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8편 - 산적토벌
이길영 장군이 임시 회의를 열자, 전령들이 급하게 뛰어 다녔다.
잠시의 시간이 흐른 후, 군복을 입은 참모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무슨 일이십니까?”
그들은 급하게 달려왔는지, 이마에서는 땀이 흐르고 있었고, 군복 역시 제대로 여미지 못했다.
갑작스럽게 임시 회의가 열리자, 무엇인가 큰 문제가 생겼다는 생각들을 했는지, 서둘러 온 기색이 역력했다.
“급하게 해결해야 하는 안건이 생겨서 말이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자네가 군대의 운영자금을 걱정하지 않았는가?”
군이란 자금을 잡아먹는 괴물과도 같다.
군대에서 소모되는 자금은 하루만 놓고 따져도 엄청나다.
그런데 문제는 뚜렷한 수입원이 없다는 데 있다.
이러니 은자를 벌 방법을 찾지 못하면 큰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더구나 공주의 호위를 하는 동안에는 따로 자금을 얻을 방법이 없다.
황실에서 어느 정도 지원은 해주겠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했다.
때문에 참모들은 다른 수입원을 찾기 위해 애를 썼던 것이다.
“예. 어떤 좋은 방법이라도 생각하셨습니까?”
“산적을 토벌해야 할 일이 생겼네.”
참모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대답을 한 참모는 참모들 사이에서 가장 급이 높은 수석 참모였다.
그는 의문이 가득한 시선으로 이길영 장군을 보았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미 군대의 행선지는 정해졌습니다. 더구나 황실에서 정한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수석 참모의 말에 이길영 장군은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이번 일이 가능하다고 보네.”
“아무리 사령관님이라 할지라도 황명을 어길 수는 없습니다. 잘못하면 큰 벌을 받으니, 토벌 건은 그냥 넘기십시오.”
수석 참모의 생각은 정확했다. 토벌은 그렇게 만만한 일이 아니다.
치밀한 계획을 짜고 움직여도 토벌에 실패하는 경우가 더 많았던 것이다.
산적들도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해 움직였기에, 그들을 잡으러 다니다 보면 시간을 낭비하기 마련이다.
더구나 산적들이 깊은 산의 산채에 거주하기 때문에, 더더욱 어려운 것이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사령관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산적 토벌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산채의 위치를 안다고 해도, 그곳까지 찾아가는데 상당한 시일이 소요됩니다. 또한 산적들이 공격에 대비를 해 놨기에, 토벌에 성공하기도 어렵습니다. 더구나 지금은 황명으로 중요한 임무를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왜 토벌을 해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사령관인 이길영 장군이 명령을 내린다면 부하들은 당연히 복종해야 한다.
하지만 참모들의 반대가 심하면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기가 어렵다.
“그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말게. 도움을 받을 생각이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자네도 양헌의 절정고수를 알고 있겠지?”
물론 이들은 장수에 대해 알고 있다.
이 자리에 있는 자들은 이길영 장군의 최측근이라 할 수 있으며, 이길영 장군과는 서로 깊은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이다.
“서…… 설마 절정고수가 조력을 약속했습니까?”
절정고수의 조력은 희소식이다. 절정고수의 도움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다.
절정고수가 투입되면 해결하지 못하는 일이 없다.
일반 병사들이 어렵게 생각하는 일도 쉽게 해결할 수가 있다. 더구나 장수는 그런 절정고수들보다 더 강한 자가 아니었던가?
“그렇네. 절정고수가 토벌에 도움을 준다고 했네.”
“그…… 그렇다면야…….”
수석참모의 안색이 급격히 밝아졌다.
절정고수가 돕는다면 토벌에 필요한 인원을 줄일 수 있고, 성공 확률도 급격히 상승한다.
아니, 이번 토벌에 참여하는 병사들은 전리품만 챙기면 된다.
수석참모는 얼른 계산을 해보았다.
그러자 구멍 난 회계장부가 얼추 메워졌다. 그만큼 산적 토벌은 큰 돈벌이이다.
동창과 금의위의 고수들도 절정고수이고, 토벌에 조력해 주었다.
하지만 그들은 먼저 움직이는 법이 없었다.
일이 끝날 때까지 항상 방관만 했다. 아니, 전투가 벌어져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들의 원래 목적이 마교의 절정고수를 상대하는 것이라고는 해도, 일반 전투에 지나치게 참여를 하지 않았다.
이 점이 수석참모는 항상 불만이었다.
그러니 양헌의 절정고수가 조력을 해 준다는 소리에 안색이 밝아질 수밖에.
“알겠습니다. 그럼 계획을 짜도록 하겠습니다.”
육천 명의 병사들 중에서 몸이 가볍고 날랜 자들을 선별해 토벌대를 편성하는 일은 쉽지가 않다.
하지만 한 번만 고생하면 앞으로 한 달 동안은 자금 문제에 있어 절절매지 않아도 되니, 그 정도는 감수할 만하다.
절정고수의 참여로 확실한 성과가 눈에 보이는 상황이니, 이쪽에서는 조금만 고생하면 되는 일이다.
수석참모는 급히 지도를 꺼내 지형을 살피기 시작했다.
“가는 길에만 들러야 하는 산이 많습니다. 그중에서 산적의 피해를 입었다는 곳이 이곳과 이곳이니……. 이렇게 경유를 하면서 가면 시간에 맞춰서 도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수석참모의 말에 다른 참모가 말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따로 한 부대를 더 만들어서 두 부대를 운영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렇게 해서 한쪽이 전리품을 운반할 때 다른 부대는 공격을 하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더 많은 군자금을 마련할 수 있겠죠.”
참모들은 연이어 좋은 의견을 내놓았다.
사실 산적 토벌은 많이 하면 할수록 좋았다. 그러면 전리품도 늘거니와, 더 많은 공을 세운 셈이 된다.
그들은 장수의 무위를 믿고 다소 무리한 계획까지 세우기 시작했다.
방화 사건이 발생했을 때, 장수는 혼자서 마교의 방화범들을 잡으며 놀라운 실력을 발휘했다. 그는 정말로 믿을만한 존재이다.
참모들은 각자의 의견을 조율하면서 최선의 결과를 내기 위해 고심했다.
그때 참모 중 한 사람이 한기를 느끼며 몸을 떨었다.
“이…… 이런…… 왜 이렇게 떨리지?”
그만 그런 느낌을 받은 것이 아니었다.
다른 참모들 역시 같은 기분을 느꼈던 것이다. 그와 동시에 막사의 문이 열렸다.
“수고가 많으십니다.”
목소리와 함께 나타난 것은 각각 화려한 복장과 관복을 입은 자들이었다.
이길영 장군은 놀란 얼굴로 말을 더듬거렸다.
“오…… 오셨습니까?”
“예. 회의를 진행 중이라 해서 왔습니다.”
화려한 옷을 입은 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관리가 이길영 장군에게 인사를 했다. 두 사람 모두 목소리가 중성적이었다.
금의위와 동창에서 온 이들은 모두 환관이었다.
금의위에서 온 자는 남진무사라는 직책을 가졌고, 동창에서 온 관복을 입은 자는 당두라 불렸다.
“……그러셨습니까?”
이길영 장군의 말에 금의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런데 무슨 일로 회의를 하시는 겁니까?”
동창과 금의위에게 밉보이면 큰 화를 부를 수 있다.
또한 이들의 권력이 막강했기에, 이길영 장군도 이들을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산적들의 횡포가 심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들을 징치할 방법을 의논하고 있었습니다.”
동창과 금의위의 정보력은 대단했다.
정보 수집이 그들이 하는 일 중의 하나이다. 때문에 이들 앞에서는 거짓말을 할 수가 없다.
사실 이길영 장군은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금의위와 동창에게 이번 일이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더구나 이들은 마교의 고수들을 상대하는 일 외에는 힘을 빌려주지 않았다.
“호오. 그렇습니까?”
금의위는 호기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말했다.
“예.”
“그런데 그러면 일정이 늦어질 텐데요? 저야. 상관이 없지만 장군님께서는 그렇지 않으실 텐데요.”
금의위 역시 이번 토벌에 참가하면서 산적 토벌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
그랬기에 이런 말을 한 것이다.
금의위의 말에 이길영 장군은 난색을 표했다.
‘있는 그대로 말해야겠구나.’
이길영 장군은 이실직고했다.
“진무사 님, 사실 이번 토벌에 양헌의 무사님이 도움을 주기로 했습니다.”
“그렇습니까?”
금의위의 진무사와 동창의 당두는 그 말에 깜작 놀랐다. 사실 그들은 비밀리에 장수를 조사하고 있었다.
그 목적은 장수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함이었다.
그를 바로 아군으로 끌어들이기에는 의문스러운 점이 많아, 판단을 보류하고 열심히 자료를 수집한 것이다.
이길영 장군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어차피 알려질 거, 미리 이야기를 해 잡음이 없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예.”
“그거 잘되었군요. 안하무인인 산적들 제거는 매우 중요하지요. 더구나 황실 백성 중 한 명인 장수라는 무사가 참여한다면 큰 도움이 되겠지요. 그런데 언제 하실 생각이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