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편 - 토벌
그때 멀리서 고함 소리가 들렸다.
“스승님.”
덩치가 제법 있는 중년인이 빠르게 달려왔다.
선량한 인상을 주는 이자는 바로 마교의 장로직을 맡고 있는 표길랑 장로다.
“길랑 도우님 오셨습니까?”
유운은 표길랑 장로에게 거부감이 있어, 존칭을 붙여 이름을 불렀다.
그는 표길랑 장로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그가 먼저 자신의 이름을 밝혔던 것이다.
표길랑 장로가 나이도 제법 있고, 무위도 어느 정도 있다는 것도 대충 알았다.
하지만 마교의 장로라는 사실은 전혀 알지 못했다. 행동을 보고 마공을 익혔음을 알았을 뿐이다.
유운은 이미 눈에 보이는 것에 의미를 두지 않는 경지에 오른 상태였다.
그는 표길랑이 익힌 무공보다, 그의 됨됨이로 사람을 판단했다.
“그렇습니다. 스승님 비질을 하고 계셨습니까?”
그는 말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유운의 비를 받아 들었다. 사실 마교의 장로인 그가 비질을 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가 유운을 마음 깊이 존경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처음에는 표길랑 장로 역시 비질을 잘하지 못했다.
하지만 경지가 있었기에 금방 요령을 파악했고, 지금은 비질 솜씨가 수준급이다.
유운은 표길랑 장로는 보며 미소를 지었다. 표길랑 장로가 비질을 하는 모습이 보기가 좋았다.
유운은 일부러 표길랑 장로가 한다는 것을 말리지 않았다. 그의 진심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표길랑 장로는 금방 비질을 끝내고 나서 유운에게 다가갔다.
“끝냈습니다. 스승님.”
“예. 수고하셨습니다. 도우님.”
유운의 말에 표길랑은 우쭐해했다. 그 모습을 보고 유운은 미소를 지었다.
‘정말 단순한 자로구나. 표정으로 속마음이 읽히는군.’
마교의 장로 표길랑은 산전수전을 다 겪은 자다.
그를 만만하게 보는 사람은 없다.
표길랑 역시 스승이자 존경할 만한 분인 유운 앞이기에 빈틈을 보인 것이다.
마교였다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이제 수련을 할 시간입니다.”
표길랑의 속셈은 뻔했다.
유운에게 무공을 더 배우기 위해 비질을 한 것이다. 이미 유운은 그 속셈을 진작부터 눈치챘다. 속셈이 빤히 보이지만, 표길랑은 미워할 수 없는 자다.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 단계를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무당의 율법 상, 속가제자에게는 가르칠 수 있는 것이 한정되어 있다.
따라서 유운이 가르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이 부분은 유운도 아쉬웠다.
표길랑 장로라면 무당파의 고급 무공도 빠르게 익힐 재목이다.
유운은 기본에 충실하게 표길랑에게 장법에 대해 가르쳤다. 사실 이 정도 가르침은 그리 상승의 무공도 아니다.
하지만 수업을 듣는 표길랑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했다.
기본기를 배우는 거지만, 가르치는 이가 바로 유운이다.
그는 필요한 장법을 적시에 가르쳐 주는 능력이 있다.
또한 그 기본 역시 배우는 자의 수준에 맞게 하여 이해하기가 쉽다.
이 정도라면 무림에서 말하는 기연이라 할 수 있다.
자신보다 경지가 높은 무인에게 무공을 배울 기회는 드물다. 순수하게 무공만을 배울 수 있다는 것도 큰 복이다.
마교에 있으면 신경을 써야 할 일이 너무 많아, 표길랑은 언제나 무공에 전념할 시간이 모자랐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수련에만 집중할 수가 있다. 방해를 받을 일이 없어 표길랑은 마음이 편했다.
그는 실로 오랜만에 모든 것을 잊고 수련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표길랑이 알고 있던 것은 정통마공이고, 유운이 가르치는 것은 정통정파무공이다.
이 차이는 엄청난 것이다. 표길랑은 이 차이에서 느끼는 바가 컸다.
그는 정파무공과 마공을 비교하면서 성취를 얻고 있었다.
어떤 벽에 막혀 길을 헤매던 표길랑은 하루하루가 매우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러한 마음을 가지면 됩니다.”
유운은 무공을 수련하는 마음가짐을 이야기하며 수업을 끝냈다.
마공을 익히는 표길랑이 올바른 판단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가르침이다.
표길랑은 매우 좋은 사람 같아 보였지만, 혹시 몰라 인성 교육에도 정성을 쏟았다.
그리고 마공을 익혔다고 해도 다시 정파의 가르침을 받는 다면, 제대로 된 인성을 쌓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표길랑은 수업이 끝나자 유운에게 절을 했다.
“감사합니다. 스승님.”
“아닙니다. 도우님의 배우고자 하는 열망이 대단하기에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거 같습니다.”
표길랑은 유운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느꼈다.
누가 그에게 이런 가르침을 내려 주겠는가?
“식사는 하셨습니까? 스승님.”
표길랑은 말과 함께 유운을 잡아끌었다.
그는 스승의 허락도 받지 않고 음식점으로 달려갔다. 그의 손에 붙들리어 가면서도, 유운은 미소를 지었다.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모습이 오히려 속이 후련했다. 사실 그 역시 이렇게 바람처럼 자유롭게 움직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천천히 움직이십시오. 힘듭니다.”
그 말에 표길랑은 아예 유운을 안고 갔다.
“제가 괜찮은 주점을 뚫었습니다. 그곳에서 곡차를 가져 왔으니 가볍게 한잔 하는 게 어떻습니까?”
허락을 구하고 있지만, 이미 발은 주점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무당의 도사에게 술을 권하다니, 표길랑도 괴짜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유운은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오히려 표길랑이 먼저 술 마시자는 말을 꺼내기를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다.
그는 표길랑이 권하는 술을 마시면 기분이 매우 좋았다.
“곡차는 이따 방에서 하는 게 어떻습니까?”
“그럴 줄 알고 방에 가져다 두었습니다.”
속가제자인 표길랑이 술을 마시는 것은 문제가 없다. 차로 위장해 들여왔으니, 더더욱 문제가 없다.
유운이 무당에서 서열이 높으니 문제 삼을 사람도 없다.
유운은 표길랑을 따라 가다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는 문득 장수가 보고 싶었다.
‘너는 언제 오느냐? 정말 보고 싶구나.’
유운은 장수가 오면 가르쳐 주고 싶은 무공이 정말 많았다. 시간을 두고 천천히 가르침을 주고 싶었다.
그리운 제자가 오지 않아 외롭기까지 했다. 표길랑이 권하는 곡주를 거절하지 않은 이유도 그 때문인지 모른다.
장수는 군에서 마련해 준 마차에 들어가 있었다.
마차는 군용이라 그런지 투박하고 덜컹거림도 심했지만, 장수는 그곳에서도 집중을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장수야 어쩌자고 그런 생각을 했느냐?’
장수는 이길영 장군에게 자신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스스로도 알 수가 없었다. 현재는 될 수 있는 한, 눈에 뜨이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세간의 이목이 쏠리면 당연 혈교의 눈에 뜨일 테고, 그렇게 되면 혈교가 석가장을 노릴 수도 있기에 조심해야 했던 것이다. 그가 아는 혈교는 단지 눈에 거슬린다고 일반 상가나 문파를 학살하는 짓을 서슴지 않는 자들이다.
하지만 장수는 상인들의 모습이 너무 딱해 견딜 수가 없었다. 상인들은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는 자들이고, 그들이 여유가 있어야 도시가 발전한다.
그리고 그래야만 굶주리는 사람이 줄어든다. 이를 잘 알기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산적들을 토벌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존재가 드러날 수밖에 없다.
이 문제가 마음에 걸린 장수는 어떻게 해야 사람들의 관심을 적게 받을까 하고 궁리를 했다.
몇 분 후,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전에 산적들을 상대했을 때의 방법이 떠올랐다.
‘그래, 군복을 입자.’
군복을 입으면 책임은 군대에 떠넘길 수 있다.
그러면 자신이 석가장의 소장주라는 사실을 알 사람도 없을 것이다.
군대와 같이 움직이다가, 토벌이 끝나면 바로 마차로 간다. 이렇게 하면 아무 문제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한 번이면 된다.’
장수는 속 편하게도 토벌이 한 번에 끝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사실 토벌 이야기도 상인들이 안 됐다는 생각에 즉흥적으로 한 것이니, 그가 그렇게 열성적으로 할 이유는 없었다.
아마 나중에 참모들이 여정 내내 토벌을 계획했다는 사실을 들으면 까무러치게 놀랄 것이다.
장수는 정체를 숨기는 일에 한숨 돌리게 되자, 자신이 한 일에 어떤 장점이 있는지 곰곰이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어차피 한 번은 해야 하는 일이었어. 혈교가 얼마나 많은 산적들에게 무공을 전수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었으니까.’
혈교는 천하를 상대하는 거대 세력이다.
호북에서 일어난 일이 다른 곳에서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