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9편 - 산적토벌
“예?”
“저 역시 산적들을 토벌하는데 참여를 해야겠지요.”
금의위의 남진무사의 말에 동창의 당두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참여하겠다는 말이었다.
두 사람은 사이가 좋은 듯이 항상 붙어 다녔지만, 사실 동창과 금의위는 황실의 권력을 놓고 싸우는 맞수다.
그들은 상대방이 정보를 독점하지 못하도록 항상 서로를 견제했다.
동창이 이번 토벌에 참여하는 이유도 이와 같은 맥락이었다.
이길영 장군은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는 두 사람이 좋은 목적에서 참여하는 것이 아님을 잘 알았다.
하지만 이제 와서 토벌을 취소할 수는 없는 일이다.
또한 금의위와 동창의 목적이 장수를 포섭하는 것임을 알기에, 그들을 막을 수도 없었다.
“알겠습니다.”
금의위의 남진무사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이거 잘되었구나. 무공을 쓰는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했는데, 그의 실력을 확인할 수 있겠어.’
남진무사는 장수의 실력이 어떤지를 자료를 통해서만 알았기에, 그가 실제로 얼마나 강한지는 잘 몰랐다.
상단을 꾸려나가는 모습을 보면 능력이 있음은 알 수 있지만, 그 밖의 의문점이 너무 많았다.
역시 직접 상대해 볼 필요가 있었다. 이것은 동창의 당두도 마찬가지였다.
“그럼 날짜가 정해지는 데로 통보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오랜만에 손을 쓸 것 같아서 흥분이 되네요.”
* * *
유운은 한가롭게 낙엽을 쓸고 있었다.
무당파의 돌길이 매우 길었다.
곳곳에 심어져 있는 나무에서 떨어진 낙엽이 길 위를 가득 메워, 다홍빛이 가득했다.
유운은 한참 비질을 하다가 곧 손짓을 멈추고 허리를 폈다. 그리고 이마에서 흐르는 땀을 닦아 냈다.
“휴…….”
비질을 한지도 벌써 20년이나 되었다.
예전에는 소일거리로 비질을 했지만, 지금은 습관이 되어 하루라도 비질을 하지 않으면 손이 허전했다.
유운은 잠시 허리를 두들기다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뭉게구름이 두둥실 떠 있었고, 새 한마리가 창공을 자유롭게 날고 있었다.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유운의 유일한 사치가 바로 고요한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유운은 그렇게 잠시 하늘을 보며 흐뭇한 표정을 짓다가, 다시 비를 들었다.
아직도 쓸어야 하는 낙엽이 많았다.
유운은 덩치가 작았기에 비질을 할 때, 다른 사람이 한두 번 하면 될 것을 세 번, 네 번 이상은 해야 했다.
하지만 유운은 질리지도 않는지 손을 부지런히 놀리며 미소를 지었다.
“너무 행복하구나.”
행복이란 큰 게 아니다.
자신에게 할 일이 있다는 것과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앎이 바로 행복이다.
과거에는 제자들의 존경을 받고 무공으로 이름을 떨쳤지만, 지나고 보니 그것이 행복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 당시에는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능력이 떨어졌었고, 현실을 보는 눈도 어두웠었다.
그리고 지금처럼 하늘을 감상하며 즐길 여유도 없었다. 그러나 지금 그는 너무 행복했다.
유운이 처음부터 이런 감정을 가졌던 것은 아니었다.
무공을 소실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허무함을 느꼈었다.
더구나 제자들과 사형, 그리고 사제들이 하나둘씩 떠나가며 뒷방의 늙은이가 되어가자, 그는 뼈가 시릴 정도의 공허함으로 괴로워했었다.
유운은 죽을 날만을 생각했었다.
하지만 과거의 영광을 잊고 속가제자들을 가르치기로 결정했을 때, 처음으로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꼈다.
사실 도사의 신분으로 무공이 강하다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불행이었다.
도사가 배워야 할 경전은 포기하고 무공 수련에만 전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속가제자들에게 무공을 가르쳐 주고 남는 시간에는 경전을 읽으니 살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강한 무공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무공이 강했을 때 비질을 했다면, 지금처럼 하지 못했을 것이다.
두 손으로 작은 언덕을 무너뜨릴 힘은 있어도, 한가롭게 길 위를 거닐며 비질을 하는 자유도 없었을 것이다.
“유운아. 진정한 자유란 무엇이냐?”
자유란 남이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평가하는 것이다. 과거에 자신은 무공은 강했지만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느라 자유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무공을 잃었기에, 행동에 제약이 없는 진정한 자유를 얻게 되었다.
“그런데 장수는 잘 있을까?”
유운은 자신의 제자인 장수를 생각했다.
그는 오랜 세월을 살면서 많은 제자를 길러 보았다. 하지만 진정한 제자라고 생각한 이는 장수밖에 없었다.
과거 그는 무당파에서 뛰어난 재능을 지닌 제자들을 많이 만나 보았다.
하지만 제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고 장법에 대한 진수도 가르쳐 주지 못했다.
그리고 무공을 잃자, 제자라 불렀던 이들은 모두 떠나가고 얼굴조차 내밀지 않고 있다.
그에 반해 장수는 그의 마음에 쏙 들었다. 장법에 대한 열망이 대단했으며, 장법에 대해 하나를 가르쳐 주면 열을 깨달았다.
그리고 묘하게 정이 갔다. 마치 혈육처럼 느껴졌다. 오랫동안 만났던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랬기에 관심이 많이 갔다.
사실 장수는 수많은 속가제자 중 한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하루에 가르치는 속가제자들의 수는 천명이 넘었다.
매달 새로운 제자들이 들어왔다.
그도 그런 속가제자 중 하나일 뿐이다.
하지만 유운은 장수만이 유일한 내 제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기에 비질을 하면서도 장수 생각이 났던 것이다.
“어디 가서 밥이나 굶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처음 봤을 때는 살이 쪄서 보기에 좋았다.
하지만 요즘에는 제대로 먹지 못했는지, 최근에 봤을 때는 삐쩍 말라 보기가 딱했다.
그것만 봐도 하고 있는 일이 잘 안됨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스승 앞이라고 내색하지 않는 모습이 대견했다.
“어떻게 주먹밥 하나 얻어 와 먹였어야 했는데…….”
도사의 신분으로 은자를 구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행동에 제약이 있는 신분이라 어디 가서 시주를 받아 올 수도 없었다.
그래서 왜소해진 장수를 봤을 때 뭐라도 먹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음에도 어떻게 해줄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사실 그가 한 줌의 쌀을 장수에게 권한 이유는 그것을 제자에게 먹이고 싶어서였다.
비록 한 줌의 쌀이지만, 그것이라도 먹고 힘을 내라는 스승이 작은 배려였다.
유운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제자를 사랑하는 애틋한 마음에서 비롯된 눈물이었다.
그는 요즘 들어 비질이 힘에 부쳤다. 한 가지 소원이라면, 장수가 결혼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다.
사실 어떻게 보면 욕심이라고 할 수 있다. 진작 죽었어야 하는 늙은 도사의 과분한 욕심이라고 말이다.
그의 제자는 성혼을 하기에는 나이가 아직 일렀다.
하지만 유운은 장수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사는 모습이 꼭 보고 싶었다.
그렇게만 되면 더는 소원이 없다.
“내가 너무 큰 욕심을 부린 건가? 원시천존님이시여. 제가 너무 큰 욕심을 부린 건가요?”
유운은 말을 하다가 기침을 했다.
“이런, 힘들구나.”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아니면 상처 때문인지, 몸이 예전 같지가 않다. 유운은 나무에 몸을 기대었다. 그리고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나무에 몸을 기댄 유운은 장수에게 가르쳐 준 전진심법을 천천히 운기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단전에 박힌 조그마한 기운이 천천히 몸속을 돌기 시작했다.
전진심법은 천하에서 가장 안전한 심법이다.
어지간한 위험으로는 문제가 없다. 그렇게 한참을 운기하자 유운의 안색이 좋아졌다.
“휴…… 이제 되었구나.”
유운은 힘이 들 때마다 전진심법을 운기했다.
그러면 몸이 정상으로 돌아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물론 기분만 그렇다는 것이다.
운기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심법으로 큰 공능을 느낀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유운 역시 신체 능력이 조금 좋아지는 것에 만족했다.
하지만 유운의 몸속에는 장수가 불어넣어 준 선천지기가 있었다.
이것은 유운이 운기를 할 때마다 조금씩 단전으로 스며들었다.
더구나 전진심법이란 수련 중, 성취에 아무런 부담이 없을 때 가장 큰 효과를 발휘한다.
즉, 무욕인 상태에서 운기가 가장 잘 된다. 이 덕분에 유운은 자신도 모르게 몸속이 좋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전진심법은 타인도 그 성취를 가늠하기 힘들고, 본인 역시 인지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성취를 파악하기가 힘들다.
이점 때문에 유운은 자신의 몸이 얼마나 나아지고 있는지 모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