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8편 - 산적
산에 오두막으로 만든 집이 여러 채 있었다. 바로 산적들이 거하는 오두막이었다.
오두막은 제법 튼실하게 만들어졌는데 그 안에서 산적들이 인상을 쓰고 있었다.
그 사이에서 두목으로 보이는 덩치 좋은 산적이 산적들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병신들아 그런 조그마한 마을 하나 부수지 못해서 시간을 끄냐? 부끄러운 줄 알아라!”
두목의 말에 산적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지금 입을 열면 잘못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불만이 하나 가득했지만 두목이 화를 고스란히 감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함락 직전까지 도달했다.
오랜 기간 마을과 싸웠기에 마을에서도 화살이 부족해졌고 그 덕분에 방채 밑까지 도착해서 불을 지를 수 있었던 것이다.
마을사람들은 불을 끄면서 산적들을 공격했고, 산적들은 그 공격을 막으면서 방책에 불을 지르며 시간을 보냈는데 갑작스럽게 상단이 나타난 것이다.
잘못하면 양쪽에서 협공을 받을 수 있기에 도망쳤는데 두목이 그걸 가지고 화를 내는 것이다.
‘두목이 나섰으면 진작 끝냈을 거 아니야?’
두목은 고수였다. 고수였기에 이들을 모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토벌군과 싸우던 산적들이었다. 마교라 칭하던 자들에게 끌려가 토벌군과 전쟁을 벌이다 눈치를 봐서 도망을 쳤던 것이다.
그러면서 강한 무력을 가진 고수의 밑으로 들어갔는데 그가 바로 두목이었다.
하지만 두목의 무위는 믿음직했지만 너무 겁이 많았다.
하긴 겁이 많았기에 죽는 게 두려워 마교의 지시를 어기고 다른 곳으로 도망을 친 것이겠지만 이런 작은 마을을 상대하는 데도 너무 몸을 사리고 있었다.
두목이 나섰다면 진작 마을을 점령했겠지만 사냥꾼의 화살이 겁나는지 싸움에 제대로 참여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때문에 오늘도 진작 승리할 수 있는 싸움을 질질 끈 것이다.
두목은 화를 내다 지쳤는지 소리를 쳤다.
“술과 여자를 데려와!”
두목의 말에 산적들은 급히 움직이더니 술과 여자를 데려왔다.
술은 과일을 담근 것으로 이런 산에서 먹을 음식을 구하기도 힘들었건만 두목의 성격을 알기에 먹을 과일을 아껴 술을 담근 것이었다.
그리고 여자는 산에서 약초를 캐던 노인의 딸로 피부가 까맸고, 매우 어린 나이였는데 두목의 노리개로 삼기 위해 이곳에 데려온 것이다.
두목은 술과 여자를 보자 기분이 좋아졌는지 웃었다.
“크하하하!”
웃음이 끝나자마자 술을 먹더니 여자와 함께 뒹굴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부하들은 물밀듯이 밖으로 밀려나왔다.
“휴…….”
산적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마교의 손에서 도망을 쳐 나왔지만 의지할 두목이 믿음직하지 못했기에 한숨이 나왔던 것이다.
그때 누군가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를 보자 산적들은 인상을 쓰며 외쳤다.
“누구냐?”
무기를 지닌 산적은 별로 없었다. 거주하던 곳으로 돌아왔기에 무기를 놔둔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나마 습관처럼 무기를 옆구리에 차고 다니는 산적들만 무기를 들고 있었는데 그 수가 얼마 되지 않았다.
장수는 그런 산적들을 보고 생각을 정리했다.
‘이자들은 혈교의 산적들은 아니구나.’
짐작은 했지만 상태를 보니 혈교의 무리일 리는 없었다.
행색을 보아하니 매우 지저분하고 볼 살이 야윈 것을 보니 제대로 먹지도 못한 것이 분명했다.
장수는 그들을 잠시 살피더니 물었다.
“너희들은 왜 이곳에 나타나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느냐?”
이들이 왜 나타났는지는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
만약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다른 산적들도 올 수 있기에 알아두어야 했던 것이다.
“산의 주인으로서 산에 거하는 자들에게 세금을 받는 게 뭐가 괴롭히는 것이냐?”
산적의 말에 장수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네가 이 산의 주인이냐?”
“그렇다.”
“그 권리는 누가 주었느냐?”
“우리가 이 산을 지배하는데 권리가 무슨 소용이냐?”
산적치고는 말을 제법 잘했다. 아마 말싸움을 전문적으로 대응하는 산적이었던 듯 했다.
“그럼 지배하면 다 주인인가?”
“그렇다. 우리가 힘으로 이 산을 가졌으니 불만이 있다면 너도 네 힘으로 우리에게 산을 빼앗아보도록 해라!”
말과 함께 산적들은 장수를 포위했다. 무려 오십여 명대 한 명의 싸움이었다.
더구나 오십여 명의 산적들은 매우 포악하게 생겼기에 장수가 이길 승산은 아예 보이지 않았다.
장수는 잠시 산적을 바라보다 물었다.
“그럼 내 힘이 강하면 너희들이 내 지배를 받아야겠군.”
“강자에게 따르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산적은 말을 하면서 답답한 마음을 느꼈다. 그들이 두목을 따르는 이유가 강한 힘 때문이기 때문이었다. 만약 두목이 힘이 없다면 당장 떠날 것이다.
“그래? 그 말, 잊지 마라.”
지금 상황에서는 사실 말이 필요치 않았다. 우선은 제압을 하고 나서 이야기를 하면 되는 것이었다.
장수는 몸을 풀었다.
사실 이런 약자를 상대로 몸을 푼다는 것도 우스운 이야기였다. 기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자들은 장수와는 현격한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들을 죽이는 것이 아닌, 제압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기 때문에 몸을 푼 것이다.
잘못 맞아서 죽기라도 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장수는 이들에게 묻고 싶은 게 많았다.
그때 산적이 외쳤다.
“쳐라!”
그 말과 함께 산적들이 장수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 * *
장수는 원래는 단번에 산적들을 제압하고자 했다. 하지만 이내 생각이 바뀌었다. 이들이 사용하는 무공이 어디서 본 듯했기 때문이었다.
‘좀 더 관찰을 하자.’
장수는 의도적으로 산적들이 공격을 피했다. 사실 피한다는 말도 어폐가 있었다.
내공이 자연스럽게 몸에서 흐르는 장수였기에 일반인의 주먹으로는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그들의 움직임은 너무 느렸고 형식에 얽매여 있었기에 주먹이 날아오기 전에 이미 어디로 피해야 할 지 알 수 있었다.
장수는 마치 움직이지 않는 데도 상대방의 공격을 모두 피하는 것처럼 보였다.
너무 빨리 움직였기에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산적들이 장수를 공격하느라 지치는 동안 장수는 그들의 무공을 관찰했다.
‘이 무공은 혈교의 무공인데?’
딱히 혈교라 할 수는 없었다. 마교 역시 비슷한 무공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랜 내전을 치룬 마교가 호북에 있는 산적들에게 마공을 전해주었을 리는 없었다. 그랬기에 혈교가 분명했다.
‘이들이 왜 혈교의 무공을 익히고 있지?’
제대로 배운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 익히려면 오랜 시간을 두고 수련을 해야 가능할 것이다.
‘이들이 혈교와 연관이 있다는 말인가?’
장수에게 좀 더 정보가 있다면 상황을 정확히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정보가 너무 부족했다.
‘혈교가 광산마다 일반 무사들을 보낸 것인가?’
그렇다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어느 범위까지 무사들을 파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각지의 광산에 무사들을 보내 견제를 한다면 광석 채굴량이 줄어들 것은 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상황을 좀 더 알아봐야겠구나.’
정보가 좀 더 모여야 확실한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랬기에 유심히 산적들을 관찰했다.
장수는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이 오판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의 실력이 너무 부족했던 탓이었다.
아무리 혈교에서 일반 무사들을 쓴다고 해도 마공을 몇 년 동안 배웠다면 이 정도 실력보다는 나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마공은 성취가 빠르기 때문에 배우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이 실력은 그에 못 미쳤던 것이다.
‘우선 제압을 해야겠구나.’
장수가 마음을 먹자 몸이 부드럽게 튕겨지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팔로 사방을 휘젓기 시작했다.
장수가 몸을 움직이자 산적들은 일순간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장수의 움직임이 마치 바다와도 같이 부드럽게 그들을 잠시 동안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