정말 미묘했다. 실제 그들은 석가장을 방해하려고 공작을 펼치긴 했었다.

하지만 그런 정보들이 지나치게 확대, 양산되어 다른 상가들 전체를 암묵적으로 방해한 것으로 바뀌었던 것이다.

거기다 방화를 위해 협력한 사실이 드러났기에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갔다. 그랬기에 하루에도 몇 개의 유수한 역사를 가진 상가들이 망해가고 있었다.

장수는 자신의 가문을 지키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현 상황을 이용했다.

다른 상가들이 방해공작을 펼친 것은 정말 잘못된 행동이었다. 하지만 방해공작을 펼쳤다고 해서 그들이 이렇게 까지 벌을 받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과연 뭐가 옳은 것일까?’

만약 혈교가 아니었다면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아무리 방해를 한다고 해도 장수의 능력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혈교가 연루되어 있었기에 까닥 잘못하다간 자신이 군대를 도왔다는 사실이 발각되고 초절정고수라는 것이 알려지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석가장이 공격당할 위험이 생기게 되는 것이었다.

자신이 아는 혈교는 무자비했다. 그들에게 걸리면 아무리 강력한 문파라 해도 상대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실제로 구파일방의 하나이며 소림과 더불어 무림의 양대 산맥인 무당파 역시 큰 위기에 빠지지 않았던가?

대문파인 무당파를 멸문시킬 계획을 짤 정도로 혈교의 행사는 대단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상황을 회피할 생각은 없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다 보니 그들을 이용한 것뿐이었다.

이길영 장군에게 선처를 부탁해서 가문을 보전하게는 해 달라고 부탁하기도 한 상태였다.

그리고 석가장의 힘을 이용해서 이번에 반란 혐의의 누명을 쓴 상가도 도울 생각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큰 도움은 안 되겠지만 장수로서는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구제를 위해 최선을 다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당연하게도 납품 날짜는 며칠 미뤄지게 되었다. 지금 상황에서 납품을 제대로 확인할 수 없었던 것이다.

워낙 많은 상가들이 피해를 입었고 납품물량이 날아간 것은 차치하고 상가 자체가 무너진 경우도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양강 상가를 비롯한 이번 방화의 핵심 용의자로 지목된 상가들을 방문해 피해보상을 요구했다.

하지만 양강 상가를 비롯한 다른 상가들 역시 이미 무너진 지 오래라 남은 것이 없는 그들에게 받아낼 것도 없는 것은 당연했다.

미뤄진 날짜 안에 납품 물량을 확보하지 못한 상가가 태반이었다. 그 때문에 납품기일을 맞춘 것은 장수가 있는 석가장과 다른 몇 개의 상가가 전부였다.

* * *

이길영 장군은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 역시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했던 것보다도 납품양이 너무 부족했기에 무척 곤혹스러웠던 것이다.

“이게 다인가?”

이길영 장군의 말에 납품 때문에 나온 상가의 대표자들이 고개를 푹 숙였다.

장군은 군대의 사령관이면서 높은 계급을 가진 관리였기에 당연히 상가의 대표자들에게 하대를 한 것이다.

“장군님 제발 기간을 더 주십시오. 이번에 방화 때문에 납품할 물량이 모두 불태워 졌습니다.”

일부러 납품날짜에 맞추기 위해 각 상가에서는 창고에 물건을 보관했던 것이다. 그런 것이 몽땅 타버린 것이다.

그나마 방화를 당하지 않은 창고에 분산해서 저장한자들의 피해는 적었지만 그들 역시 납품물량을 못 채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대표자의 말에 이길영은 냉정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럼 날짜를 더 주면 납품물량을 채울 수 있겠는가?”

원래라면 어림도 없는 말이었다. 일반매매도 아니었고 황실과 맺은 계약이었다. 그런 계약은 무조건적으로 지켜져야 했다.

만약 실패한다면 다시는 황실과 계약을 맺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번 일은 마교와 연관되어 있었기에 날짜를 늦춰줄 용의도 있었던 것이다.

“무, 물론입니다.”

“그래. 얼마의 시간이면 되겠는가?”

“바, 반년…… 아, 아니 5개월 정도면 됩니다.”

5개월이라는 시간도 매우 짧은 시간이었다. 상당한 무리를 해서라도 물건을 맞춰 오겠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군 측의 입장에선 5개월이라는 시간은 너무나도 긴 날짜였다. 그 정도 기간이라면 기다린다 만다의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럴 수는 없네.”

이길영 장군은 냉정하게 말했다.

그 역시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이번일은 마교 때문에 벌어진 일이기에 그 역시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하지만 군대는 당장이라도 움직여야만 했다.

금의위와 동창의 고수들은 약속된 날짜가 지나면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수도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그동안 어떻게든 공적을 쌓지 못하면 무능력자로 낙인찍힐 게 뻔했기에 마음이 급했다.

이길영 장군의 말에 대표자는 눈물을 흘렸다.

“자, 장군님……. 제발…….”

대표자의 말에 이길영 장군은 가슴이 아팠다. 자신 앞에 있는 상가의 대표자뿐만 아니라 다른 상가의 대표자들도 납품 건으로 여러 번 얼굴을 봤던 자들이었다.

그런 자들의 부탁을 뿌리치기에는 양심이 찔렸던 것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금 남 신경 쓸데가 아니라 자신을 먼저 걱정해야 했던 것이다.

당장 토벌군의 보급을 맞추지 못한다면 모든 책임을 자신이 져야만 했다.

대표자들은 이길영 장군에게 빌고 또 빌었다. 하지만 모두 부질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흐르자 이길영 장군은 결국 완전히 돌아서고 말았다.

“미안하지만 이번 계약에서 납품량을 못 채운 상가는 이번 거래에서 빠져주어야겠네. 우리 입장에서는 다른 상가를 찾아서라도 기일을 맞춰야만 하는 것을 이해해 주게.”

상가 대표자들은 망연자실했다. 어떻게든 재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가장 큰 거래처가 틀어진 것이다.

“그리고 납품물량을 채운 상가의 대표자들은 나를 따라오도록 하게.”

납품물량을 채운 상가들은 몇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중의 한명이 장수였다.

장수는 납품 물량을 채우고도 상당히 많은 수의 여유 물량까지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건 직후에 주어진 며칠의 시간 여유 덕에 예상했던 것보다 많은 양의 보급품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안타깝구나.’

장수는 진심으로 다른 상가의 대표자들이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방화로 저들은 큰 손해를 보았고 재기조차 힘든 상황이었던 것이다.

지금 상황에서는 저들을 도와줄 뾰족한 방법도 없는 상태였다. 상황이 좀 더 나아진 나중이라면 모를까.

장수와 다른 상가의 대표자들은 이길영 장군이 들어간 막사 안으로 들어갔다.

납품기한을 맞추지 못한 상가의 대표자들은 그런 그들을 보며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막사 안에는 이길영 장군이 뒤에 앉아 있었고 그 앞에는 실무자들이 앉아 있었다.

납품 물건에 대한 인수인계와 물건이 계약 조건에 맞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대표자들은 실무자들 앞에 앉았다. 그리고 각자 서류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때 이길영 장군이 입을 열었다.

“한 가지 공지사항이 더 있네. 이번 납품에 물건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해 추가로 물건을 사입할 예정이라네. 그러니 납품물건을 더 제작해줄 수 있는 곳은 추가 계약을 해주었으면 하네.”

이길영 장군의 말에 대표자들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이번 거래만 제대로 하면 군부에 추가적인 거래처를 만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장군님.”

그들은 돌아가서 어떻게든 물건을 만들어 내려고 할 작정이었다.

이번 방화는 많은 사람들에게 손해를 입혔지만 이익을 본 사람도 있었다.

바로 이 자리에 있는 자들은 큰 이익을 본 자들이었다.

계약이 끝나자 대표자들은 하나둘씩 자리를 떠났다.

하지만 장수의 계약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이중에서 가장 물량이 많았기에 추가적으로 작성해야 하는 서류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서류 작성이 끝나자 장수는 한숨을 쉬며 일어났다.

“드디어 끝났구나.”

“수고하셨습니다.”

“아닙니다. 저야 한 게 뭐가 있겠습니까? 오히려 참모님께서 더 고생을 하셨지요.”

장수는 인사를 하고 일어서려고 했다. 그러자 이길영 장군이 장수를 불러 세웠다.

“무사님 끝나셨습니까?”

“그렇습니다.”

“드릴 말씀이 있어서 그러는데 잠시 시간을 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저도 한번 장군님과 얘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였는데 마침 잘되었습니다.”

장수의 말에 이길영 장군이 안색이 환하게 밝아졌다. 그는 방금 전만 해도 위엄이 넘치는 장군의 모습이었는데 상가에서 온 대표자들이 모두 떠나자 태도가 싹 바뀌었다.

장수를 그만큼 존중했기에 그런 것이리라.

장수는 이길영 장군을 따라갔다. 그러자 장군은 자신의 집무실로 그를 안내했다.

“무사님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이길영 장군의 말에 장수는 미소를 지었다.

“덕분에 잘 지냈습니다. 해야 할 업무가 많아서 다소 고생을 하긴 했습니다만.”

장수는 해야 하는 일이 엄청날 정도로 많았다.

다친 단주를 대신해 석가장의 업무를 모두 처리해야 했고, 공단과 미처 짓지 못한 건물을 마저 지어야 했으며 무사들을 새롭게 고용해야 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바로 사당에 모아둔 혈교의 고수들의 시신을 처리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시간은 넉넉했다. 하지만 혹시라도 발각된다면 문제가 생길수가 있었다. 분명 방화를 한 복면인은 모두 잡아들였는데 또 다른 복면인이 발견되는 꼴이니 말이다.

물론 수색은 더 이상 이루어 지지 않았고 큰 일이 벌어졌기에 도시 외곽에 위치한 사람이 인적이 드문 사당까지 찾아가는 사람도 드물겠지만 만약이란 것은 항상 존재하는 것이었다.

그랬기에 장수는 시간이 날 때마다 찾아가 조금씩 시신을 처리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처리라고 해봐야 땅에 묻는 것이 전부였는데 오십여 명에 이르는 숫자였기에 묻는 데에도 꽤 많은 수고가 들어갔다.

더구나 워낙 바쁜 장수였기에 매번 따로 시간을 내는 것도 매우 힘든 일이었다.

그렇게 시신은 처리했지만 아직도 남은 흔적은 제거하지 못했다. 나중에 따로 흔적을 없애러 또 가야만 할 듯 했다.

“그러셨습니까?”

이길영 장군은 장수의 안색을 살폈다. 하지만 장수의 얼굴은 건강해보였고 충분히 휴식을 취한 것처럼 보였다.

그것은 장수가 초절정 고수였고 몸속에는 전진심법과 선천지기의 기운이 잠시도 쉬지 않고 움직였기에 항상 최선의 상태를 유지하는 덕분이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한시도 쉬지 않고 일을 하는 장수는 피곤에 절어 정상적인 모습이 아니었을 것이다.

“예. 장군님께서는 잘 지내셨습니까?”

장수의 말에 이길영 장군은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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