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편 - 혈교의 무사
“단주님.”
단주는 많이 나아진 모습으로 장수를 맞이했다. 그리고 직접 상단을 챙기기 시작했다.
“날짜가 많이 늦으셨습니다.”
“그게 일이 좀 있었습니다.”
원래라면 며칠 전에 도착했어야 했다. 하지만 산적들의 방해로 일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장수는 산적들 얘기를 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미 석가장의 식솔이 된 상황에서 안 좋은 얘기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거기다 아무리 이제는 석가장의 무사라고 해도 과거의 일을 얘기하면 기분 좋을 게 없었다.
단주는 장수와 이야기를 하다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무사들의 숫자가 많아진 거 같습니다.”
단주의 말에 장수는 미소를 지었다.
“요즘에 산적들이 많다고 해서 따로 무사들을 더 고용했습니다.”
이번 상행의 단주는 소장주였다. 그랬기에 장수가 필요로 의해서 고용을 했다고 하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랬기에 단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군요.”
“예. 그런데 무슨 일이 없었습니까?”
장수의 말에 단주는 웃으며 말했다.
“마침 철광석이 떨어져 곤란하던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소장주님이 때마침 철광석을 가져왔으니 다행입니다. 어서 빨리 철을 녹여야 할 거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마침 시간이 있어서 대형 화덕이 만들어진 상황입니다. 그러니 그곳으로 수레를 가져가면 될 거 같습니다.”
광석에서 철을 분리하는 것은 일반 화덕에서도 가능한 일이었지만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랬기에 광석을 분류하는 대형 화덕을 따로 만들어야 했다.
단주의 말에 장수가 미소를 지었다.
“생각보다 빨리 만들어졌습니다.”
“예. 그렇지요. 이번에는 방해도 없고 일손도 많아서 한결 편하게 일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양현의 기존 세가들이 방해를 많이 했지만 이제는 그들의 세가 기울었기에 방해를 하는 자들이 없었다.
더구나 양현의 떠오르는 석가장과 관계를 맺고 싶어 하는 자들이 대부분이라 이번에는 일을 빠르게 진행할 수 있었다.
공단으로 가니 전보다 훨씬 커진 상태였다.
전에는 손이 부족해 못했던 일까지도 이번에 마무리 지은 것처럼 보였다.
“단주님, 이게 다 뭡니까?”
장수로서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공단이 원래 생각보다 훨씬 커져 있었다. 더구나 사람이 많이 다니는 것이 번화한 것으로 보였다.
“해야 할 일이 많아서 확장을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더 많은 확장을 해야겠지요. 우선 철광석이 중요하니 이쪽으로 오십시오.”
화덕이 있는 곳으로 가자 한쪽에 대형 화덕이 모습을 드러냈다. 보통의 화덕보다 배는 커 보이는 화덕은 위용이 대단했다.
그때 장인들이 나타나 수레를 가져온 하인들을 재촉했다.
“빨리빨리 일을 하게. 자네들 때문에 일이 지연된 것을 모르는가?”
장인들의 기세에 하인들은 영문도 모르고 빠르게 일을 진행해야 했다.
하지만 무거운 광석을 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랬기에 보다 못 한 장인들이 나섰다.
“왜 이렇게 힘이 없어? 피죽도 하나 못 먹었나!”
장인들은 말과 함께 보기에도 무거워 보이는 광석들을 빠르게 운반했다.
그렇게 잠시 시간이 지나자 수레 하나에 실린 광석을 모두 옮길 수 있었다.
장인은 화덕에 담긴 양을 살피더니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자들이 빠르게 석탄 같은 연료를 화덕에 넣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철을 추출할 준비를 하는 듯했다.
장수로서는 모든 일이 신기했다.
그리고 손이 근지러운 것이 저들의 틈에 끼어 같이 일을 진행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하지만 지금 끼어들면 방해만 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 구경만 해야 했다.
“자, 시작하자고!”
말과 함께 화덕에 불을 붙였다. 그러자 강한 열기와 함께 화덕에 불이 붙었다.
화덕의 온도를 유지시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계속해서 공기를 주입시켜줘야 했기에 장인들은 잠시도 쉬지 않고 기이한 도구를 이용해 화덕에 공기를 주입시켰다.
아마 그들이 만든 도구인 듯했는데 공기가 빠르게 주입되는 게 보였다.
장수는 그런 모습을 넋을 놓고 쳐다봤는데 단주가 어깨를 쳤다.
“소장주님, 죄송하지만 지금 계속 쳐다볼 시간이 없습니다.”
단주는 미안한 표정을 지었는데 사실 장수는 해야 할 일이 매우 많았다.
그랬기에 지금까지 구경을 할 수 있게 해준 것도 단주가 배려를 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 처리해야 하는 일이 많았기에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할 수 없었다.
그제야 장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금 당장 해야 할 일들이 생각났다.
상행을 하면서 있었던 일을 정리해야 했으며 양현에서 못한 일도 마무리 지어야 했다.
그뿐 아니라 새로 설비가 증대된 것에 대해서도 인수인계를 받아야 했으며 새로 고용한 무사들에 대한 것도 해결해야 했다.
‘이거 참…… 나는 무인이 아니구나.’
장수는 자신이 무인이 아니라 상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인이란 무만을 생각하기에도 모자란 자를 일컫는 말이었다. 무인은 먹고살기 위해 다른 직업을 가진다고 해도 무를 추구하는데 방해받지 않도록 한다.
그런데 이렇게 무에 대한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상인으로서의 일을 하니 장수로서는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하지만 뭐가 낫다 안 낫다를 따질 수가 없었다. 일장일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존경하는 스승인 유운을 위해서라면 은자를 많이 벌어야 했다.
“알겠습니다, 단주님.”
장수는 말과 함께 단주와 함께 집무실로 향했다.
집무실에 가자 서류가 한가득 쌓여 있었다. 물론 단주 역시 최선을 다해 업무를 처리했겠지만 역부족이었을 것이다. 그랬기에 서류가 많이 남아 있었다.
“이…… 이건…….”
“소장주님께서 처리해야 할 서류들입니다.”
장수는 알고 있었지만 혹시나 해서 되물었다. 하지만 역시 장수가 처리해야 하는 서류가 맞았다. 이렇게나 많다니 며칠 한다고 될 양이 아니었다.
“상당하군요.”
“원래는 더 많았지만 제가 최대한 처리할 수 있는 것은 했습니다. 그러니 소장주님께서 나머지를 처리하셔야 합니다.”
단주의 성격상 웬만한 일은 처리했을 게 분명했다.
그 상태에서도 저 정도 양이라니 장수로서는 한숨이 나왔다. 차라리 초절정고수와 싸우지 서류와 싸우는 것은 못할 짓이었다.
“휴…….”
“어서 시작하십시오. 조금이라도 서두르셔야 좀 더 빨리 끝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시급을 요하는 서류도 있으니 어서 하십시오.”
“알겠습니다.”
장수는 자리를 차지한 채 서류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서류를 확인하자 장수는 그동안 양현의 석가장이 세력을 얼마나 확장했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서류상에 나오는 이익만으로도 엄청났고 주요 상권도 상당수 잡아먹은 걸로 보였기 때문이다.
거기다 마교 덕분에 많은 상가가 망하면서 그에 따른 이권이 자연스럽게 석가장에 몰렸다.
장수는 서류를 보다가 아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거 너무 빠르구나.’
해도 정도가 있었다. 너무 빠른 성장은 주위의 시기를 불러올 수 있다.
더구나 상대해야 할 분명한 적이 있었다.
차라리 중원의 십대상단이라면 충분히 싸워볼 만했지만 적에게는 초절정고수나 절정고수가 넘쳐났으며 주인이 화경의 고수인 혈교였다.
혈교가 언제 자신을 공격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너무 이목이 집중되는 행동은 곤란했다.
더구나 양현에는 군대가 주둔하고 있다. 원래라면 다른 지역으로 가야겠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군대는 이곳을 기점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분명 장수와 관련이 있는 것이 분명해 보였지만 그는 더 이상 군대는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군대와 관련되면 장수로서는 큰 이득을 볼 수 있다. 그만큼 군에서 장수에게 바라는 것이 많았기에 손해를 보면서도 인연을 만들려고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