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7편 - 북경
병사장의 말에 장수는 손으로 전령을 가리켰다.
“다음 산채로 가려 합니다.”
장수의 말에 병사장은 혀를 내둘렀다.
“아직 병사들도 배치가 안 된 상태입니다. 이렇게 빨리 가시면 계획이 틀어집니다.”
참모들이 계획을 상당히 무리하게 짜기는 했지만, 장수의 행동은 그보다 빨랐다.
장수가 나름 눈치를 보면서 움직인다고 했지만, 그래도 보통 사람들의 기준에서 볼 때는 너무 빨랐다.
장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잠시 쉬겠습니다.”
“예. 그럼, 저희는 먼저 올라가겠습니다.”
병사장은 어서 빨리 산채가 보고 싶어, 당두와 남진무사에게 인사를 한 후, 머뭇거리지 않고 바로 산으로 올라갔다.
병사장이 병사들과 올라가자, 장수와 일행은 전령이 있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산속은 벌레도 많고 나뭇가지가 거추장스러웠지만, 산을 내려오니 그런 것이 없었다. 장수 일행은 좀 더 편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장수가 모습을 드러내자, 전령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어떻게 된 것입니까?”
장수는 지금까지의 있었던 일을 모두 보고했다. 전령은 이야기를 모두 듣고 입을 딱 벌렸다.
“대단하십니다. 산적을 그렇게 쉽게 처리하셨다니, 믿기지가 않습니다. 산적들이 재물은 많이 가지고 있던가요?”
“예? 재물이라니요?”
“산적들이 모아둔 재산 말입니다. 무사님께서는 당연히 보셨을 게 아닙니까?”
재물이라는 말에 장수는 아차 싶었다. 혈교에 정신이 팔려 재물은 생각도 못했던 것이다.
더구나 절정고수인 당두와 남진무사가 하루 종일 곁에 붙어 있어, 다른 것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
그는 산적들의 재물을 보지 못한 것이 약간 아쉬웠다.
재물 따위에 연연하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얼마나 많은 재물이 있는지 확인해 보고 싶은 호기심은 있었던 것이다.
“미처 생각을 못했습니다. 다음번에는 꼭 보도록 하겠습니다.”
장수의 말에 전령은 황당해했다.
“그런데 병사들은 언제 옵니까?”
“좀 늦을 것 같습니다. 병사들은 걸어서 오고 있거든요.”
전령의 말에 장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때까지 쉬도록 하겠습니다.”
장수는 말을 마치고 근처에 있는 나무 밑동에 걸터앉았다. 그는 산적들을 상대하는 것보다, 뒤에서 자신을 감시하는 당두와 남진무사 때문에 더 많은 심력을 낭비했다. 그렇기에 앉아서 휴식을 취하고 싶었다.
더구나 한 번 더 이런 일을 해야 한다.
전령이 장수에게 물을 권했다.
“무사님, 물을 드십시오.”
“아…… 감사합니다. 마침 목이 마르던 참이었습니다.”
장수의 말에 전령은 미소를 지었다.
“수고하신 무사님께 물밖에 드릴 것이 없어서 죄송스럽습니다.”
“아닙니다. 감사히 마시겠습니다.”
장수는 물을 마시고 건량을 먹으며 휴식을 취했다. 한참이 지나자, 일단의 병사들이 달려왔다.
그들은 전령의 설명을 듣고 바로 산채로 달려갔다.
그 후에 처음부터 동행했던 고수급 병사들이 산에서 내려왔다.
얼굴들이 몹시 지쳐 있었다. 산채에서 상당히 많은 일을 하고 온 모양이었다.
그들이 내려오자, 전령이 말했다.
“시간이 아직 안 됐지만, 다음 산채로 가시겠습니까?”
장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초절정고수다.
평상시에도 전진심법과 선천기공의 영향으로 많은 기운이 들어오기에, 피로가 움직인 것에 비해 그렇게 심하게 쌓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잠깐의 휴식으로 금방 기운을 회복했다.
장수는 빨리 토벌을 완수하고 싶었다. 산적들과 혈교의 관계를 어렴풋이나마 확인했다.
그리고 토벌군에 합류한 상인들에게도 큰 이익이 될 만한 산채 하나를 토벌한 상태다.
그는 얼른 일을 끝내고, 수련을 하고 싶었다.
“예. 어서 빨리 토벌을 마무리 지었으면 합니다.”
장수가 허락을 한 이상, 당두와 남진 무사 역시 따라가야 했다.
전령은 충분히 휴식을 취한 말들을 당두와 남진무사 그리고 장수에게 주었다.
“여기서 상당히 멉니다.”
전령은 말 위에 올라탔다. 그리고 달리기 시작했다. 그 뒤를 장수 일행이 쫓아갔다.
장수는 다음 산채도 쉽게 토벌했다. 산채는 첫 번째 산채보다 좀 더 컸고, 두목의 실력도 훨씬 뛰어났지만, 그뿐이었다.
그들도 장수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게다가 그곳 역시 혈교와 관련이 있어 보였다.
그리고 첫 번째 토벌 때보다 후속대가 더 빨리 도착했다. 장수의 실력이 뛰어남을 알고 준비를 빨리 한 것이다.
장수가 두 번째 토벌을 마치고 산 밑으로 내려오자, 전령은 놀란 눈을 깜빡거리며 그를 맞았다.
“벌써 끝내셨습니까?”
“예. 이번에도 운이 좋아 일찍 끝낼 수 있었습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기록을 보니 이곳 산채 역시 만만한 곳이 아니었는데. 대협의 상대는 아니었군요.”
“아닙니다. 상당히 성가신 상대라서 힘들었습니다.”
장수는 당두와 남진무사의 눈치를 보며 힘든 척을 했다. 그들은 두 번째 토벌 때도 변함없이 전투를 관전만 했다.
한 움직임도 놓치지 않겠다는 매서운 눈초리로 장수를 관찰한 것도 똑같았다.
그래도 이번이 마지막이라 다행히다. 이제 드디어 혼자서 수련을 할 수가 있다.
“그런데 사령관님께서 한 가지 소식을 전하셨습니다.”
말을 하는 전령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그는 매우 난처해 보였다.
그 모습을 본 장수는 뭔가 예감이 좋지 않았다.
“무슨 일입니까?”
“근방에 상당히 흉악한 산채가 있다고 합니다. 이왕 수고하시는 거, 무사님께서 조금만 더 수고를 하시는 게 어떻겠냐고 하십니다.”
장수는 황당했다. 상대가 만만하다고는 하나, 두 번의 토벌 작업은 꽤 피곤한 일이었다.
더구나 혹 두 개를 달고 다니느라 심리적으로 힘들었었는데, 다시 토벌을 하라고 하니 참으로 난감한 노릇이었다.
하지만 거절을 하기도 힘들었다. 산적을 토벌하고 얻은 전리품은 상단에 큰 이득이 된다.
그리고 상단에 여유가 생기면 도시의 빈민들에게도 큰 도움이 되니, 피곤하다고 거절하기가 어려운 문제였다.
‘그래, 한 번 더 하자.’
오랜만에 토벌을 하니 몸의 감각이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전생에서는 산을 뛰어 다니며 사람을 죽이는 것이 생활이었다. 먹을 것도 못 먹고 쫓기는 경우도 많았다.
지금 같은 경우는 그때와 비교하면 사실 노는 거나 마찬가지다.
더구나 병사들이 도와주니, 그렇게 힘들 일도 없었다.
전생에서는 몇 만 명의 병사들에게 쫓겼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병사들의 도움을 받고 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이번 한 번 뿐입니다.”
장수의 말에 전령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 역시 장수가 거절을 할까 봐 걱정했던 것이다.
“감사합니다. 무사님“
장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장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의 뒤를 따라다녀야 하는 당두와 남진무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황실에서 편하게 지냈던 그들에게 장수를 따라다니며 산적을 토벌하는 것은 못할 짓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지위가 높다고 한들, 편하게 쉴 수 있는 입장은 아니었다.
수도 북경은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언제나 인파가 복작복작했다.
그런데 안 그래도 사람이 많은 이곳에, 상당한 수의 병사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바로 공주를 호위하기 위한 호위부대였다.
황실의 정예 어림군에서부터 강한 무공을 가진 병사들까지, 강자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그들이 집결하는 이유는 이번에 공주가 천하의 각 성을 감찰하는 것을 호위하기 위함이었다.
현재 공주의 호위를 맡은 정예 병사들의 수는 2만이다.
금의위와 동창의 절정고수들과 정파에서 보낸 무사들까지 합하면 그 수는 더 불어난다.
실로 어마어마한 숫자였다.
원래 감찰단의 호위 병력은 이 정도 수준이 아니었다. 황제가 가장 사랑하는 공주가 참여하면서 규모가 커진 것이다.
감찰 계획은 이렇다. 북경에서 예식을 치룬 후, 하북을 시작으로 산서, 섬서, 중경, 귀주, 광서, 광동을 거쳐 나머지 지역을 돌아 다시 북경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사실 원래라면 청해 지역까지 가야겠지만, 너무 위험 부담이 커서 갈 수가 없다.
청해는 물론 사천까지도 못가는 상황이다.
마교가 있는 신강 근처로 가지 않는 것만 봐도, 이번 행차에서 안전에 얼마나 신경을 쓰는지 알 수가 있다.
사실 마교의 위협 때문에 공주의 행차 자체가 무산될 뻔했었다.
하지만 계획은 결국 중단되지 않았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이 어지러운 판국에 공주가 함께 한 감찰단을 보내 황실의 건재함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안팎의 불안을 진정시키려는 것도 있었다.
하지만 마교가 언제 납치를 시도할지 몰랐다.
그래서 황실에서는 중원의 유수한 문파들에 협조를 구해 놓았다.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지만, 이번 행차에 대한 황실의 불안은 가시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