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6편 - 8권 - 상인
그들이 원하는 대로 토벌을 했다고 할지라도, 성공했을 지는 미지수다. 실패할 수도 있다.
사실 어쩌다 한번 산적을 잡는 것이지, 평상시에는 못 잡을 때도 많았던 것이다.
이길영 장군은 그것을 생각하고 움직였을 것이다.
하지만 좀 더 깊이 생각하면 답이 나온다.
현재 양번의 상가들은 자금이 한계까지 바닥난 상태다.
지금 망할 위기에 처한 곳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랬기에 대부분의 상가가 이번 토벌에 사력을 걸고 있는 것이다.
은자를 벌 일도 최근에 거의 없었기에, 그들은 모든 것을 걸고 이번 토벌에 합류했다.
그러니 토벌대가 토벌을 하기는커녕 아예 토벌을 할 생각조차 없어 보이니, 상인들로서는 화가 날만 했던 것이다.
장수는 주름진 얼굴의 노상인을 바라보았다.
그는 일그러진 노상인의 얼굴을 보고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하면 저들을 도울 수 있을까?’
장수는 저들을 돕고 싶었다. 같은 상인으로서의 유대감이 아닌, 같은 인간으로서 동정심이 든 것이다.
그는 그들을 바라보기만 해도 가슴이 아파 어떻게든 돕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장수가 도와줄 방법이 없었다. 품속에 은자와 전표가 있지만, 그것을 다 털어봤자 도움이 안 될 것은 분명했다.
그리고 군대라고 딱히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바로 토벌이다.
장수는 무사에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말씀 감사했습니다.”
장수의 말에 무사는 고개를 숙인 후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장수는 마지막으로 밖을 보았다. 수려한 자연경관이 펼쳐져 있었다.
양번에서부터 호북을 벗어나 하북에서 한참을 올라왔으니 상당한 시일이 지났을 것이다.
장수는 문득 좋은 경관을 보지도 못하고 지낸 것이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공수련만 하는 게 좋은 일은 아니구나.’
사실 경치야 전생에서도 많이 보았다.
하지만 항상 쫓기는 처지였기에 느긋하게 감상할 기회가 없었다.
그에 비해 이번 생에서는 쫓거나 쫓기는 생활을 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언제나 자연경관을 감상할 기회가 충분했다.
장수는 수련을 하다가 시간이 날 때나 혹은 마차를 둘러싼 천을 살짝 걷기만 해도 언제든지 볼 수 있었던 경치를 보지 않은 것을 약간 후회했다. 그가 그런 생각을 할 만큼 경치가 아름다웠다.
산은 높고 웅장했으며 강은 맑고 고요했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볼만한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런 좋은 경치를 지금까지 안 본 것이다.
“앞으로는 주변도 봐야겠구나.”
무공이 중요하다. 하지만 이번 생에서는 자연을 감상하는 여유를 가지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아 보였다.
장수는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익숙한 발걸음으로 이길영 장군이 있는 막사로 걸어갔다.
경계를 서고 있던 병사가 이번에는 장수를 알아보고 길을 비켜주었다. 저번에 그런 소동을 벌였으니 못 알아보는 쪽이 이상했다.
막사로 가자 이길영 장군이 미소를 지으며 장수를 반겼다.
“오셨습니까? 대협. 그래, 하던 일은 잘되셨습니까?”
첩자를 가리키는 소리다. 이길영 장군은 장수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던 것이다.
아니, 안 믿었는지도 모른다. 그냥 인사치레로 한 말인지도 몰랐으나, 시간을 오래 끌어봤자 좋을 게 없다고 생각한 장수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렇습니다. 이번에 심각한 문제를 하나 알게 되었습니다.”
그 말에 이길영 장군은 놀란 표정으로 장수를 보았다.
“무슨 문제입니까? 설마 마교의 첩자를 발견했습니까?”
이길영 장군은 장수가 마교의 첩자나 그에 상응하는 움직임을 발견했다고 생각했다.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 지금 상단의 분위기를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상단이요?”
이길영 장군은 황당해했다.
사실 장수가 초절정고수이니까 이렇게 따로 만나지, 단순한 상인이라면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이길영 장군에게 있어서 상인이란 필요할 때 자금을 주는 자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랬기에 그는 병사, 보급품 관리는 세세하게 신경을 썼지만, 상인들은 거의 관심 밖이었다.
“그렇습니다. 상단에 대해 말하고 싶습니다.”
“대체 무엇입니까?”
“현재 상인들의 불만이 보통이 아닙니다.”
“상인들의 불만이라고요?”
이길영 장군은 잠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상인의 불만과 자신이 무슨 상관이냐는 표정이었다.
“그렇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렇습니까?”
“상인들도 상황을 보고 토벌대가 산적들을 토벌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안 모양입니다.”
“그래서요?”
이길영 장군은 장수에게 자신이 지금 왜 이런 질문을 듣고 있는지를 물어봤다. 장수였기에 참고 들어줬지, 만약 장수가 아니었다면 더 이상 들어주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것 때문에 불만이 있습니다.”
“토벌이 정해놓고 하는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사실 운이 따르는 않으면 산적을 발견하지 못할 수도 있고, 상황이 여의치가 않으면 피해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에 불만이 있다니, 이해가 가지 않는군요.”
상인들은 전리품 때문에 군대를 따라가겠다고 나선 것이다. 하지만 그에 대해 군대와 계약을 따로 하지는 않았다.
관례상 용납해 주는 일일 뿐이다. 상인들 역시 군과 관련된 물품을 팔기로 계약하고 이번 토벌에 참여한 것이었다.
그랬기에 이길영 장군은 상인들과의 관계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장수는 잠시 한숨을 내쉬었다.
“장군님, 그게 그렇게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현재 양현의 사정이 매우 좋지 않습니다. 이번에 참여한 상단들은 이번 토벌에서 얻을 전리품에 큰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전리품 매매를 통해 어려운 사정을 면하려는 상단이 대부분입니다.”
장수의 말에 이길영 장군은 한숨을 내쉬었다.
“무사님도 아시겠지만 현재 군대는 가능한 빨리 임무지로 가야만 합니다. 조금도 지체를 할 수가 없습니다. 상단들을 위해서 토벌을 할 수 없음은 물론이구요.”
토벌은 쉬운 일이 아니다. 미리 계획을 짜고 진행을 해야 한다. 그런 일이니만큼, 상단들을 위해 토벌을 하는 것은 불가능, 그 자체다.
장수는 잠시 생각을 했다.
‘이대로 공주가 있는 수도로 간다면 이번에 참여한 상단들이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군대에 속한 병사들에게 자금이 있을 리가 없다. 병사들 역시 산적들을 토벌하는 과정에서 수입을 얻는 것이고, 군대 역시 전리품을 획득하는 과정에서 자금을 마련한다.
사정이 이러니, 산적을 토벌하지 않는 이상, 상단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이 개선 될 리가 없다.
“그래도 사정을 봐주십시오. 지금 참여한 상단들에게 자금이 유통되어야 양헌의 지역 발전이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그렇게 돌고 돈 자금이 다시 군대로 들어옵니다. 상단들의 어려움을 방관하다가는 결국 군대가 피해를 입게 될 것입니다.”
장수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이길영 장군은 잠시 생각을 하다가 말했다.
“죄송하지만, 원래부터 토벌이 계획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군대는 어떻게 되든지 간에 날짜에 맞춰 수도에 도착해야 합니다. 만약 그걸 이루지 못한다면 저를 포함한 간부들이 형벌에 처하게 됩니다.”
각 부대에는 완수해야 할 임무가 있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
이길영 장군도 할 수만 있다면 토벌을 하고 싶다.
토벌에 성공하면 자신의 공도 커지며, 뒤로 들어오는 자금도 많아진다.
자신에게도 큰 이익이다.
하지만 자신의 이익을 위해 군을 사용할 수는 없다.
거기다 미리 계획을 하지 않았기에, 어떤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장수는 잠시 생각을 했다.
‘어떻게든 방법이 있을 텐데…….’
상단과 군대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리고 상단에 자금이 생겨야 남을 도울 여력이 생기는 것이다.
상단들은 그동안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면서 자금이 말라버린 상태이다.
이런 상태에서 아무런 성과 없이 수도로 간다면 상단들은 큰 피해를 입을 것이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