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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고수-202화 (202/398)

202편 - 유운의 쌀

상가의 식구들도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장수를 바라보았다. 보기에도 거대한 솥을 무슨 목적으로 만들었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그때 단주가 장수의 옆으로 다가왔다.

단주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솥을 바라보았다. 이런 솥은 사실 가치가 거의 없어 보였다. 크기가 비정상적으로 컸고 모양이 투박했기에 보존할 가치도 없었던 것이다.

“이것은 무엇입니까?”

단주의 말에 장수는 미소를 지었다.

“해야 할일이 있어서 만들었습니다.”

장수의 말에 단주는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것으로 무엇을 하시려는 것입니까?”

“이것으로 음식을 만들고자 합니다.”

“음식이요?”

그제야 단주는 장수가 음식을 만들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 음식 솜씨가 정말 뛰어나셨죠. 그런데 이 정도 크기라면 식솔들이 모두 먹을 만한 양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납품기일을 맞추었으니 축제라도 여실 생각이십니까?”

단주의 말에 장수는 미소를 지었다.

“축제라?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사실 다른 분들의 도움도 필요했는데 잘되었습니다.”

장수는 말을 하면서 도사들 중에서 누군가를 찾는 듯 했다. 장수는 그렇게 한참을 살피다 익숙한 자를 찾아내고는 소리쳐 불렀다.

“청학도사님!”

장수의 말에 도사 한명이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소장주님! 부르셨습니까?”

청학도인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장수 앞으로 나왔다. 사실 그는 장수와 만나 이야기 할 날만을 기다렸던 것이다.

그러나 석가장 양현지부가 워낙 바빴기에 장수와 만나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좀처럼 나질 않았다.

“예. 부탁드릴게 있어서 불렀습니다.”

“무슨 부탁이십니까?”

“이번에 스승님이 빈민들에게 쌀을 전해 달라고 저에게 주신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쌀로 죽을 쑤어 빈민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어떨까요?”

“죽을 쑨다고요?”

“그렇습니다.”

빈민들의 숫자가 너무 많기 때문에 밥을 해주기에는 쌀이 부족했다.

하지만 죽이라면 어느 정도 빈민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을 듯 했다.

“정말 좋으신 생각이십니다. 그런데 어떤 걸 도와드리면 되겠습니까?”

“음식을 만들어야 하는데 도움을 주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제 입장에서는 스승님의 분부라 최대한 많은 분들이 음식을 드셨으면 합니다. 그러니 모두에게 죽이 돌아갈 수 있도록 질서를 유지시켜 주셨으면 합니다.”

장수의 말에 청학도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일이라면 저에게 맡겨주십시오. 도사로서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가장 먼저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우선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 주십시오. 그리고는 준비해둔 쌀과 음식 그리고 솥을 옮겨야 합니다.”

그러자 청학도사는 장수를 바라보고 있던 도사들에게 다가가 몇 마디를 건넸다.

그러자 도사들이 환호성을 지른 뒤에 웃으며 장수가 부탁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옆에서 장수의 말을 듣고 있던 단주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장수를 바라보았다.

“소장주님의 스승님께서 언제 쌀을 다 주셨답니까?”

단주의 말에 장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번에 무당파에 다녀올 때, 제 스승님께서 어려운 이웃 분들과 나누어 먹으라고 쌀을 주셨습니다.”

“어디에 있습니까?”

장수의 스승이라면 무당파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당파에서 보내온 물건은 하나도 없었다.

더구나 쌀은 부피가 매우 많이 나가는 물건이었다. 수많은 빈민들에게 제공하기 위해서는 그 양이 엄청날 것이다.

그렇다면 응당 눈에 띄어야 할 텐데 석가장 양현지부의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단주가 그런 것을 놓칠 리가 없었던 것이다.

단주의 말에 장수는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제 가슴에 있습니다.”

장수는 말과 함께 자신의 가슴을 손으로 어루만졌다.

그 모습을 본 단주는 잠시 생각을 했다.

‘아, 스승님께 현물이나 전표로 받은 모양이구나.’

사실 쌀이나 전표나 그게 그거였다. 오히려 전표로 가지고 와서 이곳에서 쌀을 사 공급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었던 것이다.

창고에는 장수의 지시로 모은 쌀이 꺼내지고 있었다. 빈민들이 숫자가 상당했기에 꺼내놔야 하는 양도 많았다.

단주는 전표를 꺼내 습관적으로 방출되는 쌀을 기입했다. 그러면서 잠시 생각했다.

‘소장주님이 날이 갈수록 상인으로서 실력을 쌓으시는 구나. 이제 저분이 장주의 지위에 오르시면 본가가 십대상단에 오르는 것도 꿈은 아닐 것이야.’

상인은 셈이 빠르고 이익에 밝는다고 대상인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어려운 빈민들도 돕고 황실의 일을 거드는 것이 상권이 커지는데 일조한다는 것을 의외로 많은 상단에서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장수가 이끄는 석가장 양현지부는 황실과의 관계도 갈수록 돈독해 졌고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빈민들을 돌보았으며,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따랐고 덤으로 장주의 무공까지 강하니 상단으로서는 최적의 조건을 모두 갖춘 것이었다.

단 한 가지만 빼고 말이다.

‘체형이 너무 왜소한 것이 걸린단 말이야. 장주가 되려면 모름지기 나처럼 넉넉한 체형을 가져야 체통이 서지, 지금처럼 너무 외소하면 천박한 무인으로 보고 거래할 때 얕잡아 보일 수도 있으니 곤란한데 말이야…….’

장수의 체형이 상인 같지 않고 무인 같다는 것이 유일한 단점이었다.

하지만 다른 장점이 단점을 가렸기에 단주로서는 납득하고 넘어갔다.

수많은 사람들이 석가장 양현지부에서 빈민촌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원래는 도와주기로 한 사람만 가면 되었지만 그 외의 다른 사람들도 돕겠다고 나선 것이다. 공방과 매장에는 점원과 무사 등의 최소 인원만 남아 지키고 있었다.

빈민촌에는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석가장에서 무료배식을 한다는 말에 부푼 기대를 안고 모여든 것이다.

빈민들의 삶이란 어디나 똑같다. 풍년일 때는 그나마 하루 한 끼는 먹을 수 있지만 흉년일 때는 음식은 구경조차 하기 힘들었다. 도시도 마찬가지였다.

상가들이 일이 바쁠 때라면 떨어지는 것들이 많았지만 요즘 상가들이 대부분 어려웠기에 빈민들도 어려운 나날을 보냈고 있었다.

그 와중에 대규모 방화까지 일어났기에 빈민들로서는 끼니를 구하는 것이 큰 걱정거리였다.

그런 상황이었기에 더욱 굶주린 자들이 많았던 것이다. 빈민들은 기대에 찬 눈빛으로 석가장의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장수는 도착하자마자 불을 피울 자리를 만들었다. 원래 객잔이라면 화로가 있겠지만 이런 곳에서 화로를 가져오기란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나무로 장작터를 만들었고 철근으로 솥을 걸었다. 그렇게 화덕이 만들어지고 솥이 내걸리자 옆에서는 쌀을 차곡차곡 쌓기 시작했다.

빈민들은 쌀이 쌓일수록 환호성을 질렀다.

사실 빈민들이 예상보다 워낙 많이 몰려들었기에 이들에게 모두 고루 분배한다면 각자 적은 양밖에는 배급받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쌓여있는 걸 보니 그 양이 대단했던 것이다.

무사들과 석가장에서 일을 하다 따라 나온 잡부들은 분위기에 취해 자신도 모르게 알아서 물과 나무를 가져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밖에는 할 줄 모르던 불량배 출신의 잡부들도 있었다.

일은 척척 진행되어지고 있었다. 이미 공단에서 작업을 하면서 손발을 맞추었기에 일이 진행이 자연스러웠던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자 솥에 물이 끓었고 쌀이 담긴 가마니를 풀어 솥에 담았다. 그리고 죽을 만들기 시작했다.

음식은 전적으로 장수가 만들고 있었다. 장수는 잠시도 쉬지 않고 가져온 재료로 부지런히 음식을 만들었다. 쌀을 넣은 직후 하나의 솥에 다가갔다. 그리고 가슴속에 소중히 간직한 주머니를 꺼냈다.

‘스승님.’

스승님이 장수에게 준 소중한 쌀이었다. 비록 그 양은 적었지만 장수는 그 가치를 분명히 알고 있었다.

이 쌀은 스승이 며칠을 아껴가며 먹을 귀중한 식량이었다.

그런 소중한 식량을 다른 사람에게 내어주라고 장수에게 전한 것이다. 이것을 넘겨주면 스승은 당분간 굶어야 할지도 몰랐다. 나이가 많고 약해진 상태에서 음식을 먹지 않는다면 문제가 생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스승은 또 같은 상황이 오더라도 몇 번이고 그럴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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