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편 - 유운의 쌀
공단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해야 할일이 산재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직 건물도 모두 짓지 못한 상태였고 무엇보다 일차 납품은 끝냈지만 이어서 2차 납품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랬기에 사람들은 저마다 정신없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공단 내부에는 많은 사람들이 작업을 하고 있었다. 도사들과 무사들, 그리고 과거 석가장을 습격한 불량배였던 자들이었는데, 모두 쉬지 않고 일했던 것이다. 장수는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을 보자 미소가 나왔다.
‘정말 다들 열심히 일해 주는구나.’
첫 납품을 무사히 마쳤기에 상가의 사람들은 사기가 높았다. 모두 마치 축제라도 연 것처럼 밝게 행동했다.
그것은 불량배였던 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원래는 일을 하지 않던 자들이었지만 힘을 잃고 이곳에서 잡부로 생활하자 성격이 많이 바뀌었던 것이다.
더구나 도사들에게 좋은 말을 많이 들어서인지 어떤 불량배는 도사가 되겠다는 목표를 정한 자들도 있었다.
장수는 그런 그들을 보며 잠시 미소를 지었다.
‘이제 다들 어느 정도 자리가 잡혔어.’
사업은 성공적이라 할 수 있었다. 사실 최근에는 사업을 방해하는 자들도 찾아보기가 매우 힘들었다.
그들은 정면에서는 친한 척 했지만 안 보이는 곳에서는 손가락질 하고 위해를 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에 겉으로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번 양강 상가의 일도 마찬가지였다. 장수는 그들이 석가장에 저지른 행동을 보고서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그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고 생각한 양강 상가가 석가장을 방해하던 세력들을 선동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양강 상가를 협조하던 다른 상가들 역시 그런 기미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그랬기에 설마 방해를 해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모두 다 지난 일이였다. 이미 그들 상가는 더 이상 상가가 아니었다. 이번 방화 사건으로 신뢰도 하락과 함께 손해를 본 의뢰인들에게 피해보상을 하느라 상가 재정이 거덜 났기 때문이다.
그들로서는 앞으로 방해를 하려야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 때문인지 매장으로 찾아와서 진상을 부리는 자들도 사라졌고 이제는 건물을 완공하는데 필요한 목수들도 필요이상으로 와서 열심히 일해 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공단의 가장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대장간 역시 자리를 확실히 잡았다. 이제 남은 기간까지 충분히 제품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장수는 여유가 생기자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이 생각났다. 바로 그의 스승인 유운의 당부였다.
장수는 천천히 품속에서 쌀을 어루만졌다. 그의 스승이 그에게 직접 건네준 쌀이었다. 유운은 이 쌀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길 바랐다.
그러나 이 쌀은 그 양이 너무 적어 빈민 한 사람이 겨우 한 끼 정도 먹을 양이었다. 하지만 장수는 이렇게 귀한 쌀을 한 사람에게만 먹이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존경하는 스승이 준 것이니 좀 더 의미 있게 나누고 싶었던 것이다.
장수는 천천히 대장간으로 향했다. 그러자 쇠를 두들기는 소리가 강하게 났다.
쾅쾅쾅쾅쾅!
장인들은 잠시도 쉬지 않고 쇠를 두들겼다. 2차 물량을 채우려면 쉬지 않고 작업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장수는 그런 장인 중 한명에게 다가갔다.
“어르신.”
“무슨 일이냐?”
장인들의 우두머리라 할 수 있는 자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했다.
“작업을 하시는데 죄송하지만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무슨 부탁이냐?”
매우 거칠고 투박한 말이었다. 하지만 철을 만지며 사는 그였기에 그런 태도가 당연해 보였다.
“꼭 해주셨으면 하는 작업입니다.”
“작업이라고? 하긴 이번 납품날짜를 맞추었으니 어느 정도 여유는 있다. 그러니 일단 말이나 해봐.”
“큰 솥을 만들었으면 합니다.”
“솥? 솥이라고?”
“그렇습니다.”
장수는 손으로 크게 원을 그렸다.
“이정도 크기는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무엇에 쓸려고 그러느냐?”
“죽을 쑤려고 합니다.”
“그래? 그 정도 크기라면 많은 사람들이 음식을 해 먹을 수 있겠군. 그럼 밑에는 불이 닿을 테니 조금 두껍게 하고 좀 외형적으로는 납작하게 만들어야겠구먼. 높이가 너무 높으면 열이 전달이 잘 안되거든.”
“예. 감사합니다. 알아서 잘 만들어 주십시오.”
“알겠다. 그럼 한개만 만들면 되겠느냐?”
“아닙니다. 열개가 필요합니다.”
장수의 말에 장인은 잠시 머리를 긁적이며 생각을 하는듯했다.
“네 녀석이 이곳의 책임자니 시키는 대로 해야겠지.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쓸데없는 짓이 아니길 빌겠다.”
“예, 무척 중요한 일에 쓰일 것입니다.”
장수의 말에 장인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잠시 생각을 하는 듯 했다.
“그리고 하나 더 말씀드릴게 있습니다.”
“무엇이냐? 작업이라면 힘들다. 지금 만들라고 한 작업만 해도 상당한 시일과 철을 소비할 것이다. 그러니 다른 것은 나중에 말하거라.”
“그게 아니고 몸에 관련된 것입니다.”
“몸이라고? 그게 무엇이냐? 설마 안마를 말하는 것이냐? 마침 몸이 뻐근한데 잘되었구나. 전에 하던 안마나 다시 해다오.”
무뚝뚝한 장인이 저리 말할 정도라면 어지간히 기분이 좋았던 모양이었다. 장인의 말에 장수는 손을 저었다.
“그게 아니고 제가 해드린 것을 항상 느낄 수 있는 심법을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심법이라고?”
장인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무림인도 아니고 심법을 익힐 필요는 전혀 없었던 것이다. 더구나 업무가 많았기에 심법을 익힐 시간도 없었다.
“심법은 매우 쉽습니다. 그리고 제가 안마를 해드린 기분만 느끼시면 익히는데 어렵지는 않으실 겁니다.”
“그래? 그것도 소장주의 명령이라면 들어주어야지.”
장인은 말은 그렇게 했지만 큰 호기심을 느꼈다. 평상시에도 장수가 해준 시원한 안마를 받은 듯한 기분을 느낀다면 일이 배는 잘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알겠습니다.”
장수는 말과 함께 장인의 몸에 손을 대었다. 그리고 말을 했다.
“제가 알려드릴 심법은 전진심법이라는 것입니다.”
전진심법이지만 온전한 전진심법이 아니었다. 무당파에서 도교에 퍼트린 약식 전진심법이었던 것이다. 비록 약식이었지만 그 안에는 심법으로서의 기능은 고스란히 남아있었기에 장인이 익힌다면 큰 도움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전진심법이라고? 이상한 이름이군. 무슨 심법인지는 모르겠지만 빨리 알려다오. 해야 할일이 많아서 시간을 많이 빼앗길 수 없다.”
“알겠습니다.”
장수는 천천히 약식 전진심법의 구결을 일러주기 시작했다. 그러자 장인이 말을 했다.
“어렵군. 천천히 말해라.”
“알겠습니다.”
장수는 천천히 전진심법의 구결을 말했다. 그렇게 여러 번 말을 하자 장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정도 외워졌다. 하지만 몇 번 더 들어야 할 것 같으니 다음에 다시 하자.”
“알겠습니다.”
처음부터 다 외울 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나이가 많은 장인이 외우기에는 많은 내용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반복한다면 언젠가는 외울 수 있을 것이다.
장수는 천천히 장인의 몸에 공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리고 몸속의 길을 통해 기를 운용했다. 그러자 장수의 심후한 기운이 장인의 몸속의 혈도를 타고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운기가 끝나자 장인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 이게 무엇이냐?”
처음 운기라는 것을 했기에 장인이 느끼는 감정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운기라는 것은 매우 재미있는 놀이 같은 것이었다. 그랬기에 장인은 한 번 더 운기라는 것을 해보고 싶었다.
“제가 다시 한 번 해드리겠습니다.”
장수는 천천히 장인의 몸에 기운을 불어 넣었다. 그러자 다시 혈도를 타고 한 바퀴 돌았고 운기가 끝이 났다.
장인은 눈을 감고 운기를 하던 여운을 느꼈다. 매우 신기한 느낌이 들었고 상쾌한 기분이었다. 장인은 오늘 겪은 경험을 평생 잊지 못할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