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편 - 7권 - 처리
마을로 돌아온 장수는 사람들이 모여 어딘가로 갈 채비를 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들 중 촌장이 사람들을 정리하다가 장수를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소장주님! 어디 갔다 오셨습니까?”
설마 혼자서 산채에 다녀왔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한 상태였다. 산채까지 갔다 올 시간이 도저히 안 됐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촌장은 장수가 어딘가 다녀왔다고 생각했다.
촌장의 말에 장수는 그를 바라보았다.
“촌장님, 여기서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장수의 말에 촌장이 놀란 표정으로 말을 했다.
“소장주님께서 산적들을 해치우러 가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걱정이 돼서 사람들을 모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등에 활과 화살을 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이 전력을 발휘할 수 있는 때는 방책이 보호를 해줄 때이지 이렇게 정면에 노출된 상태에서는 전력을 발휘하기 힘들었다.
마을 사람들 옆에는 무사들과 표사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들도 장수와 함께 산적들을 치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이 정도 준비라면 큰 피해를 입겠지만 산적들을 제압할 수도 있을 것이다.
채주는 겁이 많아서 이 정도 사람들이 달려들면 도망을 칠 게 뻔했다.
장수는 그들을 둘러본 후 촌장에게 말을 걸었다.
“이제 모두 해결이 되었습니다.”
“……예?”
촌장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가 해결이 되었다는 말인가?
“산적들을 모두 붙잡았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촌장은 멍청한 표정을 지은 채 장수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를 되물었다.
도저히 산채까지 가서 산적을 제압한 후 올 정도의 시간이 흐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산적들의 무위가 제법 되었기에 상처 하나 없이 그들을 제압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촌장의 말에 장수는 손으로 산채를 가리켰다.
“마침 준비를 하셨으니 다행입니다. 지금 바로 가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아직 모든 준비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거기다가 모두의 숫자를 다 합쳐 봐야 칠십여 명이었고 그 정도 인원이 움직이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그랬기에 준비해야 하는 일이 많았고 임무 같은 것도 미리 정해 둬야 했다.
그런데 장수가 무작정 가자고 하니 촌장은 당황한 채 어찌해야 할지를 몰랐다.
그때 무사장이 나섰다.
“알겠습니다, 소장주님. 바로 갈 채비를 하겠습니다.”
경험이 많은 무사장이 소장주의 말을 듣는다고 하자 촌장 역시 소장주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무사들이 산적들에게 전멸이라도 당하면 자신들 역시 큰 피해를 입기 때문이다. 다소 무리한 상황이라도 무사들을 도와야 했다.
“저…… 저희도 따르겠습니다.”
촌장의 말에 소장주는 웃으며 말을 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를 따라 주십시오.”
장수의 말에 촌장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산길을 오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무려 칠십여 명에 이르는 대인원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랬기에 장수 혼자서는 빠르게 다닌 길이었지만 사람들과 함께 오는 데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산채에 도착한 마을 사람들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산적들이 쓰러진 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더구나 숫자 역시 매우 많았다.
이 정도 숫자를 소장주 혼자서 제압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대……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촌장은 지금 상황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는 이들이 이렇게 쉽게 제압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이들 때문에 받은 고통과 물적 손실이 얼마나 심했던가? 더구나 여태까지의 마을 사람들의 고생은 말도 못할 정도였다. 그런데 산적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촌장은 놀란 표정을 지울 수 없었다. 그때 마을의 사냥꾼이 급하게 산적에게 다가가 맥을 짚었다.
“촌장님, 살아 있습니다.”
“살아 있다고?”
놀랄 일이었다. 미동이 없어 죽은 줄 알았는데 살아 있다니 촌장은 믿을 수가 없었다.
“예.”
살아 있다는 말에 마을 사람들은 급하게 산적들을 모았다. 이들이 깨어나기 전에 제압을 해야 했다.
그때 무사장이 나섰다.
“이들을 모두 묶어라!”
무사장의 말에 무사들과 표사들이 급히 산적들을 준비한 끈으로 묶었다.
그러는 동안 장수는 촌장에게 다가갔다.
“촌장님!”
“예…… 예?”
촌장으로서는 지금 상황을 파악할 수 없었기에 장수가 말을 걸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의 처리를 촌장님에게 맡기려고 합니다.”
“…….”
촌장으로서는 이들을 당장에라도 죽이고 싶었다. 산적들 때문에 받은 고통이 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무저항인 상태로 잡힌 모습을 보자 선뜻 죽이겠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차라리 싸우는 중에 불가항력으로 산적들을 죽였다면 모를까? 지금 상황에서는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촌장이 잠시 생각을 하는 동안 장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때 무사장이 무사들을 이끌고 산채 주변을 뒤지기 시작했다. 원래 산채를 정벌하면 산적들이 모아둔 재물은 먼저 가지는 사람이 임자였다.
그랬기에 재물이 될 만한 것을 찾기 위해 샅샅이 뒤지고 있었다.
더구나 무사들은 전혀 피해를 입지 않은 상태였다. 그랬기에 빠르게 돈이 될 만한 것을 찾을 수 있었다. 그때 무사장이 기절한 여자아이를 데려왔다.
“소장주님, 여기 여자아이가 있습니다.”
여자아이의 하복부에서 선명한 선혈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강간을 당했기에 흘리는 피였다. 그 여자를 보자 촌장이 인상을 구겼다.
“이 아이는 약초꾼의 딸인데…….”
융준산에는 약초를 캐는 약초꾼들이 많다.
그리고 그들 중 한 명이 산적들에게 당하고 딸은 잡혀온 것이다.
“저런 나쁜 놈들.”
촌장은 여자아이를 보자마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아까까지는 동정심이 생겼는데 싹 사라진 것이다.
그때 무사가 자신의 옷을 벗어 여자아이의 몸을 덮었다. 그리고 여자아이를 업고 내려갈 준비를 했다.
대충 주변이 정리가 다 됐다.
무사들과 표사들이 돈이 될 만한 것들은 모두 챙겼고 산채에는 불을 질렀다.
산채를 내버려 두면 다른 산적들이 본거지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산채가 불타오르더니 이윽고 잿더미가 되었고 이제는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되었다.
사람들은 촌장을 바라보았다.
마을의 촌장으로서 그가 산적들의 생사를 결정해야 했던 것이다.
촌장은 한참을 고민하다 장수에게 말을 했다.
“이들을 마을로 데려가야 할 거 같습니다.”
촌장 혼자서 결정할 일이 아니었다.
최소한 마을 사람들에게 보여준 다음에 이들의 생사를 결정지어야 할 것 같았다.
촌장이 결정을 내리자 점혈이 되어 움직이지 못하는 산적들을 표사들과 무사들이 옮기기 시작했다. 내려가는 길은 올라가는 길보다 더욱 빨랐다.
그렇게 마을에 도착하자 마을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와아아아아~~~~.”
믿을 수 없었다. 그동안 그렇게나 마을 사람들을 괴롭히던 산적들이 이렇게 쉽게 처리될 줄은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저놈들이 그동안 우리를 괴롭힌 놈들이야?”
마을 사람 중 한 명이 그렇게 말한 후 산적을 향해 돌을 던졌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도 산적들을 향해 돌을 던졌다. 그동안 마을 사람들은 산적들에게 큰 피해를 입어 왔다. 그러니 이런 반응은 당연한 것이었다.
“멈추게!”
촌장이 산적들 앞을 막자 마을 사람들은 돌을 던지는 것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왜 그러십니까? 촌장님.”
그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들을 괴롭힌 산적들에게 돌을 던지는 것을 왜 막는다는 말인가?
마을 사람들의 표정을 살피던 촌장이 허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잠시 기다리게. 이들은 이미 제압이 된 상태이네. 그런 상황에서 돌을 던지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네. 우선 이들을 어떻게 할지 결정을 한 다음에 돌을 던지든 말든 해야 할 거 같네.”
촌장의 말에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촌장님.”
촌장의 말은 타당했다. 이미 마을 사람들이 산적들을 처리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미리부터 돌팔매질을 할 필요는 없었다.
사람들이 더 이상 돌을 던지지는 않았지만 돌을 맞았던 산적들은 원독에 찬 눈빛으로 마을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저항할 수 없는 상태에서 몸에서 피가 흘러 내렸기 때문이다.
그때 뒤에서 오는 무사들을 보고 마을 사람들은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무사들의 등에는 돈이 될 만한 것들이 가득 있었다.
“우와아아아.”
마을 사람들은 무사들이 들고 오는 물건들을 보고 크게 환호성을 질렀다. 산적들을 보고 그들이 가졌었던 재물까지 보니 신이 났던 것이다.
드디어 산적들을 토벌한 것이다.
“무사님, 제가 들겠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자청해서 무사들의 짐을 들어주었다.
그들을 위해 애써준 무사들을 조금이라도 돕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무사들이나 사냥꾼들은 그런 모습을 보면서 씁쓸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산적들을 해치운 게 아니라 산적들은 소장주가 이미 해치운 뒤였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들이 이런 환대를 받을 이유가 없었다.
마을 사람들이 돕자 무사들은 더욱 빠르게 마을로 들어설 수 있었다.
마을에 들어서서 산적들과 재물을 한가운데에 놓고 다시 일단의 무사들과 사냥꾼이 불타오르는 산채를 향해 갔다. 산적들이 가지고 있었던 것들 중에 쓸 만한 것들이 꽤 되었기 때문에 남은 것들을 가지러 가야 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