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편 - 상행을 떠나다
이틀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장수는 서류를 정리하는 데에만 시간을 할애했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져 그럴 수도 없었다. 한시라도 빨리 석가장 소유의 광산에 가서 광석을 가져오지 않는다면 가져온 비축분이 완전히 바닥나기 때문이었다.
그랬기에 바로 상행을 떠날 준비를 해왔고, 오늘 준비가 끝났다.
늘 상행을 대비해 준비를 하고 있었던 상태라 마무리만 하면 되었기에 준비하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상단은 큰 마차만 해도 여러 대였고, 수레도 십여 대 이상이었다.
거기다 철마 표국의 표사와 표두가 참여하고 석가장 소속의 무사들과 낭인들이 모두 포함되다 보니 제법 큰 규모의 상단이 되었다.
사실 원래라면 호위무사가 지금보다 더 많아야 했다.
산적들에 의한 피해가 심한 시기였기 때문에 호위무사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위가 우세한 장수가 포함된 상행이었기 때문에 호위무사의 숫자를 줄였다.
그 수를 줄였다고는 하지만 무사들만 오십여 명에 이르는 대규모의 인원이었다.
장수는 상행을 떠날 준비를 마치자 양현을 훑어보았다.
앞으로 오랜 시간 동안 보지 못할 테니 머릿속에 각인시키기 위해서였다.
장수가 도시를 살펴보자 단주가 물어보았다.
“소장주님, 무엇을 그리 보십니까?”
단주는 이번 상행에 함께 하지 못했다. 몸을 움직일 수는 있었지만 아직까지는 장거리 상행은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단주는 장수에게 말을 걸면서 그를 바라보았다.
“양현을 보고 있습니다.”
장수의 말에 단주는 장수가 바라보는 쪽을 한번 보다가 말을 건넸다.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앞으로도 더 많이 고생을 해야지요.”
“기반은 잡아놨으니, 이제 굴러가는 걸 지켜보면 될 차롑니다. 사실 상가라는 것이 자리를 잡기 전까지야 경쟁이 치열하다지만, 일단 자리를 잡고 나면 그리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러니 앞으로는 조금 덜 걱정하셔도 될 겁니다.”
“흠. 그렇군요. 하지만 어서 빨리 필요한 물건을 가지고 돌아와야 할 것 같습니다.”
“예. 우선 급히 쓸 물건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니 문제가 많지요. 소장주님께서도 이번 상행에서 꼭 필요한 물건을 많이 사 오셔서 이득을 많이 남기셨으면 좋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하하.”
장수로서는 앞으로의 일이 문제가 될 게 없었다.
현재 석가장을 제외한 양현에 산재한 상가들은 혈교에 의해 큰 피해를 입은 상태였다.
이미 피해를 준 상황에서 중원 전역을 상대하는 혈교가 호북의 작은 도시인 양현에 다시 무사들을 보낼 가능성은 희박했다.
물론 보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양현보다 더욱 중요한 요충지인 도시들이 많은 상황에서 이곳으로 무사들을 보낼 가치는 없었다.
더구나 군대가 상주해 있는 이상, 혈교의 무사들을 보낸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게다가 장수는 눈에 띄는 행동을 전혀 하지 않았다.
물론 어떻게 보면 그동안 많은 대단한 일들을 해내긴 했지만, 그 일을 한 사람이 석가장의 소장주라는 것을 아는 자는 소수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들은 혈교와 연관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사람들이었다.
무당파에 다녀오면서 받아왔던 스승의 바람도 무사히 실행한 상태였다. 그랬기에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상행을 떠날 수 있게 된 것이다.
게다가 양현에 자리 잡은 지부는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간 지부에 무당파에 다녀오면서 밀렸던 일들과 방화사건에 대한 일들을 해결하느라 상행예정이 많이 밀리게 되었다.
그랬기에 이번 상행이 끝나도 금방 다시 다른 곳으로 상행을 떠나야만 했다.
장수가 속한 상단은 서둘러 도시를 떠났다. 그리고 석가장 산하의 광산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광산이 있는 곳은 융준산이었다. 어두워지기 전까지 도착하려면 조금이라도 서둘러 가야 했다.
상단이 상행을 떠나자 그것을 지켜보던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상단을 유심히 쳐다보다가 어딘가로 걸어갔고 평범해 보이는 글을 써서 어떤 남자에게 넘겨주었다.
그러자 남자는 그 글을 잠시 보더니 하늘을 향해 전서구를 날렸다.
* * *
상단은 융준산을 향해 가고 있었다.
워낙 마차와 수레가 많았기 때문에 움직임은 빠르지 않았지만 융준산 자체가 양현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기에, 넉넉히 열흘이면 왕복을 할 수 있었다.
사실 요 근래에 산적들 때문에 상단이 피해를 많이 입어서 인지 이번 상행에 처음 참여한 자들 중 일부는 소문만 듣고서 겁을 먹은 자들도 있었다.
소문으로 들은 산적들은 매우 위험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장수와 함께 상행을 한 경험이 있는 자들은 달랐다.
장수의 무위를 눈앞에서 보았기에 이번 상행도 무사할 것이라는 여유를 가지고 있었기에, 때문에 그들의 표정에는 여유가 흘러넘쳤다.
그렇다 해도 항상 상행 초반에는 사람들 사이에서 긴장감이 맴돌았다. 언제 어디서 산적들이 모습을 드러낼지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산적들이 나타날 기색이 보이지 않자 사람들 중에는 지루해 하는 자들도 더러 나오기 시작했다.
사실 상행이라는 것이 지루함의 연속이었다. 도시를 지나온 경우에는 지나가는 상단도 없었기에 상단에 속한 사람들끼리 걷기만 하면 되었던 것이다.
가는 도중에는 따로 할 일도 없었다.
표국의 표사들이야 하루에 정해진 시간동안 합동훈련을 한다지만 상단에 속한 식솔들은 걷는 일만 했기에 매우 지루해 했다.
하지만 단 한명만은 지루해 하지 않았다.
그는 바로 장수였다.
장수는 출발을 하고서 단 한시도 쉬지 않았다. 소장주로서 해야 할일이 매우 많았기 때문이었다.
기본적으로 상단이 움직이면서 계속해서 식량이 줄어든다. 그리고 마차나 수레가 고장이 날 수도 있고, 환자가 생길 수도 있다.
생각지도 못한 문제는 잠시도 쉬지 않고 일어났기에 이번 상행의 총 관리자인 장수는 쉬지 않고 그런 문제를 해결해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물품의 수량에 대한 보고도 받아야 했다.
혹시라도 움직이면서 물품이 파손되거나 분실되는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움직이는 마차였기 때문에 한번 잃어버리면 찾지 못한다. 그랬기에 정해진 시간마다 물품을 확인해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미리 준비해둔 서류를 보며 상행 중에 거래할 물건들을 생각해야 했다.
지금까지는 이 모든 일을 단주가 해왔지만 이번 상행에는 단주가 없었기에 모든 일을 장수가 대신해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장수의 경우에는 일이 그것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무공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생각을 해야 했던 것이다.
장수는 무인이었다.
그리고 무인이란 잠시도 쉬지 않고 무공을 수련하거나 깨달음을 위해 전진해야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랬기에 장수는 자신이 아는 무공들을 수련하면서 유운에게 배운 번천장과 양의심법에 대해 연구해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무당파에서 양현으로 돌아오고 나서 장수는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그간 워낙에 여러 가지 일이 있었는지라 무공에 대한 수련은 조금도 하지 못하고 석가장에 관련된 일에만 매달렸던 것이다.
그 기간이 이십여 일이었지만 장수는 자신의 몸이 상당히 둔해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장수가 무공수련에 대해 민감했기에 수련을 하지 못한 것을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것일 수도 있었다.
어쨌든 그의 무위는 초절정 고수였기 때문에 얼마간 수련하지 못한다하여 큰 지장이 오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수는 이번 생에서는 한 단계 더 높은 경지에 도달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기에 수련을 잠시 멈추자 초조함에 조바심이 났다.
“이거 큰일 났구나.”
장수는 몸을 움직이면서 인상을 찡그렸다. 자신이 몸이 자신이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물론 미세한 차이였지만 그 미세한 차이가 생과 사를 가를 수 있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장수는 움직이는 동안 마차에 박혀서 시간이 날 때 마다 몸을 움직이며 지금까지 배운 것을 수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