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6편 - 토벌
탈출할 시간도 없었다.
“네놈은 누구냐?”
두목으로 보이는 자가 장수에게 말했다. 그는 지금의 상황이 황당하다 못해 억울하기까지 했다.
겨우 산적을 토벌하는데 절정고수가 세 명이나 투입되는 경우가 어디 있는가?
더구나 그중 한 명은 초절정고수다.
초절정고수가 나섰다는 것부터가 실패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두목도 멀리서 장수의 실력을 보았다.
그는 자신이 장수의 상대가 되지 않음을 깨닫고 재빨리 도망을 쳤다. 장수의 실력은 저항을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나는 토벌대의 병사다.”
장수의 말에 두목은 어이없어했다.
“거짓말 하지 마라. 무슨 토벌군의 병사가 그리 강하단 말이냐? 토벌군에 소속된 병사가 모두 너 같았다면, 천하에 산적질 하는 자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장수 같은 자가 열 명만 있어도 산적을 뿌리 뽑을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장수의 무위는 상상을 초월했다.
“믿든지 말든지, 그것은 너의 자유다.”
두목은 인상을 쓰더니 도를 꺼내 들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대항을 할 작정이었다.
그러자 직속부하 두 명도 두목을 따라서 도를 꺼내 들었다.
“팔 하나 잃을 각오해라!”
두목은 사력을 다해 장수의 한쪽 팔을 노렸다.
그 정도는 가능하리라고 생각을 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큰 오산이었다.
두목은 자신이 아는 가장 강한 도법을 펼쳤다. 바로 진혈도법이었다.
장수는 두목의 기수식만 봐도 도법을 알 수 있었다. 혈교에서 무사들에게 가르치는 도법이었던 것이다.
일반 무사에게도 공개하는 도법이지만, 지금 것은 그 수준을 넘었다.
이정도의 도법이라면 산적질로도 충분히 밥을 먹고 살만했다.
장수는 천천히 이초식까지 살펴보았다. 그리고 두목이 어느 정도 경지까지 익혔는지 확인했다.
지금은 혈교가 산적들에게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를 파악하는 일이 중요하다.
이 순간에도 당두와 남진무사는 눈을 날카롭게 빛내며 장수의 동작 하나하나를 유심히 관찰했다.
절정고수가 고수와 싸울 때는 얼른 끝내는 것이 좋다. 너무 시간을 끌어도 문제다.
장수는 두목의 가슴 쪽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명치를 향해 주먹을 뻗었다.
숨이 턱 막히는 큰 충격에 두목은 동작을 멈췄다. 그 순간을 노려 장수는 번개처럼 두목을 점혈했다.
산채의 두목이라고 해도 겨우 고수 수준이었다. 고수가 아무리 강해봐야 절정고수에게는 상대가 안 된다.
장수는 두목을 제압하자마자,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된 부하 두 명도 이어서 제압했다.
그러자 쿵 소리와 함께 세 명이 바닥에 쓰러졌다.
허무할 정도로 쉽게 산채를 제압했다.
일반 병사들로만 산채를 토벌했다면 하루나 이틀로는 부족했을 것이다.
보통 산채를 찾는 데만 대게 하루가 넘게 걸리고, 찾았다고 해도 농성에 시달리게 된다.
또 산적들은 전세가 불리해지면 비밀통로로 도망을 가버리기 때문에, 완벽하게 일을 끝내기가 어렵다.
초절정고수인 장수가 나섰기에 허무하다 싶을 정도로 빨리 토벌이 된 것이다.
장수는 주변을 살펴보았다.
산적의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 다른 인기척이 느껴졌다.
장수는 인기척이 느껴지는 곳으로 갔다.
그곳에는 산적들에게 잡혀 온 여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잔뜩 겁에 질려 있어, 장수가 문을 여는데도 나오지도 않고 덜덜 떨기만 했다.
그동안 엄청난 소란이 있었으니, 여자들이 겁을 내는 것이 당연했다.
장수는 여자들을 책임질 수 있는 처지가 아닌지라, 난감했다. 그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결국 후속대로 올 병사들에게 여자들을 맡기기로 결심했다.
당두와 남진무사는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장수의 움직임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눈치였다.
‘혈교의 흔적을 찾아볼까?’
장수는 그들에게 신경을 끄고 혈교의 흔적을 찾아 나섰다. 혈교가 산적들과 접촉한 것은 분명했다.
두목이 혈교의 무공을 사용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찾아보면 혈교의 흔적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증거물이 나올 지는 미지수였다.
사실 혈교나 마교는 전문가가 아니면 분간을 할 수가 없다. 더구나 방금 전 두목이 사용한 진혈도법은 마교에도 존재하는 마공이다.
게다가 혈교에서 자신들이 했다는 증거를 남겨둘 리가 없었다.
‘그냥 있자.’
조사하면 정보를 얻을 수 있겠지만, 핵심적인 것은 얻기 힘들어 보였다.
장수는 일단 지금은 산적을 토벌한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장수는 당두와 남진무사에게 다가갔다.
“수고하셨습니다.”
둘이 한 일도 거의 없으면서 태연히 이런 인사를 받았다.
유일하게 한 일은 방책을 부순 것이지만, 그것도 장수의 모습을 더 잘 보기 위해서였지, 산적을 토벌하려고 한 일은 아니었다.
“듣던 대로 실력이 뛰어나십니다.”
당두의 말에 장수는 미소를 지었다.
“별거 없는 실력입니다.”
“경공술이 무척 뛰어나시군요.”
“제가 다른 실력이 부족해서 경공술에 매진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것입니다.”
장수가 그들에게 달리는 것과 태극권만 보여주었다.
평범한 산적들을 상대하는데 그 이상은 필요하지가 않았던 것이다.
“어린 나이인데도 판단력이 무척 뛰어난 것 같습니다.”
당두는 이렇게 말을 하면서 예리한 눈으로 장수를 살폈다. 당두의 말에 장수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냥 눈에 보이는 대로 움직였을 뿐입니다.”
당두는 잠시 머리를 굴리다가 말했다.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글쎄요?”
그때 병사들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잔당들을 모두 제압하고 나서 달려온 것이다.
고수급에 불과한 병사들이 절정고수와 행동을 함께 한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이다. 여기까지 달려온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다.
“헉……. 헉, 헉……. 늦어서 죄송합니다. 이, 이런……. 벌써 다 제압하셨습니까?”
병사들로서는 당황스러운 상황이었다.
그들도 어떻게 일을 해야 하는데, 상관이라고 할 수 있는 장수와 동창, 그리고 금의위가 일을 다 처리했으니, 민망하기 짝이 없었다.
더구나 토벌이 너무 빨리 끝났다.
참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병사의 말에 장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은 모두 제압을 했습니다. 하지만 혹시 모르니 결박을 하십시오. 그리고 저쪽에 여자들이 있더군요. 아무래도 납치해 온 여자들 같습니다.”
그 말에 병사들은 서둘러 산적들을 결박하기 시작했다.
장수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두목을 손으로 가리켰다.
“이자가 두목인 것 같으니 주의를 하십시오.”
병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두목을 좀 더 정성껏 결박했다.
이제 장수가 할 일은 없다.
병사들은 매우 체계적으로 움직였는데, 토벌 경험이 많은 덕택이다.
장수는 오히려 방해만 될 것 같았다. 그리고 후속대가 금방 오니까 문제도 없었다.
장수는 당두를 보면서 말했다.
“이곳은 이제 이들에게 맡깁시다.”
당두와 남진무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그들은 빨리 이곳을 뜨고 싶었다.
“그렇게 합시다.”
장수는 고개를 끄덕인 후 주변을 살피며 내려갈 길을 찾았다.
대충 방향을 파악하자, 그는 나뭇가지를 꺾으면서 내려가기 시작했다.
가는 길을 표시해야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자 당두와 남진 무사 역시 장수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산 밑에 내려가자, 전령과 말들이 보였다.
후속대로 보이는 병사 오십 명이 장수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장수를 보자마자, 얼른 그의 곁으로 달려갔다.
병사들을 이끄는 병사장은 장수에게 고개를 숙였다.
“산채를 찾으셨습니까?”
장수 일행이 떠난 지 반나절밖에 흐르지 않았다.
병사장은 그들이 산채를 토벌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예. 산채를 찾았습니다.”
장수의 말에 병사장은 잔뜩 긴장하여 굳은 얼굴로 물었다.
“어디입니까?”
“나뭇가지로 흔적을 남겼습니다. 그러니 그것을 따라 올라가시면 됩니다.”
“그렇습니까?”
병사장은 주먹을 꽉 쥐었다.
“예. 그리고 이미 제압을 끝냈으니 안심하고 가셔도 됩니다.”
“예? 벌써 제압을 하셨습니까?”
병사장은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역시 토벌 경험이 많은 자다. 그는 장수의 말이 도무지 믿겨지지가 않았다.
토벌 과정에서는 많은 일이 일어난다.
거기다 산적들 역시 목숨이 걸린 일이라 농성을 악착같이 하여, 완전히 제압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그것을 반나절 만에 해내다니.
믿기 어려워 하던 병사장은 그의 뒤에 서 있는 동창과 금의위를 보고서야 비로소 납득을 했다.
실력이 있는 이 세 명이 나섰으니, 산채를 제압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