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0편 - 마교의 자객
혈교가 노리는 것은 공주의 암살이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라면 어떤 방법이라도 쓸 것이다. 하지만 장수는 어떻게든 막아야 했다.
만약 혈교의 암살이 성공한다면 엄청난 파국이 생길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 밖에서 소리가 났다.
“소협, 뭐하는가?”
왕소의였다. 그는 장수를 큰소리로 불렀다.
‘후, 또 부르는구나.’
장수는 왕소의에게 많은 정보를 얻어야 하기에, 그와 친해지면 친해질수록 좋았다. 하지만 그만큼 수련을 할 시간이 줄어든다는 것이 문제다.
모처럼 느긋하게 수련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하지만 그런 기회를 제대로 못 살리고 있다. 왕소의가 부르면 어찌되었던 밖으로 나가야 했다.
“대협, 부르셨습니까?”
“그래. 이 좋은 날에 마차 안에만 있어서 불렀네. 밖을 보게. 얼마나 좋은가? 이런 좋은 경치를 보지 않는 것은 죄라 할 수 있네.”
산서에서 섬서로 가는 길에는 수많은 산이 있어 풍경이 보기 좋았다.
주변 경치를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다. 하지만 장수로서는 풍경을 감상하는 것보다 개인적인 무위를 올리는 것이 더 중요했다.
황궁에서 초절정고수들을 만나 경쟁심이 살아난 것도 있지만, 앞으로 혈교에서 어떤 방식을 쓸지 모르는 상황이다. 그랬기에 조금이라도 더 강해져야 유리했다.
“예. 정말 좋은 경치입니다.”
이렇게 여유를 가지고 경치를 감상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장수는 전생에서 항상 쫓기며 살았기에 주변 경치를 살펴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누군가를 죽이거나 아니면 임무에 성공한 후 도망치는 일이 그의 삶의 전부였다.
“자네도 안에만 있지 말고 나와 있게. 공기도 마시고 사람들과 대화도 나누고. 얼마나 좋은가?”
“알겠습니다.”
“그런데 대체 안에서 무엇을 하는 것인가?”
장수는 왕소의의 말에 난감해했다.
“생각할 게 많아서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무슨 정리할 생각이 그리 많은가? 북경을 떠나서 계속 그곳에서 살지 않았는가?”
“그래도 정리가 안 되네요.”
무공을 정리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무공이란 수련을 하면 할수록 더하게 되는 마력이 있다.
수련을 하다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가기 마련이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괜찮다면 내가 들어주겠네. 생각도 사실 나누면 반으로 줄어드는 것이네. 그러니 나에게 말을 해보게.”
왕소의는 흔히 강호에서 말하는 대협이라는 칭호가 어울리는 자였다.
무슨 일이든 흥미가 많고 남을 도와주기를 좋아하는 것을 보면 대협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괜찮습니다, 대협. 사실 남에게 말할 거리도 못 됩니다.”
초절정고수의 궁금증을 풀어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초절정고수 뿐이다.
장수는 갑자기 스승 유운이 생각났다.
유운이 곁에 있다면 좀 더 높은 성취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유운이 없기에 혼자서 고민을 해야 한다.
무공 외적인 고민인 혈교에 대한 것도 의논할 수가 없다.
혈교가 공격할 거라는 사실도 모르는 자들에게 무슨 말을 하겠는가? 말을 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 뻔했다.
왕소의는 잠시 장수를 바라보았다.
“어렵게 생각하지 말게. 자네가 소속된 문파가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같은 땅에서 태어나 강호를 주유하는게 우리 무림인이네. 나를 비롯한 동료들은 자네를 도울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명심하게.”
“알겠습니다. 대협.”
“그래. 자네가 무슨 고민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왕 나온 김에 우리와 같이 얘기나 하세.”
왕소의가 그렇게 말을 하는 이상 거절은 예의가 아니었다.
“알겠습니다. 대협.”
이렇게 장수는 꼼짝없이 시간을 뺏겼다.
감찰단이 움직이는 것을 유심히 지켜보는 자가 있었다.
그는 복면을 하고 있었는데, 감찰단만을 관찰하며 진지한 표정으로 무엇인가를 적기 시작했다.
그는 동상처럼 서 있다가, 감찰단이 어느 위치에 도달하자 품에서 급하게 호각을 꺼내 불었다.
호각 소리는 매우 독특했다. 마치 새의 지저귐과 같아, 그 소리를 알아챈 자가 없었다.
하지만 한 명은 달랐다. 바로 장수였다.
장수는 귀에 익숙한 소리를 듣자마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혈교다.’
전생에서 너무나도 자주 들었던 소리다.
혈교에서는 각 임무마다 사용하는 소리가 달라, 어떤 목적으로 소리를 냈는지 알기가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혈교가 행동을 개시한다는 것이다.
‘어디냐?’
장수는 왕소의의 말을 듣는 척 하면서 주변을 빠짐없이 살폈다.
그는 자객이 숨을 만한 곳을 열심히 찾았다.
혈교의 자객들은 상식을 벗어나게 은신한다.
장수도 그들이 어디에 숨었을 거라고 확신을 할 수가 없었다.
그들이 숨은 장소는 땅속이 될 수도 있고, 나무속일 수도 있다. 멀쩡해 보이는 돌도 안심을 할 수가 없다.
장수는 자객을 찾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침착하자. 혈교에서 호각소리가 나면 어떻게 하지?’
전생에서라면 분명 알아냈을 것이다. 남을 죽이는 게 생활이었으니까.
하지만 벌써 20여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들이 숨은 장소가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우선 지정된 마약을 먹겠지.’
혈교를 비롯한 마공을 쓰는 마인들은 통증을 감소시키는 마약을 복용한다.
마공을 쓴다는 것은 엄청난 고통과 싸우는 일이다.
장수 자신만 하더라도 흑룡장을 쓰면 엄청난 고통을 느꼈었다.
마공이라는 게, 단기간에 강한 무공을 얻을 수 있지만, 그만큼 몸을 망치게 된다.
마약을 복용하는 게 거의 일상이었다.
마약은 통증을 없애기만 하는 게 아니다.
공포도 없애 준다.
실전에서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싸울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혈교에서 전해준 환단을 먹겠지.’
혈교에서는 마인들을 강하게 하기 위해 별짓을 다한다. 그중 하나가 환단이다.
환단은 보통 선천지기를 이용하는 게 보통이다.
선천지기를 사용하기 때문에 수명이 줄어들지만, 혈교에서는 마인들의 수명이 줄어드는 것을 신경쓰지 않는다.
그들을 소모품이라고 생각하기에, 그들의 목숨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혈교에서 사용하는 환단은 그 수가 많다. 그리고 종류도 다양하기에, 어떤 환단을 썼는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환단을 먹은 자객은 내공만큼은 강해지기에, 금지된 수법을 쓰는 것도 가능했다.
다시 한 번 호각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제 운기행공을 할 시간인가?’
약효가 잘 듣게 하기 위해서는 운기행공이 필수다.
운기행공을 해야 약효가 몸 구석구석으로 퍼져 나가고 잠재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장수는 천천히 기감을 올렸다. 그러자 주변에서 마기가 느껴졌다.
자객들이 운기행공을 통해 마기를 증폭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객들은 장수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도 대기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었는데, 장수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이들이 내공이 약해서 내가 파악하지 못했구나.’
경지에 따라 내공의 양이 달라진다.
고수들은 아무리 많은 내공을 가지고 있어도 양이 적다.
더구나 은신술을 펼치면서 귀식대법을 사용하면 장수의 기감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발견하기 힘들다.
그나마 환단 같은 것을 먹었기에 마기가 증폭되어 쉽게 발견할 수 있었던 거지, 그렇지 않았다면 발견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냥 지켜봐야겠지?’
가진 내공으로 봤을 때, 아무리 환단의 힘을 빌렸다고 해도 절정급 무인의 실력밖에 낼 수 없을 것이다.
지금 무림맹이 가진 전력이라면 충분히 상대할 수가 있다. 그리고 장수도 무림맹이 가진 전력을 알아야 했다.
그래야 다음 혈교의 공격을 막을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
그 순간 또 호각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지만 아직까지 눈치를 챈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지금 눈치를 채 봐야 이미 늦었다. 자객들은 벌써 준비가 끝났다.
“으악!”
짧은 비명소리가 신호였다. 그와 함께 여기저기서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땅바닥에서 튀어나온 자객들이 주변의 병사들을 학살했다.
수는 10여 명이었다.
적은 수였지만, 병사들이 그들의 공격을 막기는 힘들었다.
“마교의 절정고수다.”
구파일방의 제자들은 자객들을 보고 놀라워했다.
자객들이 가진 검에서 흐르는 검기를 본 것이다. 검기를 사용할 수 있다면 절정고수다.
절정고수가 10명이나 나타났으니, 무림맹에서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녀석들을 제압해라.”
절정고수를 상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마교의 절정고수다.
조금만 방심하면 목숨이 위험해지기에, 구파일방의 제자들도 각오를 단단히 하고 달려들었다.
그러자 마교의 자객들이 화려한 마공을 펼치며 구파일방의 절정고수들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검술은 화려했지만, 자세히 보면 절정고수의 깨달음은 없었다.
지금 자객들이 펼치는 검술은 혈교에서 오랜 시간 동안 개발한 검술로, 환단을 통해 절정고수가 된 자들을 위해 만든 검술이다.
내공소모가 심하지만 잠시 동안은 절정고수를 상대할 수 있는 무공이다.
자객들은 구파일방의 절정고수들을 상대로 밀리지 않는 싸움을 했다.
더구나 자객들은 준비를 많이 한 듯, 구파일방의 절정고수들을 상대하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그때 나무가 갈라지며, 그 속에서 자객들이 튀어 나왔다. 그들은 모든 것을 제쳐두고 공주가 있는 마차를 향해 달려갔다.
“막아라!”
황실의 절정고수들은 이런 소동 속에서도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공주를 호위하는 일에만 집중을 했다. 그들은 마교 자객의 공격을 침착하게 막아냈다.
하지만 자객들이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고 달려들었기에, 그들은 점차 밀리기 시작했다.
정파의 무사들이 자객들을 몰아붙이는 것과 비교하면, 황실 무사들의 수준이 떨어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황실의 절정고수들이 수준이 떨어지는구나.’
장수는 싸우는 모습을 보고 두 집단의 수준차이를 알 수 있었다.
육안으로만 봐도 정파의 절정고수들이 황실의 절정고수들 보다 반수 이상 실력이 뛰어남은 확실했다.
싸움은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자객은 숨어 있을 때 그 진가를 발휘한다.
그런데 정체를 드러났으니, 본 실력을 발휘하기 힘들었다.
절정고수들은 계속해서 일정한 힘을 발휘했지만, 자객은 환단의 약효가 사라지면서 힘을 잃고 하나둘씩 제압을 당했다.
장수도 구파일방의 제자들 틈에 섞여 자객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그는 모든 힘을 발휘하지 않고, 다른 구파일방의 제자들의 손발에 맞춰주었다.
그는 싸우면서도 혈교와 황실, 무림맹의 무사들의 실력을 계속 탐색했다.
특히 자객들을 예의 주시했다. 자객의 공격법을 보면서 혈교에서 달라진 점이 있는지 열심히 살폈다.
과거에 비해 그리 바뀐 점은 없었다. 하지만 전생의 자객들에 비해 마기와 검술이 강해졌다. 모두 환단이 위력이 더 강해진 덕분으로 보였다.
혈교에서도 환단에 대한 연구가 많이 진행된 듯했다.
지속 시간도 예전에 비해 더 줄어든 듯했다.
예전에 비해 자객이 기운을 잃는 시점이 더 앞당겨 진 것이다.
약효는 강하게 하면서 본신의 생명력은 더욱 빨리 닳게 만든 것이다.
‘악독한 놈들.’
치가 떨리는 일이다. 생명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혈교에서야 가능한 일이다.
자객들은 죽어가면서도 검 휘두르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자 자객들이 하나 둘씩 쓰러지기 시작했다. 약효가 다 된 것이다.
“드디어 쓰러뜨렸다.”
“나머지 녀석들도 쓰러뜨려야 하지만, 죽이지 말고 생포하도록 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