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9편 - 산적
장수는 부드럽게 산적들을 스치듯이 지나갔다. 그러자 산적들이 몸이 꼿꼿이 굳더니 그대로 바닥으로 쓰러졌다. 어느새 제압이 된 것이다.
순식간에 십여 명의 산적들이 제압당하자 다른 산적들은 공포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이미 장수를 공격할 때부터 일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눈치 챘다. 그런 상황에서 장수가 십여 명을 쓰러뜨리자 산적들은 도망치려고 했다.
하지만 장수가 먼저 움직였다. 장수는 빠르게 움직이면서 남은 산적들을 제압하기 시작했다.
그때 오두막에서 큰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쾅!
“어떤 녀석이 이렇게 시끄럽게 하느냐?”
두목이 나타난 것이다.
두목은 매우 큰 도를 들고 인상을 쓰며 주변을 둘러보다 장수를 보고 고함을 질렀다.
“네 녀석은 뭔데 남의 구역에서 행패를 부리느냐?”
“네가 먼저 건드려서 찾아온 것이다.”
“내가 너를 언제 건드렸느냐?”
두목의 말에 장수는 내공을 실어 말을 했다.
“광산을 공격하지 않았느냐?”
“광산? 너는 광산과 무슨 관계냐?”
“내가 바로 광산이 주인이다.”
“주인이라고?”
“그렇다. 내가 바로 석가장의 소장주다. 광산이 석가장의 것이라는 것을 몰랐느냐?”
“석가장의 소장주이면 얌전히 집안에나 있을 것이지 이곳에는 무슨 일로 왔느냐?”
“무슨 일로 오긴! 당연히 재산을 지키러 왔다.”
“뭐라고?”
장수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두목에게 빠르게 다가갔다.
그러자 두목은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났지만 뒤가 건물이라는 것을 깨닫고 앞으로 나왔다. 그리고 대도를 단단히 움켜쥐었다.
“얌전히 잡혀라!”
장수는 말과 함께 태극권을 펼쳤다. 그러자 두목은 태극권을 보고 안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한 수가 있는 녀석이라고 생각했는데 펼치는 무공이 고작 태극권이구나.”
무공을 어느 정도 아는 자라면 당연히 태극권의 기수식은 물론, 초식도 어느 정도 할 줄 알았다. 그리고 두목 역시 태극권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이다.
장수는 두목의 말에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다. 두목 정도는 단숨에 제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무공을 확인해봐야 했기에 실력을 비슷하게 맞추어 준 것이다.
두목은 상대가 생각보다 별 것 아니라는 생각이 들자 신이 난 듯 대도를 휘두르며 장수를 압박해 갔다.
사실 두목은 바닥에 널브러진 부하들을 보고 장수가 자신보다 고수인 줄 알고 두려웠었다.
그런데 막상 부딪쳐보니 생각보다 강하지 않자 안심이 되었던 것이다.
“별 것 아닌 녀석이구나. 네 녀석을 잡아 인질로 세워 두고두고 우려먹어야겠구나.”
만약 장수가 진짜 석가장의 소장주라면 두목으로서는 횡재를 한 것이다.
석가장이라면 자신도 이름을 한번쯤 들어본 상가였기에 은자를 많이 타낼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장수는 아슬아슬하게 대도를 피하는 척 하면서 두목이 쓰는 무공을 유심히 살폈다.
두목 역시 혈교의 무공을 어느 정도 배운 것을 알 수 있었다. 두목이 쓰는 것은 혈교의 도법이었던 것이다.
혈교에서 고수들이 처음에 배우는 도법이었기 때문에 두목이 쓰자 이들이 혈교와 어느 정도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이 아니라 해도 혈교의 무공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장수에게 혈교의 색이 묻어나는 움직임을 보이는 두목이 관련 있는 인물이라는 것을 유추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이들이 분명 혈교와 관련이 있구나.’
장수가 생각을 하는 사이에 남은 산적들이 두목을 응원하기 시작했다.
“두목! 녀석을 혼쭐을 내주십시오.”
“한 방만 맞히십시오. 그럼 녀석은 뻗을 것입니다!”
그들로서는 믿을 만한 게 자신들의 두목밖에 없었다.
만약 두목에게 승산이 없다면 진작 도망을 쳤겠지만 승산이 보여 이길 수도 있다는 생각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보기에는 두목이 장수를 몰아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두목 역시 조금만 더 몰아치면 장수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경지가 워낙 차이가 낫기 때문에 그의 수준으로 장수가 맞춰주려면 얼마든지 맞춰줄 수 있었던 것이다.
아슬아슬하게 도를 피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장수에게 있어서는 두목의 도는 그리 위협적인 상대가 아니었다.
장수는 그렇게 밀리다가 갑자기 몸을 멈추었다.
“으하하하! 이제 포기한 것이냐?”
두목은 호탕하게 웃더니 크게 대도를 휘둘렀다. 이 한 수로 장수의 오른쪽 팔을 잘라 버리려고 했던 것이다.
그때 장수가 빠르게 움직여 두목의 뒤에 모습을 나타냈다. 그리고 손을 세워 강하게 두목의 등을 가격했다.
“윽!”
두목으로서는 황당한 일이었다.
싸우는 중에 갑자기 사라지더니 뒤에 나타나 자신을 제압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그랬기에 갑작스럽게 등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없었다.
툭.
두목은 대도를 그만 놓쳐 버렸다. 그리고 장수가 점혈을 하자 그대로 땅에 처박혀 버렸다.
“이, 이럴 수가!”
산적들은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막상막하로 싸우다가 갑작스럽게 승부가 날 줄은 생각도 못했던 것이다.
“도, 도망가야 해!”
“고, 고수다!”
산적들은 빠르게 도망을 치려고 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어느새 장수가 그들을 점혈한 것이다.
장수는 점혈을 한 후 산적들을 한 곳에 모았다. 그리고 아혈을 풀자 사방에서 목소리가 나왔다.
“대, 대협! 제발…… 제발 살려주십시오.”
“모,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
“시키는 대로 다 하겠습니다! 제발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 흑흑.”
그들도 죽음의 공포를 느낀 것이다.
장수가 그들을 죽일 것이 분명했고 살려준다 해도 관가에 넘긴다면 어차피 산적이기 때문에 죽은 목숨이었던 것이다.
장수는 산적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좌중을 휙 돌아 본 그는 그들에게 물었다.
“너희들은 어디서 왔느냐?”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산적들이 장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은 당연했다.
“마공을 쓰는 것을 보았다. 그러니 솔직히 말을 해라.”
마공이라는 말에 산적들의 안색이 변했다.
마공을 쓰는 것은 남에게 보이기만 해도 척살 대상이었던 것이다. 마공은 빠른 성취를 얻을 수 있지만 비정상적인 수련단계를 거치는 경우가 많았기에 예외 없이 익히는 것만으로도 죽였던 것이다.
“억울합니다! 저희들은 마공을 배우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대협! 저희는 마공을 익히지 않았습니다!”
여기저기에서 억울하다는 외침이 들려왔지만 장수는 믿지 않았다.
“너희들이 쓰는 무공을 내가 봤는데도 거짓말을 하는 것이냐?”
장수의 말에 산적들은 계속해서 우겼다. 하지만 결국에는 어쩔 수 없이 인정을 해야 했다.
“저희들은 억울합니다. 저희가 배우는 것이 마공인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생각지도 못했다고?”
“그렇습니다. 저희들도 그, 그분들이 그곳에서 온 것을 나중에 알았습니다.”
“그곳이라니?”
장수의 말에 산적들은 공포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그곳은 상상만 해도 공포의 단체였기 때문이었다.
“마, 마교입니다.”
산적의 말에 장수는 헛웃음이 나왔다.
마교의 공포는 일반인에게도 대단했던 것이다. 혈교는 마교의 이름을 빌리기만 했는데도 두려움의 대상이 될 정도이니 얼마나 대단한 이름인가?
“마교라니? 그곳에서 무공을 어떻게 배웠느냐?”
장수는 마교가 아니라 혈교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설명을 해 줄 필요가 없었기에 마교라 한 것이었다.
장수의 말에 산적은 급하게 말을 했다.
“그분들은 비급만 준 뒤 몇 번 시연을 해주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저희들은 살기 위해 열심히 배웠습니다.”
산적의 말에 장수는 인상을 구겼다.
‘이거 큰일이구나. 혈교에서 산적들에게 마공을 가르쳐 주다니…… 문제로구나.’
산적들은 보통 세금을 내지 못하는 백성들이 산에 올라가 산적들로 변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외에 체격이 좋거나 선천적으로 힘이 강한 자들이 산적이 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 숫자에 비해서 역사가 짧아 체계적인 무공을 습득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산적들의 수는 실로 대단하다 할 만 했다.
그런 산적들에게 정식으로 무공을 가르쳐 준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었다.
당장은 문제가 안 되겠지만 몇 년 만 지나도 산적들이 실력이 크게 진보할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들이 가르치는 것은 마공이었다. 마공은 그 성취가 위험할 정도로 빨랐다.
장수는 머리가 아팠다. 생각보다 문제가 심각했던 것이다.
“너희들은 언제부터 무공을 배웠느냐?”
장수의 말에 산적들은 사실을 말했다.
“그분들이 산채에 오고 나서부터 배웠습니다. 그리고 토벌군과 싸우기 위해 모였다가 저희들만 빠져 나온 것입니다.”
한 산적이 말을 하자 다른 산적들도 말을 하기 시작했다.
대부분 사소한 이야기들이였지만 중요한 이야기들도 있었다.
장수는 산적들이 이야기를 듣고 생각을 했다.
‘이거 내가 한 가지를 놓쳤구나. 이런 경우도 생각해 봤어야 했는데 너무 몰랐어. 혈교가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호북에 산적들의 세를 늘려 무당파를 압박하려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장기적으로 산적들의 실력을 증가시키는 결과를 낳았구나.’
혈교에서는 지금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혈교는 천하를 정복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하지만 산적들이 큰 공을 세울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지금처럼 천하에 산재한 산적들에게 마공을 전수한다면 산적들이 무위가 급증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정파의 세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실로 의외의 결과였던 것이다.
단기적으로 무위를 상승시키려는 것이 다른 방향으로 그들에게 좋은 결과를 낸 것이다.
하지만 장수가 생각하기에 아직 혈교가 이를 모를 수가 있었다.
‘마공을 익힌 산적들은 무조건 처리해야겠구나.’
호북에 위치한 산적들 중 토벌대에 소속되지 않은 산적들은 대부분 살아남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도 마공을 수련하고 있을 것이다.
이로써 장수가 해야 할 일이 하나 늘어났다.
만약 산적들이 지금보다 더 효과적으로 상단을 공격하고 무위가 강해진다면 혈마가 그것을 놓치지 않고 천하에 마공을 전수할 테니 큰 문제가 생길 것이다.
그렇게 되면 호북이 문제가 아니라 중원전체의 상권이 마비될 수도 있는 것이다.
장수는 좀 더 산적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봤다.
그러자 그들은 단순히 토벌대에서 도망친 자들이 뭉친 것밖에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행히도 혈교가 이번 광산에 아직 눈을 돌리지 않았다는 말이었다.
‘광산에 그들이 시선을 집중하지 않은 것은 다행이구나. 하지만 한번쯤은 생각해야겠구나. 만약 광산을 노린다면 큰 일이 벌어질 수 있겠어.’
혈교가 마음만 먹는다면 못 할 일이란 거의 없었다.
그나마 한 가지 다행인 점은 혈교에 속한 자들이 현장을 잘 돌아다니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만약 능력이 있는 자라면 이 같은 사실을 진작 확인하고 일을 진행했을 것이다.
장수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었지만 아직까지는 일말의 가능성이 남아 있었기에 조심해야 했다.
이야기를 모두 듣자 이자들의 처리가 문제였다.
‘모두 죽일까?’
이야기를 들으니 산적들이 사람을 죽이는 흉폭한 녀석들은 아닌 듯 했다.
원래부터 통행세만 받던 산적들로 보였던 것이다. 그리고 상단을 습격해 몰살시킨 적도 없었던 것 같았다.
물론 이야기로만 들은 것이지만 자신의 눈으로 죽인 자를 보지 못했기에 이들을 어떻게 해야 할 지 결정을 내릴 수 없었던 것이다.
장수는 잠시 생각을 하다 결정을 내렸다.
‘이들을 마을사람들에게 맡기자.’
사실 장수는 외부인이었다. 애초부터 죽였으면 모를까 지금으로서는 죽이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직접적인 고통을 받은 자들은 마을사람들이었다.
이들을 도망 못 가게 해 놓은 뒤 마을사람들을 데리고 오면 그들이 알아서 판단을 할 것이다.
장수는 천천히 산적들을 점혈했다.
장수의 손에 닿은 산적들이 의식을 잃어버리자, 이를 본 다른 자들은 눈물을 흘리며 사정을 했다.
하지만 장수는 망설이지 않고 빠르게 산적들을 점혈하고 마을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