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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고수-234화 (234/398)

234편 - 철을 추출하다

단주의 말에 장수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혼례라니 그에게는 너무 빠른 말이었다.

더구나 장수는 무인이었다. 무인에게는 가정은 무거운 족쇄나 마찬가지였다. 무예의 길은 모든 것을 끊어야 이룰 수 있는 길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가정을 가지라는 것은 무공을 더 이상 익히지 말라는 것과 마찬가지 말이었다.

“무엇을 그리 놀라십니까? 이미 전에도 말을 하지 않았습니까?”

이미 단주가 전에도 운을 띄웠었다. 하지만 워낙 바빴기에 넘어간 것인데 그것을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서 빨리 성혼을 하셔야 합니다. 가주님께서도 소장주님이 한시라도 빨리 가정을 가지시기를 원하십니다.”

가주라는 말에 장수는 아련함이 밀려왔다.

아버지는 정말 좋은 분이었다.

장수가 전생에 고아였었기에 그런지 더욱 아버지의 정을 강하게 느꼈다.

더구나 떨어져 있어서 그런지 새삼 아버지가 보고 싶었다.

“아버지가 그러십니까?”

“저 역시 이곳에 있느라 직접 대화는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따로 공문이 올 때마다 혼례에 대한 이야기가 직접적으로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가문의 원로들 역시 소장주님이 한시라도 빨리 혼례를 치르기를 원하십니다.”

“알겠습니다.”

장수로서는 대답만 하고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로서는 혼례라는 게 피해야 할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준비한 게 있습니다.”

단주는 말과 함께 손뼉을 쳤다. 그러자 하인들이 초상화를 가지고 왔다.

“이…… 이게 무엇입니까?”

“선을 보기 원하는 처자들의 초상화입니다. 그리고 밑에 있는 것은 가문의 약력인데 꼼꼼히 보셔야 합니다. 처자가 아무리 아름답다 하더라도 가문이 별로면 보실 필요가 없습니다. 여기에 초상화를 들고 온 처자들은 그래도 어느 정도 자격을 갖춘 자들이지만 소장주님께서 자세히 보셔서 이 가운데에서도 쳐 내셔야 합니다.”

장수로서는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지금 들어오는 초상화만 해도 이십 개가 넘었다.

그런데 아직도 끝이 나지 않은 것을 보니 많은 초상화가 남은 듯했다.

“나중에 보면 안 되겠습니까?”

“안 됩니다. 혼례를 매우 중요한 일로 어서 빨리 처리해야 하는 일입니다. 사실 지금도 늦은 것입니다. 가주님 이하 식솔들은 소장주님이 올해 안에 자손을 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황당한 말이었다.

장수로서는 자신이 아기를 낳는다는 것이 상상이 되지 않았다. 아니, 거부하고 싶었다.

장수는 초상화를 뒤적이는 척하며 단주에게 말을 했다.

“맘에 드는 여인이 없습니다.”

장수의 말에 단주는 미소를 지었다.

“마음에 들지 않아도 상관이 없습니다. 사실 결혼이라는 것이 꼭 마음에 들어서 하는 게 아닙니다. 사랑이 없어도 같이 살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원래라면 가문이 정해주는 상대와 결혼하면 되는 것이지만 이번에는 가주님께서 특별히 소장주님이 원하는 여성을 찾으라고 해서 이렇게 선택권이 생긴 것입니다. 그러니 빨리 찾지 않으면 가문이 정해주는 상대랑 결혼하셔야만 합니다.”

단주의 말에 장수로서는 황당했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더구나 장수가 찾지 않아도 강제로 결혼을 해야 한다니 기가 막힐 뿐이었다.

“휴…… 지금은 볼 기분이 아닙니다.”

장수는 찾다가 포기했다. 사실 그는 여자와 관계를 한 적은 전생에 여러 번 있었지만 결혼을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런 상태였기에 지금 딱히 결혼을 하고 싶은 마음이 안 들었다.

더구나 지금처럼 혼란한 시기에 결혼을 해야 하는지도 의문이었다.

단주는 장수의 표정을 살피다 하인들에게 손짓을 했다. 그러자 하인들이 초상화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알겠습니다. 소장주님이 원하신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날 때마다 보시는 게 소장주님을 위해서 좋을 것입니다.”

단주의 말에 장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이제 끝인가요?”

“아닙니다. 다음번 상행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어야 합니다. 이제 이곳 양현도 어느 정도 안정을 찾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곳은 이대로 두고 다른 도시로 상행을 떠나야 할 거 같습니다. 사실 이곳에 이렇게 있는 것도 생각보다 오래 있었던 것입니다.”

단주의 말이 맞았다.

사실 단주나 장수 둘 다 양현은 상단이 교역을 위해 잠깐 들리는 곳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렇게 큰 의미가 없는 곳이었지만 혈교 덕분에 사정이 많이 바뀌었다.

전리품을 마땅히 처분할 수 없었기에 양현에서 창고를 빌리고 상가를 열었고 그러면서 대장간을 열고 제품을 생산하면서 석가장에서 중요한 사업장으로 바뀌었던 것이다.

사실 이 정도 규모라면 석가장 입장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규모였다.

더구나 이곳은 다른 사업장과는 다르게 군의 보호도 받을 수 있고 후에 군과 관련된 납품도 받을 수 있기에 성장력이나 잠재력이 뛰어나다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곳에서 너무 오래 머물러 있었다.

석가장이 장수에게 상단을 맡긴 것은 은자를 벌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경험을 쌓게 하기 위해서였다.

장수는 차기 석가장의 가주였다. 그랬기에 젊을 때 그에 맞는 경험을 쌓아야 했다.

그랬기에 다소 과분할 정도의 투자를 하기도 했고 비정상적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장수의 말을 들어주었다. 모두 후계자 수업 때문이었다.

그랬기에 양현지부가 안정을 찾은 이상 상행을 떠나야 했다.

장수는 단주의 말에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이곳도 안정이 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런데 벌써 상행을 가려고 하는 것입니까?”

“어쩔 수 없습니다. 이미 석가장에서도 그렇게 결정을 내렸고 소장주님께서는 더 배우셔야 합니다. 그리고 호북에 있는 석가장의 사업체를 두루 경험하셔야 후에 가주의 자리를 물려받을 때 가업을 잘 이을 수 있습니다.”

가업이라는 말에 장수는 부담감을 느꼈다. 그로서는 가업을 잇고 싶은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 언제쯤 생각하고 계십니까?”

장수의 말에 단주는 웃으며 말을 했다.

“늦어도 다음 달에는 상행을 떠나야 할 거 같습니다.”

장수는 고개를 흔들었다.

“불가능합니다.”

“예? 무슨 이유이십니까?”

“아까 이길영 장군님이 왔다 가셨습니다.”

“아, 그러셨군요.”

장수는 잠시 생각을 했다.

‘비밀이라 했으니 따로 말을 하면 안 되겠구나.’

공주가 여행을 간다는 것은 사실 그리 큰 비밀이 아니었다. 이미 구체적인 계획을 잡은 것을 보면 힘 있는 사람들은 모두 그 정보를 알고 있을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함부로 이야기할 성질의 것은 아니었다. 단주에게 말을 하면 단주는 석가장에 말을 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후에 문제가 생길 수 있었다. 이런 이야기는 후에 하는 게 나았다.

“오셔서 한 가지 부탁을 했습니다. 그 일 때문에 제가 한동안 떠나 있어야 합니다.”

단주는 한순간 말을 못했다. 이미 계획을 짰는데 엎어지게 된 것이다.

“무슨 부탁이십니까?”

“그게. 어딘가로 떠나야 하는 것입니다. 매우 중요한 일이기에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이길영 장군은 매우 높은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지만 부탁을 주고받는다는 것은 상당한 신뢰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지금 후계자 수업 때문에 가장 중요한 시기인데 이길영 장군과 함께 어딘가로 간다는 것이 단주로서 매우 불만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길영 장군과의 관계도 어긋나서는 안 되었기에 딱히 안 된다고 말을 할 수도 없었다.

“인맥이라는 게 중요한 것이죠. 이길영 장군님이 소장주님을 매우 아낀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니 그분의 말이라면 따라야겠지요.”

이길영 장군과의 인맥을 위해서 일부러 석가장에서 만들어줘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인맥을 쌓을 기회가 있다면 어떻게든 만들어야지 생긴 기회를 거절할 필요는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래서 그때까지 미리 업무를 해놔야 합니다.”

단주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장수가 이어서 한 설명을 들으니 이길영 장군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서 상당히 나가 있어야 했기에 개인 시간이 없을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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