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7편 - 8권 - 상인
그만큼 부대를 따라다니는 일은 자금이 많이 든다.
더구나 이곳에 있는 상단들은 군대가 북경으로 간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만약 알고 있었다면 양헌과 북경에서 필요한 물자를 매입해 큰 이문을 남겼을 테지만, 지금은 그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상단들은 순수하게 토벌전에서 얻을 이익만 생각하고 그에 맞춰서 준비를 해왔다. 그랬기에 큰 피해가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가뜩이나 상단들이 어려운 상황이다. 그래서 불만이 유난한 것이다.
그러나 이길영 장군의 지금 반응으로 보아서 아무리 상단이 항의를 해도 대책을 세우지 않을 것 같다.
“제가 도울 테니, 토벌을 하면 안 되겠습니까?”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근처에 있는 산적에 대해 알려주시면 제가 토벌을 하는데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예?”
이길영 장군은 당황했다.
그만큼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다.
“저도 산적을 토벌하는데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일정이 바쁘시더라도 다시 생각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발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이길영 장군은 잠시 생각을 했다.
‘절정고수가 도움을 준다면 토벌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절정고수의 위력은 엄청난 것이다.
더구나 이길영 장군이 그 위력을 자신의 눈으로 직접 목격했다.
그는 장수의 실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장수의 도움만 있다면 산적들을 쉽게 토벌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현재 수도로 가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이길영 장군은 사령관이다.
임무에 지장을 주지 않는 선에서 자의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몸이 날랜 병사들을 뽑아 토벌을 보내고, 본대는 수도로 보내면 그렇게 큰 문제는 없을 듯이 보였다.
인근에 거주하는 산적들의 위치도 어느 정도 알고 있다.
토벌대를 하면서 호북의 산적들만 토벌하는 것이 아니다.
민원이 많이 들어온다면 인근의 산적들도 같이 처리를 해야 한다.
더구나 산적을 토벌한다면 항상 만성적으로 부족한 전비도 어느 정도 해결이 될 것이다.
어차피 공주를 호송하는 동안 필요한 자금 때문에 이길영 장군도 골머리를 앓는 중이었다.
토벌을 한 번이라도 더 한다면 큰 이익이었던 것이다.
“대체 왜 산적들을 토벌하시는 겁니까?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이길영 장군은 의아해했다.
그의 입장에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토벌이 장수에게 도움이 되어 보이지 않았다.
장수는 겨우 마차 한 대만을 가지고 온 상태였다.
전리품을 챙길 생각이었다면, 마차를 한 대만 가지고 오지 않았을 것이다.
마차 한 대는 산적 토벌로 얻는 은자를 채우기에도 모자랐다.
이길영 장군의 말에 장수는 미소를 지었다.
“산적은 상단이 움직이는 것을 방해하는 좋지 못한 무리라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재산을 가지고 있다면 상단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거구요.”
“혹시 그들이 가진 재산 때문에 그러신 겁니까?”
이길영 장군은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장수에게 물었다. 장수가 재물을 좋아하는지를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장수가 좋아하는 것을 안다면 후에 써먹을 일이 많다.
사실 이길영 장군은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여전히 장수에게 의문점이 많았다.
처음 만났을 때는 강한 무공에, 양헌에서는 뛰어난 능력에 놀라워했고, 그가 자금을 끌어모으는 것을 보고는 재물을 좋아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장수가 빈민들에게 재물을 나누어 준다는 말을 듣고 그의 성격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했음을 깨달은 것이다.
그는 의문점을 해결하기 위해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봤다.
장수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아닙니다. 저는 산적들이 가진 재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만약 관심이 있었다면 수레를 많이 가져왔을 것입니다.”
전리품이란 그 상태로는 재물이 되지 않는다.
자금으로 만들려면 그것을 도시로 그대로 가지고 가서 매매를 해야 했다.
아무리 장수가 많은 공을 세운다고 하더라도, 전리품을 운반할 수 없는 상황이라 큰 자금을 만들 수는 없다.
“그렇습니까? 그래도 이번 토벌에 나선다면 당연히 기여하신 만큼 재물을 드려야겠지요.”
이길영 장군이 말에 장수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닙니다. 제가 봤을 때 이번 이동으로 군대에서도 많은 비용이 소요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에 대한 군자금으로 사용하십시오. 대신 전리품을 처분하는 일은 이번에 참여한 상단들에게 맡겨 주십시오.”
이길영 장군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산적들이 가진 재물에 대해 아무런 관심이 없으십니까?”
장수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 사실 장수는 재물이 필요가 없었다. 그는 무인이며, 주먹 두 개면 무서울 게 없는 자이다. 그랬기에 장수 개인을 위해서 라면 재물따위는 사실 크게 필요치 않았다. 그러나 스승의 명을 이행도 해야 했으며, 가문의 장수에게 거는 기대를 저버릴수도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상단 일이 예상외로 재미있어서 빠져들기는 했지만, 장수는 근본적으로 무인이다. 그는 재물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저는 따로 벌 수 있는 방법이 많습니다. 그러니 이번 토벌을 통해 상인들과 군 모두 이익을 봤으면 좋겠습니다.”
장수의 말에 이길영 장군은 고개를 저었다.
‘재물에 관심이 없는 걸까? 정말 이상하구나.’
재물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없다.
재물이란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다.
그렇기에 누구나 재물을 벌기 위해 노력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장수는 지금 상단과 군을 위해 자신을 희생을 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이길영 장군은 잠시 생각을 하다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오랫동안 봐야 하니 시간을 두고 천천히 생각을 해보자. 황실의 무사로 추천을 할 수 있다면 큰 공을 세우는 것이지만, 만약 아니라고 해도 절정고수와 인연을 맺는 것이니, 어느 쪽이든 큰 도움이 되겠지.’
이길영 장군의 고민이 오래갈 리가 없었다.
이번 일은 충분히 이득이다.
어차피 가는 길에 산적이 있을 테고 따로 병사들만 운영하면 되니 문제는 없다.
그리고 이길영 장군이 사령관이기 때문에 움직이는 동안 병사를 임의로 움직일 수가 있다.
“알겠습니다. 제가 참모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보겠습니다.”
이길영 장군의 말에 장수는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장군님.”
“아직 결정은 나지 않았습니다. 만약 참모들이 찬성을 하지 않는다면 저 역시 병사들을 함부로 움직일 수 없습니다. 하지만 무사님의 의견에 타당한 부분이 많으니, 좋은 결과가 나오겠죠. 그리고 이번 일만 잘된다면 무사님이 수고하신 대가를 치르겠습니다.”
이길영 장군은 말을 하면서 장수의 표정을 살피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장수의 반응을 살피는 것이 중요했다.
이길영 장군의 말에 장수는 고개를 선선히 끄덕였다.
남의 선의를 계속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토벌을 하는 것만으로도 상단의 불만은 금방 해소될 것이다.
산적이 가진 재물을 북경에서 처리하는 과정에서 큰 이익을 볼 것이 분명했다.
거기다 북경과 양헌을 잇는 장거리 상행을 할 수 있으니, 상단들 입장에서도 큰 이익이다.
그렇게 얻은 자금은 북경의 빈민들을 위해 쓰면 될 거라고 생각을 한 것이다.
“알겠습니다. 장군님.”
“그럼. 저는 참모들과 회의에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임무를 하기 위해서는 이곳에 계시는 게 좋을 듯한데,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갑작스럽게 토벌을 계획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니, 어려운 일이기에 최대한 신속하게 회의를 해야 한다.
또 가장 핵심 인물이라 할 수 있는 장수가 부대와 같이 있어주는 편이 나았다.
이길영 장군의 말에 장수는 바로 대답했다.
“그럼 이곳에 있겠습니다. 자리를 마련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어차피 마차는 상단들과 함께 있는 상태다.
장수는 내내 마차에 틀어박혀 있었기에, 그가 잠시 마차를 떠나 있다고 해도 관심을 가질 만한 사람은 없었다.
“알겠습니다. 부관에게 이야기를 해두겠습니다. 그럼 저는 가보겠습니다.”
말과 함께 이길영 장군은 급히 자리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