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4편 - 토벌
그는 이미 모든 지휘를 장수에게 맡겼다.
장수가 별 볼일 없는 사람이라면 상대도 안 했겠지만, 그의 능력은 서류로 충분히 확인을 했다.
이제 자신의 두 눈으로 직접 장수의 일 처리 능력을 확인해야 했다.
당주가 대답을 하자, 병사들도 산에 오를 채비를 했다.
그들은 산적을 공격하는 것보다 황실의 관리인 당주와 남진무사를 보필하는 데 더 정신이 팔려 있었다.
장수는 무턱대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흔적이 없으니 주변을 살필 필요가 없었다.
‘내 능력을 얼마나 드러낼까?’
장수는 계속 그 생각만 했다.
절정고수와 상인이라는 사실 이외에 자신에 대한 정보가 황실에 얼마나 알려져 있는지 불확실한 상황이다.
그런 만큼 자신의 능력을 얼마만큼 보여주는 가가 큰 문제였다.
잘못하면 나중에 불리하게 작용할지도 모른다.
어쨌든, 지금은 최선을 다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장수는 산을 오르면서 돌멩이를 주웠다.
그리고 일정 간격으로 돌을 던져 나뭇가지를 부러뜨렸다. 뒤따라올 후발대에게 정확한 위치를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사실 장수의 실력이라면 장력으로도 충분히 나뭇가지를 꺾을 수가 있다.
하지만 불필요하게 능력을 노출하고 싶지 않기에, 일부러 손으로 나뭇가지를 꺾은 것이다.
장수는 그렇게 흔적을 남기면서 산의 정상을 향해 올라갔다.
산에는 일반인이 범접할 수 없는 지형이 존재한다. 산을 타는 자들은 대개 그런 지형을 피해서 갔다.
하지만 장수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고수라면 그런 지형을 그냥 넘어갈 수 있기에 무턱대고 산을 오른 것이다.
산 중턱까지 올라왔는데도, 흔적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장수는 포기하지 않고, 산 정상에 올라 산적들의 위치를 찾을 생각으로, 묵묵히 산을 탔다.
그때 장수의 귀로 어떤 소리가 들렸다.
똑 똑 똑.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였다.
물방울이 떨어지는 곳에는 물이 있다.
보통 산채는 물 확보를 중요하게 여긴다. 물가에 산적들의 흔적이 남아 있을 것이다.
장수는 우연을 가장해서 일부러 물소리가 나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한참을 가자, 샘이 나타났다.
샘 주위에 사람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산적들도 흔적을 없애려고 애를 쓴 모양이었지만, 장수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장수는 흔적을 보고 산채의 위치가 감이 잡혔다.
‘사람이 가장 많이 이동한 곳은 이쪽이구나.’
산채의 위치가 눈에 들어오는 듯했다.
이 정도 흔적이면 쉽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장수는 산채로 바로 가지 않았다.
‘너무 빨리 찾으면 문제가 있어. 우선 정상으로 가서 어느 정도 헤맨 뒤에 산채로 가자.’
장수가 워낙 빠르게 움직였기에 여기까지 금방 도착할 수 있었지, 보통 사람들이었으면 여기까지 오는 데 꽤 많은 시간을 잡아먹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대충 시간을 죽이면, 자신의 실력이 대단하다고는 생각지 못할 것이다.
당주와 남진무사는 장수의 행동을 놓치지 않고 유심히 관찰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에, 장수는 그들의 속을 알 수가 없었다.
‘어서 빨리 해결을 하고 저들을 떨쳐내야겠구나.’
동창과 금의위의 관리를 상대하기란 피곤한 일이다.
더구나 그들은 자신들의 신분에 걸맞은 능력을 가졌을 것이 뻔했다.
이들과 부딪히지 않는 게 좋은 일이었다.
죽일까? 하는 생각도 장수는 했었다. 하지만 전생의 그가 아니었기에, 참은 것이다.
“흔적을 찾기가 힘듭니다. 산 정상까지는 올라가야 될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까?”
당주는 장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장수의 능력을 파악하는 일에 신경이 쏠려 있어서 산적 토벌에는 관심이 없었다.
동창에 절정고수를 한 명 늘리는 것은 큰 공이다.
반면 천하에 산재한 산적 무리를 토벌한다는 것은 그리 큰 공이 아니다.
당주가 고개를 끄덕이자, 장수도 고개를 끄덕인 후 산의 정상을 향해 전진했다. 그렇게 한참을 가다 장수는 인기척을 느꼈다.
‘따라오는 자가 있구나.’
기감이 강한 장수나 파악할 수 있지, 보통사람, 아니 절정고수라 해도 알기 어려운 움직임이었다.
산적으로 추정되는 자가 멀리서 이쪽을 감시하고 있었다.
‘어떻게 할까?’
능력을 발휘하면 잡을 수 있다. 경신술도 뛰어나고 이 거리에서 돌을 던져도 산적 정도는 충분히 행동 불능 상태로 만들 수가 있다.
하지만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다.
‘그냥 두자.’
장수는 단념하고 다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당주와 남진무사 그리고 병사들도 힘겨워하며 허겁지겁 그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한참을 올라가자 정상에 도착했다.
장수의 뒤를 이어 당주와 남진무사가 정상에 발을 디뎠고, 병사들은 한참 후에야 숨을 헐떡이며 나타났다.
그때까지도 장수는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당주는 한참을 기다리다 장수에게 물었다.
“이제 산채는 발견하셨습니까?”
당주의 말에 장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의심이 가는 곳이 있습니다.”
혼자였다면 진즉에 발견했을 것이다.
장수는 이미 산채의 위치를 어렴풋이 알아냈다.
혼자 움직였다면 벌써 산채를 제압하고 다른 곳으로 움직였을 것이다.
이렇게 미적거린 이유는 모두 능력을 숨기기 위해서였다.
가능하면 자신의 능력을 두 환관에게 덜 보여 주어야 한다. 그리고 시간은 충분하다.
굳이 서둘러 할 필요가 없었다.
“그렇습니까?”
당주는 다소 의외라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장수는 당주의 반응을 살피며 말했다.
“예. 현재 저곳과 저곳, 그리고 저곳이 의심스럽습니다.”
장수는 아무것도 없음이 분명한 곳을 첫 번째로 지목했다. 처음부터 산채를 찾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지목한 곳은 산채가 있음직한 곳이었다.
외부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고, 방어에 적합한 장소였다. 만약 장수라면 그곳에 산채를 세울 것이다.
또 산적들은 적어도 50명 정도는 될 텐데, 그 정도 인원이 거처할 수 있을 정도로 규모가 컸다.
샘에 남은 사람의 흔적을 살펴봐도 산채의 위치를 추측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리킨 곳은 별 생각 없이 말한 것이었다. 사실 애초부터 그쪽으로는 갈 생각이 없었다.
두 곳만 말하는 것보다 여러 곳을 말하는 게 실력이 더 떨어져 보이지 않을까,하는 생각에서 그렇게 말을 한 것이다.
장수의 말에 당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혹시 어떤 근거로 산채를 파악했는지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난감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장수는 상인이다. 덕분에 말솜씨가 많이 늘었다. 말을 지어내는 일은 어렵지가 않다.
“제가 산적이라면 눈에 띄지 않고 방어에 좋은 지형을 고를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지형은 큰 산이라고 해도 몇 군데 없습니다.”
장수의 설명에 당두는 다시 한 번 장수가 말한 곳을 살펴보았다.
그는 장수의 말이 그럴듯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것 같군요.”
“예. 각 지점을 잇는 최단 거리를 위주로 산채를 찾으면 산적들을 볼 수 있을 겁니다.”
장수의 말에 당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그럼 지금 가보겠습니다. 조금이라도 빨리 가야 할 것 같아서요.”
장수는 말과 함께 앞으로 달려갔다.
그렇게 한참을 가자 장수가 처음 지목한 장소가 나왔다. 하지만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장수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곳에는 아무것도 없군요.”
사실 한 번에 찾는 것은 힘들다.
장수의 말을 듣고 따라온 당두와 남진무사는 주변을 살펴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군요.”
“다음번에는 찾아야 할 텐데요.”
장수는 말과 함께 다음 장소로 가려고 몸을 돌렸다. 그때 인기척이 느껴졌다.
‘산적이다.’
가려는 방향에 5명이 숨어 있음이 느껴졌다.
기척을 숨기고 나무 위에 있는 게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어떻게 하지?’
나무 위에 이유도 없이 있을 리가 없다. 분명 기습을 하려는 것이다.
기척은 느껴지지만, 그들이 어떤 무기를 가지고 있는지는 보이지 않았다.
장수는 당두와 남진무사를 슬쩍 곁눈질했다.
‘절정고수인 저들이 공격에 당하지는 않겠지.’
병사들은 아직 도착하지 못했지만, 장수가 남긴 발자국을 보며 오는 중이기에 별 문제는 없어 보였다.
‘그냥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