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편 - 유운의 쌀
“어떻습니까?”
“정말 신기하구나. 꼭 배워보고 싶군.”
장인은 장수에게 웃으며 말을 했다.
장수가 전진심법을 장인에게 가르쳐 준 것은 그의 몸속에 자신이 내공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납기일을 맞추기 위해 내공을 불어 넣어 주었었고 그대로 두면 사라질 테니 기왕에 전진심법까지 알려준 것이다.
어차피 약식 전진심법은 무당파에서 이미 공개를 했기 때문에 누구나 익힐 수 있었다. 그랬기에 장인이 익혀도 되었던 것이다.
전진심법은 천하에서 가장 안전한 심법으로 부작용도 없었기에 장인이 익혀도 안전했다. 그래서 전수해준 것이다.
이제 매일 쉬지 않고 운기를 하다보면 장수가 전해준 기운을 흡수할 것이고 그럼 평생 무병장수하며 살 것이다. 어쩌면 장인은 심법이 생긴 이유에 가장 걸맞는 삶을 살게 될지도 몰랐다.
장인이 행동을 바라보던 장인들이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장수에게 말을 했다.
“소장주님 저희들에게도 알려주십시오.”
“소장주 우리에게도 알려주게.”
장인들의 말에 장수는 미소 지었다.
“차례대로 알려드릴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장수는 천천히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전진심법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 * *
이틀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장수는 밀려드는 업무를 감당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어느 정도 나은 듯한 단주가 업무를 돕고 있었다.
“소장주님 은자가 맞지 않습니다.”
“그렇습니까?”
장수는 단주가 지적해주는 부분을 확인한 후 고치기 시작했다. 서류 대부분이 복잡한 금전관계가 적혀 있기에 간혹 실수가 있었다. 그럴 때면 서둘러 고쳐둬야 했다.
그렇게 일을 하던 중, 단주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소장주님 실력이 많이 상승하셨습니다.”
단주의 말에 장수는 미소를 지었다.
“모두 단주님 덕분입니다. 단주님에게 잘 배운 덕에 실력이 는 것입니다.”
“처음 하실 때는 숫자 계산도 제대로 못하셨는데 지금은 어려운 서류도 척척 해결해내시는 것을 보니 천상 상인이 맞으신 듯싶습니다.”
단주의 말에 장수는 미소가 지었다. 평생 사람들을 죽여온 살인자가 천상 상인이라니 웃음이 나왔던 것이다. 하지만 그 웃음은 자조 섞인 웃음이었다.
전생에서는 잘 몰랐지만 지금 와서 보니 손에 피를 묻히고 사는 것은 그리 행복한 삶이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상인 일이 재미있지요? 무인이 삶이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상인의 길이 훨씬 재미있을 겁니다. 상인은 이러게 매일 재미있는 일만 하고 위험한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더구나 원하기만 하면 맛있는 것도 사먹을 수도 있으니 이 얼마나 좋은 직업입니까?”
사먹는다는 말에 장수는 무심코 단주의 튀어나온 배를 봤다. 그러자 단주는 급히 자신의 배를 감싸더니 가렸다.
단주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장수가 혹시라도 무인의 길을 가겠다고 할까봐 불안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생각나는 대로 상인의 장점을 마구 나열하고 있었던 것이다.
장수는 웃으며 말을 했다.
“저 역시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안정적이고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은 몇 안 되지요.”
“그렇습니다. 그래서 무인들이란 허름한 옷에 소면이나 먹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들은 아마 밥도 제대로 못 먹을 겁입니다. 그렇다고 또 손에서는 몸에 좋지도 않은 술이 떨어지는 것을 본적이 없군요.”
단주가 말하는 것은 하위 무사들이나 낭인들이였다.
그들은 은자가 부족했기에 항상 궁핍하게 살았다. 그들보다 고수들은 은자에 비교적 여유가 있었고 장수도 은자가 부족했던 적이 없었다.
하지만 전생에서의 삶은 그리 좋은 게 아니었다. 은자는 넉넉했지만 항상 쫓기고 도망 다녔으며 편안한 잠자리에서 여유롭게 음식을 먹는 날보다 피곤에 쩐 상태에서 며칠씩 굶주린 채 목숨의 위협을 받으며 사는 날이 더 많았던 것이다.
그랬기에 단주의 말에 대놓고 반박을 할 수 없었다.
단주는 장수가 대답을 하지 않아도 말을 이어서 했다.
“그러니 소장주님은 이름난 상인이 되십시오. 그래서 석가장을 크게 키워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염려 붙들어 매십시오.”
장수의 말에 단주는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단주님 몸은 괜찮으십니까?”
장수의 말에 단주는 이를 드러내고 미소를 지었다.
“몸이야 아직 아프지만 누워만 있으려니 갑갑해서요. 그리고 병상에 있어봐야 처리해야 하는 업무는 똑같습니다. 그래서 되도록 몸을 움직일 수 있는 날은 나와서 업무를 보려고 했습니다.”
장수는 슬쩍 단주를 바라보았다. 아직도 몸이 불편해 보였다. 누가 했는지 지금도 알아내지 못했지만 아마 원수는 갚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심하십시오. 혹시라도 상처가 벌어지면 큰일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는 그 누구보다도 제몸 관리는 철저하게 하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그런데 한번 광산에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상황에서는 아무래도 철광석이 부족할거 같습니다.”
장수역시 생각했던 일이었다. 급한 볼일만 끝나면 하루라도 빨리 광산에 가서 철광석을 가져 와야 했다.
이제 사실 위험한 일은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혈교는 이번 방화로 군에 납품하는 상가들에 큰 피해를 주었으니 당분간은 잠잠할 것이다.
그리고 혈교에서 파견한 고수들도 모두 죽였기에 방해자는 없다고 볼 수 있었다. 장수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은 이상, 작은 상가인 석가장 때문에 혈교에서 직접 무사들을 보낼 염려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방해를 하던 상가들도 정리가 되었다. 생각보다 큰 규모로 정리가 되어 나중에 여유가 되는대로 몇 곳은 도와줘야 할 정도로 가세가 기운 것이 안타까울 정도였다.
여하튼 지금이 광산으로 상행을 떠나기 가장 좋은 시기였다.
“저도 그리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예. 여유가 생기는 대로 갔다 오십시오. 제가 이번 상행을 갈 채비와 사람을 준비해두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장수 혼자라도 몇 개 산채가 연합해 공격한다 해도 충분히 막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주변의 이목을 끌 염려가 있었다.
게다가 이렇게 산적이 많은 상황에서 표사들도 없이 상행을 떠난다는 것은 문제가 있는 말이었다.
최소한 구색은 맞추어야 움직이기 편했다. 다른 사람들은 보통 안전을 위해 표사들을 고용하지만 장수는 주위의 이목을 끌지 않기 위해서 표사를 고용하게 생긴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상행을 가기 전까지 빨리 업무를 처리해둬야 할 것 같습니다. 업무가 쌓였네요.”
업무는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석가장은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었고 또 모든 상황은 서류로 낱낱이 보고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 빨리 처리해야죠.”
그렇게 한참을 서류를 붙잡고 씨름하고 있을 때 사환이 장수에게 다가왔다.
“소장주님 주문하신 게 완성되었다고 합니다.”
사환의 말에 단주가 물었다.
“무슨 주문을 말하는 건가?”
“소장주님이 주문하신 솥을 말하는 것입니다.”
“솥이라고?”
“그렇습니다.”
사환의 말에 장수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드디어 스승의 명령을 이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정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장수는 하던 일을 끝내고 일어섰다. 어차피 서류를 끝내려면 며칠은 더 고생해야 했다. 그러니 지금 당장 죽을 쑤는 일부터 처리하려 했던 것이다.
더구나 미룬다면 잘못했다간 생각했던 일을 하지도 못하고 상행을 가야 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었던 것이다.
장수가 사환을 따라 밖으로 나가자 단주 역시 호기심에 밖으로 따라 나왔다.
밖으로 나가자 열개의 거대한 솥이 모습을 드러냈다. 예술품 정도의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단기간에 만든 것이라 조잡했다. 하지만 장수는 솥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이정도 크기라면 충분히 많은 양의 죽을 쑬 수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