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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고수-261화 (261/398)

261편 - 북경

장수는 말을 하면서도 몸의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그는 지금 이 떨림이 보통 때와는 틀리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마나 등 뒤로 흐르는 땀 역시 긴장으로 인한 것이 아니었다.

장수는 지금 굉장한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그의 몸은 자신도 모르게 당장이라도 싸울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장수 자신은 몰랐지만, 그의 몸은 눈앞에 있는 강자에게 전의를 불태우고 있었다.

‘이기고 싶다.’

뜬금없이 이런 생각이 들자, 장수는 깜짝 놀랐다.

눈앞에 보이는 노인과 싸우고자 하는 열망이 무서울 정도로 컸다. 그가 처음에 떨었던 것은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다. 초절정고수를 보고 흥분을 했던 것이다. 싸우고 싶었던 것이다.

장수가 초절정고수를 만난 적은 무당파에서 원로들과 대화를 한 일을 제외하고 손에 꼽힌다. 그리고 원로들과 만났을 때는 경지가 높지 않았기에, 지금과 같은 감정을 느끼지 못했었다.

하지만 초절정의 경지에 오른 지금은, 맞서 싸울 만한 초절정의 고수를 만나자 몸속에서 전의가 솟구쳤다.

장수의 몸은 당장이라도 초절정고수와 싸우고 싶었다. 그리고 승리를 하고 싶었다.

만약 전생의 장수였다면 참지 못하고 당장 싸움을 걸었을 것이다. 하지만 마음의 안정을 찾게 해주는 데 최고의 효능을 발휘하는 전진심법을 익혔기에 지금까지 참을 수 있었다.

장수는 원인을 알고 나자 속이 편해졌다. 왜 이렇게 떨리는지 알지 못했는데, 이제 그 원인을 안 것이다.

‘이거 참 큰일이구나.’

무인은 무인이었다.

지금 상황이 썩 좋은 편은 아닌데도, 원초적인 본능인 전의가 생기는 것을 보면 참 웃기는 일이다.

그렇게 장수가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노인이 웃으며 말을 했다.

“자네는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동창과 금의위에서도 높은 분이실거라고 짐작을 했습니다.”

장수의 말에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난 동창의 수장이네. 황실에서는 따로 직위가 있네만, 자네는 알지 못할 것이네. 사실 자네에 대한 보고를 받을 때마다, 나뿐만 아닌 황실의 여러 관리들이 많은 관심을 기울였네. 자네의 일거수일거족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지. 출신과 나이에 비해 능력이 지나치게 뛰어나니 의심을 할 수밖에 없지 말이야. 그렇다고 딱히 짐작이 가는 것도 없고 말이야. 자네를 마교의 첩자라고 보기도 어려워. 마교에서 공들여 세운 계획을 통째로 포기할 정도로, 자네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은 거의 없지 않은가. 안 그런가?”

마교가 배후에 있다고 알려진 여러 가지 계획들의 대부분을 장수가 막은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렇게 황실의 환심을 사, 황실에 침투시키는 것도 병법의 하나이지만, 그로서 기대할 수 있는 이득은 거의 없었다.

장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첩자가 아닙니다. 만약 첩자라면 벌써 큰 공을 세웠겠지요.”

장수가 첩자였다면 황실에서는 큰 손해를 봤을 것이다. 그만큼 장수의 공이 컸다. 함부로 의심을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하여튼 자네는 신기해. 이렇게 직접 만나 봤는데도, 자네를 한 꺼풀도 벗기지 못한 것 같으니. 더구나 나에게 도전적인 눈빛을 보내다니 말이야.”

노인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노인의 말에 장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자신의 속마음을 상대에게 들킨 것 같아 당혹스러웠던 것이다. 스스로도 놀란 전의를 노인이 알아차릴 줄은 몰랐던 것이다.

“왜? 나하고 붙고 싶은가?”

노인은 눈을 가늘게 뜨고 장수를 응시했다.

그 모습을 보자 장수는 자신도 모르게 장풍을 날려 보고 싶었다. 죽더라도 싸우고 싶었다. 아니, 죽고 사는 문제에서 벗어나 본능대로 마음껏 싸우고 싶었다. 하지만 장수는 이 욕구를 초인적인 인내력으로 참아 냈다.

“아닙니다. 그런 마음은 없습니다.”

“걱정하지 말게. 나 역시 자네가 원한다면 싸워 보고 싶네. 자네가 원한다면 말이야.”

장수는 발작하듯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스스로를 달랬다.

‘장수야. 왜 그러느냐? 너는 이미 전생의 장삼이 아니다. 그런데 왜 저 노인과 싸우려고 하느냐?’

아무래도 장소가 문제인 것 같았다. 황실에서 사람들을 죽이던 전생의 감각이 약간이나마 되살아난 것이다. 또 초절정고수가 돼서 처음으로 만난 초절정고수이기에 전의를 느낀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자제를 해야 한다.

황실의 관리와 싸우는 것은 아무리 좋은 쪽으로 생각해도 이득이 없다. 자신뿐만 아니라 석가장에도 큰 문제가 생길 수가 있다. 장수는 혼자서 도망을 다니면 되지만, 호북에 자리 잡은 석가장은 멸문을 할 수도 있다.

“아닙니다. 어르신.”

“그래? 내가 잘못 본건가? 뭐, 그렇게 말하면 어쩔 수 없지 말이야. 그래, 그럼 그렇다 치고…… 자네에게 제의할 것이 있다네.”

“예? 그게 무엇입니까?”

“자네도 예측은 했을 것이야. 자네 같은 인재가 있다면 누구라도 자신의 휘하에 두고 싶을 것이야. 더구나 자네의 발전 가능성을 본다면……. 누구나 나 같은 제안을 할 테지.”

장수는 대충 무슨 말이 나올지 예측이 됐다. 황실에서 장수를 영입하려는 것은 전부터 말이 있었다.

“긴말은 하지 않겠네. 최고의 조건을 제시할 테니, 동창으로 오게나.”

노인은 자신있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 정도로 자신의 제안에 자신감이 있었다.

“최고의 조건이라니요?”

“3년 안에 내 자리를 주겠네. 나는 어차피 은퇴를 해야 하는 몸이야. 그리고 환관일 필요도 없지. 원래 이 자리는 환관만이 앉을 수 있지만, 자네만은 예외네.”

동창의 수장 자리를 주겠다는 말이다.

물론 3년이라는 조건이 붙지만, 동창의 수장이 된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동창은 막강한 권력을 가지기에, 가문의 영광이며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하는데 제약이 없어진다.

노인의 말에 장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좌우로 절레절레 흔들었다.

“말씀은 감사하지만, 괜찮습니다. 저는 관직에 관심이 없습니다.”

장수의 말을 예상했다는 듯이 노인은 실망하는 기색도 없이 말을 계속했다.

“거기다 종1품의 관직과 성의 성주 자리, 그리고 녹봉을 충분한 만큼 주겠네. 그러면 황족이 부럽지 않은 삶을 살 수 있을 것이야.”

대단한 대우였다. 장수가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이 정도로 대우를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초절정고수가 많지 않다고는 해도, 황실에 초절정고수가 한 명도 없는 것은 아니다. 지금 이 조건은 장수에게 과분했다.

이 모든 게 미래가 계산된 조건이다.

만약 장수가 화경의 경지에 오른다면, 그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이 되는 것을 기대하고 이런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한 것이다.

화경의 고수는 가히 무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황실에서도 전부터 화경의 고수를 가지는 것을 목표로 했었다.

무림맹과 혈교, 그리고 정파에서도 보유한 화경의 고수를 황실에서는 보유하지 못했기에, 항상 아쉬워하고 있었던 터였다.

노인은 말을 이어서 계속했다.

“자네가 석가장에서 얼마나 많은 영약을 먹었는지 모르겠지만, 황궁의 보물창고에는 영약이 그보다 월등히 많을 것일세. 거기다 황궁무고에 실린 무공서를 본다면 자네는 현재의 경지를 뛰어넘을 수도 있을 것이야.”

노인은 관직이 먹히지 않자, 영약과 무공서로 장수를 유혹했다.

무인이라면 혹할 이야기다. 하지만 장수에게는 어림도 없었다.

황실의 무공창고가 대단하다는 말이 있지만, 혈교의 무공창고도 그에 못지않다.

그리고 장수는 그런 혈교의 무공창고에서 수많은 무공을 배웠다.

만약 장수가 혈교에서 무공을 배우지 않았다면, 이 유혹에 넘어갔을 것이다.

물론 황실의 무공창고이니, 혈교보다 좋은 점은 있겠지만, 장수가 매력을 느낄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영약 역시 마찬가지다. 영약이 가장 발달된 곳은 혈교다.

그곳은 독초로도 내공을 증진시키는 방법을 연구한다. 하지만 영약으로 내공을 증진시키는 것은 하수다.

깨달음이 동반되지 않은 내공은 폭탄과도 같다.

그 때문에 장수와 그의 스승 유운이 큰 피해를 입지 않았는가?

“제의는 감사하지만, 시간이 필요합니다. 제가 나중에 충분히 시간을 가지고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말은 시간을 달라고 하고 있지만, 거절이나 마찬가지였다.

황실에 정면으로 맞서면 후에 큰 문제를 야기할 수가 있다. 그렇기에 적당히 돌려서 거절을 한 것이다.

장수의 말에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쉽군. 자네라면 황실에서 잘 해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괜찮습니다.”

“그래. 진지하게 생각을 해보게. 지금 한 제안은 언제까지라도 유효하니, 조금이라도 마음이 동한다면 지체하지 말고 이곳으로 오게나.”

“알겠습니다.”

“그래. 자네를 기다리는 자가 한 명 더 있으니, 어서 가보게나.”

“예?”

“황궁에서 이렇게 중요한 일을 하는데, 설마 확인을 한 번만 한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겠지?”

장수는 당황했다. 노인을 상대하면서 많은 심력을 소모했는데, 같은 과정이 더 있는 것이다.

“대체 어떤 분이 남았습니까?”

“금의위에도 가야 하고, 황실의 여러 단체에도 가봐야 하니 어서 움직이게.”

장수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그는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금의위에서 온 자가 장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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