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6편 - 호위
장수는 마차에서 수련을 하고 있었다.
“수련이 정말 잘되는구나.”
양헌에서는 잠시도 쉬지 않고 일이 생겼다. 때문에 무공을 수련할 최소한의 여유도 없었다.
서류 하나하나가 매우 중요했기에, 잠시도 쉬지 않고 일을 해야만 했었다.
하지만 이곳은 다르다.
장수가 책임을 질 일이나, 해야 할 업무가 전혀 없었다.
거기다 음식도 군인들이 가져다주기에 수련에만 매진하면 된다.
물론 근무시간이라는 게 있지만, 그 시간에도 하는 일이 전혀 없다.
공주를 지척에서 호위하는 것도 아니고, 멀리서 경계를 서니 할 게 없었다.
그리고 마기를 지닌 자들이라면 멀리서도 식별이 가능했기에, 근무시간에 무공에 집중할 수가 있었다.
장수는 무공이 정말 고팠다. 미치게 고팠다.
항상 무공을 수련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었고, 약간의 여유도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무공 수련을 하는 데 조금의 방해도 받지 않고 있다.
여기에 구파일방의 제자들이 알아서 장수를 피한 것이 한몫했다.
그들은 장수를 잘 상대하지 않으려 했다. 그는 고립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장수는 소외감을 느끼기는커녕, 오히려 편안해했다.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도 되어, 그는 현재의 상황을 흐뭇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구파일방의 제자들이 마음에 들지가 않았다.
그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모두 무기를 들고 있는 데 있다.
그들 중에는 무기가 없는 자가 한 명도 없었다.
권법이나 장법은 무기를 들지 않게 된다. 몸을 최대한 가볍게 하기 위해서다.
무기는 보통 철로 만들어지는데, 철의 무게는 보통이 아니다. 따라서 무기를 든 만큼 속도를 내기가 힘들다. 권법가나 장법가는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무기를 들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두 주먹이 무기이기에, 무기를 들 필요가 없다.
장수 역시 마찬가지였다.
상대방이 멀리 있지 않은 한은 두 주먹이나 장으로 상대를 하면 되었기에, 무기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런데 구파일방의 제자들은 모두 무기를 들고 있었다.
황궁의 병사나 호위들이야 황궁 무술이 원래 장병기로 발전을 했으니 무기를 쓰는 것이 이해가 되지만, 구파일방에서 그러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았다.
너도나도 다 무기를 쓰고, 권법은 사용하지 않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장수는 장법가다.
장법을 쓰는 자가 있다면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터라, 심통이 난 것이다.
거지인 개방의 제자 역시 타구봉을 허리에 맨 상황이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그래서 장수 역시 구파일방의 제자들과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장수가 이곳에 와서 한 일은 근무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대규모 인원이기에 적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설마 이렇게나 많은 인원을 보고 덤비는 겁 없는 자가 있을까.
감찰단은 아무 일 없이 움직일 수 있었다.
감찰단이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하북이었다.
하북의 경제나 정치는 북경에 속박될 수밖에 없었다. 거리도 가까워 수도인 북경에 영향을 받기가 쉬웠다.
감찰을 할 필요도 없는 지역이었다.
학자들이나 관리들도 하북은 휴식을 취하는 곳이라 생각을 하는 듯했다.
마침 하북은 축제 중이라, 감찰은 그리 심각하거나 길게 진행되지 않았다.
하북 감찰이 끝나자, 감찰단은 산서로 움직였다.
산서 역시 수도인 북경에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감찰 역시 형식적이었다.
감찰이 필요한 곳은 좀 더 서쪽에 있다.
그런 지역들은 수도와 멀리 떨어져 있어, 수도의 영향을 덜 받고 정보를 얻기가 힘들다.
감찰단의 주 표적이라고 말할 수가 있다.
하지만 이번 감찰은 공주의 여행이나 다름없어서, 전운이 감도는 신강 근처는 가지 않을 계획이었다.
감찰 계획이 있는 지역 중에 오래 돌아볼 곳이 거의 없었다.
산서의 성주가 있는 도시에 도착하자, 감찰단 중 일반 백성들과 군인들은 도시 밖에 머물렀다.
그리고 공주의 호위와 관리, 학자, 상단, 그리고 구파일방의 절정고수들만 도시로 들어갔다.
도시에 들어가서도 공주의 지척에서 호위를 하는 호위들은 좋은 대접을 받았다. 그들은 가장 좋은 음식을 양껏 먹을 수 있었다.
그보다 대접은 덜했지만, 장수 역시 편한 환경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장수는 불만이 조금도 없었다.
단지 공주의 얼굴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보안이 철통과 같아서, 호위인 장수도 그녀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공주가 시녀들과 함께 가끔씩 마차 밖으로 나올 때도 있었지만, 그때도 호위들이 자신의 몸으로 공주를 가렸다.
원거리에서 공격을 하는 암살자들에 대항하기 위해서였지만, 공주의 보안은 상상을 초월했다.
하지만 장수는 공주의 얼굴을 보는 데 그렇게까지 열성적이지 않았다.
사실 그로서는 어린 공주의 얼굴은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이었다.
황실제일미라 하여 호기심은 있었지만, 그리 큰 관심거리는 못 되었다.
장수의 머릿속에는 번천장에 대한 생각이 가득했다.
번천장을 익히기 위해서는 노력이 제일이다.
그것은 오랜 시간 동안 참오하고 참선을 해야 겨우 익힐 수 있는 무공이다.
그는 전에 익혔던 무공을 수련한 뒤에는 모든 시간을 번천장을 익히는 데 썼다.
장수는 계속해서 장을 뻗으며 번천장에 대해 연구했다.
번천장이란 하늘을 부술 듯한 위력을 가진 무공이다. 익히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그렇게 장수가 땀을 흘리며 수련을 할 때, 인기척이 났다.
“소협, 안에 있는가?”
개방의 중년 거지인 왕소의(王紹義)였다.
절정고수이지만 다른 구파일방의 절정고수들보다는 확연히 약해 보이는 인물이다.
아무래도 개방의 무공이 다른 문파에 비해 약하기에, 왕소의의 무공 역시 약해 보이는 것이다.
구파일방의 제자들 중에서 왕소의만이 장수한테 말을 걸었는데, 그도 근무시간을 알려주거나 전달사항을 얘기해 줄 뿐,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나머지 구파일방의 제자들은 장수를 철저하게 무시했는데, 모두 장수가 자초한 일이다.
명문정파라 할 수 있는 구파일방의 제자들과 함께 있다면 누구나 먼저 다가가 말 좀 붙여 보려고 야단일 것이다.
더구나 이곳에 있는 자들은 모두 각 문파의 실세며, 차기 장문인 감이다.
모두들 자신감이나 허영심이 대단했다.
물론 명문정파의 제자로서 교육을 받았기에, 의와 정의를 향하는 마음이야 당연히 가졌지만, 정의를 생각하는 것과 허영심이 든 것은 별개의 문제다.
그들은 겉으로는 그런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소문파나 세가 약한 자들을 멸시했다.
보통 남들이 떠받들어 주는 삶을 살았기에, 그런 마음이 들기 쉬웠다.
그런데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장수가 자신들을 본 척도 안하자, 그들은 굉장히 불쾌했다.
장수는 이를 잘 알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자신의 신분을 제대로 밝힐 수도 없는 상황이고, 홀로 무공을 수련하는 것이 생각했던 것보다 성취가 있었다.
처음에는 그럴 의도가 아니었지만, 그는 시간이 지나자 의도적으로 구파일방의 제자들과 거리를 두었다.
근무를 설 때도 누구 하나 말을 걸어주는 자가 없었지만, 그는 그게 오히려 속이 편했다.
“예, 안에 있습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장수의 말에 왕소의는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래. 자네에게 할 말이 있어서 왔네.”
“말씀하십시오.”
“자네 언제까지 이럴 텐가? 같이 행동을 한지 벌써 20여일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났네. 그동안 우리 사이에서 자네에 대한 말들이 많았네. 지금도 그렇고 말이야. 자네는 왜 계속 그렇게 행동을 하는 것인가?”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소속을 밝히지 못하는 것은 그렇다 쳐도, 왜 다른 사람들과 거리를 두는 것인가? 근무 중에 서로 의견을 나누어야 되는데 자네는 그런 게 없지 않은가? 더구나 다른 자들은 근무시간 외에도 주의를 경계하기를 게을리하지 않는데, 자네는 왜 근무시간이 끝나면 그대로 마차 안으로 들어가는 것인가?”
어떻게 보면 불만거리가 되기 힘든 일들이지만, 단체 생활을 할 때는 꼭 신경을 써야 할 일들이다.
장수는 잠시 말을 하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장수는 황실에 있었을 때 위기감을 느꼈었다.
과연 동창이나 금의위의 초절정고수를 자신이 상대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계속 그를 괴롭혔다.
전생에서는 수많은 혈전을 경험하고, 수련을 했기에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초절정고수와의 경험이 전무하다. 물론 머리로는 알고 있다.
수많은 초절정고수를 상대해 본 기억이 남아있다.
거기다 전생에서 많은 초절정고수들과 혈전을 벌였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초절정고수 자체를 많이 만나지 못했고, 싸워본 경험은 전무하다.
‘표길랑과 대련을 한 번 했어야 했는데……’
방법은 많았다.
자리를 만들어서 박 터지게 싸우자고 했어도, 표길랑의 성격상 아무 의심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표길랑이 어리버리하게 행동을 해서인지, 그를 너무 우습게 봐서 그러지 못했다.
황실의 초절정고수들을 만나고 새로운 긴장감이 든 지금, 그와 진즉에 싸우지 않은 일이 후회가 되었다.
장수는 구파일방의 고수들과 지금 같은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싶었다.
물론 구파일방의 영재들과 관계를 맺는다면 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각파의 영재답게, 그들은 성격이 좋았다.
허영심은 있지만, 그것도 특별히 으스대길 좋아해서는 아니었다.
그들의 위치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
본성이 착하고 성실하며, 남을 위하는 마음이 가득했다.
각 파의 미래라 할 수 있는 인재이기에 마음가짐 역시 훌륭했다.
그리고 그들의 심정도 생각을 해줘야 한다.
그들도 같이 근무를 설 때 만큼은 장수와 어떻게 해서든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을 것이다.
특히 야간 근무를 설 때가 문제다.
주간근무는 근무시간이 짧아, 그렇게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야간근무는 근무시간이 매우 길다.
호위들은 긴 야간근무 시간 동안 서로 잡담을 나누며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그중 한 명인 장수가 말을 안 하니, 불만이 자연스레 생기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 점은 고치겠습니다.”
장수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있었다.
아무리 수련이 중요하다 해도, 3일에 한 번 정도 서는 야간 근무 때는 다른 자들과 대화를 해야 했다.
장수는 아쉽기는 했지만, 생각을 고치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그들과 대화를 나누는 일은 그리 나쁜 일이 아니다. 오히려 구파일방에 대해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장수의 말에 왕소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구파일방에 소속된 개방의 장로인 자신을 무시할 수는 없을 거라며, 자신의 질책이 통했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래. 자네가 노력만 하면 문제는 없네. 우리는 언제나 자네를 향해 손을 벌리고 있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평상시에도 너무 마차에만 있지 말게. 거기서 무엇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보기에 안 좋네. 그러다 마교가 공격이라도 하면 어쩔 셈인가?”
그 일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문제였다.
장수는 혈교의 기운을 느낄 수가 있다.
지금까지는 혈교의 기운이 느껴지는 자가 없기에, 안심하고 마차에 들어간 것이었다.
그리고 아직 수도인 북경과 가까운 거리에 있다. 초반부터 큰 문제가 발생한다면, 공주가 다시 북경으로 돌아갈 수도 있는 거리였다.
아무리 감찰단의 임무가 중요해도, 황실의 중요한 자를 위험에 노출시킬 필요까지는 없었던 것이다.
중경이나 귀주, 아니면 광서까지는 가야 소동이 벌어질 가능성이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