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6편 - 도망자
장수는 천천히 두목을 바라보았다. 그 역시 무공에 열심이었다. 무공을 좋아했기에 고수의 경지에 오른 만큼 남들보다 무공 수련에 열심인 것이었다.
“진자수(陳子秀) 무사님!”
두목의 이름은 진자수였다.
장수는 그를 수석무사로 삼았다.
수석무사란 무사장 바로 아래 단계의 무사를 말한다. 진자수의 실력이라면 충분히 무사장을 시킬 수 있었지만 아직 무사가 된 기간이 짧았고 아직까지 신뢰할 수 없었기에 우선 수석무사의 자리를 주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소장주님.”
처음과는 달랐다. 어찌 되었던 장수는 진자수에게 있어서 스승과도 같았다. 무공을 배운 이상 진자수는 장수에게 대우를 해줘야 했다.
장수는 진자수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광산 안으로 들어가 상황을 보고 오겠습니다. 그러니 그때까지 이들을 맡아 주십시오.”
장수의 말에 진자수는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소장주님. 저를 믿으십시오.”
장수는 고개를 끄덕인 후 천천히 광산 안으로 들어갔다.
사실 장수가 산적인 이들을 완전히 믿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기감이 매우 넓었기에 도망간다면 바로 알아차릴 수 있다.
그랬기에 이들을 시험하기 위해서 이렇게 도망갈 기회를 만들어준 것이었다.
장수가 광산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산적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아마 지금 상황을 이용해 도망갈지 말지를 결정짓기 위해서인 듯했다.
장수가 있을 때는 도망칠 수 없었다. 장수의 실력이 그들을 월등히 뛰어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리를 잠시 비운 사이라면 가능했다. 그들이 동시에 다른 방향으로 도망을 친다면 장수가 못 따라갈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수는 알면서도 광산에서 돌아가지 않았다. 만약 도망간다고 해도 마음만 먹는다면 충분히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도망을 간다고 해도 일반 무사를 초절정고수가 놓치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가 혈교에서 배운 추종술은 겨우 산적 따위가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혹시라도 산적들 전원이 도망을 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되면 장수는 모두 잡은 후에 그에 대한 대접을 해줄 생각이었다.
‘지금까지는 말로 했지만 만약 전부 도망간다면 주먹맛을 보여줘야지.’
아무리 거친 산적들이라 해도 장수의 주먹맛을 본다면 말을 들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안쪽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자 무사들이 열심히 돌을 모으는 것이 보였다. 돌을 모으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지만 운반하는 것은 더 힘든 일이었다.
아무리 수레에 담아 옮긴다 해도 광석의 무게가 보통이 아니기 때문이다.
장수는 열심히 일하는 무사에게 다가갔다.
“고생이 많습니다.”
“소장주님!”
무사로서는 소장주의 모습에 반가울 뿐이었다. 사실 무사인 그에게 이런 잡부나 하는 일을 시켜서 어느 정도 반감이 들긴 했지만 그래도 석가장의 소장주가 말을 거는데 기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일이 힘드시죠.”
“아닙니다. 소장주님께서도 하시는 일인데요.”
이미 운반하는 무사들을 통해 장수가 일을 하는 모습이 알려졌다. 소장주도 일을 하는데 무사라고 못할 게 없었다.
장수는 미소를 지으며 무사에게 말을 했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앞으로도 이런 일이 있으면 말만 해주십시오. 그럼 제가 성심성의껏 열심히 일을 하겠습니다.”
무사의 말에 장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소장주님!”
그때 무사장이 달려왔다. 다른 곳에서 일하다가 장수를 보고 달려온 것이다.
“무슨 일이십니까? 무사장님.”
“산적들은 어떻게 하고 오셨습니까?”
무사장의 말에 장수는 미소를 지었다.
“언제까지 감시만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이번 기회에 녀석들의 반응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도망갈 게 뻔합니다. 산적들의 본성이야 뻔하지 않습니까?”
무사들에게 산적들은 적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니 그들을 수하로 쓴다는 말이 반가울 리 없었다.
장수의 말에 무사장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래도 같은 사람이지 않습니까? 저는 한번 믿어 보고 싶습니다.”
장수는 말을 하면서 당황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그들을 믿는다고? 내가 언제부터 산적들을 믿었지?’
그것은 사실 장수의 스승인 유운을 만나면서 일어난 변화였다.
전생의 그는 사람을 믿지 않았다. 매일 사람을 죽이는 일을 했던 그였기에 사람을 믿을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유운을 만나서 같이 생활을 해보니 인간에 대한 불신이나 믿음에 변화가 생겼다. 그랬기에 산적들을 무사로 고용하고 일을 시키며 이렇게 시험까지 하는 것이다.
‘내가 변했구나.’
장수는 스스로 놀랬다. 자신도 모르게 인간에 대해 생각이 바뀌었던 것이다.
장수가 잠시 생각하는 동안 무사장 역시 장수의 말을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산적들이라고 해도 날 때부터 나쁜 자들은 아니겠지요. 그리고 생각이 그러시다면 저는 소장주님을 믿겠습니다.”
무사장이 미소를 짓자 장수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장수 역시 지금 상황에 대해 좀 더 생각을 해야겠다고 느낀 것이다.
“그런데 곤란한 점은 없습니까?”
벌써 작업을 시작한 지 삼 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랬기에 물어본 것이다.
“여기서 작업하는 거 자체가 힘든 일이지요. 그래서 그런지 부하들은 불만이 어느 정도 있는 듯합니다.”
장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햇빛도 받지 못하고 광산에서 일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공기 역시 탁했다. 이런 환경에서 일하는 것만으로도 무사들이나 표사들이 고생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래도 조금만 더 일하면 될 듯합니다.”
며칠만 더 일한다면 주문량에 얼추 맞을 것 같았다. 더구나 납기일에 맞추려면 돌아가는 시간도 계산해야 했다.
“예. 그럼 부하들에게 조금만 더 힘을 내라고 말을 하겠습니다.”
무사장은 말과 함께 다른 무사들과 일을 하기 시작했다. 돌을 고르고 운반하는 것은 마을 사람들이 합류해서 일을 돕고 있었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장수는 이어서 지지대를 만들고 있는 표사들을 바라보았다. 지지대를 만드는 일 역시 쉽지 않았다.
우선 단단한 나무를 이곳까지 가져와야 한다. 그리고 무너지기 쉬운 자리에 설치를 해야 하는데 하나하나가 어려웠다. 그리고 이 일 중 가장 어려운 부분이 위치를 잡는 것이었다.
그것은 마을 사람 중 나이가 제법 되는 노인이 위치를 정해주었는데 표사들은 노인이 자리를 정해주면 열심히 설치를 했다.
‘광산에는 정말 할 일이 많구나.’
단순히 광석을 캐는 일만 하는 게 아니었다. 광석을 캐는 일 말고도 정말 많은 일을 해야 했다. 그랬기에 생산량이 많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만약 장수와 무사들이 돕지 않았다면 시간이 많이 걸렸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목소리가 들렸다.
“소장주님! 소장주님!”
소장주라는 말에 장수는 급하게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산적 중 한 명이 급하게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장수는 급하게 산적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이십니까?”
“도망을 친 자가 있습니다.”
“도망이요?”
장수는 인상을 썼다.
도망자가 생길 것은 알았지만 막상 생기니 기분이 썩 좋지 않았던 것이다.
장수로서는 해줄 만큼 해준 것인데 도망을 치다니 화가 치밀었다.
“알겠습니다. 저 먼저 가겠습니다.”
“예. 그리고 도망자 중의 한 명이 두목입니다.”
“두목이요?”
두목이라는 말에 장수는 미간을 찌푸렸다.
가장 열심히 일을 하고 무공을 배우던 두목이 도망을 쳤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실제 일어난 일이었기에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 제가 먼저 가겠습니다.”
장수는 말과 함께 빠르게 광산 밖으로 달려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