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2편 - 자극을 받다
검사를 가장한 제의가 끝나자 장수는 진이 다 빠지는 것을 느꼈다.
어서 빨리 쉬고 싶었다. 다행히 숙소를 빨리 정해주어, 바로 쉴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동창에서 있었던 것과 비슷한 일이 몇 차례 더 벌어졌다.
금의위를 포함한 다른 세력들도 장수를 영입하려 했다.
그들은 각자 상당한 제안을 내놓았는데, 그것만 봐도 그들의 권력이 어느정도인지 알 수 있었다.
더구나 그들의 수장은 초절정고수다. 장수는 그들과 대면할 때마다, 싸우고 싶어 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이거 자신을 자제하는 게 더 힘들구나.’
물론 전생에서라면 상대방을 죽이고 싶다는 살의겠지만, 지금은 순수하게 같은 초절정고수로서 상대방을 제압하고 싶은 전의였다.
‘과연 어떤 무공을 쓸까?’
황궁의 고수들은 이미 여러 번 상대를 해봤다. 황궁의 무공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우선 군대에서 쓰는 무공으로, 실전에 적합하게, 상대방을 효율적으로 죽일 수 있게 만든 무공이다.
그리고 황궁의 관리들이 쓰는 무공이다.
관리들이나 환관들도 그들만의 무공을 만들었는데, 장수도 깜짝 놀랄 정도로 괴이했다.
무기 역시 보통 무기가 아닌, 기병이 많았다.
이번에 만나 본 초절정고수들도 그런 괴이한 무공을 쓸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그들과 싸우는 것은 현실적으로 볼 때 거의 불가능했다.
그들은 개인적인 결투를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고, 모두 삼엄한 경비 하에 있었다.
모두 절정에 가까운 무인들이 호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신호만 하면 고수들이 삽시간에 달려올 것이 뻔했다.
장수가 알기로는 황실의 초절정고수는 많아 봐야 이십 명이 채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의 대부분이 높은 자리에 있기 때문에 사사로운 이유로 싸우기가 힘들다.
또 장수는 전생의 기억을 통해 이런 사실 하나를 알고 있었다.
황실의 초절정고수들이 여타의 문파보다 월등히 강하다는 것이다.
황실의 초절정고수들은 대부분 환관이고, 환관들이 즐기는 것은 재물과 무공밖에 없다.
그들은 여색을 즐길 수도 없고, 자식을 키우지도 않아, 시간이 나면 무공수련만 했다.
그리고 황실의 높은 자리에 있기 때문에 영약의 사용이 자유롭고, 상승의 무공서적을 얼마든지 볼 수 있기에, 기이할 정도로 무공이 강했다.
그뿐이 아니다.
그들은 남자와 여자의 중간의 성별을 가진 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랬기에 괴이한 무공들을 익힐 수 있었고, 그 덕분에 마교의 무공보다 더욱 괴의하고 악랄한 무공을 익힐 수 있었다.
이런 사실은 외부로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그것은 관리라는 직업의 특성상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이다.
황실에만 붙어 있기 때문에 대부분 별 어려움도 없이 오랫동안 무공을 익힐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에 비해 무위라 할 수 있는 군부의 초절정고수들은 형편없이 약했다.
군대를 지위하는 초절정고수들은 직위가 높지만, 할 일이 많아 체계적으로 수련을 할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매우 약했다.
높다고 하는 직위 역시 환관에 비해 낮았고, 권력도 환관을 따라갈 수가 없어, 환관처럼 상승의 무공서적 등을 자유롭게 이용하기가 어려웠다.
중원의 무인들이 황실의 초절정고수들이 약하다고 생각하는 원인도 이에 있다.
외부에 드러난 무위는 군부의 초절정고수들이라, 자연스레 그렇게 생각을 한 것이다.
‘수련을 열심히 해야겠구나.’
장수는 갑작스럽게 강자들을 만나자, 무공수련을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전까지는 사실 자극이 없었다.
이제까지 만난 강자들이라고 해봐야 무당의 원로들이나 친구였던 표길랑이 전부였기에, 전의가 그렇게 크지 않았다.
특히 표길랑은 엉뚱하고 하는 일이 멍청했기에, 전의가 생기기는커녕 우습게만 여겨졌다.
하지만 진정한 강자들이라 할 수 있는 황실의 초절정고수들을 만나니, 강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장수는 방 안에서 수련을 하기 시작했다.
별궁이었지만 황실이라는 생각이 들자 정신이 번쩍번쩍 들었다.
덕분에 수련을 열심히 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수련하는 동안 시녀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무사님, 식사를 가져왔습니다.”
“식사요? 감사합니다.”
장수는 시녀가 건네는 식사를 받았다.
음식은 장수가 이제까지 먹어본 음식 중에서 가장 좋았다. 과연 황실 음식이었다.
그렇게 음식을 다 먹자, 시녀가 접시를 치우고 밖으로 나갔다.
장수는 시녀가 나가자마자 수련을 다시 시작했다.
수련을 잠시라도 쉬면 안 될 것 같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수련에 열중하고 있는데 밖에서 인기척이 났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목소리는 당두였다. 장수는 바로 대답했다.
“예. 무슨 일이십니까?”
들어온 자는 당두와 남진무사였다.
그들은 상대방이 혼자서 장수를 만나는 것을 막기 위해, 둘이 함께 온 것 같았다.
그렇지 않다면 소속이 다른 두 절정고수가 붙어 다닐 이유가 없었다.
“혼자 계시기 심심하실 거 같아서 왔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며 자연스럽게 방으로 들어와 의자에 앉았다.
지금 이 방에 머무는 사람은 장수이지만, 실질적인 주인은 이들이기에 행동이 더 자연스러웠다.
장수는 그들을 보며 웃었다.
“새로운 곳이라 그런지 심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방이지 않습니까?”
“오랜만에 따듯한 곳에 와서인지 그냥 푹 자고 싶은 마음입니다.”
장수는 이들이 어서 나가줬으면 했다. 그는 못 다한 수련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들과 대화를 나누고 정보를 얻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공주의 호위에 대해 장수는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랬기에 최대한 알아 두어야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런, 방해를 한 거 같습니다. 전해 드릴 말이 있으니, 그것만 전하고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장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검사 결과 무사님에 대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판명이 났습니다. 호위무사가 되는 것을 허락 받으신 겁니다.”
당두의 말에 장수는 헛웃음이 나왔다. 자신은 황실을 도와주기 위해 온 것이다.
그런데 허락을 해준 것처럼 말을 하니 어이가 없었다.
오히려 황실 쪽에서 감사를 표해야 하는 상황인데도 말이다.
하지만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그리고 황족과 관련된 일들은 어처구니없게 진행된다는 사실을 알기에 그냥 그러려니 했다.
“그렇습니까?”
“예. 대단한 영광입니다. 가문의 영광이고, 나중에 큰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당두는 그 혜택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공주의 호위무사로서 향후 세금 면제 혜택이나 보수, 관에서의 혜택 등을 차례로 말했는데, 장수가 봐도 꽤 괜찮았다.
자신에게는 사실 그리 큰 도움은 안 되지만, 가문에는 달랐다.
그러니 당두가 허락을 받았다는 표현을 쓴 듯하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출발 날짜가 잡혔습니다. 앞으로 삼 일 뒤가 되겠습니다. 이미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공주님도 준비를 끝내셨기에 조속히 시행될 겁니다.”
모든 준비가 끝났는데도 출발일은 삼일 뒤다.
황실이 일이 느린 속도는 정평이 나있지만, 느려도 너무 느리다.
‘이거 감찰이 언제 끝날지 모르겠구나.’
중원의 성 안은 매우 넓다.
인구 수도 많아, 각 성을 감찰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동원되는 인원수도 엄청나다.
그만큼 중원의 성들을 감찰하는 것은 오랜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다.
장수는 느긋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어차피 장수가 이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보수가 상당했다.
석가장에 돌아가는 혜택도 대단하기에 일부러 상행을 하지 않아도 된다.
양헌도 당분간은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문젯거리를 대부분 해결했기에 따로 신경을 쓸게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혈교는 그렇게 오래 기다려 줄 자들이 아니다.
그들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일을 조속히 진행할 것이다. 그럼 공주도 일의 어려움을 깨닫고 안전한 황궁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면 큰 문제가 없다.
“그런데 무사님, 구파일방의 신진무사들과는 교분을 나누시지 않겠습니까? 그들과 교분을 나눈다면 후에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괜찮습니다. 어차피 나중에 만날 건데 벌써부터 교분을 나눌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장수는 이미 황실의 초절정고수들을 만난 뒤였다.
그들을 만난 이상, 한가롭게 아이들과 교분을 나눌 시간은 없었다.
이곳을 빠져나가기 전까지는 최선을 다해서 수련을 해야 했다.
장수의 말에 당두는 의외라는 표정으로 남진무사를 쳐다보았다.
그들은 장수가 정파의 고수과 만나는 일을 거절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
보통 상가에서는 구파일방의 신진고수들과 만날 기회가 생기면 거절하지 않는다. 아니, 그런 기회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이번에 참여한 자들은 각문파의 차세대 제일고수다.
시간이 지나면 각문파의 장문인이나 장로가 될 게 확실한 자들이기에, 교분을 맺으면 맺을수록 좋은 것이다.
하지만 장수가 거절한 이상, 더 권유할 수도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호위무사로서 해야 하는 것들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이들이 온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호위무사로서 해야 하는 일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그들은 덜 중요한 이야기를 끝내고, 호위무사로서 해야 할 일을 장수에게 상세하게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말이 너무 웃겼다.
“그러니까. 공주에게 가까지 가지 말고, 5장 이상 떨어져야 한다는 말씀이십니까?”
장수의 말에 당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공주님의 안전은 황실의 호위들이 1차로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사님께서는 2차로 호위를 하는 임무를 받으신 것입니다. 이것만 해도 대단한 영광입니다. 보통은 2차 호위에 믿을만한 자들을 세우기 때문입니다.”
당두는 장수가 황실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에 자세하게 설명을 했다.
원래 무인들이 자존심이 세기 때문에, 이런 민감한 사항은 미리 제대로 설명을 해야 후에 마찰이 없다.
장수 역시 이해를 했다. 장수가 상대하는 자들은 황실이다. 그러니 더 무엇을 말하겠는가?
공주의 멀리에서 경계를 하다가, 적이 나타나면 구파일방의 신진고수들과 함께 상대하면 되는 것이다.
오래 전부터 황실에 이런 체계가 잡혀있기에, 따지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행동이었다.
다소 무리한 말들이지만, 그 속에는 어떤 이유가 있음이 분명했다.
“알겠습니다.”
장수는 당두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괜히 싸울 필요가 없었다.
그저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 혈교의 자객이 오면 그때 가서 온힘을 다해 막으면 된다.
“그럼 근무시간을 알려드리겠습니다. 호위무사들에게는 따로 마차가 주어지는데, 밤낮을 가리지 않고 호위를 하다가, 낮에 움직일 때 그 마차에서 휴식을 취하면 됩니다. 휴식을 취할 때는 정파의 무사들과 교대를 하십시오.”
“그런데 이번에 호위를 맡은 절정고수는 몇 명이나 됩니까?”
장수의 말에 당두의 안색이 변했다. 그리고 냉정하게 말했다.
“그것을 물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절정고수가 몇 명이나 모였는지는 일급비밀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이 알려지게 되면 큰 문제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공주의 호위를 맡은 자들의 수도 드러나게 된다.
하지만 장수로서는 답답한 일이었다.
그 정도는 이미 혈교에서 눈치챘을 것이다. 호위를 맡은 자에게는 알려줘도 무방한 사항을, 가르쳐 주지는 못할망정, 화부터 내니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마교나 혈교에서는 그 사실을 알 것입니다. 그러니 저 역시 알아 두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