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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고수-220화 (220/398)

220편 - 혈교의 무사

하지만 그 가벼운 동작에 장수의 기가 혈교의 무사의 몸으로 파고 들어가 심장을 멎게 했다. 실로 죽음의 주먹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게 장난 같은 싸움이 끝나자 혈교의 무사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이제 끝났습니까? 실력도 부족한 녀석들이 상단을 공격하다니 이해가 가지 않는군요.”

처음의 기세는 제법 봐줄 만했지만 두 번째 공격은 그리 강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무사장은 이들을 일반 산적으로 생각했다.

무사장의 말에 장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이거 너무 싱거워서…….”

말은 그렇게 했지만 장수는 가슴이 아팠다. 비록 전생에서는 아무리 많은 사람들을 죽여도 가슴이 한 번도 아픈 적이 없었고 이번 생에서도 사람을 죽인 적이 있었지만 지금처럼 가슴이 아픈 적은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인간적인 면이 살아나고 있었다. 그랬기에 장수는 타인의 죽음에 아팠다.

무사장은 장수의 말에 미소를 지었다. 사실 장수에게 얻어터진 산적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도 얻어터지면서도 장수를 공격한 것을 보니 의지는 대단한 거 같지만 그것뿐이었다.

무사장 혼자서 싸웠다 해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만큼 별거 아닌 자들로 느껴졌다.

그렇게 웃으며 산적들의 몸을 살피던 무사장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런……. 소장주님……, 산적들이 죽었습니다.”

제법 강한 공격이었지만 죽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산적들이 모두 죽어 있었다.

그제야 표두가 달려와 산적들의 상태를 살폈다.

“이런 약골들이 산적질을 한다니 참나…….”

어이가 없었다. 산적들이 먼저 상단을 습격해 놓고 이렇게 쉽게 죽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표두로서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장수는 짐짓 모르는 척하며 표두에게 말을 걸었다.

“모두 죽었습니까?”

“예. 그래도 싸우려는 기세는 좋았는데. 이렇게나 약한 자들은 처음 봅니다. 아마 우리를 습격하기 전에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한 모양입니다.”

표두의 말에 무사장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체형을 보니 굶은 것처럼 보였다.

사실 이들은 고수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 험난한 수련을 쌓았기에 몸이 날씬했다. 그런 것을 못 먹어서 힘을 못 썼다고 하니 이들이 들었다면 억울해했을 것이다.

“소장주님, 어차피 소장주님이 아니었다 해도 죽었을 자들입니다. 그러니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표두로서는 소장주를 위로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살살 때렸는데도 죽은 것을 보니 소장주 잘못이 아니었다. 거기다 남을 해치는 산적 일을 시작했으니 죽는다 해도 그리 억울할 거 같지는 않았다.

표두의 말에 장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로잡고 싶었는데…….”

“그럴 수도 있었겠지만 이들이 너무 약했습니다. 그래도 다음번 산적들은 저희가 잡겠습니다. 그러니 다음에는 소장주님은 쉬고 계십시오.”

만약 이번에 소장주가 나서지 않았다면 상단은 몰살당했을 것이다. 그만큼 고수의 실력은 대단한 것이었다.

하지만 상당한 경험이 있는 표두와 무사장도 헷갈릴 정도로 장수의 수법이 고명했다.

더구나 마지막 수법은 초절정고수의 실력을 발휘했기에 눈치챌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장수는 고개를 숙였다.

‘그래. 이 방법이 최선이야.’

방법이 없었다. 다른 좋은 방법이 있다면 그 방법을 썼을 것이다.

하지만 세뇌를 당한 무사들을 상대하는 방법은 따로 없었다. 그랬기에 장수로서는 최악의 방법을 사용한 것이다.

무사들과 표사들은 땅을 파서 시체를 파묻었다. 그때 산적들이 쓰던 물건을 챙기려는 자들을 장수가 말렸다.

“그냥 가지고 있는 것까지 묻어 주십시오.”

“예?”

장수의 말에 무사들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원래 산적들이 물건 중 돈이 될 만한 것들은 가져가 쓰는 게 강호의 법이었다.

하지만 장수는 혈교에 대해 잘 알았다.

만약 저들을 죽인 자가 물건을 가지고 가 전당포나 상점에 팔면 바로 혈교의 정보원에게 노출이 된다.

그렇게 되면 혈교에 정보만 가져다주게 되는 것이다. 그랬기에 혈교의 무사들을 죽이더라도 물건을 가져서는 안 되었고 만약 가진다면 남들 눈에 띄지 않는 게 좋았다.

무사들은 서로를 바라보다가 이내 산적들의 물건까지 땅에 파묻었다. 불만이 없을 수 없지만 소장주의 말이었기에 들을 수밖에 없었다.

장수는 그 사이에 주변을 뒤졌다. 혈교의 표식이 남지 않았을까 해서 살핀 것이다.

다행히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주변의 돌과 나무에 남긴 흔적이었는데 자세히 보면 동물의 흔적 같아 보이지만 사실 혈교의 비밀문자였다.

이 흔적은 석가장의 상단과 만났다는 표식이었다.

석가장의 상단과 만난 흔적만 있고 그 뒤 흔적이 없으니 나중에 찾으러 온 자들은 석가장에서 나온 상단이 고수 이십 명을 죽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장수의 두 주먹이 움직이는 순간 흔적은 사라졌다. 이로써 혈교의 고수 이십 명이 어떻게 죽었는지 알 수 있는 사람은 없게 됐다.

장수는 다시 한 번 샅샅이 뒤진 후에 한숨을 내쉬었다.

‘휴…… 겨우 한숨 돌렸구나.’

이것으로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혈교에서 분명 의심을 할 것이 분명했다.

석가장의 상단을 공격하라고 무사들을 보냈는데 사라졌으니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시간을 벌 수 있으리라.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장수에게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나저나 어디서 알려줬을까?’

분명 도시를 떠날 때 정보가 알려진 것이 분명했다.

이십 명이나 되는 혈교의 고수들이 이곳에서 괜히 기다렸을 리는 없었다.

최근에 상단의 움직임은 줄어들었고 정보가 있어야 이렇게 기다릴 수 있다. 분명 도시에 상단이 떠나는 것을 알려주는 자들이 있을 것이다.

‘찾을 수 있을까?’

장수는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흔들었다.

혈교의 정보원들은 철저한 점조직이었다. 그랬기에 장수가 아무리 알고 싶다고 해도 알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고생을 해봤자 찾기 힘들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찾아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움직일 때마다 정보가 샐 것이고 그렇게 되면 석가장이 위험해진다.

‘어떻게든 찾아야겠구나.’

부모님을 비롯한 석가장 전체가 위험에 처하는 것은 보기 싫었다.

석가장을 보호해야 했다.

“소장주님, 준비가 끝났습니다.”

석가장에 소속된 자들은 지금 만난 자들이 일반 무사라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장수는 그것만으로는 안심이 되지 않았다. 무사장에게 다가가 말을 했다.

“죄송하지만 무사들에게 입조심을 시켜주십시오. 아무래도 이십 명이나 되는 산적들을 처치한 게 마음에 걸립니다.”

장수의 말에 무사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사실 너무 허약한 자들이라 말하기에도 창피한 자들입니다. 그러니 부하들도 말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무사장이 허락하자 장수는 이어 표두와 진자수 수석무사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자 그들 역시 호쾌히 수락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감사합니다. 저는 지금도 제 손에 산적들이 그렇게 쉽게 죽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습니다.”

무사들도 장수가 사람을 죽인 적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내세우고 싶지 않다는 데 말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더구나 소장주 혼자서 한 싸움이었다.

그랬기에 소장주가 원한다면 입을 다물어 주는 것이 예의였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소장주님이 죽이지 않았다면 어떤 흉악한 짓을 하고 다녔을지 모르는 자들입니다. 그러니 잘하셨다고 생각하시고 마음을 다잡으십시오.”

“예. 그럼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예!”

* * *

출발하고 다시 며칠의 시간이 지나자 양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양현에 도착하자 기다리고 있던 석가장의 식솔들이 상단을 반겼다.

“소장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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