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9편 - 혈교의 무사
언덕에 숨어 있는 자들을 장수는 진즉에 발견했다. 기감이 예민한 장수가 고수씩이나 되는 자들을 발견하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혈교구나.’
마교가 이런 바보 같은 짓을 할 리가 없었다. 혈교처럼 노리는 게 있는 분명한 자들이 쓸 만한 작전이었다. 더구나 숫자도 과분할 정도였다.
이 정도 상단을 상대하려면 고수 열 명만 있어도 충분했다. 그런데도 이십 명이나 동원한 것을 보면 혈교가 분명했다.
‘이를 어쩌지.’
상당히 애매한 일이었다. 고수 이십 명을 죽이면 아무래도 흔적이 남을 수밖에 없다. 천하에 어떤 상단이 고수 이십 명을 죽이겠는가?
우연히 상단에서 절정고수를 데리고 다니지 않는 한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니, 아무리 절정고수라 해도 이십 명이나 되는 고수를 상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동안에 상단은 박살이 날 것이다.
더구나 고수 이십 명을 장수가 쉽게 제압한다면 소문이 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입조심을 시킨다고 해도 여기 있는 인원만 해도 백 명이 훨씬 넘었다. 거의 이백에 가까운 입을 모두 막을 수는 없다.
더구나 혈교의 무사들이 눈으로 보였다. 당연히 일반 상단이 혈교의 고수 이십 명을 상대할 수는 없다. 아니,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일반 상단에서 고수를 이십 명이나 상대할 전력이 있다면 그것은 상단이 아니라 무림세가라 불릴 만하다.
더구나 수레에 실린 것은 철광석이었다. 물론 철광석이 돈이 안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고수 이십 명이나 고용하면서까지 가져갈 가치는 없었다.
그랬기에 장수는 난감했다.
‘차라리 녀석들의 실력을 보이지 말자.’
혈교의 고수는 보통의 고수와는 차원이 달랐다. 보통의 고수들보다 한두 수가 높았다.
그랬기에 장수 이외에 혈교의 무사들의 수준을 알만한 자가 없었다. 단지 움직이는 것을 보고는 훈련이 잘되었다는 것만 알 수 있을 것이다.
장수로서는 차라리 조금 힘들더라도 녀석들의 실력을 일반 무사 정도로 보이게 하면서 제압하는 게 더 나을 거라 생각했다.
장수가 앞으로 나서자 뒤를 이어 상단의 무사들과 표사들이 방어를 하기 위해 진을 짰다.
새로 들어온 신입무사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했지만 무사들과 표사들은 달랐다. 평소에 적이 나타나면 대응할 방법을 미리 만들어 두고 연습을 했다.
그런데 장수가 앞으로 나서자 무사장이 불안한 표정을 지었지만 원래 그의 실력을 알기에 말리지 않았다.
하지만 앞에 있는 자들이 모두 고수라는 것을 알았더라면 말렸을 것이다.
고수 이십 명이라면 절정고수라 해도 쉽게 제압할 수 없다. 그런 적들을 장수 혼자서 상대하기 위해 앞으로 나선 것이다.
혈교의 무사들은 장수가 앞으로 나서자 곧바로 처치하려고 했다.
그랬기에 선두의 두 명만 장수에게 달려들었고 나머지 인원은 상단의 무사들을 제거하기 위해 달려들었다.
“죽어라!”
달려들던 무사들은 들고 있던 도를 장수에게 휘둘렀다.
고수였기에 손속이 빠르고 정확했다. 그랬기에 장수의 목은 곧바로 하늘로 올라갈 듯이 보였다.
퍽.
단 한 방이었다. 장수가 양손을 썼지만 동시에 소리가 났기에 단 한 번 움직인 것으로 보였다. 놀랍게도 장수는 단 한 수에 혈교의 무사들을 제압했다.
그 순간 주변이 정적에 휩싸였다. 너무 의외의 일이 벌어졌기에 혈교의 무사들은 당황했다.
그에 비해 상단의 무사들은 긴장한 표정만 지었다.
상단의 무사들은 혈교 무사들의 실력이 고수라는 것을 알지 못했기에 장수가 쉽게 제압하는 것을 당연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하지만 장수로서도 단번에 두 명을 제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혈교의 대주는 장수가 만만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그랬기에 바로 표적을 바꾸었다.
“목표를 바꿔라!”
명령은 단 하나였다. 그리고 혈교의 무사들은 즉시 명령을 이행했다. 그들은 바로 장수에게 달려들었다.
장수는 성난 짐승처럼 달려드는 혈교의 무사들을 보고도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최대한 빠르게 적들을 상대해야 했다. 그래야 실력이 없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장수는 단전에 있는 내공을 순간적으로 모두 끌어들였다. 그리고 각 신체를 향해 폭발적으로 뿜어냈다. 그러자 온몸이 기로 가득 차는 것이 느껴졌다. 장수의 실력은 이전보다 훨씬 강해져 있었다.
순간적으로 무사 두 명이 장수를 벨 듯한 기세로 달려들었다. 그러자 장수는 빠르게 주먹을 앞으로 뻗었다.
쿵.
장수의 주먹이 가슴을 강타했다. 그와 함께 강한 충격을 받은 무사들이 그대로 뒤로 날아갔다.
쾅.
땅에 떨어지는 소리가 시끄럽게 사방으로 울렸다. 그와 동시에 다른 무사 네 명이 장수를 덮쳤다. 그 순간 장수의 몸이 번개처럼 빠르게 움직였다. 그러면서 네 명의 무사의 전신을 강타했다.
두두두두둑.
순식간에 여러 방의 주먹을 맞은 무사들은 의식을 잃었다. 그 순간 장수가 그들을 마치 걷어내듯이 손바닥을 움직이자 무사들은 그대로 땅바닥으로 나가떨어졌다.
순식간에 여섯 명을 제압한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남은 무사들은 열세 명이나 됐다.
그들은 장수가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 그대로 달려들었다.
사방에서 동시에 공격이 이루어진 것이다. 만약 장수가 아닌 다른 자였다면 이번 공격에 크게 곤란을 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는 바로 장수였다.
초절정고수인 장수의 눈에는 빈틈이 보였다. 장수는 바로 장풍을 날렸다.
펑펑.
소리는 두 번 났지만 실제로 여섯 방의 장풍이 무사들에게 날아갔다.
장수의 몸이 소리보다 더욱 빠르게 움직인 것이다. 그와 함께 장수의 두 팔이 크게 원을 그렸다. 그와 함께 무사들이 순식간에 쓸려 버렸다.
실로 전광석화라는 말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이십 명의 고수들을 장수 혼자서 순식간에 털어 버린 것이다.
장수는 편안한 미소를 지었지만 혈교의 무사들은 모두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자기들이 이렇게 쉽게 패배당한 게 믿기지 않았던 것이다.
보통 이 정도 실력 차이라면 스스로 실력을 인정할 것이다. 하지만 혈교의 무사들은 세뇌가 된 상태였다. 그리고 보통 이런 일에 참여하는 혈교의 무사들은 보통 때보다 더한 세뇌를 받기 마련이다.
그랬기에 실력 차이를 알면서도 맹목적으로 장수에게 달려들었다.
장수는 그 모습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꼈다.
‘어떻게 도와줄 수가 없구나.’
마치 과거의 장수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장수 역시 절정고수 때까지도 세뇌를 당했었다. 그리고 초절정고수가 된 이후에야 겨우 세뇌가 풀렸다.
이들 역시 자신의 의지가 아닌 타인의 의지로 움직이고 있었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렇다고 어떻게 도와줄 수가 없었다. 세뇌를 풀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휴…… 어떻게 한다?’
답은 하나였다. 고통 없이 죽여주는 수밖에 없었다.
산적들은 세뇌가 안 되었기에 수하로 삼을 수 있었지만 혈교의 무사들은 달랐다.
혈교의 세뇌를 푸는 방법이 분명히 있겠지만 지금의 장수로서는 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랬기에 결심을 해야 했다.
‘죽여야겠구나.’
죽이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장수의 두 주먹은 강철도 쉽게 부술 수 있을 정도였다.
더구나 전력으로 장풍을 쏜다면 강철도 뚫을 수 있는데 살과 피로 이루어진 사람의 몸을 죽인다는 것은 그에겐 너무도 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어려운 일이었다. 생명의 무거움을 잘 알고 있었기에 죽인다고 생각하자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하지만 더 이상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이들의 실력을 상단의 식구들이 안다면 곤란한 상황이 된다.
그러니 도와줄 수 없는 상황에서는 차라리 죽여주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더구나 포로로 잡아가 봤자 이들을 가둬둘 장소도 없고 이상한 소문만 돌 것이 뻔했다.
장수는 달려드는 무사들을 향해 손을 움직였다.
이미 장수에게 한 번 맞아서 기세도 사라지고 정상도 아닌 몸들이었다. 그랬기에 지금 상태에서 죽이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차라리 잡는 게 어렵지 죽이려고 마음을 먹으면 일은 쉬웠다.
장수는 보여주듯이 천천히 움직이면서 혈교의 무사들을 툭툭 쳤다.
보기에 혈교의 무사들이 일반 산적과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런 산적들에게 장수가 가볍게 친 것처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