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2편 - 두번째 자객
감찰단의 분위기는 많이 가라앉아 있었다. 그들은 가까운 도시를 향해 빠르게 행군했다.
원래는 계획에 없던 행군이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언제 혈교의 공격이 다시 시작될 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병사들 역시 어두운 표정이었다. 그들은 동료들의 죽음을 옆에서 목격했다.
또 잡힌 자객들이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자진을 하는 것을 보고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마교가 본격적으로 공격을 시작한 거 같아 긴장한 자들도 있었다.
경계도 평상시에 비해 삼엄했다.
자객의 공격은 정말이지 아무도 눈치챌 수 없게 은밀하게 진행이 되었다.
호위단이나 병사들로서는 경계 인원을 늘리는 것으로 대응을 할 수밖에 없었다.
장수는 마차에 있었다.
습격의 영향으로 장수에 대한 관심이 사그라든 것이다.
자객이 공격하지 않고 한가했을 때야 장수가 화제가 될 수 있었지, 위험한 상황에서는 그렇지가 않다.
“드디어 시작되었구나.”
이미 예상했던 일이었다.
어떻게 막아내긴 했고 대응 역시 잘했지만, 분명 호위를 맡은 자들에게 문제가 있었다. 자객들에게 너무나도 무방비 했던 것이다.
은신을 하고 있는 자객을 도저히 발견하지 못했다.
물론 그것은 장수 역시 마찬가지였다. 만약 호각소리가 나지 않았다면 장수 역시 자객을 파악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그런 상황이었기에, 호위를 맡은 절정고수들이 자객을 파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앞으로 혈교가 어떻게 공격을 할까?”
혈교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공주가 황궁 밖에 있는 이상 암살을 끊임없이 시도할 것이다.
그것은 황궁에 도착할 때까지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것을 알기에 장수는 대응책을 생각해야 했다.
“다음 공격은 전보다 더 강하겠지. 자객을 쓸까?”
혈교의 세뇌기술이 얼마나 발단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자살까지 하게 만드는 세뇌는 쉬운 게 아니었다.
더구나 세뇌에 걸리기 쉬운 체질인 자를 구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였기에 20여 년이 지난 지금이라고 해도 쉽게 양성하지는 못할 거 같았다.
하지만 혈교가 그 사이에 기술을 개발할 수도 있었다. 그랬기에 주의는 해야 했다.
“시선을 다른 데로 돌려놓은 다음에 마인들이나 산적들을 이용하겠지. 그것도 아니면 혈교에 소속된 고수들을 동원하던가 하겠지. 그리고 만약 할 수 있다면 초절정고수도 동원할거야.”
혈교에는 초절정고수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숫자는 무림맹과 황실의 초절정고수들을 합친 만큼 있었던 것이다. 혈교에서는 항상 초절정고수들의 숫자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에 20여 년이 지난 지금이라고 해도 그 숫자가 바뀌거나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초절정고수는 그 자체만으로도 무서운 무기다.
그리고 초절정고수를 상대하는 것은 같은 초절정고수 뿐이다.
초절정고수를 절정고수로 상대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얘기다.
초절정고수는 그만큼 신체능력이 뛰어나고 내공도 고강하기 때문에, 절정고수는 자신이 죽는지도 모르고 죽는다.
물론 일정 이상의 절정고수가 있으면 초절정고수를 상대할 수 있다고 하지만, 그것도 경험이 많은 절정고수들이 합격진을 펼치고 덤벼야 가능한 일이지, 보통은 힘들다.
그리고 혈교의 초절정고수는 고강한 내공만큼이나 강력한 무공을 사용한다. 그렇기에 어설픈 절정고수들은 때죽음을 당할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혈교에서 초절정고수를 동원할지 말지가 관건이다. 초절정고수를 2명이상 동원한다면 장수로서도 승산이 없었다.
하지만 초절정고수들이 나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초절정고수들은 각자 하는 일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맡고 있는 사업도 있었으며 절정고수들 장수에게 많이 죽어서 그 공백을 채우기가 싶지 않았던 것이다.
더구나 초절정고수들은 혈교의 수뇌부였으며 혈교의 핵심 가문의 수장들이였다.
그런 존재들을 움직이는 것은 혈마라 해도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수뇌부 회의를 거치고 수뇌부들이 찬성을 해야 일을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과거의 일이였다.
전생에서는 그런 구조였지만 현재로서는 바뀌었을 수도 있었던 것이다.
장수가 현재 할수 있는 일은 혈교의 움직임을 예측하는 것이다.
그래서 최악의상황은 피하고 될 수 있으면 공주를 데리고 도망을 치는 것이 목표였던 것이다.
혈교는 끈질긴 자들이라 엄청난 피해를 입지 않는 한, 공주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황실로 도망간다면 최악의 사태는 막을 수 있다. 마교와의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수가 있다.
하지만 공주를 잃으면 황실로서는 체면상 보복을 해야 하고, 싫어도 마교와의 전쟁을 선포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최종적으로 승자는 혈교가 되는 것이다.
“그럴 수는 없지.”
장수는 혈교가 천하를 잡는 것은 최대한 막고 싶었다. 혈교는 개인의 자유는 생각도 안 하는 집단이다.
그랬기에 혈교가 중원을 차지하면 천하의 백성들은 대부분 세뇌에 걸려 혈교의 의지대로 움직일 것이 뻔했다.
그렇게 생각에 빠져 있는데 마차가 천천히 멈추는 것을 느꼈다. 어딘가에 도착한 듯했다.
장수는 멈추자마자 마차 밖으로 나왔다. 지금은 상황이 심각한 상황이었다.
멈춰 선다면 이유를 확인해야 했던 것이다.
감찰단이 도착한 곳은 마을보다는 크지만 도시라고 하기에는 작은 곳이었다.
우선은 급했기에 인근 도시로 피하려고 하다가 여기로 왔는데, 이 정도로 작을 줄은 생각도 못한 듯했다.
‘여기는 정말 아닌데.’
도시 규모는 돼야 도움이 되지, 이 정도 규모라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에게 큰 피해를 줄 수가 있다.
마을 주민들은 군대가 오자 신기해했다.
원래 목적지가 이곳이 아니었기에, 주민들은 아무런 정보도 없이 군대를 맞이한 것이다.
촌장으로 보이는 자가 급하게 감찰단 호위 부대의 장군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장군도 난감해했다.
하지만 마을에서 지내는 쪽이 싸울 때는 더 나았다. 아무래도 도시라면 은신처도 되고 전쟁에 도움도 된다.
하지만 상대는 혈교다. 절대 정석대로 행동하지 않는 상대를 상대하는데 은신처나 방벽 따위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장수가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왕조의가 장수에게 다가왔다.
“뭐하고 있는가?”
“예? 주변을 살펴보고 있었습니다.”
“그래? 휴. 애꿎은 민간인들에게 피해를 주게 생겼어.”
이곳에 있는 주민들은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처음 보는 부대를 신기해하며 웃고 있었다.
사실 혈교가 바로 공격을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혈교 역시 이번 공격을 토대로 다시 암살대를 재구성해야 했기에,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감찰단은 그런 사실을 몰라, 금방이라도 공격이 들어올 줄 알고 긴장한 것이다.
“그렇습니다.”
“그래. 그리고 자네에게 알려줄게 있네. 자네도 알겠지만, 우리 쪽은 자객들의 암살을 잘 막지 못했어. 만약 무림맹의 고수들만 공주를 호위했더라면, 두 번째 자객에게 공주가 죽임을 당했을 것이야. 그만큼 마교의 자객들 실력이 뛰어났고 대단했네.”
남을 인정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장수는 왕조의가 구파일방 중 하나인 개방의 장로로서 그래도 약간 오만할 줄 알았었다.
그는 담담하게 현실을 인정하는 왕조의를 보고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현실을 인정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거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근무를 서려고 하네. 자네도 알겠지만, 이대로라면 공주의 호위에 실패할 수가 있네. 그렇게 되면 큰 문제가 발생할거야. 그래서 좀 더 호위를 많이 서기로 했네.”
“그렇습니까?”
“그래. 후……”
왕조의는 한숨을 내쉰 후에 말을 이었다.
“거기다 자객들에 의해 부상을 입은 자들 때문에 호위에 공백이 생겼네. 자네도 알겠지만, 그들 대부분은 독에 당해 무공을 사용할 수 없는 처지네. 제대로 된 곳에서 치료를 받지 않는 한은 전력이 될 수 없다네.”
위험 요소는 커졌는데 인원은 줄어든 것이다.
“저런…….”
“그래서 부상당한 자들의 근무 역시 우리가 대신 서야 하네.”
장수로서는 오히려 다행이었다. 아무리 혈교가 제 정비를 하는데 시간이 걸린다고 하더라도 언제 공격할지는 모르는 상황이다. 그런 상황이기에, 공주를 호위하는 시간은 길어야 한다.
지금 상황에서는 거의 대부분이 근무를 서야 했다.
“그럼,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지금은 2교대로 하기로 했네. 즉, 반이 근무를 서면 나머지 반은 대기를 하고 다시 돌아가면서 근무를 서는 거네. 하지만 대기를 하는 것도 언제든 출전할 수 있는 상황이여야 하네. 사실 이번에도 만약 적들이 밤중에 공격을 했더라면 피해가 더 클 뻔했어. 다행히 낮에 공격을 했기에 만정이지 밤중에는 야간근무 조밖에 없었으니 잘못하면 황실의 호위무사들로 자객들을 막을 뻔 했네. 그러니 이번에는 아예 그런 방법도 안통하게 해야 하네. 그래서 앞으로는 휴식시간에는 간단하게 운기조식을 취하기만 하고 대기상태를 유지하기로 했네. 그리고 그것은 자네 역시 따라주었으면 하네.”
왕조의는 인상을 썼다. 지금은 비상사태이므로 그에게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장수의 돌출행동을 인정해 줄 수가 없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대문파로서 모범을 보이고 장수를 배려해 주려고 했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다. 그리고 그만큼 공주를 지키는 게 중요했다.
“알겠습니다.”
“그래. 이해해 주어서 고맙네. 그럼 자네도 지금부터 근무를 서게. 그리고 공주를 호위하는 공간이 더욱 줄어들었네. 그만큼 우리를 인정해 준다는 말이지. 그러니 공주가 탄 마차에서 15보까지 접근해서 근무를 서야 하네. 그리고 자객이 나타나도 그 자리를 벗어나지 말게. 그건 병사들이 당해도 마찬가지야. 그리고 만약 최후에는 공주를 구하는 것을 우선으로 해야 하네. 공주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긴다면 그 책임은 아무도 지지 못할 것이야.”
왕조의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했다.
정파인 왕조의는 병사들을 두고 공주를 최우선으로 데리고 가라는 말을 쉽게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공주에게 문제가 생기면 큰 문제였기에 그렇게 말을 한 것이다.
‘이렇게 하면 공주를 구할 수는 있겠구나.’
장수로서는 왕조의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공주를 구하는 것이 더 큰 희생을 막을 수 있는 길이였다. 그랬기에 구파일방의 제자들이 그렇게 결정을 내린 듯했다.
“알겠습니다.”
“명심하게. 우리의 임무는 공주의 호위라는 것을 말이야.”
“예.”
“그럼 따라오게.”
왕조의의 말에 장수는 그를 따라갔다.
그리고 공주가 있는 마차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까지 와서 대기를 했다. 그곳에 있는 자들은 모두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모두 마교의 수단이 생각보다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자객들이 무위도 무위였지만 자살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독이든 검을 사용하는 것도 두려웠던 것이다.
대결을 할 때 다치는 것이 다반사였다. 그런데 다치면 안 되는 상황이다.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때 왕조의가 장수를 보며 말을 했다.
“그런데 자네 아직도 무기를 들지 않은 것인가?”
“저는 무기를 쓰는데 익숙하지 않습니다.”
“전에는 자네가 무기를 쓰지 않아도 상관이 없었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틀리네. 자객들은 독을 쓰고 있네. 그리고 독을 쓰고 있으니 조금이라도 상처를 입는다면 독에 중독이 될 걸세. 그럼 자네 개인에게도 큰 문제지만 공주를 호위하는 임무도 지킬 수 없게 되는 것이네.”
사실 장수는 왕조의의 말을 들을 필요가 없었다. 왕조의와 같은 소속도 아니고 같은 무림맹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저 황실에 고용이 되어 따라온 것으로 되어 있었기에 왕조의의 말을 따를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장수는 마음씨가 좋고 정의로운 왕조의가 마음에 들었다.
거기다 자신에게 잘해줄려고 노력을 했기에 반발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도 무기를 꺼내겠습니다.”
장수는 말과 함께 품에서 작은 칼을 꺼내들었다. 바로 장수가 만든 식칼이었다.
보통 음식을 요리할 때 사용했는데, 이번에는 싸우기 위해 들었다.
장수는 검을 쓰는 것이 불편했지만, 그래도 작은 칼을 사용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이런 식칼은 싸우다 숨겨도 되었기에 문제가 없었던 것이다.
장수의 말에 왕조의는 한숨을 내쉬었다. 장수가 상황 파악을 하지 못했다고 생각을 한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 권할 수도 없었다. 지금 상황에서 장수만을 상대할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일정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장수의 말에 왕조의는 인상을 구겼다.
“원래 계획은 성을 돌며 감찰을 하는 것이지만, 계획이 바뀌었네. 마교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고 느낀 거지. 더구나 부상자도 있는 상황이니, 더 이상 가는 것은 위험한 일이네. 그래서 다시 북경으로 돌아갈 생각이지만, 마교의 공격이 얼마나 계속될지 짐작도 되지 않네.”
다시 돌아가는데도 온 만큼의 시간이 걸린다. 그랬기에 감찰단도 걱정이었던 것이다.
이 정도 전력이라면 마교의 공세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을 했지만, 어림도 없었던 것이다. 그랬기에 안전한 북경으로 돌아가야 했던 것이다.
그렇게 대화를 하는 동안 병사들이 식사를 준비하여 구파일방의 고수들에게 나누어 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긴장을 해서인지 무사들과 병사들은 음식을 제대로 섭취하지 못했다.
장수는 그런 사람들을 보며 미간을 찡그렸다.
‘이거 큰일이구나. 전투를 하기도 전에 지치겠어.’