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7편 - 도망자
밖으로 나가자 산적들이 두려운 표정을 지었다. 혹시라도 자신들도 피해를 볼까 봐 무서웠던 것이다.
장수는 그들의 표정을 살핀 후에 빠르게 말을 했다.
“어디로 도망을 쳤습니까?”
“저…… 저쪽으로…….”
방향을 가리키자마자 장수는 바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흔적을 살폈다.
‘한쪽으로 달려갔구나.’
추종술이란 혈교의 고수였던 장수에게 매우 필요했던 기술이었다.
사람을 죽이거나 흔적을 찾는 것은 혈교 시절부터 교의 중요한 인물이 될 때까지 써먹었다.
하지만 추종술이 가장 필요한 때는 역설적으로 쫓길 때였다. 쫓기는 순간에는 쫓는 사람의 입장이 되어 못 쫓아오게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추종술의 실력이 높아야 했다. 그랬기에 장수의 추종술은 뛰어났다.
장수는 달리면서 어느 순간 흔적이 세 군데로 나눠진 것을 발견했다.
‘여기서 나누어졌구나.’
흔적을 보면 좌측으로는 두 명, 우측으로는 두 명 그리고 앞으로는 세 명이 달려갔다.
그들은 쫓기듯이 정신없이 달려갔는데 아무래도 장수의 추격을 두려워한 듯했다.
적을 추적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목적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꼭 잡아야 하는 녀석이 있거나 아니면 전부 잡아야 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모두 잡아야 하는 상황이었고 최대한 움직이는 동선을 줄이기 위해 노력을 해야 했다.
‘우측으로 가자!’
우측으로 간 후에 다른 방향으로 간 녀석들을 잡기로 했다.
빠르게 달려가자 잠시 뒤에 산적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멈춰라!”
장수의 고함에 산적들은 도망을 치다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자신들을 이렇게 빨리 쫓아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
반항은 없었다. 장수의 무위를 본 적이 있기에 산적들은 기를 쓰고 도망을 치려고 했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장수는 가볍게 따라가 제압을 하는 것으로 산적들을 처리했다.
장수는 두 명을 점혈한 상태에서 갈라졌던 곳으로 돌아왔다. 추적을 할 때는 갈라진 곳으로 돌아와 다시 가야 한다. 보통 추적술을 어느 정도 아는 녀석들은 흔적을 지우는 경우도 있었기에 항상 조심해야 하기 때문이다.
장수는 풀숲 사이에 산적들을 던진 후에 가운데 길로 달려갔다. 그런데 상당히 먼 곳까지 도망쳤을 줄 알았던 산적들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싸우는 듯했다.
“돌아가야 한다.”
두목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산적들을 설득하고 있었다.
장수는 그 모습을 보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목이 도망간 줄 알았는데 사실은 산적들을 설득하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산적들은 고개를 흔들었다.
“이렇게 살 수 없습니다. 저희는 산적입니다. 소장주가 좋은 사람인 거 같지만 산적인 우리를 좋게 대할 리 없습니다. 그러니 이대로 도망가는 게 나을 거 같습니다.”
산적의 말에 두목은 잠시 생각을 하는 듯했다. 산적의 말이 맞기 때문이다.
사실 두목의 무위라면 산적들을 쉽게 제압할 수 있겠지만 산적들의 말이 어느 정도 맞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한 것도 있었다.
그때 장수가 앞으로 나섰다.
“다른 무사들과 동등한 대우를 해 드리겠습니다.”
갑작스럽게 장수가 나타나자 산적들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도망을 치려고 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장수가 두목을 제외한 다른 산적들을 제압했다.
두목은 놀란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맡겨주신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습니다.”
“괜찮습니다. 사실 이 정도 일은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아직 적응이 덜된 자들이 있는 게 당연한 것이지요. 어쨌든 수석무사께서 그들을 설득시켜 준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장수의 말에 두목은 잠시 생각을 하는 듯했다.
“이들은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잠시 교육을 시킬 겁니다. 그리고 일을 시켜야죠. 그래도 본가의 무사인데 심하게 할 수 있나요.”
장수의 말에 두목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로서는 동료였던 산적들이 걱정되었던 것이다.
두목도 산적들과 여기서 같이 일을 하면서 성격이 변했다. 예전에는 자기 잘난 맛에 살았지만 이렇게 광산 일을 같이하면서 동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장수에게 무공을 배우면서 그런 마음이 조금 더 강해졌다.
“알겠습니다.”
“어서 가시지요. 도망가는 본가의 무사들을 잡아야지요.”
장수의 말에 두목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장수와 같이 도망간 나머지 자들을 잡아왔다.
장수와 진자수 수석무사가 도망간 자들을 잡아오자 산적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들로서는 동료들에게 어떤 처벌이 내려갈지 걱정이 되었다.
사실 장수가 자리를 비우자 대부분의 산적들은 유혹을 심하게 받았다. 하지만 마교에 쫓기는 중인 그들이 돌아갈 곳은 없었다.
거기다 융준산에 자리를 잡은 산채도 불이 났기에 숨을 곳도 없었다.
더구나 이곳에서는 도망 다닐 이유도 없고 고강한 무공을 갖춘 소장주가 있었으며 그가 무공을 가르쳐 주기까지 했으니 그들로서는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사실 산적으로 어려운 일을 많이 겪다 보니 안주할 만한 곳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에 적응하지 못한 자도 있었다. 도망간 여섯 명이 그런 성격의 자들이었다.
순수한 산적인 그들은 자유를 원했고 기회가 생기자 도망을 쳤던 것이다.
장수는 잠시 도망쳤던 산적들을 바라보았다.
“이자들은 본가의 무사로서 허락을 받지 않고 근무지를 이탈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 합당한 벌을 받아야 합니다.”
장수가 도망간 산적들을 본가의 무사로 칭하자 산적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단 한마디 말이었지만 안심하게 만들어 주는 말이었던 것이다.
본가의 무사라는 말은 아직까지도 석가장의 무사로 인정해 주는 말이었다. 그것이면 충분했다.
도망간 자들도 무사로 인정해 주는 마당에 도망치지 않은 자들은 당연히 무사인 것이다.
장수는 산적들의 표정이 밝아지는 것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사실 산적들 중에는 순박한 자들도 있어 바로 적응한 자들도 있었다. 어쩔 수 없는 환경에 내몰려 산적이 된 경우도 있었던 것이다.
장수로서는 아직 이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 못했기에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었지만 본성이 나쁜 자는 없다는 생각을 했다.
도망친 자들도 이런 분위기에 익숙하지 못해서 적응을 못 한 거지 시간만 지나면 적응을 할 것이다.
장수는 천천히 잡힌 여섯 명의 산적들을 깨웠다.
그러자 도망치다 잡힌 산적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다가 고개를 숙였다. 그들은 깨어나자마자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장수는 산적 중 한 명을 보며 말을 했다.
“도대체 왜 근무지를 이탈했습니까?”
장수의 말에 산적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장수의 무위도 무섭고 사실 딱히 할 말도 없었기 때문이다.
장수는 어차피 산적의 말을 들을 생각이 없었다. 가볍게 벌을 내린 후 다시 일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근무지를 이탈했기에 벌을 내리겠습니다. 봉급을 깎겠습니다.”
장수의 말에 산적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리고 당장 벌을 안 받는다는 말에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나중에 급여를 받게 되면 다른 사람보다 적은 급여에 공포에 질릴 것이다.
장수는 손바닥을 쳤다.
“자, 이제 다시 일을 시작해야 할 거 같습니다.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산적들 몇 명이 도망가는 바람에 생산에 차질이 빚어졌다. 그랬기에 다시 밀린 업무를 해야 했다.
산적들은 밝아진 표정으로 광석을 분리하기 시작했다.
장수 역시 그런 산적들을 잠시 바라보았다가 다시 광석을 분리했다.
그렇게 한참을 일하던 장수는 이내 다시 산적들을 살폈다. 이제 더 이상 도망칠 생각은 안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문제가 있더라도 진자수 수석무사가 잘 처리할 것만 같았다.
장수는 상단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사실 장수는 책임자로 해야 할 일이 무척 많았다. 납기일에 맞추기 위해 광석 캐는 일을 도왔지만 상단의 단주로서의 일도 해야 했다.
장수가 상단이 있는 곳에 도착하자 하인들이 바쁘게 일을 하는 것이 보였다.
사실 여기서도 거래할 것이 있었고 물품관리도 해야 했다. 그리고 체계적으로 서류도 정리해야 했다.
장수는 천천히 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서류가 가득 쌓여 있는 것을 보았다.
당장 석가장에 고용된 식구들의 급여나 나갈 음식이나 필요한 도구에서부터 광산 일을 하는데 필요한 장비 소모품 등을 일목요연하게 서류로 정리해야 했다. 장수는 이것을 보고 홀로 정리를 해야 한다.
이 일은 소장주이자 단주로서 혼자서 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랬기에 누구에게 도움을 받을 만한 일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